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아이들
양석일 지음, 김응교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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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금까지 무척 많은 책을 읽었다. 문학에서부터 인문, 역사, 자연과학, 예술, 경제...소설도 로맨스와 팩션, 판타지, 추리와 스릴러, 호러까지 다양한 분야의 책을 두루 접했다. 손에 잡자마자 끝까지 몰아서 읽었던 책이 있는가하면 한 장 한 장 힘겹게 책장을 넘기기도 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어떤 책이든 내용과 의미를 파악하는데 크게 문제없다고. 나름 자신했다.




그런데 이번엔 정말이지 너무나 힘겨웠다. 몇 달 전 백년의 난제라는 수학이론에 관한 책도 머리에 톱니바퀴가 끽끽 거리며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읽었지만 <어둠의 아이들>만큼은 아니었다. 내용이 어렵다? 결코 아니다. 한번 잡으면 단번에 끝까지 읽어갈 수 있을 정도로 문장은 쉽게 잘 넘어간다. 그런데도 여느 때처럼 휘리릭 넘길 수가 없었다. 책 한 장의 무게가 이토록 무거울 수가 있다는 걸 실감하게 됐다.




문제는 바로 책의 문장이 품고 있는 내용이었다. 얼마전 <창세기 비밀>이란 책에서 봤던 목을 자르고 산 채로 땅에 묻고 가죽을 벗기는 극도로 잔인한 ‘인신공희’도 이것보다 잔인하진 않았다. 대체 어떤 내용이길래? 간단하고 결정적인 힌트는 바로 책 상단에 적힌 ‘19세 미만 구독 불가’라는 문구다. 예민하고 섬세한,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청소년들이 읽기에 이 책의 내용은 극도로 잔혹하고 거칠고 폭력적이며 선정적이다.




단 한 줄기의 가느다란 빛조차 허용되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 그 속에 아이들이 있었다. 가난하기 때문에, 먹고 사는 것조차 힘겨워서 부모는 아이들을 팔았다. 겨우 30만원이 넘는 돈을 받고. 열 살도 채 되지 않은 아이는 자신이 어디로 팔려가는지도 모르는 채 단지 부모에게 효도하는 거라고 해서 따라나선다. 그때부터 아이의 불행은 시작된다. 아이를 데려간 사람이 바로 아동매춘 집단의 일원이었던 것. 그들은 소아성애자들을 위해 끊임없이 싼 값에 아이들을 사서 잔인한 폭력을 동원하여 아이들을 훈련(?)시킨다. 온몸은 담뱃불로 지진 자국과 매를 맞은 자국이 가득하고 음식은 간신히 목숨을 부지할 정도, 손님의 요구를 거절할 경우엔 이것조차 금지되었다. 어린 아이들을 통해 성적만족을 취하기 위해 찾아오는 전 세계의 사람들. 그들에게 있어 아이들은 인간이 아닌 성의 도구에 불과했다. 찰나의 쾌락을 위해 그들은 위험한 행위도 일삼았고 그  결과 아이가 목숨을 잃기도 했다. 반복되는 매춘으로 인해 아이가 에이즈에 걸리면 검은 봉투에 넣어 쓰레기 하치장에 버리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거기다 산 채로 장기를 적출당하기도 하는데....




황금빛 사원으로 유명한 나라 태국. 수많은 관광객들로 붐비는 거리의 뒷골목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읽으며 이것이 지어낸 것이기를 얼마나 바랬는지 모른다. 어린 아이들을 상대로 벌어지는 참혹한 매춘의 현장에 차라리 눈을 감고 모른 척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이건 엄연한 사실이었다. 수요가 있기에 공급이 있다는 말처럼 아동매춘을 찾는 이가 있기에 아동매매를 하는 폭력조직이 서로 사슬처럼 연결되어 있었다. 책은 또 놀라운 소식을 전했다. 얼마전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구호단체가 입국하는 것만큼 대대적인 국제아동매춘 조직도 줄지어 입국했는데, 현지에서 부모를 잃고 방황하는 아이들이 실종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난 건 바로 그 때문이었다.




책에는 이런 아이들을 구하기 위한 NGO 단체의 노력도 보여주는데 그들에게 돌아오는 건 가혹한 폭력과 목숨을 앗아가는 보복이었다. 그들과 뜻을 같이 하여 함께 일을 도모했던 일본의 신문기자 역시 마지막 순간엔 ‘남의 나라’ 이야기라며 포기할 것을 종용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정말 남의 나라 이야기일까.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빈번하게 일어나는 아동성폭력 사건만 보더라도 우리나라 역시 안전지대는 아니다. 언제 어느 때 이웃의 아이들이, 내 아이들이 이런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될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다. 누군가가 호시탐탐 우리의 아이들을 노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두렵고 덜컥 겁이 난다. 아이들을 성의 도구로, 장기 매매의 수단으로 여기는 것이야말로 가장 추악한 범죄가 아닐까.




이 책을 읽는 내내 후회했다. 내가 왜 이걸 읽는 거지? 의문이 들었다. 동시에 지금이라도 이 책을 만나고 현실이 어떠한지 알게 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더없이 참혹하고 추악한 범죄로 가득한 곳에, ‘우리의’ 아이들이 있었다. 아이들에게 드리운 어둠을 어떻게 해야 몰아낼 수 있을까. 하루라도 빨리 아이들에게 빛을 가져달 줄 묘안은 정녕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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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미식가 - 솔로 미식가의 도쿄 맛집 산책, 증보판 고독한 미식가 1
구스미 마사유키 원작, 다니구치 지로 지음, 박정임 옮김 / 이숲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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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작주의가 아니다. 그럼에도 몇 몇 작가의 책은 꼭 챙겨보는데 만화 역시 마찬가지다. <아버지> <열네 살>을 계기로 만난 다니구치 지로. 그의 만화는 만화 이상의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의 작품은 섬세한 감수성을 자극하는 로맨스나 스릴 넘치는 서스펜스, 커다란 감동은 없다. 하지만 사실적이고 평범한 캐릭터를 통해 전해지는 이야기는 조용하고 아늑한 호수처럼 읽고 나면 포근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이후로는 간혹 그의 작품이 새로 출간되진 않았는지 검색해보곤 하는데, 최근에 그가 <고독한 미식가>란 음식에 관한 만화를 출간했다. 다니구치 지로는 음식에 관한 이야기를 어떻게 이끌어갈까...호기심이 발동했다.




미식가(美食家). ‘음식에 대하여 특별한 기호를 가진 사람. 혹은 좋은 음식을 찾아 먹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라고 하는데, 그동안 미식가라고 하면 실내장식이 근사한 레스토랑이나 한정식집에서 비싼 음식을 시켜서 맛을 보는, 남보다 예민한 미각을 지닌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니쿠치 지로의 작품 속에서 만난 미식가는 조금 달랐다.




주인공은 외국에서 물건을 가져다가 판매하는 일을 하는 일종의 ‘무역업’을 하는 중년의 남성. 구매고객을 만나거나 물건을 전하는 업무를 보기 위해 혼자서 차를 몰고 여러 지방을 다닌다. 그러다 끼니때가 되면 어디 괜찮은 식당이 없나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찾는다. 여기까지만 봐선 ‘미식가’라기보다는 그냥 평범한 사람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식당에 들어가 음식을 주문하고 맛을 보는 과정에서부터 뭔가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낯선 곳에 그것도 혼자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가면 이것저것 따지기보다 ‘아무거나’(‘아무거나’란 메뉴가 있으면 식당은 대박날텐데...란 생각을 하며) 얼른 먹고 끼니만 때우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주인공은 어떤 식당에 들어가더라도 식당의 여기저기 둘러보고 다른 사람은 어떤 걸 먹는지 살펴본다. 반찬을 선택할 때도(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은 반찬도 따로 주문한다) 어떤 재료로 어떤 조리과정을 거쳤을지 짐작해보고 직접 맛을 본 후엔 음식 맛에 따라 ‘이건 더 먹어야겠다’며 추가주문을 하기도 하지만 때론 너무 많이 먹었다며 자제하지 못한 걸 후회하기도 한다.




왜 고독한 미식가일까? 생각했다. 이런 의문은 금방 알 수 있었다. 결혼도 하지 않고 직장도 정해진 점포 없이 언제나 혼자서 여기저기 다녀야 하는 사람, 그래서 매 끼니때마다 혼자서 식당을 드나들어야 했기에 ‘고독한’이란 표현을 한 게 아닐까. 하지만 어떻게 생각해보면 이렇게 혼자서 음식을 대해야 했기에 각각의 음식마다 그 고유의 맛과 느낌을 포착하고 즐기는 ‘미식가’가 될 수 있었을 거란 생각도 들었다.




일본엔 오사카에 며칠 머문 게 전부인 나로선 이 책을 읽고 나니 다니구치 지로가 알려준 도쿄의 맛집을 탐험해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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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고른 장난감 - 에디터 맘 정원씨의
강정원 지음 / 낭만북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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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렴풋이 기억나는데 나의 첫 번째 장난감은 아기인형이었다. 생전에 외항선원이셨던 친정아버지께서 사다주신 것 같은데 몸을 눕히면 눈을 감고 바로 세우면 눈을 뜨는, 거기다 엄지손가락을 입에 넣을 수도 있는 예쁜 아기 인형이었는데 내가 무척 좋아했던 것 같다. 그 이후엔 특별히 기억나는 장난감은 없다. 앞집 아이의 바비인형을 나도 갖고 싶어서 사달라고 졸랐지만 나보다 3대 독자인 남동생이 우선이었기에 소득없는 투쟁으로 끝났었다.




결혼하고 첫 아이를 낳았을 때 이런저런 장난감이 선물로 들어왔는데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내가 만들어준 갈색의 테디 베어와 토끼 인형이다. 만드는 재료와 방법이 패키지로 된 거였는데 엄마의 서툰 솜씨로 만든 인형을 아이가 무척 좋아했다. 그 이후엔...오로지 자동차! 자동차! 자동차! 내가 구입하는 책과 두 아이가 사들인 자동차 장난감만 줄였어도 벌써 아파트 평수를 넓힐 수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들만큼 정말 엄청나게 모았다.




6년 터울의 두 아들을 키우면서 이제 웬만한 장난감은 겪어봤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록달록 화려한 색감의 장난감이 눈길을 끄는 책이 있었다. <에디터맘 정원씨의 두 번 고른 장난감>. 평소의 나라면 ‘에디터’가 뭔지 검색부터 했을텐데 이번엔 달랐다. 대체 어떤 장난감이길래 이렇게 책으로도 냈을까? 궁금했다.




‘12년차 에디터 엄마의 특별하고 사적인 아이 물건 이야기’라는 띠지의 문구처럼 이 책은 저자와 두 연년생 아이의 장난감에 얽힌 이야기다. 어렸을 때부터 디자인관련 책을 접하며 자라서일까? 성인이 된 저자는 직업이나 두 아이의 장난감 하나도 남다른 시각과 안목을 발휘해서 골랐다. 싸인펜이나 크레파스, 색연필 같은 필기구를 고를 때도 부드러운 질감과 다양한 색감, 아이들이 사용하기에 편리한지 따져봤고 책도 마찬가지다. 국내에 번역서가 없다면 원서를 그대로 보여주면서 그림책이 갖고 있는 온전한 아름다움과 이야기를 전해주려고 애썼다.




남자아이만 둘이어선지 책에 수록된 장난감 중에 나와 아이의 눈길을 확 사로잡는 것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밤비와 앨리스 팝업북은 보면서 침만 줄줄 흘렸고 그동안 망설이고만 있던 ‘마이 퍼스트 워드 북’과 ‘마이 퍼스트 딕셔너리’는 이번 참에 과감하게 질러주는 센스를 발휘했다. 밤이 되어 어두워지면 별자리가 뜨는 지구본을 아이에게 사줬지만 ‘스텔라노바 동물 지구본’도 무척이나 탐이 났다. 이외에도 실감나는 공구 놀이감인 보쉬의 미니 툴 숍이나 여러 부속품을 해체, 조립해서 원하는 자동차를 만들 수 있는 ‘오토모블록스’, 만만치 않은 가격 때문에 쳐다만 봤던 ‘브리오의 유니세프 기차놀이’, 독특한 ‘홈타운 블록북’......




저자는 말한다. 자신이 장만한 장난감을 아이들이 좋아할 때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고. 어떨땐 아이들의 장난감을 자신이 더 좋아할 때도 있었고, 그런 과정을 통해 아이들과도 가까워졌다고 얘기한다. 저자가 소개하는 장난감은 모두 요즘 시중에 판매되는 장난감처럼 원색의 화려하고 요란한 디자인이 아니었다. 아이들의 손에 익숙한 놀잇감으로 언제 보더라도 정감 있고 추억이 살아있는 장난감 아닌 장난감...일종의 ‘추억상자’ 같은 건 아닐까.




책을 읽으며 아쉬운 건 두 아이에게 시기가 지난 장난감이란 거였고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건 두 아이가 모두 완전히 커버린 건 아니란 거다. 장난감을 그저 저렴하고 당장 좋아보인다고 해서 고를 것이 아니라 몇 년 후를, 아이의 10년 후를 떠올렸을 때 추억을 간직할 수 있는 놀잇감을 선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아이만을 위한 특별한 ‘추억상자’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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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 싸는 집 - 세계의 화장실 이야기
안나 마리아 뫼링 글, 김준형 옮김, 헬무트 칼레트 그림 / 해솔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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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 있잖아. 여자들 하이힐이 왜 생긴 줄 알아? 똥 때문이래. 화장실이 없어서 길이나 화단에 마구 똥을 누기 때문에 그거 밟을까봐 생긴거래. 베르사이유 궁전에도 화장실이 없었다지?” “에엑? 설마.....”




언제였더라? 친구에게서 이런 얘길 들은 기억이 난다. 순간 내 머릿속엔 금발의 오스칼과 아름다운 마리 앙투와네트, 페르젠이 떠올랐다. 매혹적인 그들이 서로를 만나 사랑하고 프랑스 대혁명을 계기로 헤어지고 목숨을 잃는 이야기가 펼쳐지던 만화를 가슴 설레며 봤었다. 그런데 그 이야기의 배경이 된 아름다운 베르사이유 궁전의 정원이 온통 ‘응가투성이’라고? 윽, 왠지 안 어울렸다. 친구가 잘 모르고 한 얘기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성인이 돼서야 그때 친구의 얘기가 진실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아이를 둘 낳고 키우면서도 알게 된 희한한 것 중 하나. 애들이 ‘똥’을 너무 좋아한다는 거다. 별 것 아닌 얘기도 ‘똥’이 들어가면 배꼽을 잡고 웃는다는 거다. 왤까? 이유가 뭔지 알 순 없지만 어쨌든 애들이 재밌어하니까 아이와 함께 읽으려고 마련한 책이 바로 <똥 싸는 집>이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모두 엉덩이를 드러내고 볼일을 보는 장면이 그려진 표지의 <똥 싸는 집> ‘세계의 화장실 이야기’라는 부제에 걸맞게 책은 온통 화장실 이야기로 그득하다.




책은 ‘집 안 화장실’ ‘세계의 화장실 이야기’ ‘싸긴 싸야 되는데...’ ‘옛날 화장실은 어떻게 생겼을까요?’란 주제로 나누어 세계의 갖가지 화장실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려주는 것을 비롯해 높은 파도가 일렁이는 배나 하늘을 나는 비행기, 비행선, 전투기, 밧줄을 타고 산을 오를 때나 자전거 경주처럼 특수한 상황 속에서 볼 일을 어떻게 해결하는지에 대해서도 알려준다. 아슬아슬하게 산의 낭떠러지 바위를 줄 하나에 의지한 채 타면서 바지를 내리고 볼일을 보는 장면은 아찔하기도 했지만 왠지 웃음이 났다. 옛날의 화장실 중에선 로마와 그리스의 큰 수세식 공중 화장실이 인상적이었다. 또 예전에 어느 학자가 ‘여자들은 이틀에 한 번 똥을 눈다’는 글을 발표해서 여자화장실은 많이 짓지 않았다고 하는데, 요즘도 여자 공중화장실은 턱없이 부족한건 그 영향이 아닌지 모르겠다.




세계 각국의 화장실과 옛날의 화장실에 대한 이야기를 한 눈에 알 수 있는 책이었지만 좋은 기획의도에 비해 몇 가지 아쉬운 점도 있었다. 우선 그림이 너무 조잡했다. 기저귀를 찬 아기는 귀여운 맛이 전혀 없었고 초등 1학년 여자아이의 모습은 중년아줌마가 따로 없었다. 각각의 그림에도 어느 때를 그린 건지, 1950년대, 70년대 같은 시대를 명시했더라면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더 도움이 되었을 것 같다. ‘세계의 화장실 이야기’ 편에서 프랑스의 화장실이라고 소개해놓은 그림은 도저히 현대의 화장실 모습이라고 여길 수 없을 정도였다. 현실감을 주기 위해 작은 사진과 함께 수록했다면 어땠을까 싶다. ‘세계의 화장실과 똥 이야기’라는 기막힌 아이디어를 살려주는 코믹하고 개성 있는 그림이 정말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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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두 번 진행되길 원한다면 - 감각의 독서가 정혜윤의 황홀한 고전 읽기
정혜윤 지음 / 민음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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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가을, <런던을 속삭여줄게>를 통해 정혜윤을 처음 만났다. 이름난 독서광이란 것, 자신이 읽었던 책의 기록을 감각적인 글로 남겼다는 것만으로도 저자에 대한 막연한 부러움과 동경을 갖고 있었다. 런던의 유명한 명소를 직접 둘러보며 그곳에서 느껴지는 감동과 이야기를 책을 통해 전하는 저자의 말솜씨에 빠져 한동안 런던의 거리를 거닐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아쉬운 마음에 그녀가 속삭임으로 전하던 책을 읽어보려 했지만 그러지 못하고 있던 차에 또 한권의 책을 마주하게 됐다. '감각의 독서가 정혜윤의 황홀한 고전 읽기‘ <세계가 두 번 진행되길 원한다면>....




‘세계가 두 번 진행되길 원한다면’...처음엔 무슨 의미일까...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는 뜻인가? 궁금했다. 표지를 넘기고 오래진 않아 궁금증은 풀렸다. 책 날개에서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풀어놓는다. 고전이 어떠한 것인지, 어떤 의미를 품고 있으며, 왜 고전을 위대하다고 하는지, 그리고 ‘세계가 두 번 진행되기를 원한다면...미래는 좀 다르기를 원한다면 당연히 뭔가 읽고 써야 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빼놓지 않고 언젠가는 읽어야 할 책이 고전’(11쪽)이라고. 그렇구나. 순간 고개가 끄덕여졌다. 지금보다 좀 더 나은 미래를 가져오는 고전과의 매혹적인 만남을 위해 저자의 곁에 바싹 다가앉는 기분으로 책을 읽었다. 또다시 그녀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였다.




나에게 있어서 고전은 사건이 위대한 책이 아니라 그 사건을 마주친 인간들의 반응이 위대한 책이다. (9~10쪽.)




위대한 개츠비, 변신, 폭풍의 언덕,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골짜기의 백합, 마담 보바리,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1984,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설국, 순수의 시대, 주홍 글자, 거미여인의 키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위대한 유산. 저자는 총 열 다섯 편의 고전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책에 관한 책을 만날 때마다 하는 행동...차례를 보고 내가 읽은 건 몇 권이나 될까...세어봤다. 결과는 참담했다. 저자와 내가 겹치는 부분은 겨우 3/1정도... 읽다가 포기해버린 책도 몇 권 보였다. 발자크의 ‘골짜기의 백합’은 이 책을 통해 처음 만난 작품이었다.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이래서야 어디 저자의 얘기를 제대로 이해할 수나 있을까...한숨이 나왔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나 역시 세계가 두 번 진행되길 원하기에. 내가 읽었던 작품부터 한 편씩 만나기 시작했다. ‘위대한 개츠비’에서 개츠비의 욕망과 꿈을 만나면서 그가 바랬던 삶은 환상에서나 존재하는 덧없는 것이었음을, 그래서 허무함이 가득했던 기억이 났고 ‘폭풍의 언덕’의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의  위험하고도 강렬한 사랑에 몸살을 앓았던 학창시절이 떠올랐다. 또 ‘1984’에서 서술한 세계가 현재의 모습과 너무나 흡사해서 또다시 놀랐으며 ‘젊은 베르테리의 슬픔’에서 이룰 수 없는 여인과의 사랑에 고뇌하는 베르테르의 고뇌 속에  서 지금의 나 역시 끊임없이 뭔가를 추구하고 원하지만 결국 이루지 못하고 좌절하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이 책을 매일밤 아이들을 자리에 눕히고 그 곁에서 조금씩 소리내어 읽었다. 책의 정해진 순서를 따르지 않고 내 마음이 끌리는 것부터 하나씩 하나씩 읽어가자니 저자처럼 황홀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푸근하고 왠지 차분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다만 저자의 문장이 때론 너무 길어서 저자가 건네는 이야기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해 두어번 연거푸 읽기도 했는데 특히 내가 읽지 못한 고전에선 더욱 헤매고 더듬거리는...고전을 겪기도 했다.




아직까지 만나지 못했던 고전을 읽는 것만큼 예전에 읽었던 고전을 다시 만나는 과정이 중요하고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십대 소녀의 감성과 중년 여성의 감성이 다르듯 같은 작품을 읽더라도 내 감정과 마음이 닿는 항상 같을 수는 없다. 평범한 일상이라 하더라도 어제와 오늘이 다르듯 오늘과 내일도 같을 수 없는 것처럼. 지금보다 좀 더 깊이, 좀 더 부드럽게, 넓게 섬세하게 생각하고 내면을 들여다봐야겠다. 그러면 내게도 두 번째의 세계가 찾아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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