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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편견
손홍규 지음 / 교유서가 / 2015년 5월
평점 :
이런 부조화라니! <다정한 편견>을 처음 보자마자 든 생각이다. 이게 말이 돼? 편견은 ‘공정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이니까 (편견은) 가지면 안 되는 것이고, 다른 이보다 (편견이) 특히 심하거나 (편견에) 빠지면 곤란하다고 말을 한다. 그런데 ‘정이 많다’는 ‘다정하다’와 이 ‘편견’을 한데 묶어놓다니. 거기다 책 제목으로?
손홍규. 지금까지 그의 소설이 몇 권 출간되었지만 읽어보진 않았다. 그의 작품에서 일종의 ‘끌림’, ‘인연’이란 걸 느끼지 못해서인데 이번은 달랐다. 왠지 어울리지 않는 단어의 조합으로 된 <다정한 편견>은 고개를 갸웃하게 하면서도 특별히 의도하는 것이라도 있나? 의문과 호기심이 연거푸 일었다.
책은 약 두 페이지의 짧은 글들로 이루어진 산문집인데 저자가 2008년부터 3여 년 간 일간지에 연재한 글 중에서 일부를 다시 엮어서 출간했다고 한다. 해당 일간지를 구독하지 않은 탓에 어떤 글을 쓰는 작가일까 궁금해서 얼른 책장을 펼쳤다. 그러다 제일 처음 소개된 글 ‘어머니의 잠든 얼굴’에서 무언가가 뭉클하고 밀려올라왔다.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매일 고단한 일과를 보냈을 어머니의 얼굴을 우연한 기회에 떠올리는 장면에서 불현듯 친정엄마의 주름진 얼굴이 겹쳐보였다.
어린 시절 나를 매혹시킨 풍경들에는 예외 없이 공통점이 있다. 그러니까 그 풍경들 속에는 반드시 누군가 있었다. -18쪽.
가족과 고향, 어린 시절과 지금 현재의 일상 속 이야기들을 무심한듯 담담하게, 한없이 따뜻하고 다정하게 말을 건넨다. 가난한 시절, 밥 한 그릇 내어놓으며 싸목싸목’ 먹으라고 하던 것이 가장 큰 대접이었던 기억 때문에 지금도 ‘싸목싸목’이란 말만 들어도 미리 배가 부르다며 정서적인 풍요를 이야기했고 물이 불어난 개천을 건너다 흰 고무신을 잃어버린 저자는 밤늦게 집에 돌아가서 댓돌에 올려진 흰 고무신을 보고 가슴 속의 별을 이야기했다.
나는 오래도록 마당 한가운데 서서 구름 걷힌 밤하늘에 쏟아질 듯 촘촘히 박혀 빛나는 벽들을 사심없이 올려다보았다. 이따금 별은 그런 식으로 우리 가슴에 들어오는가 보다. -45쪽.
과거에서 미래로 시간이 흐를지언정 그 시간을 살아내는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인간이 스스로 변하기 위해 고민하고 깨닫는 성찰의 시간을 갖지 않는다는 말인데 저자의 글 속에서도 그런 대목들이 곳곳에서 엿보였다. 어릴 때는 어머니의 고단함은 생각지도 않고 어차피 빨래할 거란 생각에 옷을 함부로 입으며 더럽혔는데 지금 돌아보니 더러워진 물에는 괴물이 산다는 걸 알게 됐다고 하면서 ‘타락의 속도’와 ‘인간다움’에 대해 꼬집는다. 몸에 장애를 갖고 태어난 고향의 형이 누구보다 세상을 열심히, 성실하게 살아가는 모습에 저자는 그만큼 완전한 영혼을 본 일이 없다고 털어놓으면서 ‘영혼의 존재’가 갖는 의미를 되짚는다.
다음 생에서 불안에 시달리며 살고 싶지 않다면 오래 기다릴 필요가 없다. 바로 지금부터 다음 생이 시작되는 법이니까. 이번 생은 틀렸어. 다음 생에는 잘 살아볼 거야. 이렇게 투덜대던 벗이여 다음 생은 벌써 시작되었다 - 81쪽.
‘제목이 왜 <다정한 편견>일까’ 했던 의문은 책의 후반부에 이르러 풀렸다. 가난했지만 추억으로 남아있는 날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힘겨웠지만 그래도 희망을 떠올렸던 날들, 왜 책을 읽고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했는지 말하던 저자가 우리 사회의 어두운 그늘로 시선을 돌리면서 때론 손이 베일 것처럼 날카롭게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그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 부조리와 거짓으로 점철된 사회, 여기저기에서 끊임없이 폭력이 자행되고 까마득한 벼랑 끝으로 내몰린 이들의 처절한 외침을 더 이상 외면하지 말자고 말한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세상에서 가장 작은 해방구인 그곳에서 그이는 얼마나 자주 저 문을 열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뇌하며 망설였을까. 내가 올라갔어야 할 그곳에 대신 가준 그이는 얼마나 두려웠을까. - 213쪽.
작은아이는 일주일에 두 번 일기쓰기 숙제를 한다. 선생님께서 일기주제를 정해놓을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자유롭게 써 가는데 아이는 자유주제를 더 어려워한다. “엄마, 뭘 써야 해?” 난감해한다. 저자는 어떠했을까. 글을 쓰는 작가이니 평범한 사람과는 분명 다를 거라 생각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특별히 도드라지는 인상적인 부분을 포착하고 그 속에 자신의 생각과 가치관을 담아 짧은 글로 남기는 것, 결코 쉽지 않다. 그는 아마 이 글들을 쓰는 동안 평소보다 더 다정하고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오래 사색하고 숙고하는 시간을 가졌으리라. 금방 읽을 수 있을 거라고 여겼는데 막상 그의 글을 접하고 나니 읽어내는데 평소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시간만큼 내 속에 모두 담아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지나고보니 그러지 못한 것 같다. 그것이 내 한계이겠지만. 그의 다른 글, 이야기들이 궁금해지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