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바람을 걷는 소년
나디파 모하메드 지음, 문영혜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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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륵사륵 모래바람이 분다. 어디서 불어오는 걸까 했더니 드넓은 사막, 저 앞을 걸어가는 작은 소년의 발걸음에서 모래바람이 일어나고 있다. 소년이 바라보는 곳이 어디일지 시선을 따라가고 싶지만 뒷모습만으론 알 수가 없다. 동행도 없이 그저 혼자 묵묵히 걸어가는 소년의 모습은 외롭고 쓸쓸하다. 하지만 사막의 모래 위에 남겨진 발자국이 왠지 모르게 힘차보여서 대견하고 든든하게 와 닿는다.




소설 <모래바람을 걷는 소년>의 배경은 북동부의 소말리아. 가난이 깊어 수많은 사람이 기아에 허덕이고 오랜 내전으로 무정부 상태에 이르렀는데 최근 들어서는 납치와 테러를 비롯해 해상에서 여러 나라의 선박을 급습 강탈하는 해적행위를 일삼는다는 뉴스가 심심찮게 들려온다. 기아, 내전, 난민, 납치, 해적...모두 하나같이 인상을 찌푸리게 하는 말이지만 과연 이것이 지금의 소말리아를 만든 원인일까. 지금까지 소말리아에서 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책의 주인공은 ‘자마’란 이름의 소년으로 아덴의 뒷골목에서 자랐다. 돈을 벌어오겠다며 아버지가 떠난 후 자마는 엄마와 생활하고 있었다. 생활을 위해 엄마 암바로는 커피공장에서 쉴 틈도 없이 일했지만 형편이 나아지기는커녕 얹혀사는 친척에게 갈수록 심한 욕설과 구박을 받아야했고 자마 역시 남의 집에서 음식을 구걸하며 지냈다. 그러다 급기야 암바로가 병을 얻지만 제대로 약을 써보지도 못한 채 눈을 감고 만다. 엄마를 땅에 묻고 자마는 길을 떠난다. 엄마가 남겨준 약간의 돈을 손에 쥐고 오래전에 떠났다가 소식이 끊어진 아버지를 찾아서 수단으로.




어린 소년에 불과했던 자마의 여정은 실로 험난했다. 피투성이가 된 채 뒷골목에 쓰러져 있기도 하지만 다행히 자마와 같은 부족 사람이 구해준다. 하지만 얼마 후 억울한 일을 당하자 자마는 자신이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라 어른이 되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머물던 곳에서 뛰쳐나온 자마는 사막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신이 아빠를 자기에게 인도해주리라 믿고서...




우연하게도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연달아 만났다. 아프리카 중남부의 짐바브웨에서 이곳 소말리아로 옮겨오고 나서 지도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옆으로 삐져나온 뿔처럼 생겼다는 소말리아의 정확한 위치도 궁금했지만 무엇보다 서구 열강들이 점령한 아프리카 대륙을, 아버지를 찾아 거슬러가는 자마의 여정을 따라가고 싶었다. 이탈리아를 점령한 소말리아를 가리켜 ‘도살장’이라고 할 정도니 자마가 얼마나 힘겹게 발걸음을 내딛었는지 알 것 같았다.




뜨겁고 거친 사막을 맨발로 가로질렀던 소년 자마의 여정을 담은 소설 <모래바람을 걷는 소년>은 저자 나디파 모하메드가 자신의 아버지의 이야기를 소설로 엮은 것이라고 한다. 여러 강대국에 의해 무참히 짓밟혔다는 소말리아의 역사를 자세히 알지 못해서 소설의 어디까지가 실제 경험담이고 어느 부분이 저자의 상상 혹은 자료에 의한 것인지 알 수 없음이 못내 아쉬웠다. 또 띠지의 문구처럼 [연을 쫓는 아이]에 견주기엔 이야기의 구성이나 힘이 부족한 듯했지만 그래도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떠난 길에서 자신의 주체성과 삶의 방향을 찾게 되는 자마의 여정은 충분히 감동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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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도시 사라진 아이들 - 1995년 뉴베리 아너 선정도서
낸시 파머 지음, 김경숙 옮김 / 살림Friends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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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 파머. 그녀를 처음 만난 건 <전갈의 아이>란 작품이었습니다. 만약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 다른 이에게 장기를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진 복제인간, 클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그대로 따를 것인가. 아니면 지금까지의 운명 따위는 거부하고 과감하게 탈출할 것인가. 복제인간에게도 인간의 존엄성은 있는지, 인간의 감정과 자아는 어떻게 싹트고 성장하는지...전 책을 읽고 나서 깊은 의문에 빠졌고 <전갈의 아이>를 통해 감히 이야기하기 어려운 소재를 흥미로운 이야기로 풀어내는 저자, 낸시 파머의 이름을 기억하게 됐답니다.




그러다 낸시 파머의 새로운 이야기가 나왔다는 소식이 들리더군요. <사라진 도시, 사라진 아이>. 표지를 보니 아프리카의 토속공예품을 연상시키는 인물과 커다란 물체의 뒤로 높다란 빌딩이 숲을 이루고 있네요. 대체 어느 시대의 어떤 나라를 배경으로 한 거지? 주인공은 누굴까? 이런 저런 궁금증이 마구마구 밀려듭니다.




‘누군가가 텐다이의 침대 옆에 서 있었다’로 시작된 소설은 2194년, 아프리카 중남부의 짐바브웨를 배경으로 합니다. 짐바브웨의 최고 권력자인 마치카 장군에게는 텐다이, 리타, 쿠다라는 이름의 세 아이가 있었는데요. 부모가 최고 권력자라면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 떵떵거리며 유세를 부릴 만도 한데, 마치카 장군의 경우엔 완전히 달랐습니다. 자식사랑이 도가 지나쳐 과잉보호가 되버린  경우. 바로 그랬습니다. 장군은 온갖 위험이 도사리는 바깥세상에 절대 아이들을 내놓지 않았답니다. 아이들이 단 한 번도 집 밖을 나가본 적이 없다니 어느 정도인지 아시겠죠?




그런데 잠깐. 아이들이 어떤 존재인가요? 저희집 두 녀석만 보더라도 정말 백만돌이가 따로 없습니다. 웬만해선 에너지가 바닥나지 않는 것 같거든요. 호기심 왕성한 두 녀석의 뒤치다꺼리하다가 오히려 제가 뻗어버린 적이 하루 이틀? 오! 노!! 거의 매일입니다. 장군의 집엔 그런 아이가 세 명이 있는 거예요. 텐다이, 리타, 쿠다. 이 녀석들도 틀림없이 답답할 거예요. 철통수비를 자랑하는 부모의 감시가 말이에요. 단 하루만이라도! 부모의 감시를 벗어나서 바깥으로 나가 흥미진진한 모험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지낸답니다.




그러다, 어느날 텐다이의 부모가 오랫동안 외출하게 될 거란 정보를 얻은 거예요. 드디어! 기회가 왔습니다. 부모의 감시를 벗어나려고 호시탐탐 엿보던 아이들은 이 기회를 놓칠 리가 없지요. 바깥세상 구경할 생각에 가슴이 들뜨고 설레었습니다. 여행가방에 지도와 나침반, 식량을 모두 챙겨넣고. 이제. 출발입니다. “이제 우리 힘으로 가야 해” 텐다이는 두 동생과 함께 버스정류장으로 향하지요.




온실 안의 화초처럼 지내던 아이들이 멋진 모험을 꿈꾸다가 드디어 바깥세상에 발을 내딛었습니다. 이제 어떻게 될까요? 아이들의 상상했던 대로 신나고 환상적인, 즐거운 일만 가득한(나중에 부모에게서 꾸중을 듣더라도) 모험이라면 아이들에게는 천만다행이지만 독자의 입장으로서는 재미가 없습니다. 꿈에 부푼 아이들은 일단 위기에 빠져야 합니다. 부모도 아이들이 위험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고 혼비백산 하겠지요. 그 다음엔? 당연히 사랑하는 아이들을 구출하기 위해 나서는 겁니다. 어떻게 하냐구요? 바로 거기에 이 책의 모든 것이 숨어있습니다. 미리 알면 재미가 떨어집니다. 아, 한가지 힌트를 준다면...표지를 자세히 보세요. 큰 귀와 긴 팔, 안경을 쓴 이들이 보이지요? 그들이 바로 장군 부부가 아이들을 찾아달라고 의뢰한 특별한 능력을 지닌 탐정들이랍니다.




이제 이야기의 모든 요소가 구비되었습니다. 자, 그럼 이야기 속으로 빠져볼까요? 텐다이와 리타, 쿠다에게 닥친 위험은 어떤 것인가. 세 탐정은 아이들을 어떻게 구출할 것인가...궁금하시다면...지금 바로! 책장을 펴세요. 재미없으면 어떡하냐구요? 그런 걱정은 접어두세요. 낸시 파머의 작품은 재미와 감동, 더불어 깊은 생각거리까지 보장하거든요. 아이와 함께 읽어보시면 더 좋을 이야기 <사라진 도시 사라진 아이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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핼리혜성과 신라의 왕위쟁탈전
서영교 지음 / 글항아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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핼리 혜성. 약 75년의 주기로 지구에 접근한다고 알려진 혜성의 출현은 옛사람들에게 불안감을 안겼던 모양이다. <우주의 발견>이라는 책에는 ‘451년, 훈족의 아틸라가 로마군과 야만족의 연합군에게 패배할 때에도 핼리 혜성이 나타났다. 684년에 일어난 역병도 이 혜성의 탓이라고 이야기되었고, 노르망디의 윌리엄 공이 영국을 정복한 1066년의 헤이스팅스 전투 때에도 핼리 혜성이 나타났다. 또 프랑스 국왕이 사망한 1222년에도 나타났다’는 대목이 있다. 밝은 빛을 내며 순식간에 밤하늘을 가르고 지나가는 혜성이 아름답기는커녕 불길한 징조로 여겨지다니.




그런데 <핼리혜성과 신라의 왕위쟁탈전>은 더욱 놀라운 이야기를 쏟아낸다. 바로 핼리혜성의 출현으로 인해 신라에서는 왕위쟁탈전이 벌어졌다는 것. 에이, 설마? 한 나라의 임금이 단순히 혜성이 나타났다고 해서 목숨을 잃거나 자리에서 물러나다니. 선뜻 이해가 되지 않으면서도 왠지 솔깃했다. 그 말의 사실 여부를 떠나서 알고 싶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혜성을 불길하게 여기게 된 원인이 대체 무엇인지.




“기록은 아주 정직합니다” 서두에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혜성은 지구가 태어나기 전부터 존재했는데 중국의 기록을 보면 ‘기원전 1400년부터 기원후 100년까지 338개의 독립적인 혜성 출현을 기록(8쪽)’하고 있는데, 이는 바로 중국인들이 혜성에 대한 ‘공포’를 나타내는 거라고. ‘거대한 혜성이 떠서 왕의 잘못을 경고하고 있다. 만일 왕을 죽이지 않으면 혜성이 지상에 떨어지고 우리 모두가 죽고 만다(9쪽)’고 말이다. 혜성에 대한 공포심을 이용해 혜성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거나 죽음을 당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걸 어처구니없는 일이라고 일축해버릴 순 없다. ‘혜성은 일정한 주기로 지구에 나타나는 자연현상’이라는 건 현대에 와서 알게 된 일이니 하늘을 숭배하고 두려워하는 고대인들에게 혜성은 ‘하늘의 변고’이자 ‘왕실의 변고’를 나타내는 징조로 여겼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책은 크게 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신라는 융천사의 [혜성가]를 언제 왜 만들었나’에서는 현존하는 최고의 향가 ‘혜성가’에 대해 언제 어떻게 무엇 때문에 지은 것인지 삼국유사의 기록을 토대로 알려준다. 저자는 우선 607년을 전후해서 신라와 신라를 둘러싼 주변국의 상황이 어떠했는지 알려주면서 607년에 핼리혜성이 지구에서 자그마치 100일 동안 관측되었는데 이 대규모의 혜성으로 인해 사람들이 혜성에 공포심과 불안감이 고조되자 이를 민심을 달래기 위해 국가적인 차원에서 노래를 지어서 불렀다. 그것이 바로 ‘혜성가’인데 융천사가 '혜성가'를 부르자 혜성이 없어지고 일본병도 물러갔다고 한다.




이후 책은 [삼국사기]와 [일본서기]의 기록을 비교하여 신문왕 대에 총 3번의  핼리혜성이 나타났는데 그때마다 어떤 일이 일어났으며 신문왕이 어떻게 대처했는지 알려주는데 자신의 목을 조여오는 혜성의 출현으로 신문왕은 보덕국을 희생양 삼아 내란을 조장하기도 했다고 말한다. 또 하늘에 해가 2개 나타나자 월명사가 지어 불렀다는 향가 ‘도솔가’에 대해서도 저자는 2개의 해는 바로 낮에도 관측될만큼 밝은 핼리혜성이 지구를 지나간 것이라며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을 제시한다.




핼리혜성과 신라의 왕위쟁탈전이 깊은 관계가 있다고 해서 처음엔 팩션소설처럼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아닐까 했는데, 천만에! 책장이 쉽사리 넘어가지 않았다. 간혹 그림이나 사진자료를 이용해 태양과 핼리혜성, 지구의 관계를 설명하기도 하는데 글로만 읽어서는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아마 이 책과 같은 내용을 주제로 일정기간동안 강연회를 한다면, 그 현장에서 직접 저자의 설명을 듣고 의문점을 질문하고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다면 책의 내용을 좀 더 쉽게, 확실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핼리혜성과 신라의 왕위쟁탈전> 어렵지만, 그래도 흥미로운 주제임은 틀림없다. 특히 인기리에 방영됐던 <선덕여왕>에 몰입해서 봤다면 이 책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보면 좋을 듯하다. 재미삼아 봤던 드라마의 한 장면이 어떤 연유로 비롯됐는지, 그 역사적인 배경과 상황을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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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
김인숙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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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에 대해 알지 못했다. 지금까지. 학창시절 수업시간때 병자호란에 대해 배운 것이 전부였다. 압록강을 넘어 쳐들어온 청의 대군에 밀려 인조는 강화로 피난하려 했지만 어쩔 수 없이 남한산성으로 피했다는 것. 고립된 성 안에서 계속된 논쟁 끝에 강화론이 우세하여 결국 성문을 열고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 땅바닥에 머리를 조아리며 항복하는 인조에게 청은 몇 가지 요구 조건을 내걸었다는 것. 이제 명과의 관계를 완전히 끊고 청에 군신의 예를 갖추고 세자를 비롯한 왕자와 여러 대신의 자제를 인질로 보낼 것...등을 줄을 그어가며 외웠던 기억이 난다. 그 대목에 교과서 어디에도 ‘소현’에 대한 언급은(내 기억력의 한계인지 몰라도) 없었다. 패국의 볼모가 되어 청으로 갈 때 소현의 나이는 몇 살이었는지, 얼마나 오랫동안 나라를 떠나있었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청의 대군의 위력 앞에 조선이 맥없이 무릎을 꿇은 치욕의 역사가 바로 ‘병자호란’이었다.




평생 소현을 모르고 지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우연한 기회에 우리 역사에 ‘소현세자’란 인물이 있었음을 알게 되고, 그의 아내 세자빈인 ‘강빈’에 대해서도 알게 됐다. 그때부터였다. ‘소현’과 ‘강빈’이 어떤 인물이며 어떤 삶을 살았을지, 만약 그들이 불행한 죽음을 맞지 않고 좀 더 오랫동안 살았다면, 그래서 조선을 이끌어갔다면 어떻게 됐을지 알고 싶어졌다. 소설 <소현>에서 그동안의 궁금증을 풀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소설 <소현>에서 내 궁금증은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소설이 담고 있는 내용은 소현의 전 생애가 아니라 일부, 패전국의 세자로서 볼모가 되어 청에 머물렀던 시기, 그 중에서도 마지막 2년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런데 그 2년의 기간이 청의 황제였던 홍타이지(누르하치 청태조의 8남, 청태종)가 죽고 나자 도르곤(예친왕)과 하오거(숙친왕)이 새로운 황제가 되기 위한 기싸움(?)을 벌어다 ‘황제의 아들을 세울 것’이란 도르곤의 결단으로 순치제가 보위에 오르고 도르곤은 섭정왕이 된다. 황제보다 더 높은 위치인 섭정왕이 된 도르곤은 중원을 차지하게 위해 수십만 대군을 이끌고 출격하는데 바로 그 전쟁에 소현도 종군한다.




적의 나라에 볼모로 끌려간 소현에게 있어 청이 강력해짐은 곧 조선으로의 영구 환국이 멀어짐을 의미하기에 소현은 염원했을 것이다. 청이 기력을 잃기를. 명이 흥하여 청을 멸하기를. 그러나 현실은 소현의 바램을 저버렸다. 중원을 놓고 벌인 전쟁에서 청이 명을 이기고 더욱 강성해졌다. 그러는 사이, 조선의 임금 인조와 세자 소현과의 사이는 점차 멀어져갔다. 소현이 적의 땅에 너무 오래 있었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러다 오랜 볼모생활을 끝내고 소현세자는 봉림대군과 환국했지만 조선에서의 삶을 오래 이어가지 못하고 끝내 숨을 거두고 만다.




소현세자의 죽음을 두고 학질이냐 인조에 의해 살해된 것이냐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기에 나 역시 궁금했다. 그런데 저자는 소현의 죽음에 관해서는 그다지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저 적국에 볼모로 잡혀있는 소현의 외로움과 아픔, 약소국 조선에 대한 그리움, 아버지이기 전에 임금인 인조에 대한 슬픔이 어떠했는지 전해준다. 무엇보다 소현이 그 모든 것을 뛰어넘고 이겨낼 수 있을만큼 강하지 못했음이 아니, 그가 이루려고 했던 조선의 미래를, 그의 가슴에 품었던 조선에 대한 사랑을 채 펼쳐보이지 못한 것이 안타까웠다. 소현의 아픔과 외로움, 슬픔이 책장 밖으로 밀려나와 내게도 스며드는 것 같았다.




소현 세자에 대해 많은 걸 알지 못했지만 적어도 그의 일면을 만난 것 같아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럼에도 난 아직 갈증을 느낀다. 조금 더, 조금만 더 소현을 알고 싶다. 그의 삶을, 그의 아픔을, 그의 사랑을. 아마도 한동안은 그와의 만남을 기대하며 이런저런 책을 뒤적이게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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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니치 코드
엔리케 호벤 지음, 유혜경 옮김 / 해냄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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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니치 코드. 책의 제목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였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벌어진 살인사건. 이에 종교기호학 교수인 랭던과 살해된 박물관장의 손녀이자 암호전문가 소피가 함께 프랑스와 영국, 이탈리아를 오가며 사건의 뒤에 숨겨진 비밀을 파헤치는 이야기였는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에 숨겨진 비밀과 의미도 흥미로웠지만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템플기사단, 프리메이슨, 시온수도회, 오푸스데이...처럼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야기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책 속에 빠져들었다.




그래서 <보이니치 코드>에는 어떤 이야기가 숨어있을까. 많은 이에게 알려지지 않은 역사의 미궁, 미스터리를 어떻게 이야기로 풀어낼까. 궁금했다. 하지만 가장 큰 의문은 바로 ‘보이니치 코드’가 과연 무엇인가 하는 거였다.




MSㅡ408. 암호문서. 15세기 혹은 16세기 암호로 보이는 밝혀지지 않은 언어로 쓰인 과학서 혹은 마술서. 200쪽이 넘는 책에서 수정한 부분이나 지운 곳이 단 한 곳도 없이 암호로 적어 넣은, 완벽함이 두드러지는 책. 이게 바로 ‘보이니치 코드’라고 한다. 내용도 하나의 정해진 주제나 소재에 대해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식물학, 천문학, 인물, 약초 등 다양해서 더욱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데 문제는 이 책에 기록된 문자를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완벽하게 풀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이니치 필사본에 숨은 겹겹이 싸인 의문...은 무엇인가. 과연 누가 풀어낼 수 있을 것인가.




이 책의 주인공은 예수회 학교에서 물리를 가르치는 신부 엑토르. 그는 ‘보이니치 리스트’로 불리는 인터넷 단체에 가입하여 몇 몇의 회원과 함께 보이니치 필사본을 해석하며 지내는데, 어느 날, 정원의 벽에 누군가가 보이니치 언어로 ‘아킬레우스의 분노가 네게 임하리라’고 낙서를 하고 사라지는 일이 벌어진다. 예사롭지 않은 일임을 직감한 엑토르에게 어느날 한 여인이 찾아온다. 자신을 왈도라고 밝힌 그녀의 이름은 후아나 피사로. ‘보이니치 리스트’에서 ‘요아나’라고도 불린다면서 자신이 알 수 없는 누군가에게 협박을 받고 있다고 털어놓는다. 캠브리지 대학교의 천문 우주학자인 존과 만나 잠시 피신해 있을 거라던 그녀는 떠나면서 엑토르에게 보이니치 필사본의 비밀 정보가 들어있는 디스켓과 봉투를 건넨다.




한편, 엑토르가 속한 예수회 학교도 위기를 맞는다. 시에서 학교를 몰수하여 철거한 다음 그 자리에 주차장을 세우겠다는 것이다. 이에 수도원장은 엑토르를 이끌고 학교 지하의 숨겨진 미로에 데려간다.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옛 로마의 유적지의 가치를 공개하면 학교가 몰수되는 일을 막을 수 있을 거라는 추측에서였다. 엑토르는 후아나가 건넨 디스켓을 통해 보이니치 필사본의 해석해나가는 동시에 학교 지하 시설에 숨겨진 의문을 풀기 시작한다. 얼마 후 엑토르는 옛 도서관 사서였던 신부가 남긴 밀봉된 봉투를 발견하고 더 나아가 그것이 곧  보이니치 필사본의 의문과 연결되어 있다는 걸 깨닫게 되는데....




역사적 사실을 기초로 했지만 그래도 팩션 소설이라고 너무 만만하게 여겼던 걸까. 보이니치 필사본에 대해 품었던 궁금증을 풀기 위해 필사본이 제작됐던 당시의 역사적인 배경과 상황을 하나하나 추적해 나가는데 그 과정을 읽어가는 건 결코 쉽지가 않았다. 우선 튀코 브라헤와 요하네스 케플러의 관계도 의문투성이였으며, 루돌프 2세 등 보이니치 필사본과 관련해 역사적인 실존 인물들이 속속 등장하는데 인류의 등장을 두고 창조론과 진화론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것처럼 중세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믿었던 종교계에 맞서서 과학계가 팽팽한 대립관계를 이루고 있었다. 역사적 사실과 픽션의 경계가 어디쯤인지 가늠하며 이야기에 빠져들기보다 저자가 풀어내는 천문학적인 지식을 따라가며 이해하는 것만도 급급했다.




‘보이니치 필사본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루돌프 2세와 천체물리학자들의 치열한 암드’ ‘예일대 도서관에 잠들어 있는 보이니치 필사본. 이제 그 비밀의 문이 열린다!’라는 표지의 문구에 사실 잔뜩 기대를 했다. 호기심이 눈이 반짝 떠지고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커지는 느낌이 들 정도로 스릴 넘치는 이야기가 펼쳐지지 않을까...했는데, 픽션 소설인지 천문 물리학에 관한 전문지식을 알려주는 책인지 알 수 없어 한참 서성이며 헤맨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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