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센 뤼팽 대 헐록 숌즈 - 최신 원전 완역본 아르센 뤼팽 전집 2
모리스 르블랑 지음, 바른번역 옮김, 장경현.나혁진 감수 / 코너스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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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이가 열 살 무렵, 셜록 홈즈와 아르센 뤼팽의 책을 한 권씩 보여줬습니다. 어린 시절 내가 느꼈던 기분을 아이도 느낄까? 아이의 느낌은 어떨까? 궁금했습니다. 한참 후에 물었어요. 어땠어? 느낌이? 원래 말이 없는 큰아이는 딱 한 마리를 하더군요. 홈즈는 신기하고 루팡은 멋지다고. 왜? 뭐가 그런데?라고 물었지만 그 다음부터는 묵묵부답.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아이의 느낌이 정확한 것 같아요. 사람들의 모습이나 말투, 행동을 관찰한 걸 바탕으로 사건을 해결해가는 셜록 홈즈는 정말 신기하고 검은 모자와 망토를 휘날리면서 불가능하게 보이는 일들을 해내는 아르센 뤼팽은 매력적인데요. 만약 그 둘이 대결을 벌인다면 어떨까요? 누구를 응원하게 될지 궁금해집니다.

 

2권은 ‘금발 여인’과 ‘유대식 등잔’ 두 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야기는 베르사유 고등학교 수학교사인 제르부아가 고물상에서 서랍이 여러개 달린 마호가니 책상을 발견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딸 쉬잔의 생일선물로 적당하겠다고 생각한 제르부아가 상인에게 값을 치르자 낯선 젊은이가 다가와 말을 건넵니다. 자신에게 마호가니 책상을 팔면 몇 배의 값이라도 주겠다고. 이에 제르부아는 버럭 화를 내며 거절하며 돌아섭니다. 제르부아의 책상 선물을 받고 쉬잔은 뛸 듯이 기뻐하는데요. 하지만 다음날 놀랍게도 쉬잔의 방에서 책상이 사라지고 맙니다.

 

불행은 혼자 오지 않는다는 말처럼 제르부아의 불행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더 놀라운 일이 벌어지는데요. 두 달 후 제르부아는 신문을 보다가 당첨된 복권번호를 보게 됩니다. 23조 514번 복권. 100만 프랑 당첨. 자신이 우연히 구입한 복권이 당첨됐다는 걸 알게 된 제르부아는 복권을 찾으려고 여기저기 뒤지지만 찾지 못하는데요. 딸 쉬잔에게서 충격적인 얘기를 듣습니다. 복권이 든 상자가 도둑맞은 책상 속에 들어 있었다고. 일확천금이 순식간에 사라지자 제르부아는 좌절하지만 이내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부동산 은행장에게 복권당첨금 지불정지를 요청하는 전보를 보냅니다. 그런데 동시에 제르부아에게 하나의 전보가 도찹합니다. 문제의 23조 514번 복권을 자신이 갖고 있다는 뤼팽의 전보가....

 

<아르센 뤼팽 대 헐록 숌즈>라는 타이틀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2권에서는 추리소설의 양대 산맥, 우위를 점칠 수 없는 두 천재 셜록 홈즈와 아르센 뤼팽이 대결을 펼쳐집니다. 푸른 다이아몬드가 사라지는 의문의 사건이 벌어지자 영국에서 헐록 숌즈 탐정이 윌슨과 함께 프랑스로 오게 되는데요. 사실 셜록 홈즈란 이름에 익숙해 있었기에 처음엔 헐록 숌즈가 낯설었지만 이내 둘의 흥미진진한 대결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그나저나 뤼팽과 숌즈, 누가 이겼을까요? 궁금하면? 5백원...이 아니라 2권을 펼쳐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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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도신사 아르센 뤼팽 - 최신 원전 완역본 아르센 뤼팽 전집 1
모리스 르블랑 지음, 바른번역 옮김, 장경현.나혁진 감수 / 코너스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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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라고 미당 서정주는 시로 노래했는데요. 저를 키운 건 팔 할이 책이었습니다. 열 살을 넘어서면서부터 시작된 책읽기는 금세 불이 붙었습니다. 학교 도서관 청소당번을 하는 특혜로 매일 서너권의 책을 끼고 집으로 돌아와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꼼짝도 않고 읽어댔습니다. 지독하게 읽어댄 덕분에 갑자기 시력이 떨어져서 고생하긴 했습니다만 그때 만났던 친구(?) 셜록 홈즈, 아르센 뤼팽, 빨간머리 앤, 제인 에어, 허클베리 핀, <폭풍의 언덕>의 캐서린과 히스클리프, <정글북>의 모글리...는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제 멘탈을 단단하게 지켜주는 환상의 동지라고나 할까요? 특히 셜록 홈즈와 아르센 뤼팽은 일종의 로망 같은 인물이었어요. 세상 어딘가엔 이렇게 멋진 사람이 분명 있을 거라고 상상하기도 했는데요. 어린 시절 만났던 그들을 중년의 지금, 재회한다면 기분이 어떨까요?

 

기대하던 재회의 순간은 갑자기 다가왔습니다. 그것도 뤼팽을! 그동안 뤼팽을 여러 출판사의 버전으로 몇 권씩 갖고 있지만 전권을 읽을 기회는 없었는데요. 지난달 아르센 뤼팽 전집의 출간소식을 접하자마자 덥석 손에 잡았습니다. 이 기회를 놓치면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몰라서 말이지요. 전집은 총 20권입니다. 현재까지 출간된 것은 10권까지인데요. 1권의 타이틀은 아르센 뤼팽과의 인상적인 첫 만남을 예견하듯 <괴도신사 아르센 뤼팽>입니다.

 

아르센 뤼팽 승선, 일등석, 금발 머리, 오른쪽 팔뚝에 상처, 홀로 여행, 가명은 R...

 

프로방스호는 유럽과 미국 사이의 대서양을 횡단하는 여객선인데요. 프랑스 해안에서 멀리 떨어졌을 때, 이런 전보가 받게 됩니다. 폭풍우가 몰아치는데다 벼락이 쳐서 전보의 일부만 확인하게 되는데요. 쉬쉬해야 할 소문일수록 금방 퍼지는 법! 개미 한 마리 드나들 수 없는 장소에 귀신처럼 나타나서 연기처럼 사라지는데다 변신의 귀재인 신출기몰한 아르센 뤼팽! 바로 그 뤼팽이, 드넓은 망망대해에 자신들과 같은 배 안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사람들은 불안에 떨고 수근대기 시작합니다. 누가 뤼팽일 것인가. 전보의 내용과 흡사한 사람을 조사하는 가운데 이를 조롱하기라도 하듯 값비싼 보석이 도둑맞고 지갑이 도난당하는 일이 발생하고 마는데요. 과연 누가 뤼팽일까요? 미국 해안에 도착한 프로방스호에서 하선하는 사람들을 유심히 살펴보는 이가 있었으니 뤼팽의 숙적으로 불리는 가니마르 형사였습니다. 가니마르는 한 사람에게 다가가 말합니다. “아르센 뤼팽 아니신가?” 결국 뤼팽은 체포되어 감옥에 갇히고 마는데요.

 

아니, 벌써, 뤼팽이? 괴도라고 불리는 주인공이 시작부터 체포되어 버리는 바람에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요. 실망은 금물. 뤼팽을 신출기몰하고 천재적인 괴도라고 부르는 건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1권에는 총 9개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요. 탈옥으로 유명한 <쇼생크 탈출>이나 <프리즌 브레이크>와는 달리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감옥에서 탈옥하는데다 도둑(?)이 도둑을 잡고 뿐만 아니라 전설적인 인물과의 만남까지!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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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덕끄덕 세계사 1 : 고대 제국의 흥망 - 술술 읽히고 착착 정리되는 끄덕끄덕 세계사 1
서경석 지음 / 아카넷주니어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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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이수제라고 아세요? 학생들이 많은 과목을 공부하는데서 오는 학습부담을 줄이기 위해 특정과목을 일정기간에 몰아서 학습하는 건데요. 역사(세계사), 사회처럼 학습 분량이 만만치 않은 과목까지 집중이수제를 하니까 장점보다는 단점이 많은 것 같아요. 학교에서의 수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데 시험범위는 많다보니 자연히 암기할 것도 많아지죠. 그러다보니 해당 과목에 대한 아이들의 관심이 떨어질 수밖에 없더군요. 사회와 역사에 대한 기본임과 동시에 커다란 틀을 잡을 수 있는 기회인데 의미 없이 지나치는 것 같아 엄마인 저로선 안타깝더군요.

 

얼마전 출간된 <끄덕끄덕 세계사>에 관심이 갔던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습니다. 아이가 역사나 세계사를 ‘암기하는 과목’이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인류의 생활, 삶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알아나가는 과정, 그 재미를 느낄 수 있었으면 했거든요. 역사를 전공하고 학생들을 지도해서인지 이 책의 저자도 역사에 대한 인식, 가치관을 강조하고 있다. 본문에 들어가기 전에 역사란 무엇이고 왜 역사를 배워야 하는지 조목조목 말하는데요. 역사란 인류가 걸어온 발자취 속의 수많은 이야기를 풀어내기 때문에 ‘역사는 이야기이자 문학’이라는 대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본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1부 문명의 탄생’ ‘2부 지역을 통일한 제국의 등장’으로 인류의 문명이 어떻게 탄생해서 어떤 지역으로 전파되었고 그것이 어떻게 발전했는지 살펴보는데요. 최초의 인류를 발굴하는 것으로 출발해서 오랫동안 침팬지를 관찰한 제인 구달의 연구를 인간이 생태계의 정점에 설 수 있었던 이유를 찾아봅니다. 뿐만 아니라 인류역사상 가장 획기적인 전환점이라는 농경의 시작과 불의 사용이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하나하나 짚어줍니다.

 

얼마전부터 <일리아스>를 읽기 시작해서인지 미케네 문명에서 트로이전쟁과 관련한 대목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흔히 트로이 전쟁의 시초가 파리스의 심판과 파리스가 메넬랑오스의 아내인 헬레네를 납치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관련 책을 찾아보면 그것보다는 트로이가 자리한 위치,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요충지였기 때문에 그것을 차지하기 위해 어떤 것으로든 전쟁이 터질 수밖에 없었다고 하는군요. 고대 인도에서 여러 종교가 파생되는 과정도 흥미로웠습니다.

 

왜? 어떻게? 어떤 학문이든 공부하다보면 이 두 가지 질문을 수없이 되새기게 됩니다. 특히 문자가 없던 시대이거나 자료가 남아있지 않은 경우에 역사학자들은 하나의 의문과 질문을 풀어내기 위해 상상을 최대치로 끌어올린 다음 숙고의 과정을 거친다고 하는데요. 바로 그런 오랜 노력의 결실이 본문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당시 사회의 분위기와 역사의 흐름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많은 사진과 그림은 몰입감을 더해주고 ‘똑똑하게 정리하는 착착 마인드맵’ 코너로 해당 내용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에 대한 책임이 있었음에도 다시 국제사회로 돌아왔습니다. 이는 독일이 그 책임을 직시했기 때문입니다. 과거사 청산은 화해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전제조건입니다.”

 

최근 일본을 방문했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기자회견이 화제가 됐었죠. 독일과 일본. 두 나라는 2차 대전의 전범국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 역사를 인지하는 태도에서는 상반되는 차이를 보여주는데요. 부끄러웠던 지난 역사를 직시하고 또다시 과오를 범하지 않도록, 잊지 않도록 끊임없이 역사를 되새기고 기억하는 것. 우리에게도 절실하게 필요한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역사를 잊어버린 민족은 자기가 누구인지 알 수 없고, 따라서 스스로를 지켜나갈 수 없다. 하지만 역사를 잊지 않고 지킨 민족은 언젠가는 나라를 되찾아 더욱 발전할 수 있다. -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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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 - 폐허를 걸으며 위안을 얻다
제프 다이어 지음, 김현우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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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남자가....?” “여기서 남자가 왜?”

다른 부모, 다른 환경에서 자란 두 성인이 결혼을 하고 한 가정을 이룬다는 건 지금 생각해도 예삿일이 아니다. 남편과 난 혈액형만 같을 뿐, 모든 점에서 반대였다. 야외촬영. 난 “생략하자”, 남편은 “하자!”고 했다. 신혼여행. 난 “어디든 푹 쉬다 오자”, 남편은 “해외로, 명소는 당연히 둘러보고”였다. 여느 커플과는 정반대의 반응에 난 툭하면 무슨 남자가 그래?를 연발했고 남편은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래 내가 졌다졌어. 결국 우리는 야외촬영을 했고 해외로 신혼여행을 갔다. 하지만 야외촬영 내내 어색한 웃음을 연발하다 얼굴에 쥐가 날 정도였던 난 그 후로 카메라는 쳐다보기도 싫어졌고 우리와 다른 기후(툭하면 비가 오는), 먹거리의 나라로 떠난 신혼여행에선 가이드의 빡빡한 일정을 따라다니다가 심한 몸살감기에 걸려버렸다. 신혼여행이 끝나고 돌아오면서 난 불평을 늘어놨다. “여행가서 꼭 그렇게 바쁘게 다녀야 돼? 느긋하게 멍하니 있으면 안돼? 호텔 수영장에 수영은커녕 발 한 번 못 담그고 이게 뭐야?”

 

 

그린 올리브빛, 이불 밖으로 쑥 튀어나온 맨발.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를 보면서 십수 년 전 티격태격 하면서 다녔던 신혼여행이 떠올랐다. 첨엔 이 책이 정말 ‘요가’책인 줄 알았다. 나처럼 게으르고 매사에 귀찮아하는 사람을 위한 요가책일 거라고 여겼다. 하지만 이 책이 나와 그냥 스쳐지나갈 인연이 아니었나보다. 우연히 표지에서 ‘여행 산문집’이란 문구를 보게 됐고 전혀 안 어울릴 것 같은 요소의 조합이 호기심을 유발했다.

 

 

모든 길이 통한다는 로마에서 저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자랑스럽게(?) 털어놓는다. 그냥 공통점이 있고 통하는 어떤 여행객을 만나서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하는데 서술방식이 독특하다. 소설로 치면 1인칭도, 2인칭도 아닌 전지적 작가시점에 가까운 느낌? 분명 두 사람이 대화를 하고 있는데 대화 내용보다는 그 순간 자신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고 자주 방문한 술집이 어떤 곳이며 어떤 사람들이 찾는지 말한다. 마치 저자가 여행객이 아니라 그곳에 오랫동안 살고 있고 그 곳을 찾은 여행객들을 지켜보고 관찰하면서 떠오른 생각과 느낌을 글로 풀어내는 것 같다. 심지어 명소를 찾은 자신의 행동과 느낌마저 다른 이가 관찰하는 것처럼. 여행한 지역의 역사적, 고고학적 의미에 대해 알려고 애쓰지 않는 자신을 오히려 ‘무지의 고고학’이라며 퉁치듯 넘겨버린다.

 

 

작가는 무위도식하는 순간에도 작가. 도대체 하려는 말이 정확히 무언지 알 수 없는 글을 줄줄이 늘어놓기 일쑤였지만 일순 분위기를 바꿔버리는, 단박에 사람의 시선을 빼앗고 가슴에 묵직한 무언가를 떠안겼다. 우연히 보게 된 사진에서 랩티스 마그나, 고대 유물의 폐허를 마주한 그는 당시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리비아로의 여정에 나섰다. 도착하자마자 시종일관 투덜대던 저자는 폐허, ‘구역’ 안에 들어서자마자 그곳의 시간과 공간에 압도되고 암스테르담에서 바지를 뒤집어 입는 황당한 액션에 폭소를 터뜨리려는 찰라 또 한 방 날린다.

 

 

바닷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모든 것이 고요해졌다. 내가 원하던 상태였다. 역사를 지리처럼 경험하는 것, 시간적인 것을 공간적인 것으로 경험하는 것 말이다. 바람은 시간의 숨결이 되어 서둘러 지나간다. 반면 고요함은, 멈춰버린 시간의 황홀감이 된다. - 71쪽.

 

마흔이 지나면 온 세상이 오리가 지나간 자리의 물결처럼 되는거야. 마흔이 지나면 인생은 원래 낭비하기 위해 있는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되지. - 149쪽.

 

 

로마에서 시작해서 리비아, 태국, 암스테르담, 캄보디아, 파리, 디트로이트.... 저자는 세계 여러 곳을 찾아 머물면서 겪은 일화들, 때론 웃음이 터지고 때론 섬뜩한 일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저자는 순간 떠오르는 상념, 생각들을 놓치지 않고 풀어내고 있다. 그런 글을, 여정을 때로 고개를 젓고 때로 공감하며 읽다보니 어느새 궁금해졌다. 내 안에도 ‘폐허’가 존재하겠지. 내게 있어 ‘구역’은 어떤 걸까. 내 안으로의 여행을 떠날 시점이 다가온 걸까.

 

 

‘오, 이건 뭐지?’하며 펼쳐든 책,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또 다시 내뱉었다. ‘이건 뭘까?’ 여행서? 아니다. 본문에서 사진(한 챕터당 작은 흑백사진 하나)을 구경할 수 없다니. 지금까지 어떤 여행서도 이렇지 않았다. 그래서 여행 산문집인가? 했지만 자유롭게 썼다고 모두 산문집이라고 할 수는 없는 거 아닌가? 그제야 저자가 서두에 털어놓은 말이 생각났다. ‘이 책에 적은 일들은 모두 실제로 있었던 일이지만, 그중 몇몇은 내 머릿속에서만 일어났다. 마찬가지로, 이 책에서 일어나지 않은 일들 역시 내 머릿속에서만 일어나지 않았을 뿐이다.’ 뭘까. 이 책은. 암튼 정체가 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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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길들지 않는다 - 젊음을 죽이는 적들에 대항하는 법
마루야마 겐지 지음, 김난주 옮김 / 바다출판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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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것은 붉은 늑대. 실루엣만 있어서 시선이 어딜 향하고 있는지, 표정이 어떤지 알 수 없지만. 왠지 알 것 같다. 저 늑대는 분명 나를 보고 있다. 내 주변을 서성이며 간간이 무심한 듯 고개를 돌리기도 하지만 목표를 잊진 않는다. 노리는 건 오직 나의 허점. 아차 하는 순간 저 녀석은 내 목덜미에 날카로운 이빨을 박아버리겠지. 꾸울꺽. 녀석이 눈치 채지 못하게 조심스럽게 침을 삼킨다. 늑대와 나. 팽팽한 긴장감이 계속 이어진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처음 <나는 길들지 않는다>를 보면서 학창시절에 읽었던 <어린왕자>가 떠올랐다. 어린 왕자와 여우의 대화 속에 ‘길들이다’는 대목이 있었다. 길들인다는 건 관계를 맺는다는 것.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유일한 존재가 된다고 했던가?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난 세 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거야.”라던 여우의 말이 말랑말랑하고 인상적이어서 읽자마자 단박에 가슴에 꽂혀버렸다. ‘길들이다’는 것이 이렇게 감상적인 거구나 감탄을 했다. 만약 그때의 날 마루야마 겐지가 봤다면 분명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넌, 주거쓰. 아웃!”

 

 

‘젊음을 죽이는 적들에 대항하는 법’이라는 부제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저자는 ‘진정한 젊음’이 무엇인가를 모색한다. 젊음은 단순히 육체적인 젊음, 건강함이나 신체 기능의 탁월함이 아니라는 것. 육체가 늙었더라도 정신적으로 젊음을 유지하고 있다면 그것이 바로 진정한 젊음이라고 강조한다.

 

 

육체는 비록 늙었어도 정신의 젊음을 추구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의 특질이며, 또 특권이다.…… 인간 역시 야생동물이라는 점을 다시금 상기해주기 바란다. - 15쪽.

 

 

그렇다면 생명이 다해서 죽음을 맞을 때까지 진정한 젊음을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절대, 길들지 마라”고 한다. 가족에 길들지 말고, 직장에 길들지 말고, 지배자들에게 길들지 말라고. 아니, 인간은 본디 사회적 동물이라 태어나면서부터 가족, 학교, 회사조직에 들어가면서 의도하지 않아도 자연히 적응하고 길들기 마련인데 길들지 말라니! 어쩌란 말야? 대체 이유가 뭔데? 뭣 때문에 그러는건데? 거센 항의의 말이 툭툭 튀어나왔다.

 

 

당신의 젊음을 말살한 그 최초의 적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유아기와 유년기에 부모가 당신에게 쏟은 사랑이다. 특히 어머니의 맹목적인 사랑이다. - 25쪽.

 

 

저자는 진정한 젊음은 정신적인 자립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자립은 또 뭐냐? 주어진 상황을 전체적, 객관적으로 파악한 후에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인지 제대로 정확하게 판단하는 것인데 문제는 여기에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아름다운 존재라는 어머니도, 자신의 꿈과 이상을 실현하고 사회적 성공을 이룰 수 있는 회사도 걸림돌이 된다는 거다. 어머니는 자식이 홀로 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식을(남편 포함) 자신의 방식대로, 원하는 대로 길들이고 있고. 대부분의 직장인 역시 도전보다는 ‘안정’을 취하려는 습성 때문에 회사에서 요구하는 대로 끌려 다니다가 인생을 마감하기 일쑤라며 꼬집는다. 지배자, 국가에 대해서는 더 강한 어조로 말한다. 사회가 혼란하고 정치마저 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사람들은 정치에 무관심해지는데 국가는 바로 그것을 노린다고. 특히 중년보다 젊은 사람을. 그 예로 저자는 미국 정부가 실업자가 증가하는데도 수수방관하고 있는 것은 군인의 숫자를 일정한 수준으로 유지하려는 목적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좀 더 분명하게 말하면 진정한 당신 자신으로 살지 않았고, 진정한 인생으로부터 피해만 다닌 얼간이였다. 누가 폭력을 가하며 강요한 것도 아닌데, 스스로 자신의 영혼을 집단과 조직에 팔아넘기면서 이용당하고 종속당하는 타율의 길을 선택했던 것이다. - 81쪽.

 

 

의지박약이야. 그건 죽은 삶이야. 넌 현대판 노예야. 총알받이나 다를 바 없어....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듣는다면 기분이 어떨까 생각해봤다. 솔직히, 기분 나쁘다. 그것도 아~~~주 많이.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 하고 앞으로 그와의 관계를 끊어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잠깐이라도 곱씹어볼 필요는 있지 않을까 싶다. 왜냐면 그가 그렇게 쓴 소리를 한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테니까. 나이가 적다고 생각도 젊지 않다는 건 이미 여러 차례 경험했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모든 점에서 존경할만한 사람을 만나기란 하늘에 별 따기 만큼 어렵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누구나 허점과 부족한 점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니까.

 

 

백 보 아니 천 보를 양보해서, 신과 위인이 존재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나 그들이 있을 곳은 자신 속 밖에는 없다. 신과 악마와 위인은 모두 당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것이다. - 179쪽.

 

 

결국 화살은, 해결책은, 자신을 구제할 수 있은 힘은 타인이 아닌 자신의 내면에 있다. 세상의 모든 지식과 지혜는 자신이 모르는 것을 인정하는 것부터 비롯된다는 것과 흡사하다. 삶의 시작도 매듭도 모두 내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니. 짐작했지만 훨씬 묵직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마지막 저자가 던진 선동, 질문에 대한 나의 해답을 모색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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