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 1 고양이 시리즈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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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고양이에게 자꾸 시선이 머문다.


 

코로나로 인해 오랫동안 지속해오던 독서모임이 위기를 맞았다. 온라인 영상토론이 낯설어서 어쩔 수 없이 잠정중단 된 모임이 있고, 직접 만나는 것보다는 못하지만 온라인으로 이어가는 모임도 있다. 온라인으로 모임을 하다 보면 참가한 이의 주변 상황을 자연스레 접하게 되는데 느낌이 색다르다. 한참 토론이 진행될 때 날 좀 보라며 애교부리듯 칭얼대는 반려동물의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때론 자신도 우리의 토론에 할 얘기가 있다는 듯 서슴없이 카메라 앞으로 나서는 모습을 보면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가곤 한다. 또 온라인 필사 모임에선 단톡으로 진행상황을 각자 사진으로 인증하는데 이때 종종 고양이가 등장한다. 어이, 집사! 오늘은 여기까지! 하듯 앞발로 책을 덮어버리기도 하고 필사하지 말고 나랑 놀라달라는 듯 아예 책과 노트 위에 앉거나 엎드리는 고양이를 보면 문득 궁금해진다. 쟤들, 혹시 글자 읽을 줄 아는 거 아냐?


 

뫼비우스의 띠를 옮겨놓은 듯 계단과 건물이 이리저리 얽혀있는 몽환적인 분위기를 한층 더해주는 존재가 있으니, 바로 도도하고 당당하게 앉아있는 고양이다. <문명>은 표지에서부터 끝났다고 해야 할까? 표지를 넘기면 얼마나 많은 수수께끼를 만나게 될지 무수한 의문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거기에 저자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라니. 읽지 않을 수 없다.


 

글을 읽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더 바랄 게 없을 거야. 종이에 촘촘히 박혀 단어가 되고 문장이 되는 해바라기 씨만 한 글자들의 뜻을 알 수 있다면. 줄줄이 이어지는 글자들에 담긴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다면 살맛이 나겠지. - 13.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글을 읽을 수만 있다면 좋겠다해서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문자를 익히지 못한 이의 넋두리인가 했는데 천만의 말씀. 바로 세상에 눈뜬 특별한 고양이다.


 

이야기되지 않는 모든 것은 잊힌다. - 14


 

시종일관 당당하게 라고 일컫는 건 바로 흰털과 검은 털이 섞인 암고양이 바스테트다. ‘지나친 완벽주의자여서 단점마저 매력으로 바꿔버리는 이 고양이는 자신이 스스로 고양이라는 종의 한계, 암컷이라는 한계를 뛰어넘었다고 한다. 그리고 밝힌다. 자신에게는 원대한 꿈이 있다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이 서로 소통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라고. 당돌함 그 자체인 고양이 눈에 비친 인간은 형편없는 외모를 한 나약한 존재였다. “이러니 어떻게 내가 인간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을 수 있겠어?(24)” 인간에게 집사로서의 임무가 주어진 게 바로 이때부터였나보다.


 

답답한 인간들 속에서 평이한 일상을 보내던 바스테트는 어느 날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목격한다. 수염 달린 인간이 수염 없는 인간을 죽이고 서로 맞붙어 싸우는 모습. 그리고 알 수 없는 전염병이 인간 세계에 퍼지면서 도시엔 죽음의 기운이 가득하지만 반대로 세력을 넓혀가는 동물이 나타났으니, 바로 쥐였다.


 

난 쥐가 싫어. 그렇지만 그들의 공격성과 무서운 적응력, 그리고 번식력이 경쟁 관계의 다른 종들을 압도한다는 사실은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어. - 29

 


바스테트는 건너편 집으로 이사 온 샴고양이 피타고라스를 위험에서 구해준 것을 계기로 둘은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피타고라스에겐 특이한 게 있었는데 바로 이마 위에 구멍이 하나 있다는 것. <3의 눈>이라 일컫는 그것은 뇌와 컴퓨터를 연결할 수 있는 USB 단자였는데 피타고라스를 통해 바스테트는 인간세계에 대해 알게 된다. 그런 어느날 인간들의 습격으로 아들이 실종되자 피타고라스와 함께 아들을 찾아나선다.


 

볼로뉴숲의 고양이들을 만난 바스테트는 쥐들이 확산되는 걸 막기 위해 그들과 시뉴섬에 진지를 구축하는데 쥐들의 공격을 받는다. 하지만 바스테트의 기발한 전술로 쥐를 물리치고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지만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또다시 쥐들이 무리 지어 습격했는데 이전보다 강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공격이 더 포악하고 거세졌다. 알 수 없는 불안감이 현실로 다가왔음을 느낀 피타고라스는 시뉴섬을 떠나 시테섬으로 이동할 것을 강조한다. 그리고 쪽배 몇 척에 나누어 타고 이동하게 되는데...


 

이제 한 시대가 막을 내렸다. 피타고라스의 말대로 우리는 새로운 땅에서 새로운 미래를 다시 일구어야 한다. -51.

 


시테섬에서 다시 공동체를 이끌며 얼마간은 특별한 것 없는 일상을 보낸다. 하지만 또다시 쥐 군단의 공격이 시작되자 거대한 고양이과 동물인 사자 한니발의 활약으로 쥐들을 해치우고 포로를 잡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그 포로를 통해 쥐들의 새로운 우두머리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덩치는 크지 않고 하얀 털에 빨간 눈의 흰 쥐인데 이마 꼭대기에 특이한 구멍이 있어서 거기로 방대한 지식을 갖게 됐다고. 바스테트와 피타고라스는 알게 된다. 적진의 우두머리 역시 제3의 눈을 가졌으며 그의 이름은 바로 티무르라는 것을...

 


인간의 실험을 통해 방대한 지식을 갖게 된 동물들의 이야기는 그동안 영화나 문학작품으로 여러번 소개가 됐다. 그 속에서 인간은 눈부신 문명을 일구었지만 언제나 자신들의 욕망을 폭력성을 다스리지 못하고 스스로 파멸의 길을 걷게 된다. 실험의 도구였던 동물의 지배를 받으면서. 여기서 <문명>은 그동안의 디스토피아 세계를 다룬 작품과 차별성을 드러낸다. 인간은 모두 사라져야 한다는 측과 인간과 지식을 공유하고 협동해야 한다는 측이 존재한다. 이런 가운데 바스테트는 과연 자신의 목표인 세상의 모든 종이 소통하고 협력하여 새로운 문명을 건설할 수 있을 것인가.

 


여태 가보지 않은 길을 가겠다는 결정에는 위험이 따르게 마련이야.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는 건 익숙한 길을 가는 것보다 당연히 위험하지. - 171.

 


베르베르 소설의 특징이자 장점은 문장이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것. <문명> 역시 무리 없이 책장이 넘어가는 걸 경험할 수 있다. 또한 작가가 예상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전세계가 코로나로 인해 전염병과의 사투를 벌이는 중이어선지 <문명>을 읽으면서 자꾸만 우리 인간의 행태를 돌아보게 했다. 3의 눈까지는 아니어도 언젠가 인간처럼 말을 하는 동물이 나타나면 어떻게 될까 상상해보게 됐다. 알고보니 <문명>은 베르베르의 <고양이>에 이어지는 작품이었다. <고양이>를 읽지 않아도 소설을 이해하는데 크게 지장은 없지만 그래도 <고양이>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문명>을 거친 3부작으로 이어진다니 늦게라도 <고양이>를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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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면 삼키고 쓰면 좀 뱉을게요 -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우는 인생
김혜원 지음 / 유영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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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잠정중단 상태이지만 10년 넘게 독서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모임 초창기 때부터 함께 해온 멤버가 대부분이고 간간이 새 멤버가 참석하면 그때마다 우린 자기소개를 하곤 한다. 새 멤버가 낯선 모임에 적응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해서 거치는 과정이지만 의문이 들곤 한다. 짧으면 수초, 길면 1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에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하고 자신을 소개한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


 

나는 어떤 사람일까. 중년을 훌쩍 넘긴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때론 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나조차 알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말하는 나실제 나는 같은 인물일까?


 

복불복 사탕 뽑기가 그려진 책 <달면 삼키고 쓰면 좀 뱉을게요>의 첫인상, 제목이 이렇게 발칙해도 돼?였다. ‘이게 바로 나야!’라고 당돌하게 외치는 전형적인 20대 청춘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나와는 접점이 없을 거라고 스킵하려던 차에 눈길에 꽂힌 부제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지는 인생’. 입에 넣었을 때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건 누구나 당연히 하는 반응인데 그걸 남 눈치 보지 않고 가능해?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채울 수 있나? 궁금했다. 저자가 이렇게 마음먹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결심한 이후로 일상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일단 결심부터 했다. ‘아무거나로 인생을 낭비하지 않기, 한 번 사는 인생 아무거나 말고 좋아하는 것으로 채우며 살아봐야지 11

 


한동안 내가 읽었던 책이 주로 어렵고 난해한 내용이 많아서 책을 읽다보면 자연히 미간에 인상을 잔뜩 쓰곤 했는데 이 책은 일상의 이야기가 평이한 문체로 서술되어 있었다. 300쪽이 안되는 책을 두 시간 가량 읽으면서 어느새 자꾸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저자의 일상처럼 나 역시 아무거나를 자주 입에 올렸다. 점심 메뉴를 고를 때 고기만 아니면 뭐든, 쇼핑도 유행보다 무난한 스타일, 음악 역시 최신음악보다 듣기 편한 것... 주변 분위기를 보고, 그들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으면서 도드라지지 않는 걸 선택하는 일상이 되풀이되었다. 그러다 저자는 낯선 곳을 여행하던 중에 문득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깨달았다면 난 지지리도 말 안 듣는 자식을 보면서 ~~구 소용없다를 읊조렸다.


 

며칠 전 류시화 시인이 올린 글이 떠오른다. 세상은 싫어하는 것으로 자신을 정의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것으로 자신을 정의하는 사람 둘로 나뉜다고. 우리의 에너지는 우리가 집중하는 곳으로 흐르기 마련이니 기왕이면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며 살자는 이야기였다. -119쪽


 

나도 당연히 좋아하는 게 있는데. 하지만 내게 전업주부라는 위치가 엄마라는 명찰이, 나보다 가족을 우선시하도록 매뉴얼 되어 있었다. 저자는 일로 만난 사이가 어려웠다고 하는데 난 아이가 같은 학교에 다닌다는 이유로 만난 학부모들이 불편했다. 그들의 자식과 내 자식이 엄연히 다른데 그들의 자식자랑에 마냥 박수쳐주기도 솔직히 속이 상했다. 그리고 그런 마음을 품는 내가 못나보였다.


 

애정을 기반으로 한 관계만을 맺어 오다가 이해관계로 얽힌 사람들을 처음 사귀게 되었을 때, 나는 혼란스러웠다. 그들과 잘 지내고는 싶은데 그러기 위해서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을 알 수가 없었다.- 124

 


여러분은 자신의 취미생활을 위해 돈을 어느 정도까지 쓸 수 있어요? 자신의 소득과 상관없이사람들에게 물은 적이 있다. 사실 그건 나 자신에게 묻는 질문이기도 했다. 오롯이 나만을 위한 지출. 미용실에서 머리를 매만지고 옷차림을 유행하는 스타일로 바꾸고 누구나 한두 개쯤 있다는 명품백을 장만하는 일련의 과정을 모두 건너뛰고 살았고 그게 내 스타일이라고 여겼던 것이 실은 초라한 나를 숨기려는 건 아니었을까.


 

좋아하는 사람에게 쓰는 돈을 아끼게 될 때 내가 가난해졌음을 실감한다.- 130.

 


이전과 달라진 나를 시도하는 건 솔직히 나조차 두렵다. 내 생각, 느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면 어떻게 될까? 쟤 갑자기 왜 저래? 뭐 잘못 먹었나, 그러겠지. 분명. 모험을 하기엔 늦은 나이 같지만 어쩌면 모험을 할 수 있는 마지막 나이가 아닐까 싶다. 입대를 앞두고 7번 국도를 걸었다는 청년처럼 거창하지 않지만 새로운 시도...해봐야겠다. 더 늦기 전에.

 


세상에는 내비게이션을 끄고 달려야만 닿을 수 있는 장소도 있다. -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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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장 365일 붓다와 마음공부 -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사는 지혜
이동연 지음 / 평단(평단문화사)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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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종교가 불교라고 해도 되나? 내가 불교를 믿는 게 맞나? 불교신자 시늉만 내고 있었던 건 아닌가?


 

2021년 새해 첫날부터 매일 조금씩 필사를 하고 있다. 톨스토이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세계의 지성이라 불렸던 이들의 사상과 저작에서 수집한 글을 1년의 일기형식으로 편집해놓은 책인데 필사하면서 공감 가는 부분도 많았지만 종교(기독교)와 관련한 대목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동양사상이나 불교에서 같은 형식의 책이 있으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하루 365일 붓다와 마음공부>란 책의 출간이 반가웠다. 하지만 본문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멈칫했다. 여시아문(如是我聞) 때문에. 집에서 틈틈이 108배를 하고 부처님 오신 날에 사찰에 연등을 단다고 해서 모두 불교신자인 건 아니다. 반대로 108배를 하지 않고 연등을 달지 않는다고 해서 불교신자가 아니라고 할 수도 없다. 그가 삶을 어떻게 대하는지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마음자리가 어떠한지가 중요하고 일상 속에서 자신 안의 부처를 찾아 깨달음을 얻는 것, 그것이 불교의 핵심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불교경전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어서 여시아문(如是我聞)이 생소했기에 우선 찾아봤다. 여시는 이와 같이’, 아문은 내가 들었다의 뜻으로 들은 교법을 그대로 믿고 따라 기록한다, 붓다의 면전에서 직접 들은 가르침을 하나도 보태거나 빼지 않고 그대로 전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또한 모든 불교경전에는 첫머리에 여시아문일시불재(如是我聞一時佛在)라는 글귀가 나오는데 이는 붓다가 죽으면서 제자들에게 불경의 첫머리에 두도록 한 데 따른 것으로 경전의 내용은 붓다가 어느어느 장소에서 설교한 것으로 내가 확실히 들었으니 의심하지 말 것을 권유하는 뜻이라고 한다. 아하, 그제야 무릎을 쳤다. 그리고 집에 있는 경전의 첫머리를 찾아보니 정말 여시아문으로 시작하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하루 365일 붓다와 마음공부>의 구성은 달력과 유사하다. 크게 열두 달로 나누어 각 달마다 주제를 정해서 그에 해당하는 붓다의 말씀과 해설을 매일 1장씩 수록해놓았다. <붓다와 마음공부>를 만난 건 5, 주제는 [견실한 삶을 위한 고찰]이었다. 그 중에서 527, ‘나쁜 경험이 더욱 발전의 원천이 될 수 있다’‘뜻을 정해 해탈한 사람은 악마의 수렁에서도 영원히 벗어난다라는 글에 우리의 경험이 삶에 얼마나 중요한지 전해준다. 어떤 경험이든 그것을 자신의 삶을 발전하는 근거로 만들 수 있다면 좋은 경험, 나쁜 경험이 그다지 의미가 없다는 대목에서 결국 모든 일은 나 자신의 마음자리와 성찰에 있다는 걸 또한번 깨닫게 되었다.


 

앞부분엔 어떤 내용이 있을까 궁금해서 틈틈이 살펴봤다. 1월은 [삶의 주인으로 살라]는 주제로 가장 먼저 행복과 불행에 대해 이야기한다. ‘행복과 불행은 긴 시간 속에서 순간일 뿐이다며 행복과 불행을 나누는 기준은 무엇인지 묻는다. 인간은 어떤 환경에서도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될지 선택할 수 있어서 나치 수용소 같은 극한 상황 속에서도 내면의 자유를 유지할 수 있다고 말한다. 2[평탄한 삶을 위해]에서 듣기경청에 대해 말하는데 듣기는 귀로 하지만 경청은 마음으로 한다면서 듣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철학사에 있어 중요한 궤적을 남긴 철학자의 책을 읽다 보면 종종 좌절을 겪곤 한다. 내가 분명 책을 집중해서읽고 있건만 도무지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조차 없는, 귀신 씨나락까먹는 소리 같을 때, 읽는 걸 포기하고 싶어진다. 내가 무지하다는 건 알았지만 그럼에도 나의 무지를 확인하는 순간을 맞닥뜨리면 가장 먼저 나 자신에게 실망하게 된다. 그러면 안되겠지만 자존감이 뚝뚝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기분이랄까?


 

하지만 <하루 365일 붓다와 마음공부>는 어느 한 구절도 복잡하거나 난해하지 않았다. 읽으면 쉽게 이해되는 글, 문득 생각나 다시 읽으면 그날의 상황과 마음에 따라 의미가 더 깊어지는 글이었다. 매일, 한 꼭지씩, 천천히 읽으면서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는 책이다. 다만 살짝, 아쉬운 점을 하나 꼽자면 본문의 한자가 너무 작다. 필사를 하려면 작은 한자가 보이지 않아 사진으로 찍어 확대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지만...어쩌면 이것도 내가 한자에 무지한 때문일수도 있겠다. 삶이 불안하고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이 짙은 안개속이라고 생각된다면 조금씩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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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사람들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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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공유하던 아내가 세상을 떠났다. 그에게 남은 것은 오직 사랑하는 아내를 따라가는 것뿐. 마지막 단계만 거치면 그의 목적은 달성이 되는데 그것이 매번 무산되고 만다. 바로 이웃 때문에. 시도 때도 없이 들이닥치고 걸핏하면 도움을 요청하고 대중없이 친근함을 드러내며 멋대로 성큼성큼 다가서는 이웃들. 예의범절이라고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고 시끄럽고 제멋대로인 이웃으로 인해 닫혔던 그의 마음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한다. 고집불통에 까칠함을 더한 남자 오베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났다. 스웨덴 특유의 유머와 감동이 어우러진 영화를 남편과 함께 보는 내내 웃다가 울다가를 반복했다. 사실 <오베라는 남자>의 동명원작소설이 이미 출간되었다는 걸 알았지만 읽지 않고 패스했던 터였다. “죽지 않으려면 죽을 만큼 버텨야 돼라며 오베를 위로하던 아내의 대사가 내게 결정타였다. “그래, 이건 책도 봐야겠어!”


 

책으로 만난 오베도 역시 좋았다. 영화의 감동과 여운을 책으로 이어달리기하듯 즐길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은데 <오베라는 남자>는 절묘하게 그 조합이 맞아떨어진 작품이었다.




 

창밖으로 화려한 불꽃놀이가 펼쳐지는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토끼. 그 옆에 놓인 피자 박스와 와인 한 잔. ? 이 토끼, 토끼가 아닌거 아냐? <불안한 사람들>, 제목만 보고는 고집불통 까칠남 오베를 연상하지 못했다. 제목 아래 작게 적힌 작가의 이름, 프레데릭 베크만을 보고서야 오베의 작가라는 걸 알아차렸다. 프레데릭 베크만의 신간이 출간되었다는 것을.


 

은행 강도. 인질극. 아파트를 급습하려는 경찰들로 가득한 계단. 이 지경에 다다르기까지는 수월했다. 생각보다 훨씬 수월했다. 정말 한심한 발상 하나만 있으면 됐다. - 15.


 

책의 시작. 첫 문장. 첫 문단. 단 세 줄의 문장으로 단박에 호기심을 끌어당겼다. 은행 강도와 인질극, 이건 영화에서 자주 봤던 레퍼토리니까 패스. 아파트? 강도가 아파트로 도주했나? 그럴수도 있겠다 싶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신경에 거슬리는 두 개의 단어. ‘한심한 발상’. 이건 또 뭐지?


 

부모로서 제일 끔찍한 게 뭔지 아니? 최악의 순간을 기준으로 평가받는다는 거야. 백만 번 잘해도 한 번 잘못하면 공원에서 아이가 그네에 머리를 맞았을 때 핸드폰을 들여다본 부모로 영원히 낙인이 찍히지. 며칠 동안 아이한테서 눈을 뗀 적이 없어도 문자 메시지 하나 확인한 순간 그동안의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은 없던 일이 돼. 어렸을 때 그네에 머리를 맞지 않았다고 해서 상담을 받는 사람은 없잖아. 부모는 항상 실수에 의해 규정이 되지. - 45


 

사건은 그리 크지도 않고 너무 작지도 않은 조용하고 평화로운 도시에서 일어났다. 새해를 이틀 앞두고 은행에 강도가 들이닥쳤다. 손에 권총을 들고. 이쯤되면 은행 안의 모든 사람이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고 은행원들은 혼비백산 하는 것이 정상적인 반응인데, 그렇지 않았다. 강도를 처음 맞닥뜨린 은행원이 그에게 장난이냐고 외칠만큼. 사실 강도가 타겟으로 삼은 은행은 앙코 없는 찐빵처럼 현금이 없는 은행이었다. 그런데 이걸 은행 강도가 몰랐던 것. ‘은행 강도가 되지 못한 은행 강도는 은행이라고 볼 수 없는 은행 안으로 들어가 권총을 들이대며 자신의 방문 목적을 선포하면서 쪽지를 내밀었다


 

나는 강도다! 65백 크로나 내놔!” 68


 

권총을 들고 은행에 침입했으면 어마어마한 돈을 쓸어가든지 65백 크로나? 우리 원화로 환산하면 고작 86만원이 넘는 돈 때문에 강도짓을 한다? 이 강도 어설퍼도 너무 어설프다.


 

어른이 되는 것이 끔찍한 이유는 아무도 우리에게 관심이 없고, 앞으로는 스스로 모든 일을 처리하고 세상이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파악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어른이 될 준비가 되지 않았다. 누군가가 진작 우리를 말렸어야 했다 - 75쪽


 

은행 강도 사건이 될 이야기는 강도의 예습 부족으로 인해 전혀 다른 사건으로 이어진다. 경찰이 출동하자 강도가 놀라서 도망친다는 게 길건너 아파트로 뛰어 들어가는데. 마침 그 아파트에는 매물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 버글대고 있었는데 그 속으로 총을 든 은행 강도가 들어가면서 상황은 그 순간부터 인질극이 되어 버린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녀는 마음속 저 깊은 곳에서는 거의 모두가 같은 질문을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잘하고 있을까? 나는 누군가에게 자부심을 선사하고 있을까? 나는 사회에서 쓸모 있는 사람일까? 나는 일을 잘할까? 마음이 넓고 배려심이 있을까? 괜찮은 녀석일까? 나와 친구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지금까지 좋은 부모였을까? 나는 좋은 사람일까? - 156


 

이후 상황은 인질극을 다룬 여느 영화처럼 흘러간다. 경찰이 건물을 물 샐 틈 없이 에워싸고 기자들이 출동해서 TV로 보도가 되기 시작했다. 결국 은행 강도는 항복하고 인질들을 풀어준다. 그리고 스톡홀름에서 급파된 협상전무가가 마지막으로 은행 강도와 통화를 시도하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대신 들려오는 한 발의 총성. 경찰들이 일제히 아파트를 습격했지만 안에는 아무도 없고 거실 바닥은 온통 피투성이. 모든 창문, 모든 출입구가 봉쇄되었는데 은행 강도는 도대체 어디로 도주한 것일까.


 

선배는 경찰의 가장 중요한 원칙이 옳은 일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후배는 일을 옳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35


 

이 사건의 수사를 고참과 신입 경관이 맡게 된다. 마시는 커피에서 사건을 해결하는 방식까지 모든 것이 정반대인 두 경찰. 그들은 사건이 벌어진 아파트에 있던 이들을 한명씩 불러 조사를 해나간다. 그 과정에서 밝혀진 것. 모든 것에서 정반대인 두 경관이 바로 부자간이라는 거였다.


 

어깨가 되어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니까. 어렸을 때는 그 위에 앉아서 세상을 볼 수 있게, 나이를 먹으면 그걸 밟고 서서 구름을 향해 손을 뻗을 수 있게, 그리고 가끔 휘청거리고 불안해지면 거기에 기댈 수 있게, (……) 내가 너무 빨리 걸어서 네가 달려와 내 손을 잡았다고, 그때가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다고 무슨 수로 설명할 수 있을까. - 46.


 

고참 경관과 젊은 경관, 아버지와 아들. 경찰의 길을 걷고 있다는 것 외에 어쩐지 거리감이 느껴지는 저 부자간은, 애써 감추려 하지만 그들의 가족에는 대체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일까. 그리고 은행 강도는 대체 누구이고 무엇 때문에 강도를 계획하게 된 것일까.


 

누군들 모를까. 중독자들이 약물에 중독됐다면 그들의 가족은 희망에 중독됐다. 희망을 붙잡고 매달린다. 그녀의 아버지는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오면 항상 그녀이길 바라지만, 그녀의 남동생은 항상 이번에야말로 누나의 부고를 알리는 전화일 거라고 확신하기 때문에 겁에 질린다. 자기 딸과 누나조차 건사하지 못하다니 무슨 경찰이 그럴까? 자기 피붙이도 건사하지 못하다니 무슨 가족이 그럴까? 목사를 병에 걸리게 하다니 무슨 하나님이 그럴까? 장례식에 불참하다니 무슨 딸이 그럴까? - 292.


 

왜 제목이 불안한 사람들일까.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치고 일정 정도의 불안증은 누구나 갖고 있다. 그것을 밖으로 내비치지 않을 뿐. 저자는 사람들의 그 점에 초점을 맞추어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특별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 알고 보니 저마다 아픔과 상처를 갖고 살아가고 있다는 걸. 그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지만 때론 잘 풀리지 않아 실의에 빠져 실수를 하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 앞에 나타난 어리숙한 은행 강도. 그들의 이야기는 과연 어디로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작년부터 이어진 코로나로 우리는 자유이지만 완전한 자유가 아닌 일상을 보내고 있다. 이럴수가 있나 싶을만큼 등장인물들의 어리숙하고 엉뚱한 행동에 빠져 키득거리면서 읽다보면 생각지도 않게 가슴 한켠에서 욱신거리는 무언가를 느끼게 된다. 유머와 감동을 적절히 배합할 줄 아는, 독자와 밀당할 줄 아는 철저히 '배크만'다운 소설, <불안한 사람>이다.


 

진실. 세상에 진실은 없다. 우리가 우주의 경계에 대해 어찌어찌 알아낸 게 있다면 우주에는 경계가 없다는 것뿐이고, 신에 대해 아는 게 있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뿐이다. 따라서 목사였던 어머니가 가족들에게 요구한 것은 간단했다. 최선을 다하라는 것.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으라는 것.

구할 수 있는 사람을 구하라는 것. - 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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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질문 - 내 안의 두려움을 마주하는 인생의 지혜를 찾아서
다큐멘터리 〈Noble Asks〉 제작팀 외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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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효자는 부모님 돌아가시고 나서 운다고 하더니 딱 내가 그 형국이다. 친정엄마가 돌아가신지 몇 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상실의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부모를 여읜 자식들이 대부분 그렇지 않은가 싶지만 꼭 그렇다고 장담할 순 없다. 일상에 쫓기다가도 문득 멍하니 있거나 생각에 잠길 때 거리에서 다정한 모녀의 모습을 볼 때면 문득문득 후회가 밀려온다. 난 다른 형제에 비해 엄마의 속을 덜 썩였지만 반면에 살가운 딸은 아니었구나. 깨닫는다. 남에게 폐끼치지 않고 자기 할 일만 하면 된다는 생각을 가진 무뚝뚝한 딸. 그게 나였다고.



날 왜 낳았어!

어쩌면 난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의 슬픔의 이유를. 오래전, 사춘기도 모르고 지냈다 싶은 내가 딱 한 번 엄마의 가슴에 날카로운 대못을 박았다. 날 왜 낳았냐고. 물었다. 그때 엄마의 기분이 어땠을까, 얼마나 충격이 컸을지 지금 내가 새삼 느끼고 있다. 아들을 키우면서... 난 알고 있다. 그날의 내 무모한 행동을 생전에 엄마에게 죄송하다고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얼렁뚱땅 넘긴 게 이렇게 한으로 남았다는 것을. 그리고 아직 모르고 있다. 난 누구이고 어떤 사람이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그 길을 찾지 못했다는 것을.



<오래된 질문>은 생물학계의 대석학으로 알려진 과학철학자 데니스 노블 박사가 한국의 사찰을 방문해서 고승들과 나눈 대화를 정리한 책이다. 통도사의 성파 스님, 실상사의 도법스님, 백양사 천진암의 정관 스님, 땅끝 미황사의 금강 스님. 불교를 믿거나 불교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한국을 대표하는 큰스님들이다. 그런데 생물학자가 불교의 스님들과 대체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 ‘내 안의 두려움을 마주하는 인생의 지혜를 찾았을까? 과학과 종교는 극과 극인데 그들의 만남이 과연 순탄했을까? 이런 궁금증이 나로 하여금 책장을 넘기게 만들었다.



중요한 건 쓸데없는 걸 많이 아는 게 아닙니다.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이죠. 모르고 있다는 껄 모르는 것, 그게 가장 큰 병입니다. - 33.(성파)



책은 네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삶은 왜 괴로운가?’ ‘나는 누구인가?’ ‘마음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이 네 개의 대주제 아래 그것을 풀어가기 위한 스님들의 말씀과 데니스 노블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한 꼭지마다 글의 길이는 짧은데 그 속에 핵심을 단번에 꿰뚫는 글이 많았다.



머리는 하늘을 향해 있고 두 발은 땅을 딛고 서 있는 모습으로 생긴 사람이 깨달은 자, 부처다. 밥이 오면 입을 열고 졸음이 오면 눈을 감으며 사는 사람이 깨달은 자, 부처다. 바꿔 말하면 이런 얘기를 하는 거죠. 나와 당신, 우리 모두가 부처다. 인간은 누구나 다 부처다 125(도법)



고통에서 벗어나거나 누가 나를 화나게 한다면 우선 원인을 알아야 하는데 그러자면 사실을 정확하게 직시해야 한다거나 세상은 많은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함께 살아야 하는데 그걸 잊고 따로따로 살기 때문에 인간과 인간이, 인간과 자연이, 제대로 온전히 살아가기 힘든 거라고 짚어준다.



만약 당신이 남과 비교하는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훨씬 자유로워질 것입니다. 내가 보는 현상과 주변 환경들을 온전히,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지혜와 겸손한 마음가짐이 걸림 없는 삶, 자유로운 삶을 만들어줄 것입니다. - 147(정관)



과학자와 스님들의 대화가 겉돌지는 않을까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데니스 노블이 원효의 [금강삼매경론]의 관점을 보여주는 시의 원문을 해석하기 위해 한자를 배울 만큼 동양사상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인지 그들의 대화는 때론 굳이 통역을 거치지 않아도 통했다고 한다. 마치 염화미소의 부처님과 가섭처럼.



참선을 하면 우리의 삶이 어떻게 달라질까요? (……) 참선은 삶을 다르게 인식하는 방법입니다.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환영에서 벗어나고, 헛된 망상들이 걷히면서, 자연스럽게 현재로 초점이 맞춰지는 거지요. (……) 비로소 내가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게 됩니다. - 186, (금강)



마음편히 사찰을 자주 찾을 수도 없는 상황이 일 년 넘게 이어져 오고 있다. 사람에게 오른팔이 있으면 왼팔이 있듯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세상인데 요즘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는 예전처럼 자유롭지 못한 게 사실이다. 시원하게 소통되지 못하고 어딘가 막힌 듯 답답함을 느끼는 날이 많아지면서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일까 의문이 들곤 했다. <오래된 질문>을 틈틈이 조금씩 마음 내키는 대로 손에 집히는 대로 읽어 나갔다. 몇 번을 읽어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 결국 덮어버리고 마는 책보다 <오래된 질문>은 짧지만 금방 공감할 수 있고 그러면서도 몇 번이고 곱씹어서 생각해볼 수 있는 글이 많아서 좋았다. 그때그때 연필로, 형광펜으로 줄을 긋고, 포스트잇과 플래그를 붙여 가며 메모를 했다. 곳곳에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주는 책, 필사하면서 생각을 가다듬고 싶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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