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면 삼키고 쓰면 좀 뱉을게요 -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우는 인생
김혜원 지음 / 유영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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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잠정중단 상태이지만 10년 넘게 독서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모임 초창기 때부터 함께 해온 멤버가 대부분이고 간간이 새 멤버가 참석하면 그때마다 우린 자기소개를 하곤 한다. 새 멤버가 낯선 모임에 적응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해서 거치는 과정이지만 의문이 들곤 한다. 짧으면 수초, 길면 1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에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하고 자신을 소개한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


 

나는 어떤 사람일까. 중년을 훌쩍 넘긴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때론 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나조차 알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말하는 나실제 나는 같은 인물일까?


 

복불복 사탕 뽑기가 그려진 책 <달면 삼키고 쓰면 좀 뱉을게요>의 첫인상, 제목이 이렇게 발칙해도 돼?였다. ‘이게 바로 나야!’라고 당돌하게 외치는 전형적인 20대 청춘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나와는 접점이 없을 거라고 스킵하려던 차에 눈길에 꽂힌 부제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지는 인생’. 입에 넣었을 때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건 누구나 당연히 하는 반응인데 그걸 남 눈치 보지 않고 가능해?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채울 수 있나? 궁금했다. 저자가 이렇게 마음먹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결심한 이후로 일상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일단 결심부터 했다. ‘아무거나로 인생을 낭비하지 않기, 한 번 사는 인생 아무거나 말고 좋아하는 것으로 채우며 살아봐야지 11

 


한동안 내가 읽었던 책이 주로 어렵고 난해한 내용이 많아서 책을 읽다보면 자연히 미간에 인상을 잔뜩 쓰곤 했는데 이 책은 일상의 이야기가 평이한 문체로 서술되어 있었다. 300쪽이 안되는 책을 두 시간 가량 읽으면서 어느새 자꾸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저자의 일상처럼 나 역시 아무거나를 자주 입에 올렸다. 점심 메뉴를 고를 때 고기만 아니면 뭐든, 쇼핑도 유행보다 무난한 스타일, 음악 역시 최신음악보다 듣기 편한 것... 주변 분위기를 보고, 그들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으면서 도드라지지 않는 걸 선택하는 일상이 되풀이되었다. 그러다 저자는 낯선 곳을 여행하던 중에 문득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깨달았다면 난 지지리도 말 안 듣는 자식을 보면서 ~~구 소용없다를 읊조렸다.


 

며칠 전 류시화 시인이 올린 글이 떠오른다. 세상은 싫어하는 것으로 자신을 정의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것으로 자신을 정의하는 사람 둘로 나뉜다고. 우리의 에너지는 우리가 집중하는 곳으로 흐르기 마련이니 기왕이면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며 살자는 이야기였다. -119쪽


 

나도 당연히 좋아하는 게 있는데. 하지만 내게 전업주부라는 위치가 엄마라는 명찰이, 나보다 가족을 우선시하도록 매뉴얼 되어 있었다. 저자는 일로 만난 사이가 어려웠다고 하는데 난 아이가 같은 학교에 다닌다는 이유로 만난 학부모들이 불편했다. 그들의 자식과 내 자식이 엄연히 다른데 그들의 자식자랑에 마냥 박수쳐주기도 솔직히 속이 상했다. 그리고 그런 마음을 품는 내가 못나보였다.


 

애정을 기반으로 한 관계만을 맺어 오다가 이해관계로 얽힌 사람들을 처음 사귀게 되었을 때, 나는 혼란스러웠다. 그들과 잘 지내고는 싶은데 그러기 위해서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을 알 수가 없었다.- 124

 


여러분은 자신의 취미생활을 위해 돈을 어느 정도까지 쓸 수 있어요? 자신의 소득과 상관없이사람들에게 물은 적이 있다. 사실 그건 나 자신에게 묻는 질문이기도 했다. 오롯이 나만을 위한 지출. 미용실에서 머리를 매만지고 옷차림을 유행하는 스타일로 바꾸고 누구나 한두 개쯤 있다는 명품백을 장만하는 일련의 과정을 모두 건너뛰고 살았고 그게 내 스타일이라고 여겼던 것이 실은 초라한 나를 숨기려는 건 아니었을까.


 

좋아하는 사람에게 쓰는 돈을 아끼게 될 때 내가 가난해졌음을 실감한다.- 130.

 


이전과 달라진 나를 시도하는 건 솔직히 나조차 두렵다. 내 생각, 느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면 어떻게 될까? 쟤 갑자기 왜 저래? 뭐 잘못 먹었나, 그러겠지. 분명. 모험을 하기엔 늦은 나이 같지만 어쩌면 모험을 할 수 있는 마지막 나이가 아닐까 싶다. 입대를 앞두고 7번 국도를 걸었다는 청년처럼 거창하지 않지만 새로운 시도...해봐야겠다. 더 늦기 전에.

 


세상에는 내비게이션을 끄고 달려야만 닿을 수 있는 장소도 있다. -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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