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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비밀
톰 녹스 지음, 서대경 옮김 / 레드박스 / 2010년 3월
평점 :
품절
나를 포함해, 인간이란 참으로 이상하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은밀한 것.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르거나 밝혀지지 않은 것, 알리지 말아야 할 비밀(祕密)에 대해 관심이 많다. 아니, 오히려 좋아하는 것 같다. 다른 사람이 모르는 뭔가를 알아냈다는 것에 쾌감을 느끼는 것 같다. ‘비밀’이란 단어를 보면 왠지 속에 숨은 뭔가를 캐내고 싶어진다. <창세기 비밀>이란 책에 선뜻 손이 갔던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종교가 불교인지라 ‘창세기’에 주저했을 법한데도 뒤에 붙은 ‘비밀’이란 단어, ‘창세기에 숨겨진 무서운 진실을 파헤치다’란 부제가 호기심을 자극했다.
대체 뭘까? 창세기의 비밀이란? 성경을 읽어본 적도 없을 뿐더러 창세기가 뭔지 모른 채로 550여 쪽에 이르는 두툼한 책을 읽어갔다. 고고학에 관심이 많으니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거라 여기고. 터키와 영국, 아일랜드를 오가며 벌어지는 기괴하고 잔인하며 경악을 금치 못할 사건들. 그 속에 숨은 비밀을 캐내기 위해, 자그마한 단서 하나라도 놓칠세라 눈을 부릅뜨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숨가쁘게 달렸다. 그리고. 책장을 덮자마자 ‘괴베클리 테페’를 검색했다. 드디어 드러나는 고대 유적지. 고대인들에 의해 의도적으로 매장되었다는 ‘괴베클리 테페’. 이곳이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이유라니!
이야기는 런던의 어느날 밤, 한 노인이 피투성이가 된 끔찍한 모습으로 발견되는 것으로 시작되는데 그는 자신의 잘린 혀를 손에 쥐고 있었다. 벤저민 프랭클린 박물관 관리인인 노인은 지하실 바닥을 파헤치는 정체불명의 무리에 의해 잔인한 고문(?)을 당한 것인데 사건을 수사하던 마크 포레스터 반장은 노인의 가슴에 칼로 새겨진 다윗의 별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단순한 살인 미수사건이 아님을 짐작한 포레스터는 사건의 배경을 조사하다가 오래전 지금의 박물관인 벤저민 프랭클린의 저택에서 인골이 발견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얼마후 머리가 땅에 묻힌 채 살해거나 온 몸의 가죽이 벗겨진 사람의 시체가 발견되자 포레스터는 고대인들의 ‘인신공희’를 떠올리고 그와 관련된 증거를 찾아 나선다.
한편 터키의 남동부, 쿠르드 지역에서 발견된 고고학 유적지 괴베클리 테페에 또다른 주인공 로브 러트웰이 발을 내딯는다. 해외 특파원인 그에게 그곳의 ‘뭔가 굉장한 특별한’ 것을 취재하라는 거였다. 브라이트너 박사와 크리스틴을 비롯한 발굴팀은 로브에게 괴베클리 테페가 거의 1만2000년 전에 형성된 유적지며 세계 최초의 종교건축물인 동시에 우리 인류에 커다란 혁명을 가져온 곳이라며 흥분한다. 하지만 발굴을 담당하는 인부들의 모습에서 로브는 이상한 기운을 느끼고 크리스틴 역시 브라이트너 박사의 발굴작업에 의문을 품는다. 그런 어느 날 브라이트너 박사가 발굴지에서 참혹하게 죽음을 당하자 로브와 크리스틴은 박사의 죽음에 괴베클리 테페의 비밀이 원인일 거라 추측하고 접근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슬람 이전 시대의 유물이 보관된 지하장소에 몰래 들어가 항아리를 발견하는데, 거기엔 태아의 시체가 들어있는 게 아닌가.
책은 터키와 영국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주인공인 로브와 포레스터가 교차로 등장하면서 끔찍한 범죄가 연이어 일어나는 사건의 배경과 핵심에 차츰 다가선다. 그리고 인류의 기원이자 대혁명을 가져온 괴베클리 테페에 감춰진 비밀, 고대인의 인신공희 풍습, 헬파이어 클럽의 비밀, 검은책, 예지드파...에 한 숨겨진 비밀과 실체가 하나씩 드러나게 된다. 전혀 상관없을 것 같았던 사건의 단편들이 지그소 퍼즐처럼 하나씩 제 자리를 찾아가면서 충격적인 사실을 전해주는데...
해외특파원과 저널리스트로 활동했던 저자의 이력이 잘 살린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대 유적지인 괴베클리 테페에 대해 알게 됐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에서 얻은 성과는 실로 크다. 그러나 다소 아쉽다는 생각도 든다. 내게 있어 팩션물의 바로미터인 <다빈치 코드>와 비교해봤을 때 이 <창세기 비밀>은 이야기는 흥미롭지만 그것을 이끌어가는 과정이 어색하고 억지스러웠다. 사건에 관련된 증거나 정보를 발로 뛰면서 얻는 게 아니라 인터넷에 의지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해외특파원인 로브와 건축가를 꿈꿨던 포레스터 반장이 지닌 캐릭터의 특징과 강점을 살렸더라면 더욱 흥미진진하고 현실감 넘치는 이야기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첫 작품이기에 치밀한 구성이 무리였을 수도 있겠지만...저자의 다음 작품 <카인의 유전자>는 어떨까,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