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 1 고양이 시리즈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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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고양이에게 자꾸 시선이 머문다.


 

코로나로 인해 오랫동안 지속해오던 독서모임이 위기를 맞았다. 온라인 영상토론이 낯설어서 어쩔 수 없이 잠정중단 된 모임이 있고, 직접 만나는 것보다는 못하지만 온라인으로 이어가는 모임도 있다. 온라인으로 모임을 하다 보면 참가한 이의 주변 상황을 자연스레 접하게 되는데 느낌이 색다르다. 한참 토론이 진행될 때 날 좀 보라며 애교부리듯 칭얼대는 반려동물의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때론 자신도 우리의 토론에 할 얘기가 있다는 듯 서슴없이 카메라 앞으로 나서는 모습을 보면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가곤 한다. 또 온라인 필사 모임에선 단톡으로 진행상황을 각자 사진으로 인증하는데 이때 종종 고양이가 등장한다. 어이, 집사! 오늘은 여기까지! 하듯 앞발로 책을 덮어버리기도 하고 필사하지 말고 나랑 놀라달라는 듯 아예 책과 노트 위에 앉거나 엎드리는 고양이를 보면 문득 궁금해진다. 쟤들, 혹시 글자 읽을 줄 아는 거 아냐?


 

뫼비우스의 띠를 옮겨놓은 듯 계단과 건물이 이리저리 얽혀있는 몽환적인 분위기를 한층 더해주는 존재가 있으니, 바로 도도하고 당당하게 앉아있는 고양이다. <문명>은 표지에서부터 끝났다고 해야 할까? 표지를 넘기면 얼마나 많은 수수께끼를 만나게 될지 무수한 의문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거기에 저자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라니. 읽지 않을 수 없다.


 

글을 읽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더 바랄 게 없을 거야. 종이에 촘촘히 박혀 단어가 되고 문장이 되는 해바라기 씨만 한 글자들의 뜻을 알 수 있다면. 줄줄이 이어지는 글자들에 담긴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다면 살맛이 나겠지. - 13.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글을 읽을 수만 있다면 좋겠다해서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문자를 익히지 못한 이의 넋두리인가 했는데 천만의 말씀. 바로 세상에 눈뜬 특별한 고양이다.


 

이야기되지 않는 모든 것은 잊힌다. - 14


 

시종일관 당당하게 라고 일컫는 건 바로 흰털과 검은 털이 섞인 암고양이 바스테트다. ‘지나친 완벽주의자여서 단점마저 매력으로 바꿔버리는 이 고양이는 자신이 스스로 고양이라는 종의 한계, 암컷이라는 한계를 뛰어넘었다고 한다. 그리고 밝힌다. 자신에게는 원대한 꿈이 있다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이 서로 소통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라고. 당돌함 그 자체인 고양이 눈에 비친 인간은 형편없는 외모를 한 나약한 존재였다. “이러니 어떻게 내가 인간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을 수 있겠어?(24)” 인간에게 집사로서의 임무가 주어진 게 바로 이때부터였나보다.


 

답답한 인간들 속에서 평이한 일상을 보내던 바스테트는 어느 날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목격한다. 수염 달린 인간이 수염 없는 인간을 죽이고 서로 맞붙어 싸우는 모습. 그리고 알 수 없는 전염병이 인간 세계에 퍼지면서 도시엔 죽음의 기운이 가득하지만 반대로 세력을 넓혀가는 동물이 나타났으니, 바로 쥐였다.


 

난 쥐가 싫어. 그렇지만 그들의 공격성과 무서운 적응력, 그리고 번식력이 경쟁 관계의 다른 종들을 압도한다는 사실은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어. - 29

 


바스테트는 건너편 집으로 이사 온 샴고양이 피타고라스를 위험에서 구해준 것을 계기로 둘은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피타고라스에겐 특이한 게 있었는데 바로 이마 위에 구멍이 하나 있다는 것. <3의 눈>이라 일컫는 그것은 뇌와 컴퓨터를 연결할 수 있는 USB 단자였는데 피타고라스를 통해 바스테트는 인간세계에 대해 알게 된다. 그런 어느날 인간들의 습격으로 아들이 실종되자 피타고라스와 함께 아들을 찾아나선다.


 

볼로뉴숲의 고양이들을 만난 바스테트는 쥐들이 확산되는 걸 막기 위해 그들과 시뉴섬에 진지를 구축하는데 쥐들의 공격을 받는다. 하지만 바스테트의 기발한 전술로 쥐를 물리치고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지만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또다시 쥐들이 무리 지어 습격했는데 이전보다 강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공격이 더 포악하고 거세졌다. 알 수 없는 불안감이 현실로 다가왔음을 느낀 피타고라스는 시뉴섬을 떠나 시테섬으로 이동할 것을 강조한다. 그리고 쪽배 몇 척에 나누어 타고 이동하게 되는데...


 

이제 한 시대가 막을 내렸다. 피타고라스의 말대로 우리는 새로운 땅에서 새로운 미래를 다시 일구어야 한다. -51.

 


시테섬에서 다시 공동체를 이끌며 얼마간은 특별한 것 없는 일상을 보낸다. 하지만 또다시 쥐 군단의 공격이 시작되자 거대한 고양이과 동물인 사자 한니발의 활약으로 쥐들을 해치우고 포로를 잡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그 포로를 통해 쥐들의 새로운 우두머리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덩치는 크지 않고 하얀 털에 빨간 눈의 흰 쥐인데 이마 꼭대기에 특이한 구멍이 있어서 거기로 방대한 지식을 갖게 됐다고. 바스테트와 피타고라스는 알게 된다. 적진의 우두머리 역시 제3의 눈을 가졌으며 그의 이름은 바로 티무르라는 것을...

 


인간의 실험을 통해 방대한 지식을 갖게 된 동물들의 이야기는 그동안 영화나 문학작품으로 여러번 소개가 됐다. 그 속에서 인간은 눈부신 문명을 일구었지만 언제나 자신들의 욕망을 폭력성을 다스리지 못하고 스스로 파멸의 길을 걷게 된다. 실험의 도구였던 동물의 지배를 받으면서. 여기서 <문명>은 그동안의 디스토피아 세계를 다룬 작품과 차별성을 드러낸다. 인간은 모두 사라져야 한다는 측과 인간과 지식을 공유하고 협동해야 한다는 측이 존재한다. 이런 가운데 바스테트는 과연 자신의 목표인 세상의 모든 종이 소통하고 협력하여 새로운 문명을 건설할 수 있을 것인가.

 


여태 가보지 않은 길을 가겠다는 결정에는 위험이 따르게 마련이야.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는 건 익숙한 길을 가는 것보다 당연히 위험하지. - 171.

 


베르베르 소설의 특징이자 장점은 문장이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것. <문명> 역시 무리 없이 책장이 넘어가는 걸 경험할 수 있다. 또한 작가가 예상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전세계가 코로나로 인해 전염병과의 사투를 벌이는 중이어선지 <문명>을 읽으면서 자꾸만 우리 인간의 행태를 돌아보게 했다. 3의 눈까지는 아니어도 언젠가 인간처럼 말을 하는 동물이 나타나면 어떻게 될까 상상해보게 됐다. 알고보니 <문명>은 베르베르의 <고양이>에 이어지는 작품이었다. <고양이>를 읽지 않아도 소설을 이해하는데 크게 지장은 없지만 그래도 <고양이>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문명>을 거친 3부작으로 이어진다니 늦게라도 <고양이>를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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