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바이, 블랙버드
이사카 고타로 지음, 민경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첫 눈에 반하다. 사랑에 빠지다.

불혹을 넘기고서 지난 시절을 돌아봤을 때 가장 아쉬운 게 있다면 바로 이겁니다. 누군가에게 첫 눈에 반해 사랑에 빠졌다...얼마나 로맨틱합니까. 주변이 온통 핑크빛으로 물들고 깜찍한 하트들도 뿅뿅 날아다닐 것 같지 않나요? 그런데 전 암만해도 안 되더군요. 천성이 게으른데다 말주변도, 사교성도 없는지라 누군가를 만나면 일단 경계부터 하고 봅니다. 그러다 만남이 반복되고 신뢰가 쌓이면 그제야 마음의 문이 열리고 정이 들기 시작하는데요. 지금의 남편도 그렇게 만났습니다.




그런데 여기 저와 정반대의, 아니 제가 죽었다 깨어나도 못해볼 사랑을 하는 이가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호시노 가즈히코. 그에게는 다섯 명의 연인이 있습니다. 단 둘, 양다리도 아니고 다섯 명? 네, 그렇습니다. 다섯 명. 그렇다고 이성에게 페로몬을 마구 발산하는 치명적인 매력의 소유자이냐, 그것도 아닙니다. 서른 전후의 나이에 지극히 평범한 남자입니다. 카사노바 같은 희대의 바람둥이냐구요? 글쎄요, 그것도 아닌 것 같아요. 어쩌다 보니 함께하고 싶고 사귀게 게 된 여자가 다섯 명이 되었지만 그는 다섯 명의 연인을 모두 사랑하거든요. 진심으로.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것도 아주 심각한. 다른 것도 아닌 ‘돈 문제’가 생겨서 ‘버스’에 올라타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린 겁니다. 어디로 가는 버스인지, 무엇을 위한 버스인지 알 수 없는 절대절명의 위기에서 호시노는 말합니다. 어릴적 엄마가 장보러 갔다가 사고로 돌아가신 이후로 아무런 소식도 없이 사라지는 것에 두려움을 갖고 있던 그는 자신의 다섯 명의 연인과 이별할 수 있도록 시간을 달라고. 그의 진심이 통한 걸까요? 그에게 연인과 제대로 이별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집니다. 단, 거구의 여인 마유미가 감시역으로 따라붙게 되지만 말입니다.




이후 책은 호시노가 마유미를 대동하고서 다섯 명의 연인과 만나 이별을 고하는 이야기가 펼쳐지는데요. 여섯 부분으로 나눠지는 소설은 무자비하고 일방적인 이별통고 이전에 호시노가 연인과 어떻게 만나게 됐는지 그의 특별한 만남이 짧게 수록되어 있습니다. 연인에게 바람맞고 양복차림으로 무작정 찾아간 딸기밭에서 만난 히로세 아카리를 비롯해서 도로에서 차를 세워선 뜬금없이 “[프렌치 커넥션]을 본 적이 있습니까?” 물어오던 시모쓰키 리사코, 깊은 밤 로프를 둘러메고 건물에 침입하려던 기사라기 유미, 이비인후과에서 링거를 맞다가 만난 간다 나미코, 스포츠 음료 광고를 촬영하던 여배우 아리스 무쓰코. 이들은 헤어지자는 호시노에게 대뜸 이렇게 말합니다. “그것도 거짓말이었어?”




“그것도 거짓말이었어?” 어떨까요? 호시노는 정말 다섯 명의 연인에게 거짓말을 한 걸까요? 호시노의 이별여정은 무사히 끝나게 될까요?




이사카 고타로. 이 사람 책을 읽어봤던가? 한참 생각했어요. 그러다 언뜻 떠오른 책이 있었으니 <모던 타임스>였습니다. 몇 개의 단어를 검색하는 것만으로 사건에 휘말리게 된 사람의 이야기가 만화 같은 일러스트와 함께 곁들여진 책이었는데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스]를 바탕으로 고도로 정보화된 현대의 물질문명으로 인해 인간들의 삶이 어떻게 되는지 코믹하고도 잔혹하게 보여준 작품이었습니다. 다만, 그동안 지인을 통해 이사카 고타로는 감각있고 유머있는 이야기를 쓰는 작가라고 들어왔는데 처음 만난 작품에서는 그걸 느낄 수 없어 아쉬웠지요.




그런데 두 번째 만남에서 드디어 안타가 터졌습니다. <바이바이 블랙버드>. 큰 스릴은 없지만 그래도 쏠쏠한 재미가 있습니다. 게다가 이 책이 출간되기까지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데요. 그것도 이 책의 매력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바램이 있다면 호시노와 마유미의 이후 이야기가 너무나 궁금하다는 거. 그들을 또 만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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