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석의 문장 한국어 글쓰기 강좌 1
고종석 지음 / 알마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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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 그의 이름은 익히 알고 있었다. 지인을 통해서, 혹은 책을 통해서 그가 좋은 글, 올바른 글을 쓰는 문장가라는 걸 여러 차례 접했다. 허나 그의 글을 만날 기회는 좀처럼 다가오지 않았다. 읽어야 하는 책보다 좀 더 흥미롭고, 좀 더 구미가 당기는 책에 끌렸다.

 

그러다 기회가 찾아왔다. 고종석의 책, 그것도 글쓰기에 관한 책이다. 사실 글쓰기에 관한 책을 지금까지 수차례 읽었다. 하지만 많은 경우, 읽고 나서 왠지 위축되는 기분이 들곤 했다. 저자가 권하는 글쓰기의 방식, 글쓰기에 대한 생각이 오롯이 내 것이 되지 못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 저자의 방식을 녹여내어 나만의 글쓰기로 담아내질 못했다는 게 옳은 표현일 것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글쓰기를 게을리 했다는 것. 해서 이번 <고종석의 문장>은 어떨지 기대 반, 우려 반의 심정으로 읽었다. 결코 유쾌하지 못한 기분을 또 한 번 맛보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더구나 글쓰기, 문장에 관한 책치고는 두께도 상당해서 시작부터 조금 걱정이 됐지만 결론은...뭐, 좋았다. 그렇다고 글쓰기에 대한 중압감을 느낄 수 없는 책이었느냐, 그렇지는 않았다. 오히려 글이란 것이 무엇인지, 왜 글을 쓰려고 하는지, 어떤 것이 올바른 글, 제대로 된 글인지 알려주는 글쓰기의 기본을 짚어주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종석의 문장>은 저자가 2013년 9월부터 그해 12월까지 숭실대에서 진행한 글쓰기 강연을 책으로 출간한 것이다. 해서 본문의 문장은 구어체로, 대상이 학생이었기에 내용도 비교적 이해하기 쉽게 서술되어 있다. 책은 가장 먼저 ‘글은 왜 쓰는가?’를 묻는다. 글을 왜 쓰는지, 그것을 짚어보기 위해 저자는 <동물농장>의 작가 조지 오웰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생계 때문이 아니라면 글을 쓰는 동기는 대략 네 가지가 있다고. 자신이 돋보이고 싶은 이기심 때문이거나 아름다운 것을 보고 듣고 글로 남기고 싶은 미학적인 열정, 후세의 사람들을 위해 사실과 진실을 있는 그대로 보존하려는 역사적인 충동, 세상을 특정한 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정치적인 목적에 의해서라고 하는데 나의 글쓰기의 동기는 무엇인지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이후에는 세계의 유일무이한 언어, 한국어에 대한 이해, 한국어다운 글쓰기에 관해이야기하는데 언어학자인 저자의 이력이 잘 드러나는 부분이다. 정치평론가로 알려진 촘스키가 원래는 언어학자였다는 놀라운 사실을 시작으로 한국어가 얼마나 풍부한 음성을 지닌 언어인지 강조한다. 학창시절 국어시간에 배웠던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의 [청산별곡]은 ‘ㄹ’소리의 향연이라고 하는데 소리내어 읽어보니 어떤 의미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시평집 <자유의 무늬>를 교재삼아서 글을 쓸 때 주의해야 할 것들, 미처 모르는 오류들을 하나씩 짚어준다. 이를테면 ‘그리고’ ‘그래서’ ‘그러나’ ‘그런데’ 같은 접속부사는 꼭 필요할 때가 아니면 쓰지 않는 것이 좋다는 거나 ‘~적’ ‘~의’는 일본식 표현이라 가급적 빼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말한다.

 

‘아름답고 정확한 글쓰기란 무엇일까’ 책장을 덮으면서 생각해본다. 아름답고 정확한 글은 무엇보다 논리가 바탕이 되어야 가능하다는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논리적인 글을 위해 아직 배우고 느껴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됐다. 그런 다음엔 쓰고, 또 쓰고. 꾸준히 글을 쓰는 것. 그것만이 나의 글이 앞으로 한걸음 나아가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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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풍경
박범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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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아시나요? 우리 인간이 원래는 두 개의 머리와 두 쌍의 팔, 다리를 가졌다는 것을. 서로 같은 性(두 남성 또는 두 여성)이거나 다른 性(여성과 남성)이 등을 마주 대고 있었던 인간의 힘은 무척 강했습니다. 인간은 자만에 빠진 나머지 신에게 도전하기에 이르지요. 교만한 인간을 그냥 둘 수 없었던 신은 인간을 둘로 자르고 마는데요. 인간은 그때부터 평생을 그리워하게 됩니다. 등이 맞붙은 하나의 몸에서 신에 의해 절반으로 갈라진 자신의 나머지 반쪽을……. 플라톤의 <향연>에 수록된 이야기인데요. 다소 파격적이라 할 수 있지만 인간이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사랑에 빠지고 헤어지는 일련의 것들이 모두 태초에 인간이 서로 등이 붙었기 때문이라는 사랑의 근원,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왜 갑자기 플라톤의 향연이냐! 바로 그 ‘사랑’ 때문입니다. 서로 다르거나 같은 性의 인간들이 보여주는 ‘사랑’. 까마득한 과거에 헤어진 반쪽을 찾아 헤매는 거라고 생각할 수 없는 ‘사랑’. 사랑이지만 사랑이라 할 수 없고 사랑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 그 중간 어디쯤에서 현실인지 환상인지조차 확실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일렁임으로만 존재하는 몸짓, ‘그들의 사랑’. 바로 <소소한 풍경> 때문입니다.

 

 

소설가이자 대학교수인 ‘나’는 어느날 한 제자의 전화를 받습니다. “시멘트로 뜬 데스마스크 보셨어요?” 뜬금없이 질문에 ‘나’는 순간 당황하지만 이내 제자 ㄱ을 떠올립니다. 자신의 수업시간에 보여준 ㄱ의 소설과 독특한 면모. ‘나’는 ㄱ을 찾아 소소시로 향합니다. 웃으며 선인장의 가시를 이야기하는 ㄱ과 헤어지고 돌아온 ‘나’는 호숫가 외딴 집의 쓸쓸함에 서서히 침잠해갑니다. 이후 소설은 ㄱ, ㄴ, ㄷ의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어린 시절 오빠를 잃고 부모님마저 사고로 잃은 ㄱ은 비슷한 아픔을 품고 있는 남자1을 만나 결혼합니다. 하지만 결혼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고 혼자가 된 ㄱ은 소소의 자신의 옛집으로 돌아오지요. 그런 어느날 ㄱ은 낯선 남자를 보게 됩니다. 이웃집 외벽에서 하루종일 물구나무를 서는 그를 ㄱ은 자신의 집으로 들이는데요. 그는 ㄴ입니다. 전남편인 남자1과 정반대의 ㄴ. 그와의 일상이 어색하거나 불편하지도 않은 어느 날 ㄱ은 또 한 명의 낯선 이와 함께 하기 시작하는데요. 자신이 살 곳을 찾다가 ㄱ과 ㄴ이 마무는 집으로 스며들게 된 그녀는 ㄷ입니다. 저마다 가슴에 잊을 수 없는 상처를 품고 사는 그들의 생활이 시작되는 거지요.

 

 

두 명의 여자와 한 명의 남자, 단순히 이것만 보면 서로 엇갈린 사랑의 이야기가 펼쳐질 듯한데 그렇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서로가 서로의 性을 구태여 의식하려 하지 않아요. 서로에게 어떤 요구도 하지 않고 그저 덩어리져서 함께 살아갑니다. 태초의 인간이 두 몸이 붙은 것처럼 그들은 셋이 원래부터 하나인 듯 했습니다. 물이 흐르듯 지극히 자연스러운 형태라고 할까요? 하지만 어느날 ㄴ이 우물에 떨어져서 목숨을 잃으면서 완벽하게 조화로워 보였던 그들의 일상에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소소한 풍경>을 보는 내내 저자의 이름을 확인해야 했습니다. 정말 내가 아는 그 ‘박범신’의 작품이 맞나? 의문을 품었습니다. 기억 속의 박범신은 인간의 욕망과 어둠을 때론 기이할 정도로 깊게 파고 드는 화려하고도 역동적인, 선이 굵은 이야기를 자아낸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만난 박범신은 달랐어요. 물론 최근 몇 년간 그의 작품을 만나지 않아서 그렇게 느끼는지 모르겠지만. 세 명의 남녀가 함께 살아가면서 벌어지는 일상 속에서 드러나는 위험하고도 독특하고 기이한 사랑을 전하는 <소소한 풍경>. 왠지 불편하게 와 닿았습니다. 왜, 무엇 때문일지 알기 위해선 아무래도 그의 다른 이야기를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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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은 왜 바다로 갔을까? - 청소년, 인문학에 질문을 던지다 꿈결 청소년 교양서 시리즈 꿈의 비행 5
최재천 외 7인 지음 / 꿈결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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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엄마, 뽀로로! 여기 얘, 뽀로로야! 뽀로로 있으니까 이거 봐도 돼?”

며칠 전입니다. 설거지하랴 저녁 준비하랴 정신없는데 작은 아이가 제 책을 갖고 설레발을 치는 거예요. 내 책에 뽀로로는 무슨...쓸데없이 소리하지 말고 니 책 읽어! 하고 호통을 쳤는데요. 나중에 보니 아뿔싸! 표지에 정말 뽀로로가 있네요. 펭귄이면서 난데없이 튜브도 하나 차고....얘가 정체성의 혼란이 왔나? 싶어 쿡 웃음이 터져 나왔지만 금세 의문이 생겼습니다. 펭귄이 바다로 가는 건 당연한 건데 대체 왜 궁금한 거지?

 

 

살면서 우리는 무수히 많은 질문을 던집니다. 어렸을 때는 부모님에게, 조금씩 자라면서 친구와 선생님에게 질문을 하는데요. 즉각적으로 해답을 얻을 수 있는 질문이 있는가 하면 며칠, 몇 달, 혹은 영영 답을 구하지 못하는 질문도 있습니다. <펭귄은 왜 바다로 갔을까?>는 바로 그런 질문에 대한 책인데요. 질문자가 청소년이라는데 의미가 있습니다.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입시전쟁을 치르는 그들은 당연한 거라고 여기고 있던 것,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 왜 물어보는지 이유조차 알 수 없는 것들을 물어봅니다. 누구에게? 해답을 주거나 함께 고민해줄 수 있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질문의 주제는 모두 여덟 가지(환경, 역사, 고전문학, 사회, 과학, 동양철학, 문학, 예술)인데요. 하나의 주제 안에 여러 개의 질문이 곁들여 있습니다. 다소 황당하고 엉뚱한 질문도 있지만 해당 전문가(해당 분야 책을 집필한 저자)는 성실하게 답변해 주는데요. 그 내용이 어른인 제가 봐도 정말 재밌습니다.

 

 

제일 먼저 소개된 주제는 ‘환경’으로 책의 제목인 ‘펭귄은 왜 바다로 갔을까?’에 대해서인데요. 생태학과 어린이백과사전을 집필한 최형선님이 답변을 합니다. 극한의 환경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생물들도 그만큼 노력을 해야 한다면서 도도새가 왜 멸종했는지 그 이유를 차근차근 설명합니다. 너무 좋은 환경 속에서 살다보니 도도새는 자신이 하늘을 나는 새라는 것조차 잊을 만큼 나태해졌다고. 그에 비해 펭귄은 조류이면서도 하늘을 나는 대신 헤엄치는 기술을 발달시켰고 빨리 달릴 수 있도록 훈련해서 멸종되지 않고 살아남았다고 말입니다. 치타 역시 약점이 많았지만 자신의 장점인 달리기를 끊임없이 연마한 끝에 ‘달리기의 왕’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사춘기가 한창 외모에 관심을 가지는 시기여선지 ‘아름다움’에 대한 의문을 갖고 있었는데요. 김종갑님이 사춘기때 나타나는 몸의 변화를 비롯해서 아름다움이란 무엇이며 어떨 때 아름답다고 하는지 설명해주는데요. 아름다움은 단순히 시각적인 것뿐 아니라 내면적인 아름다움이 어떤 것보다 더 가치 있다고 강조합니다. ‘과학’ 분야에서는 과학자이면서 다양한 책을 집필한 최재천님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는데요. 자신이 과학자라는 것이 너무나 행복하다고 말문을 연 그는 타잔을 동경했던 어린 시절을 비롯해서 영장류 연구에 몰두했던 의미있는 경험, 인간과 유사한 삶을 살아간다는 개미의 놀라운 세계를 발견했을 때의 기쁨을 말하면서 어떤 일이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열심히 하라고 조언합니다.

 

길을 가다가도 수시로 멈춰서 사방을 손짓하며 “엄마, 이게 뭐야? 저건 뭐야?”하고 묻던 아이들이 어느새 자라서 청소년이 되었습니다. 키가 자란 만큼 품는 의문도 달라집니다.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이 궁금했던 어린 아이는 이제 자신이 알고 싶어집니다. 나는 누구인지 끊임없이 생각하고 한걸음 더 나아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게 되는데요. 책 속에서 답변을 해주신 여러 전문가가 매번 청소년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엇이 진실한 삶인지 몇 번이고 거듭해서 강조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겠지요.

 

인문학은 어렵다고 합니다. 아니, 인문학이 무엇이냐고 묻는 이들도 많은데요. 인문학이란 ‘인간이 이 세상에 대해 알아야 하고, 해야 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학문’이라고 합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 삶에 대해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질 줄 아는 청소년기가 어쩌면 인문학을 시작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가 아닐까 하는데요. <펭귄은 왜 바다로 갔을까?>를 비롯한 ‘꿈의 비행’시리즈가 좋은 길잡이가 될 거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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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와 하녀 -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마이너리티의 철학
고병권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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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와 하녀? 뭐냐? 이 애매한 조합은?’

내용을 예상할 수 없는 책 제목에 순간 당황했다. 뭘까? 이 책은? 물론 그 기분이 오래가진 않았다. 다름아닌 저자가 고병권, ‘고추장 아저씨(?)’인데 그게 뭐 대수야? 읽는 내내 무릎을 칠 게 뻔한데. 당혹감과 궁금증, 호기심, 기대감 같은 것들이 순식간에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서점에서 책 한 권을 들고 갖가지 표정으로 자문자답하는 내 모습. 모르긴 몰라도 아마 가관이었을 듯하다.

 

처음에 가졌던 궁금증은 싱거울 정도로 금방 풀렸다. ‘만물의 근원은 물(水)’이라고 주장했던 고대 철학자 탈레스. 그가 어느날 별을 보면서 걷다가 우물에 빠졌는데 그걸 본 하녀가 웃음을 터뜨리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탈레스는 하늘의 별을 보는 데는 열심이면서 발치 앞에 있는 것은 알지 못한다.” 이 일화에서 저자는 위대한 철학자와 재치만점의 하녀, 둘 중 누구의 손도 들어주지 않는다. 둘 모두 옳은 동시에 모두 틀렸다고 말한 저자는 ‘철학이 ’박식함‘에 있지 않고 ’일깨움‘에 있다‘고 강조한다.

 

책에는 제목에서 ‘하녀’로 지칭하는 일반 서민, 사회의 관심에서 벗어난 마이너리티의 일상과 그 속에서 마주치는 철학적 사유, 여러 사건 사고를 통해 어떤 것들을 느낄 수 있는지 하나하나 짚고 있다. 너무 힘들고 고단해서, 도저히 희망이 보이지 않아서 운명의 줄을 놓아버리는 이들을 이야기하면서 ‘있다’는 것과 ‘존재’, ‘선물’의 의미를 되새기고 한때 혼란스런 시기를 맞아 도피하듯 미국으로 향한 도착한 저자는 고요함 속의 소란스러움을 깨달았다고 털어놓는다. 또 인류의 역사, 진보를 프랑스 혁명이 당시 독일인의 마음에 일으킨 변화를 통해 전해주고 부당한 취급을 당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와 회사의 관계 속에서 노동자의 사회적 위치를 가늠해 보면서 좋은 사회란 어떤 사회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공부하는 이들은 시끄러운 곳을 피해 조용한 곳을 찾지만, 아마도 우리가 공부하는 목적은 시끄러운 곳에서 고요를 얻는 것에 있을 것이다. 세상과 거리 두기를 할 것이 아니라 세상 안에서 거리두기를 해야 하며, 세상에서 벗어날 것이 아니라 세상을 벗어나게 하는 것이 공부일 것이다. - (머리에 타는 불을 끄듯 공부하라. 41쪽)

 

한마디로 <철학자와 하녀>는 ‘현장 인문학자’로 통하는 저자가 불법이주자, 비정규직 노동자, 재소자, 장애인, 성매매 여성 등을 만나 이야기하고 강연하고 끊임없이 고민한 것들을 글로 쓰고 그것을 모아 출간한 것이다. 그런데 책을 읽다보면 자꾸 혼동이 생긴다. 저자가 예전에 썼던 글이 분명한데 이상하게도 그걸 느낄 수가 없다. 본문 중에 언급되는 사건, 사고들이 지난 과거의 이야기가 아닌 현재의 일, 바로 오늘 일어난 일처럼 와 닿는다. 수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참혹한 사고에 지켜보는 사람들이 모두 자기 일처럼 고통을 함께 나누고 위로하려는 행위에 대해 청와대 대변인이 ‘순수 유가족’ 운운하는 것을 보면 국가가 무엇인지 의문이 생긴다.

 

이해당사자도 아닌 사람들이 어떤 불이익조차 감수하고 나서게 되는 순간이 있다. 아니 행동에 직접 나서지 않더라도 맘속에서 어떤 변화를 겪게 되는 순간이 있다. 내 일이 아니지만 그것을 지켜보며 맘속에 공감이 일어날 때, 우리는 ‘개인’이 아니라 ‘인류’를 느끼는 것이다. - (구경꾼 맘속에서 일어난 혁명. 74쪽)

 

소외받는 사람들을 수없이 만나고 대화했던 저자는 끝에 이르러 다시 ‘말’에 대해 이야기한다. 책을 읽고 강연을 하면서 ‘좋은 글’ ‘좋은 말씀’을 접하지만 그 ‘좋은 글’ ‘좋은 말씀’이 더 이상 발전되지 못하고 거기서 그치고 만다며 한탄한다. 좋은 말을 내 것이 되게 하려면 자기만의 방식으로 체험을 하면서 자신의 목소리로 다시 한 번 들어야하는데 그렇지 못하다고. 행동하지 않는 양심, 철학을 꼬집은 게 아닐까.

 

“높이 오를 생각이라면, 그대들 자신의 발로 오르도록 하라!.” 차라투스트라가 자신을 구원해달라며 찾아온 이들에게 던진 말이다. 확실히 그렇다. 내 발로 오르지 않은 산은 풍문과 구경거리로만 존재하는 산이다. 그러니 산에 오르려면 스스로 오르는 수밖에 없다. - (에필로그. 옳은 말은 옳은 말일 뿐이다. 2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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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이야기 6
모리 카오루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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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실망시키지 않는 만화. 꼬마신랑 카르르크가 부쩍 자랐고 아미르는 여전히 아름답다. 아미르의 친정인 하르갈 부족은 누마지 일족으로부터 쫓겨난 이후 바단 부족과 손을 잡고 아미르가 살고 있는 부족을 공격하는데...어서 7권이 출간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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