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함이 번지는 곳 벨기에 In the Blue 2
백승선 / 쉼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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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봄의 끝자락에서 크로아티아를 만났습니다. <행복이 번지는 곳 크로아티아>를 통해 크로아티아의 오렌지빛 지붕과 성벽을 둘러싼 맑은 물빛 바다, 초록의 신비로운 호수에 매료되어 흠뻑 취했던 기억이 납니다. 언제든 여행하고 싶은 곳에 ‘크로아티아’를 새기는 계기가 되었는데요. 크로아티아의 이국적인 풍경으로 제게 행복을 선물했던 백승선. 변혜정이 이번에 <달콤함이 번지는 곳 벨기에>를 내놓았습니다. 수채화풍의 표지에서 느껴지는 분위기와 제목이 전편과 흡사합니다. 1편과 비슷한 2편이라 식상하지 않을까 싶지만 그보다 뭔가 색다르리라는 기분 좋은 예감이 든다고 할까요. ‘TO 오늘도 여행을 꿈꾸는 당신’이란 항공우편(?)을 손에 들고 있자니 두근두근 가슴이 뜀박질을 합니다.




그동안 ‘벨기에’하면 베네룩스 3국(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의 하나로만 알고 있었는데, 책장을 넘기자마자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왕국’이란 것과 총 면적이 겨우 우리나라의 경상도 정도라니! 게다가 제가 어린 시절 즐겨봤던 ‘스머프’를 비롯해 풍차 때문에 네덜란드 만화인 줄 알았던 ‘플란다스의 개’ ‘틴틴의 모험’처럼 유명한 만화가 만들어진 곳일 뿐 아니라 르네 마그리트와 루벤스, 오드리 햅번이 태어난 나라라고 하네요.




중세의 찬란한 역사와 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한 나라, 벨기에는 예술적인 가치가 높은 중세건축물이 많아 ‘유럽의 보석’이라고도 불린다고 하는데요. 책에서 저자는 브뤼셀, 안트베르펜, 브뤼헤, 겐트에 대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먼저 브뤼셀은 도시 전체가 볼거리가 가득해서 ‘작은 파리’라고 불리는데요. 빅토르 위고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이라고 했던 ‘그랑 플라스’라는 넓고 아늑한 광장을 통해 이른 곳은 바로 초콜릿! 여러 가지 모양과 빛깔의 초콜릿을 보니 입안에 침이 가득 고이구요. 스머프와 틴틴이란 만화주인공들의 모습에서 어린 시절의 즐거움을 다시금 되살리고 나니 그 유명한 ‘오줌싸개 소년 동상’이 저를 반겨주네요. 안트베르펜은 17세기 최대의 화가 루벤스가 활동한 곳이자 ‘플란다스의 개’의 배경이 되었던 도시인데요. 거리 곳곳에서 ‘손’의 조형물을 만날 수 있어 ‘손’의 도시로도 유명하다고 합니다. 또 성 노르트담 성당에는 ‘플란다스의 개’ 네로가 그렇게도 보고 싶어했던 [성모승천]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브뤼헤는 운하의 도시란 표현 그대로 중세의 건물을 따라 이어진 수로와 푸르고 아름다운 호수가 인상적입니다. 마지막 겐트는 5년마다 꽃 박람회가 열리는 ‘꽃의 도시’이자 자전거가 많아 ‘자전거의 도시’라고도 알려져 있다고 하는데요. 천 년을 넘게 이어져온 시간의 흐름을 자전거를 타고 둘러보고 싶다는 충동이 일더군요.




레고블럭으로 만든 장난감처럼 계단모양의 지붕을 한 아기자기하고 예쁜 건물들, 수로에 거리의 집들이 그대로 비칠 만큼 투명하고 맑은 도시로 이뤄진 맑고 아름다운 나라 벨기에. 사진으로 만나는 풍경임에도 왠지 달콤한 와플과 초콜릿 향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낯설지만 더 이상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나라 벨기에에 꼭 가고 싶습니다. 꽃으로 이뤄진 화려한 카펫. 과연 언제쯤 보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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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의 집
수전나 클라크 지음, 서동춘 옮김 / 북노마드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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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만 그런가요?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어갈수록 단순한 건망증인지 치매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일들이 생기곤 합니다. 유명배우의 이름이 헛갈리는가하면 외출할 때마다 열쇠며 지갑, 휴대폰을 찾아 온 집안을 찾아 헤맵니다. 얼마전에도 그랬답니다. ‘모로코’란 나라이름에 가장 먼저 떠올린 게 뭔지 아세요? 그레이스 켈리였어요. 아름다운 배우에서 한 나라의 왕비가 된 환상적이고 꿈같은 일화가 생각나서 <페스의 집>을 만날 때 은근히 기대를 했답니다. 모로코의 이야기가 담겼으니 당연히 그 얘기도 수록됐으려니...했는데, 어머나 이게 웬일입니까. 세상에 모‘나’코와 모‘로’코를 그만 착각했지 뭐예요? 글자는 한 자 밖에 차이가 나지 않지만 하나는 유럽에, 하나는 아프리카에 속해있는 나라인데 그런 엄청난 실수를 하다니...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답니다. 허나, 마냥 의기소침해 있을 순 없지요. 이번 참에 정식으로 모로코와 만나면 되니까요. 그죠?




모로코. 아프리카의 북서단에 위치한 이 나라는 제가 무지해서 그렇지 많이 알려진 나라더군요. 그 유명한 잉그리드 버그만과 험프리 보가트 주연의 영화 <카사블랑카>가 바로 모로코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고 하네요. 몰랐던 사실입니다.




‘중세의 도시’ 페스에서 ‘제 2의 인생’을 꿈꾸는 부부 저널리스트란 표지의 문구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호주의 신문사와 방송국에서 일하는 수전나 클라크와 샌디 매커천이 모로코의 페스에서 제2의 삶을 꿈꾸는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수전나와 샌디에게 모로코의 첫 번째 여행은 배탈과 바가지로 그리 유쾌하지 않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들 부부는 여느 나라보다 깊은 인상을 갖게 되는데요. 그때 그들의 마음을 송두리째 뺏은 것이 바로 페스였습니다. 모로코의 문화와 정신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성벽도시 페스. 미로처럼 끝없이 이어질듯한 좁은 골목길과 하루 5번 첨탑에 올라 기도시간을 알리는 무에진의 구성진 가락이 도시 전체에 울려 퍼지는 곳, 페스.  여행을 마치고 호주로 돌아온 수전나와 샌디는 모든 것이 신비롭고 아름다운  이국적인 풍취로 가득한 페스를 잊지 못합니다. 첫 눈에 반한 연인을 그리워하듯 수전나는 하루에도 수시로 페스를 그리워합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생각. ‘모로코에 집을 한 채 사면 어떨까?’ 샌디는 아내의 이런 터무니없는 의견에 “페스에서 한번 찾아보지 그래?”라며 응원을 보냅니다. 호주에서 비행기로 하루종일 날아가야 도착하는 곳, 프랑스어 몇 마디 외엔 제대로 된 의사소통조차 할 수 없지만 그들의 페스행을 막진 못합니다.




가지 말아야 할 이유는 이처럼 끝도 없었다. 하지만 모로코, 그 중에서도 페스에 집을 구해 살아야겠다는 생각은 좀처럼 머릿속에서 떠날 줄 몰랐다. 그리고 우리는 사고를 쳤다. - 13쪽. 




이후 책은 그들이 페스에 집을 마련해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마음에 드는 집을 어렵사리 발견한 그들은 자신들의 집에 ‘리아드 자니’란 이름을 붙입니다. 작은 정원과 분수대를 갖춘 ‘리아드’식의 집은 바닥에 색색의 타일로 퍼즐이나 기하학적인 문양을 모자이크로 정교하게 만든 ‘젤리즈’를 비롯해 전체적인 원형은 무척 아름다웠습니다. 하지만 무슬림 달력으로 1292, 서양달력으론 1875년 이후로 보수하지 않은 집이어서 여기저기 많이 훼손된 상태였습니다. 천장은 구멍이 뚫리기 일보직전이었고 하수구 시설은 그야말로 형편없습니다. 아랍식 전통가옥의 형태를 고스란히 유지시키면서 수도며 배관, 전기 시설처럼 생활에도 편리하도록 복원, 수리를 거치는 과정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습니다. 거기다 인부들은 어찌나 느릿느릿한지, 걸핏하면 꾀부리고 추가비용을 요구하는 그들에게 저자는 적당히 응대하고 부추기면서 ‘리아드 자니’는 조금씩 원래의 모습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결국 해내고 말지요.




인샬라! 신의 뜻대로. 책을 읽다보면 곳곳에서 저절로 이런 말이 터져 나옵니다. 낯선 땅에서 두 번째의 삶은 많은 사람들이 꿈꿉니다. 하지만 막상 꿈을 실현할 단계에 이르러 여러 가지 문제점에 맞닥트리면 많은 이들이 포기하고 마는데요. 수전나와 샌디는 집을 복원하는 것에만 치우지지 않습니다. 페스에서 살아가는 위해 그들은 모로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일상을, 결혼이나 할례, 라마단 같은 의식이 치러지는 모습을 지켜봅니다. 자신과 그들의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그 다름을, 오래도록 이어져온 전통의 가치를 유지하고 지켜나가려는 모습은 인상적이었습니다.




나는 페스의 건물들을 사랑한다. 그곳에서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도 사랑한다. 나무 한 토막, 벽돌 하나하나가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지고, 그 위에 손으로 무늬가 새겨지고 세공되는 곳, 인간의 손길로 집을 짓는 그 땅을 영원히 사랑할 것이다. - 387쪽.




지브롤터 해협을 사이에 두고 유럽과 13킬로미터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모로코. 그리고 세상에서 유일하게 14세기처럼 살아갈 수 있는 곳, 페스. 이 책을 통해 처음 만났지만 그곳의 신비로움이 왠지 제게도 전해지는 듯합니다. 다만 책에는 모로코와 페스, 저자의 집을 복원하는 과정이 담긴 사진을 중간중간 수록해놓고 있는데요. 몇 군데에 모아둔 사진을 본문의 내용과 관계된 대목에 실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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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깐한 독서본능 - 책 읽기 고수 '파란여우'의 종횡무진 독서기
윤미화 지음 / 21세기북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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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의 독서기록이나 서평집을 볼 때마다 의식하지 않아도 내가 읽은 책이 몇 권이나 될지 꼽아보게 된다. 상대방과 나, 저자와 나 사이에 공통점이 얼마나 되는지 알고 싶어선데, 저자와 겹치는 책이 한 권도 없을 때부터 다섯 손가락도 안되는 적도 있었다. 해서 <깐깐한 독서본능>을 펼치면서 이번엔 과연 몇 권일까. 세어봤다. 그랬더니 자그마치 10권! 양 손 열 손가락을 꽉 채웠다. 이얏호! 만세!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사실 이 책의 저자는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도 인기 블로거인 파란여우님이다. 그리고 내게 이웃(?)이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내 맘대로 이웃을 삼아버린 거라고 할까? 알라딘에 초라한 서재를 꾸리고 나서 제일 먼저 한 일이 흥미롭고 좋은 글이 많은 서재를 언제든 내 맘대로 들락거릴 수 있도록 즐겨찾기로 등록해놓는 거였는데, 그런 서재의 주인장 중에 바로 파란여우님이 계시다. 이 책과 나의 독서이력이 겹쳐지는 합일점이 많은 건 아마 그 때문이리라. 그럼 이미 내용을 다 알텐데 뭐하러 또 다시 읽느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처음엔 나도 그 점을 염려했다. 그런데 책을 받고 나니 내가 미처 챙겨보지 못한 글이 얼마나 많은지...예전에 봤던 글, 마우스로 휙 하니 스쳐지나가며 봤던 글을 모니터가 아닌 책으로 만나니 기분이 새로웠다.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는 사람 중엔 어느 특정한 분야의 책만을 고집하는 걸 자주 보게 되는데, 저자는 그 반대였다. 자신이 ‘종잡을 수 없는 독서가’라고 밝혔듯이 한국문학, 외국문학, 고전․해석, 인문․사회, 인물․평전, 환경․생패, 문화․예술, 역사․기행, 만화․아동 이렇게 다양한 분야의 책을 골고루 만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제목에 나와있듯 저자는 자신의 독서를 ‘깐깐한 독서’라고 말한다. 한 권의 책을 읽더라도 요모조모 따져보고 뒤집어 보고 다시 생각해보는 책읽기. 그걸 가능하게 한 것이 바로 서평공책이었다. 책을 읽을 때면 항상 서평공책을 준비해놓고 틈틈이 기록하면서 책과 더 가깝게, 더 자세히 알 수 있었다고 하는데 나도 한때 책 읽으며 공책에 기록했던 적이 있어서 아는데 웬만큼 부지런하지 않으면 못하는 일이다. 그래설까. 이 책으로 다시 만난 파란여우님의 글은 수박겉핥기 식의 독서가 아니라 한 권의 책이라도 저자 자신만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그 책을 통해 어떤 걸 생각해보고 느낄 수 있는지, 인상깊게 봤던 점이나 아쉬운 점은 무엇인지 세세하게 꼽고 있었다.




또 한 분야의 책소개가 끝나면 ‘파란여우가 생각하는 책’이라든가 ‘파란여우의 책을 내 것으로 만드는 서평쓰기’, ‘파란여우가 좋아하는 국내도서’. ‘국외도서’, ‘국내작가’.‘국외작가’를 수록해놓아서 흥미롭기도 하고 내가 안 읽었거나 모르는 책, 작가에 관한 대목은 포스트잇으로 표시를 해두기도 했다. 특히 내가 취약한 고전․해석, 인물․평전, 문화․예술 분야는 언제든 찾아볼 수 있도록 노트에 메모했다.




5년간 천 권의 책을 읽었다는 저자의 책을 놓으며 나의 책읽기를 돌아보니 지난 한 해 200권이 넘는 책을 읽었다. 단순히 책의 수만을 따지면 적지 않은, 많은 책이다. 이런 페이스를 4년 더 유지하면 저자처럼 천 권을 달성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리 좋은 생각이 아닌 듯하다. 당장 작년의 책읽기만 보더라도 그 중에 정말 내 것으로 만든 책은 얼마나 될까. 저자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때론 그에 반박할 수 있도록 깊이 읽은 책은 몇 권이나 될까...의문이 든다. 아마 형편없겠지. 그렇다고 여기서 갑자기 우울해지거나 책읽기를 포기할 순 없다. 지금이야 비록 어중이 떠중이 독서가에 불과하지만 좀 더 많이 생각하고 좀 더 깊이 고민하다보면 언젠가 나도 책읽기의 고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저자도 말하고 있지 않은가. 생각하고 움직이기 위해 책을  연장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가능한 한 책에 많이 ‘찝적’대라고. 실로 확실한 표현이다. 책이여. 어서 오라. 이 내가 사정없이 찝적대주겠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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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맨스 랜드 - 청춘이 머무는 곳
에이단 체임버스 지음, 고정아 옮김 / 생각과느낌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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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광장을 가로질러 자전거를 끌고 가던 이가 고개를 들어 쳐다본 하늘. 거기, 맑고 푸른 하늘에 솜털 같은 흰구름이 흘러간다. 평화롭고 고요한 풍경이다. 하지만 표지 하나를 젖히니 분위기가 달라진다. 주변 건물이나 자전거를 끌고 가던 인물은 같지만 어두운 잿빛의 세계가 펼쳐져있다. 그리고 하늘의 여기저기에서 무리지어 내려오는 낙하산들. 순식간에 밀려든 긴장감으로 심장이 세차게 고동치기 시작한다. 이 불안감은 대체 어디서 비롯된 걸까.




<내 무덤에서 춤을 추어라>로 인상적인 첫만남을 가진 작가 에이단 체임버스. 그가 새로운 이야기를 들고 나타났다. ‘(두 국가・적군 사이의, 어느 측에도 속하지 않는) 중간[무인] 지대’란 의미를 지닌 <노 맨스 랜드>. 전작에서처럼 제목만으론 어떤 내용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청춘이 머무는 곳’이란 부제를 통해 어렴풋이나마 젊은 청춘들의 이야기겠구나 짐작할 뿐.




무슨 이유에선지 알 수 없지만 네덜란드의 한 광장에서 방황하는 한 청년이 있다. 그의 이름은 제이콥 토드. 그는 자신과 같은 이름의 할아버지를 기념하는 행사에 할머니 대신 참가하기 위해 네덜란드를 찾는다. 자신의 할아버지가 2차 대전 당시 폭발로 인해 심한 부상을 입고 죽음의 문턱에 이르렀을 때 그를 보살펴준 이의 가족을 찾아서. 그런데 그 가족에게서 놀라운 얘기를 듣는다. 할아버지를 보살펴준 생명의 은인인 헤르트라위 할머니가 위암이며 안락사를 택했다는 것이다. 9일 후에. 




1944년, 당시 십대소녀였던 헤르트라위. 그녀는 독일군의 점령에서 막 벗어났을 때 자신의 집을 찾은 제이콥(할아버지)이 부상을 입고 나타나자 그의 상처를 치료해주고 건강을 회복할 수 있도록 정성껏 간호한다. 서서히 건강을 되찾는 제이콥, 그에게서 사랑을 느끼는 헤르트라위. 둘은 어느새 깊이 사랑하는 연인이 되고 미래를 약속하지만 어느날 갑자기 제이콥이 죽음을 맞자 심한 충격을 받고 마는데...




이야기는 두 가지의 시점(時點)으로 진행된다. 제이콥이 현재의 이야기를, 헤르트라위가 2차 대전이 막바지로 접어들던 1944년을. 두 사람은 50년이란 시간의 양 끝에서 서로를 마주하고 대화(회고록)하며 전쟁과 평화, 사랑과 이별, 삶과 죽음이 무엇인지 그로 인해 인생이 어떤 변화를 맞이하는지 보여준다. 거기에 저자의 전작에서 그랬던 것처럼 동성애를 비롯해 가족간의 불화, 안락사 같은 문제를 더하면서 독자들에게 생각거리를 안겨준다.




책에는 <안네 프랑크>에 관한 대목이 자주 등장한다. 독일군의 눈을 피해 숨어있으면서도 일기를 적어나간 안네에게 매료된 제이콥. 그는 안네의 흔적을 느끼기 위해 그녀가 숨어지내던 집을 찾기도 하는데...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이 책을 읽고 얼마후 뜻밖의 소식을 접했다. 안네 프랑크 가족을 나치로부터 숨겨줬고, 그들이 나치에 잡혀간 후 안네의 일기를 모아 보관해 출판될 수 있게 한 네덜란드인이 며칠전(1월 11일) 세상을 떠났다는 것. 왠지 모르게 가슴이 저려왔다. 지금까지 알지도 만나지도 못한 사람이지만 죽음은 언제나 감당하기 어렵다. 두 명의 제이콥과 헤르트라위, 그리고 안네 프랑크. 그들의 청춘이 머물렀던 곳에서 내 마음이 한동안 헤매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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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처 몰랐네 그대가 나였다는 것을 - 무위당 장일순 잠언집
김익록 엮음 / 시골생활(도솔)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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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당 장일순 선생을 처음 만난 건 지인의 책장에서였습니다. <무위당 장일순의 노자이야기>라는 두툼한 책을 봤습니다. 동양사상인 노자철학에 대해 선생과 이현주 목사의 대담으로 이뤄진 책으로 노자철학을 알지 못하는 저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도록 쉽게 설명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곤 잊고 있었어요. <나는 미처 몰랐네 그대가 나였다는 것을>을 만나기 전까지 말이지요.




그러다 의외의 사실을 알게 됐답니다. 제가 읽던 책을 큰아이가 보더니 “엄마, 나 이 사람 알아”하는 겁니다. 저도 만난 적 없는 15년 전에 돌아가신 분을 이제 10살인 아이가 알다니. 너무 뜬금없는 소리라 자세히 물었더니 제가 예전에 사준 책 중에 무위당 장일순 선생의 인물전이 있다는 거예요. 그리곤 그 책을 제게 보여주면서 하는 말이 “엄마도 이 사람 책 있는데!” 이러지 뭡니까. “어? 아닌데, 정말?” 당황하는 제게 다시 큰아이는 책 한 권을 내밀더군요. 장일순 선생의 그림과 일화가 담긴 <좁쌀 한 알>이라는 책을요. 자기 책이랑 제목이 같아서 유심히 봤다고 하는데요. 그제야 생각이 나네요. 지인의 책장에서 봤던 책이 생각나서 그 분에 관한 책을 구입했던 걸.




<나는 미처 몰랐네 그대가 나였다는 것을> 이 책은 무위당 장일순 선생께서 생전에 펼쳤던 강연과 인터뷰 내용을 선생의 그림과 함께 엮은 잠언집입니다. ‘둑방길’, ‘서화전’, ‘무위당 선생의 집’, ‘겨울나무 아래서’, ‘원주카톨릭센터 사무실에서’, ‘할아버지의 해월’, ‘골목길’, ‘주교관에서’, ‘한살림’, ‘감옥이 학교’ 이렇게 10개로 나눈 다음 그 아래에 짧은 글과 그림을 함께 수록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이 한 페이지의 절반도 채 안되는 글이지만 그 속엔 선생께서 우리에게 전하려고 하는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세상에 태어난다는 사실은 대단한 사건 중에서도 대단한 경사라며 말씀을 시작한 선생은 추운 겨울날 저잣거리에 군고무마를 파는 이의 서툰 글씨가 ‘진짜’라며 아무리 절박한 상황이라도 정성을 다하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걸 강조하고 자신이 최고라며 거들먹거리기보다 세상에 가장 하잘 것 없는 게 ‘조 한 알’이라 여기고 마음을 추스르라며 충고합니다. 그런가하면 지구의 모든 자연이 암을 앓고 있는데 자연의 일부인 자신이 아픈 건 뭔가 큰 것을 자신에게 가르쳐주기 위해서라면서 천지간에 가장 고약한 게 바로 사람들이 모여서 맨날 싸움하는 거라며 따끔한 일침을 가하십니다. 또 교육에 대해 말씀하시길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가 나뉘고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배우고 가르치는 관계’라며 ‘교육의 본질은 인간다운 삶을 함께 배우고 느끼는...상호 공유 작용’이란 걸 짚어줍니다.




책에는 선생의 글씨와 그림이 수록되어 있는데요. 그 중에서도 사람의 얼굴을 닮은 난초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알알이 꽉 찬 벼가 고개를 숙이듯 살포시 고개를 숙인 난초의 모양새가 마치 명상에 빠진 사람처럼 보이더군요. 붓으로 그냥 휙휙 그린 단순한 그림이지만 그만의 아름다움이 느껴졌습니다. 길가에 돋아난 풀 한 포기, 작은 벌레 한 마리까지 사랑하여 사람들에게 그들의 소중함을 일깨우기 위해 몸소 앞서 실천하신 무위당 장일순 선생. 따스한 온기가 느껴지는 선생의 글과 그림이 있기에 예년과 다른 이 추위도 견뎌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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