서정적 풍경 1 - 보나르 풍의 그림에 담긴 서정적 풍경 1
복거일 지음, 조이스 진 그림 / 북마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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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거일. 그의 작품을 읽은 적이 있던가? 한참 생각했다. 저자의 이름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비명을 찾아서>란 제목이 왠지 가물가물하다. 뭔가 생각날 듯 날 듯...하면서도 번뜩 떠오르지 않는다. 에이, 모르겠다. 이렇게나 생각안나면 처음인게야 하고 말았다. 그런데 또 고민이 된다. <서정적 풍경, 보나르 풍의 그림에 담긴>이란 제목의 ‘보나르 풍’은 또 뭐야?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피에르 보나르는 반인상파를 결성한 프랑스의 서양화가로 정물과 사람이 어우러진 부드러우면서도 소박한 그림을 주로 그렸고 '색채의 마술사'로 불리었다고 한다. 이 책 덕분에 멋진 그림도 감상하겠네...하면서 책장을 열었다.




가장 먼저 날 반겨준 건 어딘가로 길게 이어진 길이 그려진 그림이었다. 그 그림의 옆에 저자는 봄날 포근한 풍경을 바라보면 문득 떠나고 싶은 충동이 인다고 하면서 집을 떠나는 체험이 어떠한 것인지 말하고 있었다. ‘길은 늘 주막보다 낫다’는 세르반테스의 말을 넌지시 건네는 대목이 왠지 내게 길을 떠나보라고 부추기는 듯했다. 문학에서 사랑이 사라졌다는 기사를 읽은 저자는 사소한 현상에도 안절부절 못하는 이들을 달래주고 안심시켜준다. 사랑이란 감정은 외면하기엔 너무 강렬해서 결코 사라지지 않을 거라면서 사랑을 노래한 시는 소리내어 읊어야 제 맛이라고 조언한다. 송나라의 시인 육유의 시에선 헤어진 전처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절절하게 애닯프게 와닿았다.




그런가하면 저자는 타인과의 다툼보다 자기 자신과의 다툼이 정말 힘들다며 언제나 자신을 정직한 눈길로 살필 것을 게을리하지 말라고 충고하기도 한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것 같은 소년이 그려진 그림엔 ‘내가 부모가 되어서 알아보랴’하며 부모의 사랑은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다며 아내가 아침마다 딸의 구두를 닦아놓는다는 대목에선 따스한 어버이의 마음에 가슴 한 켠이 짠해졌다.




이 책은 시와 수필, 거기에 그림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 그게 뭐 그리 특별하냐고. 여태까지 그런 책이 한 두 개였냐고 할지 모르겠다. 솔직히 나도 첨엔 그랬다. 뭐 특별한 게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읽고 나니 ‘뭔가’가 있었다. 예순을 넘긴 저자가 때론 따스하게 때론 날카로운 시선으로 바라본 사물과 풍경들이 글 하나하나에 녹아있다. 거기에 왠지 촌스러우면서도 아련한 추억이 떠오를 것 같은 조이스 진의 보나르 풍 그림이 어우러져서 책을 읽는 재미를 더욱 살려줬다. 책의 서두에 밝혔듯 일상에서 시가 점점 밀려나는 추세가 안타까워 수필을 읽으면서 시를 음미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저자의 마음에 감사의 인사를 건넨다. 시와 수필과 그림과 좋은 만남을 갖게 해줘서 고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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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플랜 - 세계사를 지배해 온 슈퍼파워의 숨겨진 계획
짐 마스 지음, 전미영 옮김 / 이른아침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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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믿을 것 하나 없는 요즘이다. 정부에서 내놓는 정책이나 제도는 극히 일부를 위한 거여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희생하고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불공평한 것투성이다. 게다가 진실마저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줄곧 ‘이것이 진실’이라고 알고 왔던 것들이 알고 보니 모두 거짓이거나 뭔가를 감추기 위해 조작된 거였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불과 한반도, 그것도 반쪽난 곳에서 이 정도면 우리나라보다 더 큰 나라, 전세계로 확대하면 어떻게 될까. 그늘에서 비밀리에 벌어지는 일은 얼마나 많을 것인가.




‘세계사를 지배해 온 슈퍼파워의 숨겨진 계획’이란 부제의 <다크 플랜>의 저자 짐 마스는 유명한 저널리스트이자 올리버 스톤 감독의 영화 <JFK>에도 영감을 줬다고 한다. 그가 지구상에 존재하는 비밀 조직에 대해 말하고 있다. 세계사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며 하나하나 짚어가는데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것과 사뭇 다르다. 왜 그럴까. 그는 역사를 기록된 그대로 보지 않았다. 바위를 들춰보듯 이면에 숨은 것들을 캐내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비밀스런 뒤쪽엔 이런 음모가 숨어있었다고.




소수의 부유한 엘리트가 나라를 이끌어간다. 이건 이해가 된다. 문제는 그 소수가 어떤 이들이냐다. 전체 가계소득의 절반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상위 2%에 해당하는 이들이 미국을 지배한다고 말문을 연 그는 초강대국인 미국이 이런데 세계는 어떻겠냐고 질문을 던진다. 세계를 지배하는 건 누구이고 그들의 의도는 무엇이며 그들이 그토록 숨기고자 하는 비밀은 과연 어떤 것인가.




저자는 책에서 지구상에 있는 비밀조직 가운데 커다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생각되는 대표적 조직들에 대해 말한다. 악명 높은 비밀조직 삼각위원회를 비롯해 CFR(대외관계협의회), 빌더버그가 어떻게 탄생했고 무슨 일을 벌이며 어떤 이들이 회원으로 있는지 짚어주는데 실로 놀라웠다. 카터나 레이건, 조지 부시, 클린턴 같은 역대 미대통력이 비밀조직에 소속되어 있을 줄이야! 그중에 클린턴 행정부엔 CFR 회원이 백 명 이상이었는데 우리나라를 비롯해 일본, 인도, 필리핀 등 많은 나라의 대사가 모두 CFR출신이었다니 순간 소름이 끼쳤다. 그들 뒤에는 세계의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가문들이 있었다. 록펠러, 모건, 로스차일드 가문. 그들에게 중요한 건 나라나 조국이 아니라 어떻게하면 사업을 번창시킬 수 있는가하는 거였다. 특히 ‘어디에나 모습을 나타내는’ 로스차일드 가문에겐 전쟁조차 사업의 수단이었다.




그렇다면 삼각위원회나 CFR, 빌더버그 같은 비밀 조직이 세계사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을까. 그들은 자신들의 엄청난 돈과 권력을 휘둘러 나라간의 갈등을 조장하고 분쟁을 부추겼으며 제1∙. 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전쟁, 걸프전을 배후에서 주도했다. 심지어 우리 6.25전쟁도 그들 비밀조직의 교묘한 술책에 의해 벌어졌으며 20세기 최대 재앙인 히틀러가 비밀 조직과 서구 금융가들이 만들어낸 합작품이며 로스차일드와 관계가 있다니 정말 충격이었다. 그뿐 아니라 남북전쟁이나 프랑스혁명, 러시아혁명, 미국의 독립전쟁까지도 비밀조직이 뒤에서 선동하고 조작했다며 밝혔다.




책은 <다빈치코드>를 통해 처음 알게 된 프리메이슨이나 템플기사단, 일루미나티, 시온수도회 같은 중세의 비밀결사 조직에 대해 말하면서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비밀이 무엇인지 추적해나간다. 그들이 수세기에 걸쳐 보호하고 지켜온 비밀스러운 지식은 고대 이집트보다 앞선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간 아득한 과거, 인류의 기원과 목적뿐 아니라 예수의 생애에 대한 성서에 관한 거라고 한다. 또 인류의 과거를 둘러싼 미스터리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갑자기 나타났다가 사라졌다는 수메르 문명 등 고대에 관련된 많은 의문과 미스터리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흥미있어 하는 부분이라 인상적이었다.




너무나 방대하고 엄청난 이야기에 책을 덮으면서 무척 혼란스러웠다. 과연 어디까지나 진실일까. 무엇을 믿어야할까. 갈피를 잡을 수 없다. 그동안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는 의문의 사건이나 역사픽션소설이나 관련 책을 보면서 ‘뭔가 있다’고 여기긴 했지만 그 ‘뭔가’가 정확히 어떤 것인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어렴풋이 느껴진다.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는 것을.




<맨 인 블랙>이란 영화의 마지막장면이 생각난다. 카메라가 줌 아웃되면서  지구가 태양계가 되고 태양계는 우주가 되고, 그것이 다시 작은 구슬이 되어 외계인이 가지고 놀던 장면. 영화를 볼 땐 그저 기발한 생각이라고만 여겼는데 그게 어쩜 진실일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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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책들과의 만남 (양장본)
데이비드 덴비 지음, 김번.문병훈 옮김 / 씨앗을뿌리는사람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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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들과의 독서모임을 7년째 이어오고 있다. 올해는 한가지 계획을 세웠다. 한 달 혹은 두 달에 한 권이라도 좋으니 고전을 읽고 함께 얘기해보자는 것. 그런데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멤버 전원이 모이기도 힘들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책을 읽은 사람이 없어서다. 왜냐고? 어려우니까. 고전 한 권 읽으려고 한 달을 고전하다가 결국 포기해버리는 거였다. 이러길 몇 번 반복하고 나니 의문이 생긴다. 이 어려운 고전을 왜 다들 읽어야 한다고 하는 거지? 대체 이유가 뭐야?




<위대한 책들과의 만남>. 서점에서 이 책을 볼 때마다 얼마나 눈독을 들였는지 모른다. 세상 모든 고전의 원조. 불멸의 고전. 위대한 책들을 단순히 소개하는 게 아니라 ‘만남’을 갖게 해준다니! 솔깃했다. 이 책만 있으면 지금까지 고전으로 고전해왔던 나의 고생이 끝이 날 것 같았다.




책의 저자인 데이비드 덴비는 영화평론가이자 저술가로서 오랫동안 활동해왔다. 그런 그가 어느날 청강생이 되어 자신이 30년 전에 졸업했던 대학으로 다시 돌아갔다. 그것도 마흔여덟의 나이에. 대체 이유가 뭘까. ‘이 사람, 제정신이야?’란 생각이 들 정도의 결단을 내린 이유는 바로 정보의 범람에 있었다. 인터넷과 텔레비전 같은 미디어를 통해 쏟아져 나오는 엄청난 정보들. 그걸 채 소화시키지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새로운 정보에 갈증을 느끼는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자신이 애써 쌓아올린 건물의 기초가 흔들리고 정체성마저 모호해지고 있다는 위기감. 고민 끝에 저자는 자신에게 필요한 건 ‘진지한 읽기’라 느끼고 모교를 찾는다. 컬럼비아 대학 학부생들의 교양필수 과목인 [현대문명]과 [인문학과 문학] 강좌를 1년 동안 청강하기로 한 것이다. <위대한 책들과의 만남>은 바로 저자가 두 번째로 맞은 대학생활 1년 동안을 기록한 책이다.




긴 머리말을 읽고 본문에 들어갈 때 가슴이 두근댔다. 어떤 책을 읽게 될까. 머릿속에선 유명한 고전의 제목들이 마구 떠올랐다. 그런데! 이런 세상에!! 당연히 책의 제목이 있을거라 예상했던 곳엔 저자들의 이름이 자리하고 있었다. 호머, 사포, 소포클레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입이 떡 벌어졌다. 정말로 위대한 책을 쓴 위대한 인물들 아닌가. 이거 왠지 엄청 고전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드는걸....




한 권의 책을 읽으면서 토론하는 거라 생각했는데 어느 인물이 쓴 대표작을 정해두고 그걸 읽으면서 교수와 학생들이 서로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작품의 구조를 비롯해서 형태, 상황, 등장인물의 말과 행위에 숨은 의미, 작품의 배경이 미치는 영향, 저자가 숨겨둔 의미...이런 것들을 학생들이 찾아낼 수 있도록 교수는 끊임없이 질문했다. 그래서? 어떻게 됐지? 어떤 내용이었지?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교수의 질문에 처음엔 당황하고 대답을 회피하던 학생들이  조금씩 자신의 의견을 내놓으면서 활발한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단순히 한 권의 책을 읽고 이해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좀 더 깊이 생각하고 사고하여 자신의 본질은 무엇인지 돌아보고 재정립해나가는 모습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들의 교육환경이 부러웠다. 결코 쉽지 않은 강좌를 오랫동안 이어오고 있는 그들의 의지가 존경스러웠다.




천 페이지에 가까운 두꺼운 책을 저자처럼 청강생이 된 기분으로 읽어나갔다. 신이 난다고 할 정도로 책이 잘 읽혀질 때가 있는가하면 겨우 십여 페이지를 가지고 며칠에 걸쳐서 골머리를 싸매기도 했다. 거의 모든 책들이 내가 읽지 않은 거여서 교수와 학생들의 토론내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어서 안타까웠다. 실제 수업에 참가하기라도 한 것처럼 교수의 질문 하나하나에 가슴이 뜨끔했다.




내게서 고전은 아득히 먼 곳에 있었다. 저 멀리 있는 게 무언지 궁금했지만  확인하기 위해 가까이 다가가려고 하지는 않았다. 굳이 고전을 읽지 않아도 삶을 잘 꾸려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자만에 빠져있었다. 저자를 통해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 저자 덕분에 줄곧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삶의 근원적인 문제에 대해 접근할 수 있는 책을 읽어야겠다. 좀 더 많이, 깊이 고민해봐야겠다. 그런 다음 내 삶의 방향을 점검해보자. 이런 내게 누군가 조언을 한다. 절대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대로 받아들이지 말라고. 위대한 문학 작품 속의 모든 것들은 때로 정반대를 뜻할 수도 있다는 걸 명심하라며 힘주어 말한다.




여러분은 자아를 확립하기 위해 여기에 왔습니다. 여러분은 자아를 물려받는 게 아니라 창조하는 겁니다. 자아를 창조하는 한 가지 방법은 과거로부터 창조하는 겁니다. - 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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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토정비결 1
이재운 지음 / 해냄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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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연말연초가 되면 떠오르는 추억 하나. 평소 책을 좋아하지 않는 언니가 12월이나 1월이면 빼놓지 않고 꼭 잡지를 구입했다. 이유는 별책부록 때문이었다. 12월엔 가계부, 1월엔 토정비결 책자를 주곤 했는데 해마다 온가족이 자신의 한 해 운이 어떤지 재미삼아 꼽아보곤 했다. 좋은 풀이가 나올 땐 기분이 좋지만 썩 좋지 않은 풀이가 나오면 가족들은 ‘이건 그냥 미신이야’ ‘조심하라는 의미지 뭐’하며 위로하곤 했다.




그후 토정비결이 뭔지, 어떤 과정으로 나온 책인지 알 수 있는 계기가 있었다.  3권으로 된 소설 <토정비결>이 있어서 얼른 구입했다. 직장 다니는 틈틈이 1권을 읽고 다음권을 읽으려고 하는데 책장에 꽂아둔 책이 없었다. 온 집안을 뒤져도 나오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보니 우리집에 놀러온 이웃집 아주머니가 빌려갔는데(이문열<변경>1,2권도 같이) 돌려주지 않은채 이사를 갔다는 거였다. 연락도 안되는 상황에서 시간만 보내다 포기해버렸다. 도서관에서 대출해서 읽으면 되겠지..하고.




그러다 십년이 훨씬 지나서 다시 만났다. 처음 봤을 땐 3권이었던 책이 4권이길래 개정하면서 내용이 보완수정됐나...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원래 3권이었던 책을 2권으로 하면서 <토정비결>의 2부에 해당하는 저자의 <당취>란 소설을 함께 묶어 4권으로 출간한 거였다. 예전보다 내용이 확대된 <토정비결> 왠지 의미있는 두 번째 만남이 될듯한 예감이 들었다.




토정의 죽음을 예감한 정휴가 토정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하고자 길을 떠난 것에서 시작한 책은 정휴가 토정과의 인연을 맺는 순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양반가에서 태어나 이지함은 어릴때부터 명석하고 재주가 뛰어났다고 한다. 어머니의 묘소를 바다에서 이십 리도 더 떨어진 곳에 모셨는데도 방죽을 쌓아야 한다고 주장하여 큰 해일에서 무사할 수 있었다는 일화를 들은 정휴는 이지함을 찾아가보기로 마음먹고 이지함과 안명세와 운명적인 만남을 갖는다. 과거 없는 오늘이 있을 수 없고 과거와 현재, 미래는 결코 분리될 수 없는 한 몸이란 걸 지함은 일찍이 깨달았다. 또 논밭 관리나 농사를 짓는 법을 알려주는 등 백성들을 위하는 마음도 지극했다. 그런 지함이 친구 안명세가 역모사건에 연루되면서 친구와 사랑하는 정혼자를 잃으면서 방황하게 된다.




그러다가 스승인 서경덕과의 만남이 전환점이 되어 오로지 공부에 몰두한 지함은 삶이란 무엇이며 우주와 자연의 흐름과 이치는 무엇인지 깨닫게 되고 <토정비결>을 쓰기에 이른다. 앞날을 읽는 이였던 지함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인해 조선이 고통을 받으리란 걸 알고 있었다. 왕에게 알리고 미래가 어떠할지 알려지만 왕은 지함을 믿지 않았다. 조선을 환난으로부터 막기는 역부족이었던걸까. 숭유억불 정책으로 인해 불교는 기반과 전통을 상실하고 탄압받았고 승려는 멸시 받았음에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승병들은 조선을 지키기 위해 일어섰다. 지함이 생전에 남긴 비기가 당취들에게 전해진 것이다. 우유부단한 임금이나 당파 싸움으로 논쟁을 벌이기에 급급한 조정관료들과 대조를 이루는 모습이었다.




학창시절 수업시간을 통해 익히 알고 있던 역사속의 인물들이 곳곳에 등장해선지 소설은 비교적 쉽게 읽혀진다. 역사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 그렇듯 이것 역시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부터 작가의 상상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20대 날렵한 아가씨에서 시작해 불혹의 아줌마가 되어 다시 <토정비결>을 만나니 후련하면서도 한편으론 답답하다. 생전에 지함이 말했듯 엉키고 맺힌 것은 풀어야 하는데 지금 우리를 복잡하고 어지럽게 하는 이 현실은 어떻게 풀어야 할까. 어디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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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남자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이레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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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를 읽었다. 결코 평범하지 않은 사랑을 조용히 풀어내는 저자의 문장이 매력적이었다.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얘기가 완전히 전해지진 않았지만 가슴에 아련하게 남는 뭔가가 있었다. 이어서 봤던 영화 <더 리더>도 정말 좋았다. 원작보다 좀 더 명확한 그림이 그려지는 듯했다.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작품과의 첫만남 이후 바로 두 번째 만남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제목에서부터 <더 리더>의 분위기와 색채가 느껴지는 책, <다른 남자>를 만났다. 그것도 단편집.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세계를 더 많이 즐길 수 있을 것 같아 무척이나 반가웠다. 커다란 사탕을 입안에 넣고 조금씩 녹여먹듯 이야기 하나 하나에 집중했다. 이건 무슨 맛일까? 속 알맹이엔 뭐가 들었을래나?




책에는 표제작인 <다른 남자>를 포함해 모두 여섯 개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어릴 때 아버지의 서재에 걸려있던 그림 속의 소녀에 대한 사랑을 조금씩 키워가던 주인공이 등장하는 <소녀와 도마뱀>, 아내를 지키기 위해 비밀경찰에게 친구와 아내의 비밀을 넘기는 <외도>, 어느날 날아든 편지를 통해 죽은 아내에게 숨겨진 남자가 있었다는 걸 알게 되는 <다른 남자>, 아내 외에 두 명의 여인과 사랑을 하다가 결국 자기 덫에 빠지고 마는 <청완두>, 일을 중요하게 여기던 남자가 이혼 후 아들과의 만남을 소홀히 했던 것을 최후의 순간 후회하게 되는 <아들>, 아내와의 식어버린 열정, 저물어가는 인생을 뒤돌아보며 새로운 것을 갈망하던 주인공이 등장하는 <주유소의 여인>. 저자는 우리에게 사랑을 여섯 가지의 감정과 색채, 모습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 중에서 내가 인상깊게 읽었던 건 <소녀와 도마뱀> <다른 남자>이었다.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알게 되는 숨겨진 비밀, 2차대전 중 아버지가 유대인들에게 어떤 죄를 범했는지 주인공이 그토록 사랑했던 그림이 어떤 경위로 아버지의 서재에 걸리게 됐는지 알게 되는 <소녀와 도마뱀>은 아버지가 저지른 죄에서 그 아들 역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걸 말한다. <다른 남자>에서 남편은 질투심에 아내의 숨겨진 남자를 찾아가 복수하려 했지만 오히려 아내의 다른 남자에게서 자신을 돌아보고 사랑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게 된다. <주유소의 여인>은 정말 너무나 안타까웠다. 젊은 날의 열정을 되돌릴 수 없다는 걸 알게된 남자가 낯선 곳에 머무는 걸 택하는 대목은 나로선 이해하기 어려웠다. 왜 그래야하지? 얼마남지 않은 생을 아내와 함께 하면 왜 안되는데? 꼭 또다른 열정을 찾아나서야 하나? 꼭 그래야해? 하는 생각들이 불쑥 튀어나왔다. 당신이 정의하는 사랑엔 정녕 해피엔딩은 없는 거야? 묻고 싶었다.




‘사랑의 여섯가지 빛과 그림자’ 띠지에 이런 문구가 있다. 베른하르트 슐링크가 전하고자 하는 사랑은 결코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 때론 시일을 두고 두 세번을 읽어야 의미를 짐작할 수 있었던 단편도 있었다. 사랑이 무엇이라고 한가지로 정의할 수 없어서일까. 저자는 답을 내놓지 않았다. 오히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욕망, 그 속에 잠재해있는 자신만의 사랑을 들여다보라고 독자에게 요구하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 더 혼란스러웠던 것 같다. 의문을 남기는 독서였지만 어쩌면 그 속에 해답이 숨어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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