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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두 번 진행되길 원한다면 - 감각의 독서가 정혜윤의 황홀한 고전 읽기
정혜윤 지음 / 민음사 / 2010년 3월
평점 :
품절
지난 가을, <런던을 속삭여줄게>를 통해 정혜윤을 처음 만났다. 이름난 독서광이란 것, 자신이 읽었던 책의 기록을 감각적인 글로 남겼다는 것만으로도 저자에 대한 막연한 부러움과 동경을 갖고 있었다. 런던의 유명한 명소를 직접 둘러보며 그곳에서 느껴지는 감동과 이야기를 책을 통해 전하는 저자의 말솜씨에 빠져 한동안 런던의 거리를 거닐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아쉬운 마음에 그녀가 속삭임으로 전하던 책을 읽어보려 했지만 그러지 못하고 있던 차에 또 한권의 책을 마주하게 됐다. '감각의 독서가 정혜윤의 황홀한 고전 읽기‘ <세계가 두 번 진행되길 원한다면>....
‘세계가 두 번 진행되길 원한다면’...처음엔 무슨 의미일까...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는 뜻인가? 궁금했다. 표지를 넘기고 오래진 않아 궁금증은 풀렸다. 책 날개에서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풀어놓는다. 고전이 어떠한 것인지, 어떤 의미를 품고 있으며, 왜 고전을 위대하다고 하는지, 그리고 ‘세계가 두 번 진행되기를 원한다면...미래는 좀 다르기를 원한다면 당연히 뭔가 읽고 써야 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빼놓지 않고 언젠가는 읽어야 할 책이 고전’(11쪽)이라고. 그렇구나. 순간 고개가 끄덕여졌다. 지금보다 좀 더 나은 미래를 가져오는 고전과의 매혹적인 만남을 위해 저자의 곁에 바싹 다가앉는 기분으로 책을 읽었다. 또다시 그녀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였다.
나에게 있어서 고전은 사건이 위대한 책이 아니라 그 사건을 마주친 인간들의 반응이 위대한 책이다. (9~10쪽.)
위대한 개츠비, 변신, 폭풍의 언덕,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골짜기의 백합, 마담 보바리,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1984,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설국, 순수의 시대, 주홍 글자, 거미여인의 키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위대한 유산. 저자는 총 열 다섯 편의 고전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책에 관한 책을 만날 때마다 하는 행동...차례를 보고 내가 읽은 건 몇 권이나 될까...세어봤다. 결과는 참담했다. 저자와 내가 겹치는 부분은 겨우 3/1정도... 읽다가 포기해버린 책도 몇 권 보였다. 발자크의 ‘골짜기의 백합’은 이 책을 통해 처음 만난 작품이었다.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이래서야 어디 저자의 얘기를 제대로 이해할 수나 있을까...한숨이 나왔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나 역시 세계가 두 번 진행되길 원하기에. 내가 읽었던 작품부터 한 편씩 만나기 시작했다. ‘위대한 개츠비’에서 개츠비의 욕망과 꿈을 만나면서 그가 바랬던 삶은 환상에서나 존재하는 덧없는 것이었음을, 그래서 허무함이 가득했던 기억이 났고 ‘폭풍의 언덕’의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의 위험하고도 강렬한 사랑에 몸살을 앓았던 학창시절이 떠올랐다. 또 ‘1984’에서 서술한 세계가 현재의 모습과 너무나 흡사해서 또다시 놀랐으며 ‘젊은 베르테리의 슬픔’에서 이룰 수 없는 여인과의 사랑에 고뇌하는 베르테르의 고뇌 속에 서 지금의 나 역시 끊임없이 뭔가를 추구하고 원하지만 결국 이루지 못하고 좌절하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이 책을 매일밤 아이들을 자리에 눕히고 그 곁에서 조금씩 소리내어 읽었다. 책의 정해진 순서를 따르지 않고 내 마음이 끌리는 것부터 하나씩 하나씩 읽어가자니 저자처럼 황홀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푸근하고 왠지 차분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다만 저자의 문장이 때론 너무 길어서 저자가 건네는 이야기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해 두어번 연거푸 읽기도 했는데 특히 내가 읽지 못한 고전에선 더욱 헤매고 더듬거리는...고전을 겪기도 했다.
아직까지 만나지 못했던 고전을 읽는 것만큼 예전에 읽었던 고전을 다시 만나는 과정이 중요하고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십대 소녀의 감성과 중년 여성의 감성이 다르듯 같은 작품을 읽더라도 내 감정과 마음이 닿는 항상 같을 수는 없다. 평범한 일상이라 하더라도 어제와 오늘이 다르듯 오늘과 내일도 같을 수 없는 것처럼. 지금보다 좀 더 깊이, 좀 더 부드럽게, 넓게 섬세하게 생각하고 내면을 들여다봐야겠다. 그러면 내게도 두 번째의 세계가 찾아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