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맨스 랜드 - 청춘이 머무는 곳
에이단 체임버스 지음, 고정아 옮김 / 생각과느낌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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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광장을 가로질러 자전거를 끌고 가던 이가 고개를 들어 쳐다본 하늘. 거기, 맑고 푸른 하늘에 솜털 같은 흰구름이 흘러간다. 평화롭고 고요한 풍경이다. 하지만 표지 하나를 젖히니 분위기가 달라진다. 주변 건물이나 자전거를 끌고 가던 인물은 같지만 어두운 잿빛의 세계가 펼쳐져있다. 그리고 하늘의 여기저기에서 무리지어 내려오는 낙하산들. 순식간에 밀려든 긴장감으로 심장이 세차게 고동치기 시작한다. 이 불안감은 대체 어디서 비롯된 걸까.




<내 무덤에서 춤을 추어라>로 인상적인 첫만남을 가진 작가 에이단 체임버스. 그가 새로운 이야기를 들고 나타났다. ‘(두 국가・적군 사이의, 어느 측에도 속하지 않는) 중간[무인] 지대’란 의미를 지닌 <노 맨스 랜드>. 전작에서처럼 제목만으론 어떤 내용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청춘이 머무는 곳’이란 부제를 통해 어렴풋이나마 젊은 청춘들의 이야기겠구나 짐작할 뿐.




무슨 이유에선지 알 수 없지만 네덜란드의 한 광장에서 방황하는 한 청년이 있다. 그의 이름은 제이콥 토드. 그는 자신과 같은 이름의 할아버지를 기념하는 행사에 할머니 대신 참가하기 위해 네덜란드를 찾는다. 자신의 할아버지가 2차 대전 당시 폭발로 인해 심한 부상을 입고 죽음의 문턱에 이르렀을 때 그를 보살펴준 이의 가족을 찾아서. 그런데 그 가족에게서 놀라운 얘기를 듣는다. 할아버지를 보살펴준 생명의 은인인 헤르트라위 할머니가 위암이며 안락사를 택했다는 것이다. 9일 후에. 




1944년, 당시 십대소녀였던 헤르트라위. 그녀는 독일군의 점령에서 막 벗어났을 때 자신의 집을 찾은 제이콥(할아버지)이 부상을 입고 나타나자 그의 상처를 치료해주고 건강을 회복할 수 있도록 정성껏 간호한다. 서서히 건강을 되찾는 제이콥, 그에게서 사랑을 느끼는 헤르트라위. 둘은 어느새 깊이 사랑하는 연인이 되고 미래를 약속하지만 어느날 갑자기 제이콥이 죽음을 맞자 심한 충격을 받고 마는데...




이야기는 두 가지의 시점(時點)으로 진행된다. 제이콥이 현재의 이야기를, 헤르트라위가 2차 대전이 막바지로 접어들던 1944년을. 두 사람은 50년이란 시간의 양 끝에서 서로를 마주하고 대화(회고록)하며 전쟁과 평화, 사랑과 이별, 삶과 죽음이 무엇인지 그로 인해 인생이 어떤 변화를 맞이하는지 보여준다. 거기에 저자의 전작에서 그랬던 것처럼 동성애를 비롯해 가족간의 불화, 안락사 같은 문제를 더하면서 독자들에게 생각거리를 안겨준다.




책에는 <안네 프랑크>에 관한 대목이 자주 등장한다. 독일군의 눈을 피해 숨어있으면서도 일기를 적어나간 안네에게 매료된 제이콥. 그는 안네의 흔적을 느끼기 위해 그녀가 숨어지내던 집을 찾기도 하는데...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이 책을 읽고 얼마후 뜻밖의 소식을 접했다. 안네 프랑크 가족을 나치로부터 숨겨줬고, 그들이 나치에 잡혀간 후 안네의 일기를 모아 보관해 출판될 수 있게 한 네덜란드인이 며칠전(1월 11일) 세상을 떠났다는 것. 왠지 모르게 가슴이 저려왔다. 지금까지 알지도 만나지도 못한 사람이지만 죽음은 언제나 감당하기 어렵다. 두 명의 제이콥과 헤르트라위, 그리고 안네 프랑크. 그들의 청춘이 머물렀던 곳에서 내 마음이 한동안 헤매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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