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사람들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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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공유하던 아내가 세상을 떠났다. 그에게 남은 것은 오직 사랑하는 아내를 따라가는 것뿐. 마지막 단계만 거치면 그의 목적은 달성이 되는데 그것이 매번 무산되고 만다. 바로 이웃 때문에. 시도 때도 없이 들이닥치고 걸핏하면 도움을 요청하고 대중없이 친근함을 드러내며 멋대로 성큼성큼 다가서는 이웃들. 예의범절이라고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고 시끄럽고 제멋대로인 이웃으로 인해 닫혔던 그의 마음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한다. 고집불통에 까칠함을 더한 남자 오베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났다. 스웨덴 특유의 유머와 감동이 어우러진 영화를 남편과 함께 보는 내내 웃다가 울다가를 반복했다. 사실 <오베라는 남자>의 동명원작소설이 이미 출간되었다는 걸 알았지만 읽지 않고 패스했던 터였다. “죽지 않으려면 죽을 만큼 버텨야 돼라며 오베를 위로하던 아내의 대사가 내게 결정타였다. “그래, 이건 책도 봐야겠어!”


 

책으로 만난 오베도 역시 좋았다. 영화의 감동과 여운을 책으로 이어달리기하듯 즐길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은데 <오베라는 남자>는 절묘하게 그 조합이 맞아떨어진 작품이었다.




 

창밖으로 화려한 불꽃놀이가 펼쳐지는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토끼. 그 옆에 놓인 피자 박스와 와인 한 잔. ? 이 토끼, 토끼가 아닌거 아냐? <불안한 사람들>, 제목만 보고는 고집불통 까칠남 오베를 연상하지 못했다. 제목 아래 작게 적힌 작가의 이름, 프레데릭 베크만을 보고서야 오베의 작가라는 걸 알아차렸다. 프레데릭 베크만의 신간이 출간되었다는 것을.


 

은행 강도. 인질극. 아파트를 급습하려는 경찰들로 가득한 계단. 이 지경에 다다르기까지는 수월했다. 생각보다 훨씬 수월했다. 정말 한심한 발상 하나만 있으면 됐다. - 15.


 

책의 시작. 첫 문장. 첫 문단. 단 세 줄의 문장으로 단박에 호기심을 끌어당겼다. 은행 강도와 인질극, 이건 영화에서 자주 봤던 레퍼토리니까 패스. 아파트? 강도가 아파트로 도주했나? 그럴수도 있겠다 싶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신경에 거슬리는 두 개의 단어. ‘한심한 발상’. 이건 또 뭐지?


 

부모로서 제일 끔찍한 게 뭔지 아니? 최악의 순간을 기준으로 평가받는다는 거야. 백만 번 잘해도 한 번 잘못하면 공원에서 아이가 그네에 머리를 맞았을 때 핸드폰을 들여다본 부모로 영원히 낙인이 찍히지. 며칠 동안 아이한테서 눈을 뗀 적이 없어도 문자 메시지 하나 확인한 순간 그동안의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은 없던 일이 돼. 어렸을 때 그네에 머리를 맞지 않았다고 해서 상담을 받는 사람은 없잖아. 부모는 항상 실수에 의해 규정이 되지. - 45


 

사건은 그리 크지도 않고 너무 작지도 않은 조용하고 평화로운 도시에서 일어났다. 새해를 이틀 앞두고 은행에 강도가 들이닥쳤다. 손에 권총을 들고. 이쯤되면 은행 안의 모든 사람이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고 은행원들은 혼비백산 하는 것이 정상적인 반응인데, 그렇지 않았다. 강도를 처음 맞닥뜨린 은행원이 그에게 장난이냐고 외칠만큼. 사실 강도가 타겟으로 삼은 은행은 앙코 없는 찐빵처럼 현금이 없는 은행이었다. 그런데 이걸 은행 강도가 몰랐던 것. ‘은행 강도가 되지 못한 은행 강도는 은행이라고 볼 수 없는 은행 안으로 들어가 권총을 들이대며 자신의 방문 목적을 선포하면서 쪽지를 내밀었다


 

나는 강도다! 65백 크로나 내놔!” 68


 

권총을 들고 은행에 침입했으면 어마어마한 돈을 쓸어가든지 65백 크로나? 우리 원화로 환산하면 고작 86만원이 넘는 돈 때문에 강도짓을 한다? 이 강도 어설퍼도 너무 어설프다.


 

어른이 되는 것이 끔찍한 이유는 아무도 우리에게 관심이 없고, 앞으로는 스스로 모든 일을 처리하고 세상이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파악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어른이 될 준비가 되지 않았다. 누군가가 진작 우리를 말렸어야 했다 - 75쪽


 

은행 강도 사건이 될 이야기는 강도의 예습 부족으로 인해 전혀 다른 사건으로 이어진다. 경찰이 출동하자 강도가 놀라서 도망친다는 게 길건너 아파트로 뛰어 들어가는데. 마침 그 아파트에는 매물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 버글대고 있었는데 그 속으로 총을 든 은행 강도가 들어가면서 상황은 그 순간부터 인질극이 되어 버린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녀는 마음속 저 깊은 곳에서는 거의 모두가 같은 질문을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잘하고 있을까? 나는 누군가에게 자부심을 선사하고 있을까? 나는 사회에서 쓸모 있는 사람일까? 나는 일을 잘할까? 마음이 넓고 배려심이 있을까? 괜찮은 녀석일까? 나와 친구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지금까지 좋은 부모였을까? 나는 좋은 사람일까? - 156


 

이후 상황은 인질극을 다룬 여느 영화처럼 흘러간다. 경찰이 건물을 물 샐 틈 없이 에워싸고 기자들이 출동해서 TV로 보도가 되기 시작했다. 결국 은행 강도는 항복하고 인질들을 풀어준다. 그리고 스톡홀름에서 급파된 협상전무가가 마지막으로 은행 강도와 통화를 시도하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대신 들려오는 한 발의 총성. 경찰들이 일제히 아파트를 습격했지만 안에는 아무도 없고 거실 바닥은 온통 피투성이. 모든 창문, 모든 출입구가 봉쇄되었는데 은행 강도는 도대체 어디로 도주한 것일까.


 

선배는 경찰의 가장 중요한 원칙이 옳은 일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후배는 일을 옳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35


 

이 사건의 수사를 고참과 신입 경관이 맡게 된다. 마시는 커피에서 사건을 해결하는 방식까지 모든 것이 정반대인 두 경찰. 그들은 사건이 벌어진 아파트에 있던 이들을 한명씩 불러 조사를 해나간다. 그 과정에서 밝혀진 것. 모든 것에서 정반대인 두 경관이 바로 부자간이라는 거였다.


 

어깨가 되어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니까. 어렸을 때는 그 위에 앉아서 세상을 볼 수 있게, 나이를 먹으면 그걸 밟고 서서 구름을 향해 손을 뻗을 수 있게, 그리고 가끔 휘청거리고 불안해지면 거기에 기댈 수 있게, (……) 내가 너무 빨리 걸어서 네가 달려와 내 손을 잡았다고, 그때가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다고 무슨 수로 설명할 수 있을까. - 46.


 

고참 경관과 젊은 경관, 아버지와 아들. 경찰의 길을 걷고 있다는 것 외에 어쩐지 거리감이 느껴지는 저 부자간은, 애써 감추려 하지만 그들의 가족에는 대체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일까. 그리고 은행 강도는 대체 누구이고 무엇 때문에 강도를 계획하게 된 것일까.


 

누군들 모를까. 중독자들이 약물에 중독됐다면 그들의 가족은 희망에 중독됐다. 희망을 붙잡고 매달린다. 그녀의 아버지는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오면 항상 그녀이길 바라지만, 그녀의 남동생은 항상 이번에야말로 누나의 부고를 알리는 전화일 거라고 확신하기 때문에 겁에 질린다. 자기 딸과 누나조차 건사하지 못하다니 무슨 경찰이 그럴까? 자기 피붙이도 건사하지 못하다니 무슨 가족이 그럴까? 목사를 병에 걸리게 하다니 무슨 하나님이 그럴까? 장례식에 불참하다니 무슨 딸이 그럴까? - 292.


 

왜 제목이 불안한 사람들일까.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치고 일정 정도의 불안증은 누구나 갖고 있다. 그것을 밖으로 내비치지 않을 뿐. 저자는 사람들의 그 점에 초점을 맞추어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특별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 알고 보니 저마다 아픔과 상처를 갖고 살아가고 있다는 걸. 그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지만 때론 잘 풀리지 않아 실의에 빠져 실수를 하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 앞에 나타난 어리숙한 은행 강도. 그들의 이야기는 과연 어디로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작년부터 이어진 코로나로 우리는 자유이지만 완전한 자유가 아닌 일상을 보내고 있다. 이럴수가 있나 싶을만큼 등장인물들의 어리숙하고 엉뚱한 행동에 빠져 키득거리면서 읽다보면 생각지도 않게 가슴 한켠에서 욱신거리는 무언가를 느끼게 된다. 유머와 감동을 적절히 배합할 줄 아는, 독자와 밀당할 줄 아는 철저히 '배크만'다운 소설, <불안한 사람>이다.


 

진실. 세상에 진실은 없다. 우리가 우주의 경계에 대해 어찌어찌 알아낸 게 있다면 우주에는 경계가 없다는 것뿐이고, 신에 대해 아는 게 있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뿐이다. 따라서 목사였던 어머니가 가족들에게 요구한 것은 간단했다. 최선을 다하라는 것.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으라는 것.

구할 수 있는 사람을 구하라는 것. - 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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