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모토 소위, 명성황후를 찌르다 - 120년 만에 밝혀지는 일본 군부 개입의 진상
이종각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5년 6월
평점 :
품절


말말말. 요즘 일간지나 인터넷으로 보도된 기사를 보면 의미를 상실한 말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언행불일치, 막말정치를 일삼는 정치인들을 보면 우리의 민주주의는 언제쯤 진정한 모습으로 자리매김할지 의문이 드는데요. 무엇보다 가장 심각한 것이 바로 일본의 행태지요. 우선 군함도라 불리는 일본 나가사키의 하시마섬. 수많은 조선인을 비롯해 여러 나라의 국민들이 강제로 끌려와 가혹하게 노역과 착취를 당했던, 참혹한 참상이 어린 곳입니다. 그런데 일본은 이곳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가혹한 조건에서 강제노역 했다’는 것을 인정했다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자마자 '강제노동이 아니'라는 궤변과 망언을 늘어놓고 있습니다. 거기다 일본의 대기업인 미쓰비시가 2차 세계대전 당시 강제노역에 동원된 미국과 중국인들에 대해서는 사과와 보상을 하겠다고 하면서도 정작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우리에게는 어떠한 사과도 하질 않고 있는데요. 이뿐만이 아닙니다. 일본은 자국에게 불리할 수 있다면 역사를 왜곡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미처 모르는 사이에 자행되었던 역사왜곡, 바로 명성황후의 죽음에 얽힌 의문입니다.

 

일국의 왕비가 자신의 나라 수도 한복판에서, 그것도 시위대가 지키는 왕궁 안에서 외국 군대와 폭도들에 의해 참혹하게 살해되고 불태워진 것이다. 그야말로 세계사에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참사였다. 그런 만큼 을미사변은 우리 민족의 자존심에 커다란 생채기로 남아 있다. ㅡ 11쪽. 프롤로그 중에서.

 

‘을미사변’을 인터넷에 검색하면 이렇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조선 고종 32년(1895년)에 일본 자객들이 경복궁을 습격하여 명성 황후를 죽인 사건’, ‘1895년(고종 32) 일본공사 미우라 고로가 주동이 되어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일본세력 강화를 획책한 정변’. 어느 사이트에서나 명성황후를 시해한 범인에 대해 거의 비슷하게 ‘자객’ ‘괴한’ ‘낭인’이란 표현을 쓰고 있는데요. 이것이 과연 정확한 것일까? 저자는 이점에 의혹을 갖습니다.

 

의혹을 풀기 위해 저자는 우선 당시의 상황이 어떠했는지 알려줍니다.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중국으로부터 랴오둥 반도와 타이완, 엄청난 배상금을 거둔 것을 시작으로 조선에 대한 지배를 가일층 매진하기에 이르는데요. 이런 일본에 러시아, 프랑스, 독일이 제재를 가하고 나섭니다. 이른바 ‘삼국간섭’의 결과로 일본이 청나라에 랴오둥 반도를 돌려주자 조선은 ‘러시아를 끌어들여 일본을 물리친다’는 ‘인아거일’ 전략으로 나갔는데요. 이에 일본은 조선 지배의 걸림돌이 된 러시아를 끌어들이는데 앞장 선 왕비를 살해하려는 모의를 세우기에 이릅니다. 1895년 10월 8일 여명, 일본은 명성황후를 살해하기 위해 왕비와 견원지간이었던 대원군을 내세워 궁으로 들어가는데 성공합니다. 명성황후 시해작전, ‘여우사냥’은 이렇게 시작된 것입니다.

 

광화문이 활짝 열렸다. 이들은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대원군과 함께 궁궐로 진입했다. ㅡ 47쪽.

 

명성황후의 살해된 사건이 벌어진 당시의 배경과 시해사건 당일의 상황을 조목조목 짚어준 다음 저자는 말합니다. 명성황후 시해범은 결코 낭인이 아니라고. 한 나라의 왕비를 살해하는 작전에 ‘정해진 직업도 없이 여기저기 유랑하며 떠돌아다니는 부랑인’에게 맡길 수는 없다고. 상식적으로도 맞지가 않는다고. 일본 군부는 물론이거니와 천황도 알고 있었던 작전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낭인’에 의해 살해되었다고 하는 것은 그들의 억지주장일 뿐이며 일국의 왕비를 살해한 것으로 쏟아질 외교적인 비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낭인설’로 조작했을 뿐이라고 말입니다.

 

우치다가 밝힌 이 ‘왕비를 먼저 칼로 친 육군사관’이 바로, 하라에게 보낸 사신에서 말한 ’우리 육군소위'이며, 그가 바로 이 책에서 검증하려는 미야모토 소위다. ㅡ 97쪽.

 

책에는 저자가 시해현장에 있었던 두 명의 군인 중 미야모토 소위가 왕비 시해범으로 주목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어떤 것을 근거로 했는지 자세하게 수록되어 있습니다. 바로 우치다 영사가 외무차관에게 보낸 비밀의 서한인데요. 읽고 나서 태우라고 주의를 줄 정도였다니 그 서한이 담고 있는 진실의 무게가 어느 정도인지 충분히 짐작이 됩니다. 이후 미야모토 소위의 행적을 추적해보면 의심스러운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그 모두가 ‘명성황후 시해범은 미야모토 소위’라는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해주고 있습니다.

 

2월 14일, ‘발렌타인 데이’로 알려진 이 날이 우리에게 역사적으로 의미가 깊은 날이더군요.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에게 사형이 언도된 날이 바로 2월 14일이라는 사실을 올해가 되서야 알게 됐습니다. 이후로 해마다 2월 14일이 되면 예전과는 다르게 숙연한 마음으로 맞이하게 되겠지요. 한글날 즈음해서도 마찬가지가 될 것 같습니다. 한글날 전날인 10월 8일이 명성황후가 무참하게 살해된 날이니 말입니다. 명성황후가 서거한지 올해 120년을 맞게 됐지만 그 억울한 죽음에 대해 아직도 이렇다 할 연구가 없다는 것이 실로 안타깝습니다.

 

그럼 왜 명성황후는 우치다 영사의 말처럼 ‘역사상 일찍이 없었던 흉악한’ 사건에 휘말려 저 같은 최후를 맞이했는가? 이에 대한 답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그녀는 약소국의 왕비였기 때문에 그런 변을 당했다는 사실이다. ㅡ 253쪽. 에필로그 중에서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5-07-26 23: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27 00:0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