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 바꾼 전쟁의 역사 - 미국 독립 전쟁부터 걸프전까지, 전쟁의 승패를 가른 과학적 사건들
박영욱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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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부터 지인과의 독서 모임에서 전쟁에 관한 책을 읽고 있다. 한국전쟁을 시작으로 베트남전쟁, 러시아혁명을 거쳐 지금은 제1차 세계대전 막바지를 지나고 있는데 곧 제2차 세계대전으로 접어들 것 같다. 읽고 있는 책의 주제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평소라면 그냥 지나칠 이야기들도 이전보다 더 눈길이 가는 걸 느낀다. 현재 지구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에 대한 뉴스나 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에 관심이 커졌다. 작년에 천재 과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핵 개발 프로젝트를 다룬 영화를 봤는데 실화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인지 소름이 돋을 만큼 흥미로우면서도 충격적이었다. 특히 주인공의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 “세상은 오늘을 기억할 겁니다.”란 대사는 단 한 번 들었는데도 잊히지 않았다. 세상을 구하는 게 목표였지만 결과적으로 세상을 파괴해버릴지도 모를 위험한 무기가 개발되다니……


 

[미국 독립 전쟁부터 걸프전까지 전쟁의 승패를 가른 과학적 사건들]이란 부제의 <과학이 바꾼 전쟁의 역사>를 읽는 내내 작년의 그 영화가 떠올랐다. ‘인간의 역사에는 창조와 파괴가 끊임없이 교차해 왔습니다(5)’로 시작한 책은 과학이 발전하면서 전쟁의 양상이 어떻게 바뀌게 되었는지 24가지의 역사적 장면을 통해 알려준다.


 

가장 먼저 18세기 미국이 영국의 식민지에서 독립하기 위해 벌인 전쟁에 프랑스가 영향을 미쳤다는 걸 전한다. 바로 근대 화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라부아지에가 개량한 화약 덕분에 미국은 영국과의 독립전쟁에서 승기를 잡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1) 뿐만아니라 1차 산업혁명이 일어난 영국이나 유럽 강국에 비해 다소 발전이 늦었던 프로이센은 교육 개혁에 이어 군대 개혁을 통해 신무기들을 보강하게 되는데 군사 강국으로 나아가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과학 기술을 장려하고 적극 지원하기 시작하는데 그것이 바로 1차 세계대전과 독일 제국주의가 등장하게 된 원인이었다고 한다.(4) 이외에도 가장 짧은 기간에 가장 넓은 지역에서 가장 많은 국가가 개입해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첫번째 전 지구적 전쟁1차 세계대전에 사용된 대규모 화학 무기를 개발한 화학자 하버를 비롯해서 컨베이어 벨트가 작동과 함께 노동자들이 단순반복적으로 마치 기계의 부품처럼 일하는 작업방식을 포드주의라고 하는데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스>가 포드자동차의 대량생산 시스템을 알리게 된 계기가 되었다거나 영화로 제작된 쪼갠 원자핵으로 원자폭탄을 만들고 뒤이어 핵융합을 거쳐 개발된 수소폭탄 등 획기적인 과학적 발견이나 발명이 전쟁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풀어내고 있다.


 

18세기 이후 과학의 역사이자 전쟁의 역사이기도 한 책을 읽으면서 의문이 들었다. 21세기에 들어서서 과학은 이전보다 더욱 눈부시게 발전했는데 그것이 세계의 권력 판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경제학이 최소비용으로 최대효용을 추구하듯이 전쟁도 비슷하지 않을까. 한 번의 일격으로 몇십, 몇백 배의 타격을 줄 수 있는 강력한 무기를 개발하는 것. 세계 패권을 다투는 국가의 목표일 것이다. 책의 마지막 부분엔 본문에서 언급된 과학적 사건과 전쟁을 연대순으로 배치해둔 표를 수록해놓았다. 전체적인 흐름을 살펴보고 정리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었지만 한편으론 마음이 무거웠다. 이 다음은 어떻게 될 것인가. 세상을 구하기 위한 과학이 세상을 파괴할지 모르는 무기가 되었던 지난 과거의 역사를 통해 우리가 배운 것은 무엇일까. 다음에 내딛게 될 발걸음에 어쩌면 인류의 미래가 결정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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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곤충사회
최재천 지음 / 열림원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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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이 생물학? 정말요?”

날 만나는 이들에게 늘 이런 질문을 받았다. 당황인지 황당인지, 혹은 놀라움인지 알 수 없는 반응에 난 이렇게 답했다. 대학 원서를 쓸 때 친구의 “언니가 생물학과인데 재밌어 보이더라”는 말에 귀가 솔깃했고 평소 TV 프로그램 <동물의 왕국>을 좋아했기 때문에 호기롭게 생물학도가 되었다고.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의 다른 버전쯤 되는 얘기에 사람들은 큭큭 웃음을 터뜨리곤 했다. 생물학에 대한 어떤 정보나 예비지식이 없어서 벌어진 일이지만 때론 의문이 들었다. 내 행동이 그렇게 어이없는 것이었나? 그러다 책에서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을 알게 됐다. 과학자이면서도 깊은 인문학적 식견으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는 인물, 바로 최재천 교수였다.

어떻게 척추도 없는 저 작은 곤충이 우리 인간이 이룩해놓은 문명사회와 거의 비슷한 수준의 사회를 구축하고 살까. - 10쪽

얼마전 출간된 <최재천의 곤충 사회>는 2013년부터 2023년까지 최재천 교수의 강연과 출판사 인터뷰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가장 먼저 수록된 글에서 그는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미국 유학을 가면서 <동물의 왕국>을 하겠다고 마음 먹었지만 “너 학교 잘못 왔어. 우리 ‘동물의 왕국’ 안 하거든. 우리 생태학 해.”란 대답을 들었다고. 이 말을 듣고 당황한 최재천 교수의 모습이 선하게 그려졌다. 당시 생태학, 진화생물학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그는 수강편람을 뒤적이다가 ‘사회생물학’을 접하게 됐는데 거기서 자신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솔제니친 <모닥불과 개미>을 떠올리고 인생의 길을 결정할 수 있었다고 한다.

“가까스로 그 엄청난 공포에서 벗어난 개미들은 방향을 바꾸더니 다시 통나무 둘레를 빙글빙글 맴돌기 시작했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자기 집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것일까. 많은 개미들이 활활 타오르는 통나무 위로 기어 올라갔다. 그러고는 통나무를 붙잡고 바둥거리면서 그대로 거기서 죽어가는 것이었다.”- 28~29쪽

‘하버드대학 박사’, ‘저명한 교수’란 타이틀만 보면 ‘천재’가 연상되지만 그가 털어놓은 일화를 보면 ‘엄청난 노력’이 있었기에 ‘오늘의 최재천’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무엇보다 자신이 원하는 연구를 위해 기울인 노력은 놀라웠다. 흰개미의 사회성 진화를 연구하고 싶어서 흰개미와 사촌격인 곤충으로 그 과정을 들여다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렇게 2밀리미터에 불과한 ‘민벌레’라는 곤충을 연구하게 됐는데 ‘개미 박사’로 알려진 그가 민벌레를 연구했다니. <개미제국의 발견>으로 처음 최재천을 알게 되어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최재천의 인간과 동물> <열대예찬> <통섭의 식탁> 등 많은 책으로 만났음에도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자연계에서 우리는 ‘가진 자’잖아요. 우리는 이미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야말로 발자국 하나까지 신경 쓰면서 내디뎌야 해요. - 97쪽

<최재천의 곤충 사회>는 제목만 보면 과학서적 냄새가 물씬 풍기지만 책장을 넘겨 본문으로 들어가면 최재천이 생태학자로서 어떻게 학문의 길을 걸어왔는지 그동안의 경험을 담은 에세이라고 할까. 처음부터 끝까지 쉽게 술술 넘어가는 책을 읽다 보면 마치 커다란 강연장에 사람들이 빼곡하게 앉아있고 그 앞에 선 작은 체구의 웃는 얼굴을 한 최재천 교수의 강연을 실시간으로 듣는 기분이 들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이라는 졸업식에서 축사를 한 내용은 영상으로 먼저 접했지만 글로 읽으니 새삼 더 큰 울림으로 다가왔고 인류의 모든 지식이 담겨 있는 책을 취미로 접하지 말고 모르는 분야를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기획 독서’를 하라는 대목에선 나도 모르게 뜨끔했다. 2밀리미터의 민벌레로 연구를 시작한 그의 시선은 어느새 호모 사피엔스에 닿고 있었다. DNA의 존재까지도 알아버린 대단한 존재인 인간이 인류를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고. ‘이제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그의 말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다.

지구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생물이 사라지는 건 어제오늘 일은 아닙니다. 적어도 다섯 번에 걸쳐 거대한 대멸종 사건이 있었습니다. (...) 지금 제6의 대절멸 사건은 비교적 조용히 벌어지고 있습니다. 천재지변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지구의 막둥이 격으로 태어난 호모 사피엔스라는 한 종이 저지르는 장난질 때문에 생물다양성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 2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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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미하엘 엔데 지음, 시모나 체카렐리 그림, 김영진 옮김 / 김영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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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의 말에 귀기울여주는 아이, 인생에 있어 시간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 준 아이 모모. 학창시절 만난 모모를 성인이 되어 그림책으로 다시 만났네요 새로운 감격의 순간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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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고전 독서토론 수업
오성주 지음 / 이비락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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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책을 이야기하는 책을 즐겨 읽었다. 유명한 소설가이거나 학자이거나 혹은 서평가로 알려진 이들의 책을 보며 그들이 어떤 책을 읽는지 거기서 무엇을 느꼈는지 궁금했다. 그들이 본문에 언급한 책을 난 몇 권 읽었나 체크해보기도 했다. 그러다 언제부턴가 책을 다룬 책을 조금씩 멀리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중년을 훌쩍 넘기면서 체력적으로 이전처럼 책을 읽을 수 없다는 걸 실감했을 때, 저자가 감명 깊게 읽었다고 얘기하는 책을 모두 읽을 순 없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저자의 느낌이나 감상이 나와 다를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닫고 난 후부터였다. 그럼에도 간혹 호기심이 생기는 책이 있을 땐 목차를 꼼꼼하게 살펴보게 되었다. 저자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요약정리하고 느낌을 털어놓은 책이 과연 내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 일단 따져보는 습관이 생겼다.


 

<청소년을 위한 고전 독서토론 수업>이 출간되었을 때 난 책을 다룬 책이 또 한 권 나왔다고 생각했다. 10년 넘게 독서 모임을 진행하면서 나름 깨달은 건 고전으로 독서 토론하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거였다. 그런데 그걸 청소년을 대상으로? 무리한 시도일 거라 여겼다. 하지만 우연히 이 책의 도입부를 보고선 생각이 달라졌다. 꼭 챙겨봐야 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랄까?


 

교육이 무너졌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오는 요즘 공교육 안에서 토론 수업을 통한 교육혁신을 꿈꾸는 이가 있다. 이 책의 저자 오성주 교사이다. 그가 서울과 경기도에서 토론코치로 활동하면서 청소년들과 고전으로 나눴던 이야기와 토론을 이끌면서 느꼈던 경험들을 <청소년을 위한 고전 독서토론 수업>에 풀어놓았다.

 

 

책의 구성은 단순하다. 청소년이 토론하기에 적합한 책 16권을 선정한 다음 그 책에서 어떤 부분을 토론으로 이끌어내면 좋은지 독서 질문토론 쟁점을 정리해놓았다. 이 책이 돋보이는 것은 저자가 내용이나 분량을 고려해서 접근하기 쉬운 순서부터 어려운 순서로 배열해놓았다는 것이다. 가장 먼저 언급한 <어린왕자>에서는 어린왕자의 눈을 통해 우리가 잊고 살아가는 것이 없는지, 우리 삶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하고, 스탈린의 소련을 풍자한 <동물농장>에서는 혁명에 있어 핵심은 무엇이고 권력은 어떤 속성을 띄는지, 언론과 지식인의 의무와 역할에 대해 고민해보라며 조언하고 있다. 다만 각 작품마다 본문에 할애된 분량이 그리 많지 않은 점이 아쉽지만 청소년을 대상으로 고전 독서토론을 할 때 좋은 길잡이가 될 것 같다.


 

청소년 책읽기수업을 진행하면서 알게 된 건 아이들에겐 토론 이전에 자기의 생각이나 느낌을 이야기하는 것조차 힘들어한다는 거였다. 작품의 본문을 낭독하고 낯선 단어는 직접 찾아보면서 천천히 진행하는데도 작품 속 인물들의 관계나 사건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경우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주장하고 토론하려면 아마 그만큼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좋은 문장이 어떤 사람의 가슴을 관통하게 되면 그 사람은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기 마련이다그러므로 고전을 많이 읽는 사람은 필경 좋은 삶에 대해 사유할 것이고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할 것이다. -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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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믿으면 그게 사실이 되는 거야.팩트는 중요한 게 아니라고 -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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