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ia 제21호 - Summer, 2011
아시아 편집부 엮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11년 5월
평점 :
품절


 

몇 달 전인 것 같아요. 온라인 서점에서 신간을 둘러보다가 눈에 띄는 책을 봤습니다. <아시아>라는 잡지(?), 아니 정확히 말하면 문예지인데요. 제가 알고 있던 기존의 문예지와는 성격이 많이 달랐습니다. 국내의 문예지가 우리나라 작가들의 작품을 수록한데 비해서 이 <아시아>는 작가의 범위를 아시아로 확대했더군요. 제가 본 책만 해도 우리나라를 비롯해 인도, 사우디아라비아, 일본 작가의 글, 시와 소설이 소개되어 있었는데요. 제가 즐겨보는 일본의 문학상에 대한 글이 있어서 관심이 갔습니다. 다만 하나의 글을 한글뿐만 아니라 영어로도 번역된 점이 부담스러워서 그냥 지나쳤는데요. 지금 생각하면 참, 멍청한 행동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엔 놓치지 않았어요. 출간 소식이 들림과 손에 잡았습니다. 대체 어떤 책일까. <아시아>를 읽어본 이들의 글을 보면 온라인 서점의 미리보기만으로는 알 수 없는 뭔가가, 분명히 있는 게 틀림없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만났지요. <아시아 21호>.




이번 <아시아 21호>는 ‘아랍 작가의 눈으로 보는 재스민 혁명의 안과 밖’이란 특집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불과 얼마전까지 중동, 아랍하면 종교 갈등, 내전, 분쟁의 이미지가 도드라지게 떠올랐는데요. <세계는 왜 싸우는가?>란 책을 통해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전쟁이 왜, 무엇 때문에 일어나는지, 서로 대립된 생각과 이념의 폭을 줄이고 갈등을 완화할 길은 없는지 깊게 고민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책을 읽기 전에 궁금한 것부터 찾아봤어요. ‘재스민 혁명’에 대해서. 그랬더니 ‘재스민 혁명’이란 ‘2010년에서 2011년까지 튀니지에서 일어난 혁명을 튀니지의 국화에 빗대어 재스민 혁명, 혹은 튀니지 혁명’이라 하는데요. 이후 중동이나 북아프리카에서 일어나는 여러 혁명도 재스민 혁명이라고 부른다는군요. 재스민 혁명이 주제인데다 아랍작가가 그들의 눈으로 보고 느끼고 쓴 글이기에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은 무겁고 안타깝고 때론 잔혹합니다. 가장 먼저 수록된 A. J. 토머스의 [붉은 무궁화 혁명]에서는 극한으로 치닫고 있는 리비아 사태가 어떤 상황인지 보여줍니다. 장기집권에 가혹한 독재를 일삼았던 카다피 정권과 그에 맞서 저항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두려움, 그 자체였습니다. 시인 안도현과 아랍의 잡지 편집자의 ‘중동의 민주화’에 대한 대담도 있는데요. 중동이라는 특수한 상황속에서 작가들의 작품 활동이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나기브 마푸즈, 아랍의 현대문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의 작품(제7 하늘)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 작가인 이명랑의 [어디서 왔어요?]도 많은 생각거리를 남겨준 작품이었습니다. 38선을 경계로 남과 북으로 나눠진 우리의 현실, 상황이 어떻게, 무엇에까지 영향을 미치는지, 그로 인한 갈등과 아픔을 잘 녹여냈다는 생각이 듭니다.




흑백톤의 단순한 표지를 한 <아시아>는 외형부터 분위기까지 참 독특합니다. 현란하거나 호기심을 자극하는 문구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뿐 아니라 수록된 작품의 저자들 역시 낯설기만 합니다. 영어로 번역된 글은 또 어떻구요. 하지만 그래서 제게는 신선한 충격으로 와 닿았습니다.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작가,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로 가득하지만 그것은 분명 지금 이 순간 지구의 어디에선가 일어나는 일입니다. 얕은 지식에 섣부른 판단 때문에 손으로 눈을 가렸다면 이제 두 손을 내려야할 때인 것 같습니다. 이후에 만나게 될 [아시아], 기대가 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이바이, 블랙버드
이사카 고타로 지음, 민경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첫 눈에 반하다. 사랑에 빠지다.

불혹을 넘기고서 지난 시절을 돌아봤을 때 가장 아쉬운 게 있다면 바로 이겁니다. 누군가에게 첫 눈에 반해 사랑에 빠졌다...얼마나 로맨틱합니까. 주변이 온통 핑크빛으로 물들고 깜찍한 하트들도 뿅뿅 날아다닐 것 같지 않나요? 그런데 전 암만해도 안 되더군요. 천성이 게으른데다 말주변도, 사교성도 없는지라 누군가를 만나면 일단 경계부터 하고 봅니다. 그러다 만남이 반복되고 신뢰가 쌓이면 그제야 마음의 문이 열리고 정이 들기 시작하는데요. 지금의 남편도 그렇게 만났습니다.




그런데 여기 저와 정반대의, 아니 제가 죽었다 깨어나도 못해볼 사랑을 하는 이가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호시노 가즈히코. 그에게는 다섯 명의 연인이 있습니다. 단 둘, 양다리도 아니고 다섯 명? 네, 그렇습니다. 다섯 명. 그렇다고 이성에게 페로몬을 마구 발산하는 치명적인 매력의 소유자이냐, 그것도 아닙니다. 서른 전후의 나이에 지극히 평범한 남자입니다. 카사노바 같은 희대의 바람둥이냐구요? 글쎄요, 그것도 아닌 것 같아요. 어쩌다 보니 함께하고 싶고 사귀게 게 된 여자가 다섯 명이 되었지만 그는 다섯 명의 연인을 모두 사랑하거든요. 진심으로.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것도 아주 심각한. 다른 것도 아닌 ‘돈 문제’가 생겨서 ‘버스’에 올라타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린 겁니다. 어디로 가는 버스인지, 무엇을 위한 버스인지 알 수 없는 절대절명의 위기에서 호시노는 말합니다. 어릴적 엄마가 장보러 갔다가 사고로 돌아가신 이후로 아무런 소식도 없이 사라지는 것에 두려움을 갖고 있던 그는 자신의 다섯 명의 연인과 이별할 수 있도록 시간을 달라고. 그의 진심이 통한 걸까요? 그에게 연인과 제대로 이별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집니다. 단, 거구의 여인 마유미가 감시역으로 따라붙게 되지만 말입니다.




이후 책은 호시노가 마유미를 대동하고서 다섯 명의 연인과 만나 이별을 고하는 이야기가 펼쳐지는데요. 여섯 부분으로 나눠지는 소설은 무자비하고 일방적인 이별통고 이전에 호시노가 연인과 어떻게 만나게 됐는지 그의 특별한 만남이 짧게 수록되어 있습니다. 연인에게 바람맞고 양복차림으로 무작정 찾아간 딸기밭에서 만난 히로세 아카리를 비롯해서 도로에서 차를 세워선 뜬금없이 “[프렌치 커넥션]을 본 적이 있습니까?” 물어오던 시모쓰키 리사코, 깊은 밤 로프를 둘러메고 건물에 침입하려던 기사라기 유미, 이비인후과에서 링거를 맞다가 만난 간다 나미코, 스포츠 음료 광고를 촬영하던 여배우 아리스 무쓰코. 이들은 헤어지자는 호시노에게 대뜸 이렇게 말합니다. “그것도 거짓말이었어?”




“그것도 거짓말이었어?” 어떨까요? 호시노는 정말 다섯 명의 연인에게 거짓말을 한 걸까요? 호시노의 이별여정은 무사히 끝나게 될까요?




이사카 고타로. 이 사람 책을 읽어봤던가? 한참 생각했어요. 그러다 언뜻 떠오른 책이 있었으니 <모던 타임스>였습니다. 몇 개의 단어를 검색하는 것만으로 사건에 휘말리게 된 사람의 이야기가 만화 같은 일러스트와 함께 곁들여진 책이었는데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스]를 바탕으로 고도로 정보화된 현대의 물질문명으로 인해 인간들의 삶이 어떻게 되는지 코믹하고도 잔혹하게 보여준 작품이었습니다. 다만, 그동안 지인을 통해 이사카 고타로는 감각있고 유머있는 이야기를 쓰는 작가라고 들어왔는데 처음 만난 작품에서는 그걸 느낄 수 없어 아쉬웠지요.




그런데 두 번째 만남에서 드디어 안타가 터졌습니다. <바이바이 블랙버드>. 큰 스릴은 없지만 그래도 쏠쏠한 재미가 있습니다. 게다가 이 책이 출간되기까지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데요. 그것도 이 책의 매력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바램이 있다면 호시노와 마유미의 이후 이야기가 너무나 궁금하다는 거. 그들을 또 만날 수 있을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성격의 발견 - 내 안에 잠재된 기질.성격.재능에 관한 비밀
제롬 케이건 지음, 김병화 옮김 / 시공사 / 201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대체 알 수가 없어!

요즘 큰 아이를 볼 때마다 내 머릿속에선 이런 말풍선이 뜬다. ‘내 속으로 낳은 자식이지만 참 모를 일일세. 도무지 알 수가 없어’




내 아이에 대해 알지 못하는 건 사실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그 ‘알지 못함’을 ‘남자와 여자의 뇌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이해했다. 근데, 그게 아니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뭔가가 더 있었다. 의문을 갖게 된 계기를 말하자면. 큰아이는 로봇을 좋아한다. 국내의 여러 로봇대회에 참가하고 있지만 그리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엄마의 마음으로는 조금이라도 승부욕을 가졌으면 하지만 아이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얼마전 시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래로 가장 충격적인 성적을 받아왔기에 학교를 찾았다.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내버려두기엔 5학년이란 학년의 무게가 만만찮았다. 방학동안 무엇을 보충하면 좋을지 여쭤보고 계획을 세워야 할 것 같았다. 거기서 또다시 충격을 받았다. “○○는 시험에 연연하지 않는 것 같아요”하며 선생님께서 내미신 시험지에는 학반번호와 이름 외에는 어떤 표시도 없었다. 답은 답지에 적었다 치더라도 보는 순간 “헉!” 외마디 비명이 터졌다. 아니, 얘가 왜 이럴까? 초등학교 성적이 아무리 중요하지 않다고 해도 이건 아니다 싶었다. 내가 아이를 잘못 기른 걸까? 내가 알지 못하는 내 아이에 대해 알고 싶었다.




‘내 안에 잠재된 기질. 성격. 재능에 대한 비밀’이란 부제의 <성격의 발견>은 한마디로 성격에 대한 책이다. 우리 인간이 어떤 행동을 할 때 그 행동을 취하게 된 데에는 어떤 이유가 있는지 또 그로 인해 나타난 결과를 통해 무엇을 알 수 있는지 알려준다. 또한 사람마다 다른 기질이 어떻게 나타나게 되는지, 선천적으로 타고 나는지 아니면 부모의 양육에 의해 만들어지는지 알아보고 아이들이 성장함에 따라 기질은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 보여준다.




아이의 기질과 성격에 대해 흥미로운 실험이 있었다. 생후 첫 3년 동안의 반응이 성인이 되어 어떤 직업을 갖고 어떻게 드러나는지 보여주는데 놀라웠다. 소심하고 수줍음이 많은 아이들은 성인이 된 후에도 의존적인 성향이 강하고 어려운 도전이다 위험한 취미를 즐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직업도 교사나 학문을 탐구하는 길을 택했다. 반면에 생후 첫 3년 동안 가장 겁이 없었던 대담한 아이들은 직업도 불확실한, 대담한, 위험한 도전이 따르는 분야를 선택했다고 한다. 생후 16주의 아기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도 인상적이었다. 아기가 낯선 환경에 놓였을 때 보이는 반응과 성장한 이후의 성격을 알아보는 거였는데 격렬하게 몸을 움직이며 반응을 보인 아이는 자란 뒤에도 낯선 방이나 환경에 소심하고 불안한 모습을 보였고 옹알이를 하며 조용히 있던 아이들은 느긋한 성격으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임신과 출산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도 이후 아이의 성격에 큰 영향을 미치는데 특히 임신 중에 독감에 걸린 산모가 낳은 아기는 나중에 정신분열증에 걸릴 위험이 더 높다고 한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어땠더라?’ 돌아보곤 했다. 아이를 임신했을 때를 비롯해서 아이가 어렸을 때 어떤 걸 좋아했고 무엇을 즐겼는지 자꾸자꾸 떠올려보게 됐다. 그러면서 때론 마음이 무거웠고 때론 위로를 받았다. 아이의 기질은 어떤 특정한 심리적인 특징을 발전시키는 하나의 가능성일 뿐, 어른이 되었을 때의 기질적 특성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즉 타고 난 기질이나 성격도 후천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는 것과 능력 면에서 볼 때 여자에 비해 남자가 능력을 발휘하는데 있어서 기복이 더 심하다는 거였다.




오늘, 이웃 블로그를 방문했다가 이런 글을 봤다. ‘좋아하는 것 자체가 능력’이라고. ‘어쩌면 평생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할 꿈. 그걸 발견했다는 것만으로도 축복해줘야 하지 않을까’라고.




쉽지 않은 책을 어렵사리 읽었지만 솔직히 아직도 내 아이가 어떤 기질을 지녔는지 어떤 성격인지 알지 못한다. 초반엔 ‘생후 첫 3년이 지났는데 어쩌지?’ 걱정에 고민도 됐지만 조금씩 털어내려고 한다. 내 아이가 어린만큼 가꾸고 다듬고 발전시킬 수 있는 가능성 역시 많다고 생각하기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림으로 읽는 한국 근대의 풍경 - 개항부터 해방 후까지 역사를 응시한 결정적 그림으로, 마침내 우리 근대를 만나다!
이충렬 지음 / 김영사 / 201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구와 안중근이 서로에게 총을 들이댈 뻔하다’

며칠전 인터넷으로 이런 기사를 봤다. 너무나 놀라운 이야기여서 그 내막을 알아보니 이러했다. 김구와 안중근이 애국운동가라는 점에서 큰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 신분은 달랐다. 서민출신이었던 김구가 구한말 서민중심의 동학농민운동에 참여했다면 양반가문의 아들이었던 안중근은 동학군을 진압하는 민병대활동을 했다. 즉, 친서민 대 반서민으로 맞서게 된 것. 흥미로운 건 동학운동 당시 이 두 사람이 같은 현장에 있었다는 점이다. 가까운 거리에서 대치하다가 그대로 격돌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김구와 안중근 부대의 정면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안중근의 아버지 안태훈이 김구에게 서로의 부대만큼은 싸우지 말자는 비밀협정을 제시했다는데, 그때 만약 그들간에 비밀협정이 없었다면, 그대로 격돌했다면 우리 역사는 어땠을까? 어쩌면 지금과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역사를 좋아하면서도 구한말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극히 적다. (내 기억력의 한계인지 모르겠지만) 학창시절 수업시간에도 우리의 근대사에 대해서는 그다지 자세한 언급이 없었던 것 같다. 몇 백 년 전도 아니고 시기적으로 지금의 우리와 가장 가까운 때인데 왜일까 궁금했다. 그러다 지난해 가을 도서관에서 부산의 역사를 답사와 함께 돌아보는 강좌에 참여했는데 그때 처음으로 느꼈다. 반만년이라는 기나긴 역사에 지극히 일부에 불과하지만 36년간의 일제식민 통치하에 있으면서 우리의 많은 것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그림으로 읽는 한국 근대의 풍경>을 보면서 내가 알지 못했던 우리 역사의 일부분을 만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국의 화가의 눈에 비친 [서울 풍경]을 통해 막  근대에 접어든 모습과 분위기가 어떠했는지 보여주면서 저자는 당시 우리의 궁에 왕조차 머물 수 없어서 빈 궁궐로 남아야했던 경복궁의 아픈 과거를 전해준다. 또한 우리의 근대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상징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는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에 대해서 당시의 의거를 신문은 어떻게 보도했는지 알려준다. 학창시절 교과서에 그림으로 수록됐던 당시의 의거를 이탈리아 신문의 삽화와 일본 신문의 흑백도판을 통해 만날 수 있었다. ‘독립 전에는 시신을 옮기지 마라. 대한독립의 소리가 들려오면 천국에서 춤을 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라던 안중근 의사가 유언에도 불구하고 그의 정확한 무덤자리를 찾을 수 없어 유해를 발굴하지 못하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과 함께. 한강과 대동강을 오가며 대규모의 운송을 담당했던 황포돛대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됐는데 [노을 속의 황포돛대]는 정말이지 너무나 아름다웠다. 절경 그 자체였다.




하지만 가장 인상적인 것은 광복 후 서울의 모습을 담은 그림 [서울 풍경]이었다. 휴버트 보스의 [서울 풍경(1898)]에는 당당하게 자리잡고 있던 광화문이 박득순의 [서울 풍경(1949)]에는 보이지 않았는데. 이유는 일제가 조선총독부 건물을 광화문이 가린다며 옮겨버렸기 때문이라는 거였다. 놀라우면서도 경악을 금치 못할 일이었고 당시 일제의 탄압이 어떠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저자는 모국에 대한 그리움으로 모국의 그림을 모으다 어느새 한국의 근대에 관한 각종 자료들을 수집하게 됐다고 한다. 그렇게 모은 자료를 정리하고 수정 보완해서 출간되기까지 꼬박 4년이 걸려 완성된 책이 바로 <그림으로 읽는 한국 근대의 풍경>이다. 사실 그림이 그린 이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도 있고 관심도에 있어서도 차이가 있다. 때문에 개항해서부터 해방 후까지 당시 우리의 역사가 어떠했는지 그림으로 모든 것을 알아내기엔 무리가 있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우리의 역사, 우리의 과거이기에 그 간극을 메우는 것 역시 우리의 몫일 것이다. 오늘의 평범한 일상이 누군가에 의해 그림이나 사진으로 남아 역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당연하면서도 왠지 마음이 무겁고 한편으론 아찔하다. 왜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죽음본능
제드 러벤펠드 지음, 박현주 옮김 / 현대문학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죽음의 해석>이 출간된 때가 생각난다. 고전적이면서도 음울한 느낌을 주는 표지, 추리미스터리 소설이라는 것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게다가 저자가 법률학자인 점, 소설의 내용이 프로이트와 융의 학설을 바탕으로 실제로 있었던 사건을 풀어간다고  해서 많은 이의 관심을 끌었다. 오래전부터 프로이트에 관심이 있었지만 왠지 어렵게만 여겼던지라 이 책을 구입했지만 아직 읽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차에 한 권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보는 순간 숨이 멎을 만큼 충격적인 장면을 담은 표지. 그러면서도 어디선가 본 듯한 분위기. 혹시? 하고 찾아봤더니 역시 저자가 제드 러벤펠드였다. <죽음본능>이라는 제목이 프로이트의 학설인 ‘죽음본능’을 바탕으로 했다는 소개글을 보니 갑자기 궁금해졌다. 이번에 어떤 이야기일까. 제목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




1920년 9월 16일. 정오가 되자 교회의 종이 우렁차게 울리기 시작하고. 점심을 즐기기 위해 수많은 이들이 월 가의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바로 그 때. 마차의 수레에 있던 폭탄이 터지면서 땅을 뒤흔드는 굉음이 울려퍼진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한낮의 거리가 순식간에 비명의 소리로 가득차기 직전, 지미 리틀모어와 스트래섬 영거, 그리고 콜레트가 월 가에서 만나고 있었다. 콜레트에게 전해진 아멜리아라는 여인으로부터의 쪽지와 그 속에 함께 있던 어금니가 의문스러워서 리틀모어에게 조언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바로 그 때, 폭탄이 터진 것이다. 뉴욕의 월 가는 단 한 번의 폭발로 초토화되고 목숨을 잃은 사람, 심각한 부상을 입은 사람, 무슨 일인지 구경하려고 몰려든 사람이 뒤섞여 한순간에 혼란의 도가니로 빠져들고 만다. 이에 리틀모어와 영거, 콜레트는 주변을 정리는 물론 부상자들을 치료하는 일에 나서게 된다. 온몸에 폭탄재와 부상자의 피를 뒤집어쓰며 사태수습에 나서던 리틀모어와 영거는 갑자기 콜레트가 보이지 않는다는 걸 깨닫는다. 콜레트를 찾기 위해 리틀모어와 영거는 서둘러 숙소로 돌아오지만 그들이 알아낸 것은 콜레트는 물론 그녀의 남동생까지 납치되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그녀가 보관하고 있던 상자 속의 희귀한 원소들이 사라졌다는 것도...




세계 경제의 중심이라는 뉴욕의 월 가에 터진 폭탄 테러 사건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이후 뉴욕경찰청의 형사반장인 리틀모어가 추적하는 테러사건과 콜레트의 납치 사건이 교차로 진행되면서 시종일관 팽팽한 긴장감 속에 이어진다. 그런 가운데 여러 가지 의문을 풀어가고 있다. 폭탄테러는 누가, 왜 저지른 것인지, 콜레트를 납치한 이유는 무엇이고 그녀의 남동생 뤽의 실어증은 무엇 때문에 생겼는지...서로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것들이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서로 이어지기 시작한다. 그 속에 숨겨져있는 정치적 음모에 이르기까지.




700페이지의 두툼한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에는 2001년 9•11테러의 장면들이 떠올랐다. 하늘로 치솟아 있던 무역센터 건물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고 혼란에 빠져 비명을 지르는 사람, 폭탄재를 뒤집어쓴 사람들. 텔레비전에서 계속 반복되는 충격적인 장면에 할 말을 잃었던 때가 생각났다. 그런데 그와 유사한 일이 이전에 또 있었다니 놀라웠다. 그래서 더욱 궁금했다. 계속해서 일어나는 사건들이 대체 어디까지가 실제로 있었던 일이고 무엇이 허구인지. 사실과 허구의 조합이 너무나 교묘하게 이뤄졌다는 생각이 든다. 그게 바로 저자 제드 러벤펠드의 글의 힘이겠지.




이제야 알게 된 거지만 이 책의 주인공인 지미 리틀모어와 스트래섬 영거가 전작인 <살인의 해석>에서도 등장했다고 한다. 서로 다른 매력을 지닌 두 인물, 첫 만남은 어땠을까 궁금해진다. 이번 여름에야말로 <살인의 해석>을 보고야 말테다. 단 한 가지 문제만 해결된다면. 대체 저 쌓인 책 무더기의 어디에 <살인의 해석>이 있는 거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