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명탐정 정약용
강영수 지음 / 문이당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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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바탕으로 한 소설은 흥미롭다. 교과서 속에 존재하던 과거의 인물, 딱딱한 지식에 머물렀던 역사는 소설을 통해 탈바꿈을 한다. 저마다 개성을 지닌 인물들이 등장해서 ‘역사’로 전해지던 기록들을 드라마처럼 펼쳐 보인다. 그리고 그 이야기와 인물들이 얼마나 생동감 있느냐에 따라 당시의 역사는 3D입체영화처럼 우리에게 새로운 모습으로 각인된다. 그래서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집중 조명을 받지 못했던 인물을 다룬 사극이나 역사팩션소설을 만나면 반갑다. 정약용을 전면에 내세운 소설이 최근 연이어 출간됐다. 하지만 학자로서의 정약용이 아니라 ‘명탐정’으로서의 정약용이란다. (내가 추리소설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호기심이 동한다. 대체 정약용이 당시 조선의 조정에서 맡은 임무가 무엇이고 어떤 사건이 벌어졌길래 ‘조선명탐정’이라고 하는걸까. 새로운 모습으로 만나게 될 정약용이 궁금했다.




깊은 밤, 검은 복면을 쓴 이들이 담을 넘는다. 그들의 움직임은 날랜 고양이처럼 재빨랐다. 하지만 운은 그들의 것이 아니었다. 아차 하는 실수로 그만 들키고 만다. “웬 놈이냐!”




만약 이 일이 벌어진 곳이 일개 민가나 양반집이라면 한바탕 소동으로 끝났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곳은 지엄한 궁궐, 그것도 군왕의 침전과 가까운 곳이었다. 깊은 밤 침입자와 그를 막으려는 이의 현란한 칼부림이 이어지고. 무릎을 꿇는 침입자. 그에게 임금은 묻는다. 왜 자신을 향해 칼을 들었냐고.




나라를 다스리는 제왕의 목을 노린 이에게 매서운 문초가 아니라 도리어 조용하게 말을 건넨 임금, 그는 바로 정조였다. 하늘같은 아버지인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음을 목도한 이후로 정조는 그야말로 가시밭길이었다. 군왕의 자리에 올라서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누구보다 백성을 위하고 공명정대한 정조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권을 찬탈하려는 무리들로부터 끊임없는 위해가 가해졌다. 이에 정조는 해결사를 투입한다. 그가 바로 정약용이었다. 이후 정약용은 사헌부 지평이 되어 정조를 위협하는 무리들의 배후를 밝혀내기 위해 본격적으로 사건해결에 나서기에 이른다. 그리고 차츰 사건의 핵심에 다가서는데, 거기에 바로 가지가 셋인 매화 그림이 있었다. 가지가 셋인 매화나무...그 그림이 의미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명탐정 정약용. 처음엔 의아하게 생각했으나 이내 정약용이야말로 명탐정의 자질이 뛰어난 인물이란 걸 실감하게 됐다. 여러 가지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보여지는 정약용의 활약은 그야말로 CSI, 과학수사대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우선 이야기의 호흡이 길지 않았다. 커다란 줄기 안에서 여러 가지 사건이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의 사건을 그저 나열해놓은 느낌이랄까? 이게 정말 장편소설이 맞나? 단편소설집 아냐? 의문이 들 정도였다. 게다가 사건을 풀어가는 과정의 묘사도 다소 엉성한 듯해서 치밀한 사건해결 모습을 기대했던 나로선 정말 아쉬웠다. 좀 더 탄탄해진 이야기 구성으로 명탐정 정약용의 활약을 볼 수 있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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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 카 무비 놀이북 3
예림당 편집부 엮음 / 예림당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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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니메이션 [카]를 너무 좋아하는 작은아이에게 사줬는데 좋아라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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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사랑한다는 건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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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아직도 보통을 모른단 말이야? 책을 좋아하고 좀 읽는다고 하면 사람들은 곧잘 물어본다. 그거 읽어 봤어?로 시작해서 어때? 재밌던가?로 이어지는 질문들. 어쩌다 내가 읽어보지 못한 책이나 작가가 거론되면, 거기다 해당 책(작가)을 자신이 읽었다면 그들은 의외라는 듯 말한다. 세상에, 아직도 그걸 안 읽어봤단 말이야?라고.




내겐 알랭 드 보통이 그런 존재였다. 누군가 내게 알랭 드 보통의 작품이 뭐가 있지? 혹은 니가 갖고 있는 보통의 책은 뭐야?라고 묻는다면 줄줄 읊어댈 수 있다. 하지만 정작 그의 작품을 아직 하나도 읽지 못했으니...참,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내가 드디어 보통을 만난 것이다.




<너를 사랑한다는 건>이 바로 나와 보통의 첫만남 책이다. 이 책이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우리는 사랑일까>에 이은 보통의 3부작 완결편에 해당한다고 하는데 그건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3부작부터 거꾸로 읽어가면 되잖아? 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그만 치명적인 오류가 발생했다. 아니 치명적인 난관에 봉착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바로 책의 이야기가 너무 난해하다는 것이다. 제목이나 이야기의 전체 흐름으로 봐서는 이 책이 ‘사랑’을 다루고 있음이 분명한데, 철학이나 인문서적도 아닌데 왜 이다지도 어려운 것이냐! 하늘을 보며 외치고 싶었다.




책은 나(화자)가 6개월을 함께 지낸 여자친구에게서 편지를 받는 것으로 시작된다. 사실 말이 편지지 “너를 파악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어.”로 시작한 그건 바로 이별통보였다. 여자친구는 가차없이 비난을 쏟아낸다. 자신을 사랑한다고 했지만 나르시시스트인 그가 사랑한 건 오로지 자기 자신 뿐이었다고. 언제나 고압적이고 독선적인 그로 인해 정말 힘들었다...등등. 갑자기 여자친구에게서 실연당한 그는 우연히 서점에 갔다가 ‘전기’라는 단어에 눈길이 머물게 된다. 비트겐슈타인의 삶을 다룬 책을 보면서 그는 ‘공감하다’는 의미에 대해 새삼 생각해보게 되고 곧이어 누군가의 삶을, 이야기를, 전기를 써보자고 마음먹게 된다.




그가 주목한 인물은 얼마전부터 만나기 시작한 이사벨 로저스였다. 흔히 전기(傳記)는 후세에 귀감이 될 만한 인물, 위인이나 유명인의 업적과 삶을 적은 기록이라 지극히 평범한 이사벨은 적합한 대상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에겐 그녀가 어떤 인물인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예전 여자친구가 일침을 쏘아붙였던 것들, 자신의 무심함과 독선적인 성향 같은 결점으로 인한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그녀에 관한 모든 것을 알아야겠다고 다짐하고 관찰하기 시작한다. 이사벨의 어린 시절을 비롯해서 그녀의 가족관계, 성격, 습관, 남자친구 등등 지극히 사소한 것에 이르기까지 알아내는데 그 과정에서 그는 이사벨에게 매력을 느끼고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책을 읽는 내내 떠오른 생각, 사랑이 이다지도 복잡했던가? 이렇게 난해한 거였어? 남편과 만나서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고 연인이 되어 결혼에 이르기까지를 곰곰 되짚어봐도 이렇게까지는 아니었다. 내게 단점이 있듯 남편에게도 분명 단점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내가 인정하고 포용할 수 있을거라(지금은 모르겠지만...) 여겼기에 서로의 반려자가 되었다. 거기에 비해 책 속의 연인들은 너무나 완벽한 것을 추구한 게 아니었을까 싶다. 사실 어느 한 인간을 완벽하게 이해한다는 거, 부처나 예수가 아닌 이상 가능한 일인가 말이다.




기대했던 보통과의 첫 만남은 그저 그런 수준으로 맺고 말았다. 거기다 놀라운 것은 이 책이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의 개정판이란 걸 뒤늦게야 알게 됐다는 점이다. 집안 어느 구석에 처박혔는지 모를 뿐 분명 내가 갖고 있는 바로 그 책이라니. 이.럴.수.가. 순간 현기증이 났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날 순 없다. 보통과의 만남을 이렇게 접을 수 없다. 다행히 지인들과의 독서모임에서 몇 달 후 보통의 책을 읽기로 했다. 그때를 다시 기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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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뻬 씨의 우정 여행 - 파리의 정신과 의사 열림원 꾸뻬 씨의 치유 여행 시리즈
프랑수아 를로르 지음, 이은정 옮김, 발레리 해밀 그림 / 열림원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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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와 클로르. 정신과 의사인 그는 자신의 이름보다 꾸뻬 씨라는 책 속 주인공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그의 작품을 아직 만나보지 못했지만 전작인 <꾸뻬 씨의 행복여행>이 법정 스님께서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알고 싶으면 읽어보라며 추천하신 책이어서 언제든 읽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차에 꾸뻬 씨가 새로운 여행을 떠났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번엔 우정이 주제란다. 꾸뻬 씨를 처음 만나지만 그의 여행에 동행하고 싶다. ‘이런 게 바로 인연 아니겠어요?’ 슬며시 말을 건네면서.




파리의 정신과 의사인 꾸뻬 씨. 그는 여리고 우울하면서도 불안에 떠는, 내면에 깊은 상처를 받은 환자를 만나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상담하면서 여느 때와 다름없는 날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느닷없이 찾아온 한 여인으로 인해 그의 하루는 ‘특별한 하루’가 되고 만다. 자신을 인터폴의 바라문디 경위로 소개한 그녀는 꾸뻬 씨에게 놀라운 소식을 전한다. 꾸뻬 씨의 오랜 친구인 에두아르가 엄청난 돈을 갖고 튀어버렸다는 것이다. 꾸뻬 씨는 순간 당황하면서도 고민에 빠진다. 에두아르가 평소에도 종잡을 수 없는 행동을 하긴 했지만 거액의 돈을 훔치는 일은 하지 않는 ‘언제나 엄격했고 도덕심을 가진’ 사람이란 것. 그러면서도 동시에 에두아르에게 무언가 말 못할 일이 생겼음이 분명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꾸뻬 씨는 에두아르가 자신에게 보낸 크리스마스 카드에서 예전에 무심코 보고 넘겼던 무언의 메시지를 찾는다. ‘내 앞에 타오르던 불은 꺼졌다. 걱정하지 말게나, 친구. 그들의 말은 듣지 마. 날 기다려줘.’




걱정하지 말게나, 친구. 그들의 말은 듣지 마. 날 기다려줘. 에두아르는 이렇게 아무런 일도 아닌 듯 했지만 꾸뻬 씨는 그렇지 못했다. 친구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도와주러 가봐야 하나? 그럼 가족들은 어쩌지? 내가 떠나면 가족들은 걱정할텐데.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꾸뻬 씨에게 아내 클라라가 말했다. “그럼, 가봐야지. 언제 떠날 거야?”




돈 벌러 먼 길 떠난 엄마(혹은 가족)도 아니고 의문에 싸인 말을 남긴 채 모습을 감춘 사랑하는 연인도 아니며 위험천만한 사지에 홀로 남은 병사도 아니었다. 그저 오랜 친구, 그가 현재 어디서 어떻게 지내는지 알 수 없어서, 어쩌면 위험한 사건에 휘말렸을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꾸뻬 씨는 여행을 떠났다. 우정을 찾아 머나먼 길, 아시아로.




나라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나라면 친구에게서 소식이 끊겼다고 그를 찾아나설까? 글쎄...그가 얼마나 절친한 사이였는지에 따라 다르겠지만...아마도 찾아나서진 않을 거야. 무소식이 희소식이란 말도 있잖아. 그렇담 내 친구들은 어떨까? 내가 위험한 상황에 놓였다면 기꺼이 날 찾으러 와줄까? 과연 누가?




책에서 꾸뻬 씨는 환자들과의 상담이나 일상에서 혹은 여행을 하다가 우정에 관해 떠오르는 생각들을 메모로 남겨놓는다. ‘우정은...’ 혹은 ‘친구란...’으로 적힌 문구를 보면서 나도 우정이란 뭘까 생각해보게 됐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연락이 뜸해진 친구들을 떠올렸다. 꾸뻬 씨는 친구를 가리켜 ‘내가 불행할 때 함께 슬퍼하고 내가 행복할 때 함께 기뻐하는 사람’이라고 했는데 그(녀)들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어느날 갑자기 뜬금없이 연락하더라도 그들은 날 변함없이 친구라고 생각할까? 나와 함께 한 시간이 즐겁다 여길까?




제목이 ‘우정여행’이기에 책에는 필연적으로 우정과 친구에 관한 단상들이 이어진다. 다양한 사람들이 빚어내는 이야기와 사건은 소설을 흥미진진하게 했지만 때로는 작위적인 느낌이 들어서 조금 아쉬웠다.




책을 읽을 때가 마침 기존 학년이 마무리되고 새로운 학년이 시작되는 무렵이어서 자연히 큰아이에게 시선이 머물렀다. 활달하면서도 내성적인, 수줍음이 많은 큰아이는 새학기 때마다 몸살을 앓곤 했는데 이번에는 어떨지, 무사히 넘어갈 수 있을지...걱정이 됐다. 우정이 무언지 그 깊은 무언가를 깨닫기엔 아직 어린 나이. 하지만 이건 어렴풋이나마 깨닫지 않았을까. 친구란 만나면 즐겁고 자신의 결점도 인정하고 좋아해주는 사람이란 것을. 큰 아이에게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진정한 친구가 나타나길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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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를 위한 감정코칭 - 존 가트맨.최성애 박사의
존 가트맨.최성애.조벽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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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되엣!” “이제 좀 그만해라” “잠깐 좀 기다려봐!” 내가 하루에 이 말을 몇 번 하는지 세어보면 얼마나 될까. 한 달 동안은? 그럼 일 년은? 사춘기에 접어드는 건지 무조건 반항하고 발을 굴리며 짜증을 내는 큰아이, 위험한 장난은 도맡아놓고 일을 저지르는 작은 아이. 이 두 아이를 키우면서 난 갈수록 목소리만 큰 엄마가 되었다. 그렇다고 내가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다. 분명 그 누구보다 사랑하건만 아이들을 돌보고 건사하는 게 너무나 힘들 뿐. “누가 제발 나 좀 살려줘”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을 뿐이다.




사실 난 자신이 있었다. 정리정돈을 하거나 멋들어진 음식을 장만하는 데는 서툴지만 아이들 보는 건 달랐다. 많은 형제들 속에서 자랐고 내가 돌본 조카도 여덟 명이나 되기에 문제없을 거라 여겼다. 완벽한 엄마는 못 되지만 최고의 엄마는 될 수 있을거라 자신했는데. 이럴수가. 뚜껑을 열어보니 상황은 탄판이었다. 완전히 나만의 터무니없는 착각이었다.




큰 아이 때는 나았다. 아이는 여러모로 날 힘겹게 했지만 그래도 잘 다스리고 참아내며 엄마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뒤늦게 작은 아이를 임신했을 때 이번엔 더욱 잘할 수 있을거라 안도했다. 그런데 작은 아이는 달랐다. 기질이나 성격, 취향이 큰아이와 정반대였다. 고집이 세다는 최악(?)의 조건만이 유일한 공통점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유순하고 멀쩡하던 큰아이가 동생이 태어나면서 갑자기 매사에 밉살스런 행동을 일삼았다. 난 자연히 큰 아이를 나무랐다. “너보다 여섯 살이나 어린데, 형인 니가 그런 행동을 하면 되겠니?” 큰아이는 소리쳤다. “나도 아직 아기야!”




대체 어디가, 어떻게 잘못된 걸까. 육아서를 닥치는 대로 읽었다. 아이들의 심리와 마음, 행동을 이해할 수 있을까 해서 아동심리학 책도 빼놓지 않고 읽었다.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해결책은 보이지 않았다. 책을 볼 때는 무릎을 치다가도 막상 아이들과 지내면서 적용해보려고 하면 제대로 되지 않았다.




<내 아이를 위한 감정 코칭>을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저자의 명단에 있는 ‘존 가트맨’이란 이름 때문이었다. 몇 년 전 그의 책을 읽고 어둔 길이 밝아지는 경험을 한 적이 있기에 이 책 역시 기대가 됐다.




책은 존 가트맨의 ‘감정코치’법에 바탕을 두고 있는데 감정코칭의 핵심은 다섯가지다. 첫째, 아이의 소소한 감정을 제대로 인식하는 것. 둘째 아이의 감정표현을 친밀감과 감정코칭의 기회로 볼 것. 셋째, 아이의 감정에 이해심을 가지고 귀 기울일 것. 넷째, 아이가 자심의 감정을 말로 표현할 수 있도록 돕고 그 감정에 이름을 붙여볼 것. 다섯째, 아이가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한마디로 아이의 행동과 감정표현에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보면서 스스로 자신의 감정을 조절할 수 있도록 도와주되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는 분명한 한계를 지어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감정코칭을 통해 아이는 다른 아이보다 자기감정을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화가 나더라도 자기 컨트롤 능력이 뛰어나고 금세 안정을 되찾을 수 있을 뿐 아니라 학습적인 면에서도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책표지에 이런 문구가 있다. ‘아이를 키우는 과정은 아직도 완성되지 못한 나 자신을 성장시키는 과정이다.’ 이 말이 어떤 의미인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아이의 내면에 쌓인 분노와 상처, 슬픔을 감싸주기 위해선 우선 내 안에 쌓인 분노, 상처를 먼저 치유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난 여태까지 이 말을 오해한 것 같다. 아이는 곧 나 자신이라고. 그렇기에 아이의 잘못된 행동은 (아이의 감정이 어떤지 들여다보기에 앞서) 그 자리에서 고쳐줘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올바른 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여겼는데, 그게 아니었다. 오히려 부모에게 잦은 억압과 규제를 받은 아이는 자존감이 낮은 아이로 성장하고 끝내는 어긋난 행동을 보인다고 하니 실로 충격적이다. 




부드러운 손길로 아이를 안은 여인과 여인의 손에 안겨 편안하게 잠든 어린 아이. 참으로 평화로운 풍경이다.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여인의 세 시기> 중 일부가 그려진 <내 아이를 위한 감정 코칭>. 사실 본문의 바탕이 된 ‘감정코칭’은 존 가트맨의 전작에서 이미 다뤄진 내용이라 그리 새롭지 않다. 하지만 책에는 그동안 가정과 학교에서 수많은 부모와 선생님들이 경험한 사례들이 풍부하게 수록되어 있어서 큰 도움이 되었다. 내 아이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싶은 부모와 성인이 된 모든 이에게 꼭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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