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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치 쉽게 하기 - 인물 드로잉 - 그림 그리는 즐거움을 배운다! ㅣ 스케치 쉽게 하기 3
김충원 지음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07년 5월
평점 :
나의 공식적인 첫 인물화는 초등학교 1학년때 그린 엄마의 얼굴이었다. 미술시간에 부모님의 얼굴을 그리는데 그 중에서 잘 그린 그림 몇 장은 교실 뒤쪽에 전시를 한다는 거였다. 나름대로 열심히 그리고나서 완성된 그림을 보니 왠지 뭔가 빠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뭘까...곰곰히 생각하다 마지막으로 그려넣은 것, 그건 바로 인중이었다. 코에서 입으로 나란히 이어지는 두 개의 굴곡...그것을 나는 마치 화룡점정이라도 되는양 까만 크레파스로 두 줄을 그려넣었다.
하지만 그게 치명타였다. 선생님께선 “이런 걸 그리면 어떡하니? 엄마 얼굴이 엉망이 됐잖아!”하고 지적하셨다. 그리고 당연히 내 그림은 교실에 걸리는 영광을 누리지 못했다. 요즘처럼 한 반 인원이 30명 정도가 아니라 7,80명 정도였을 때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데도 그 일은 오래도록 내 마음에 박힌 가시 같았다. 내가 엄마 얼굴을 엉망으로 만들다니...
이 책 <스케치 쉽게 하기 - 인물드로잉>은 이렇게 그림을 그릴 때 범하기 쉬운 오류와 실수를 짚어주고 있다. 바로 보이는 형태보다 마음속에 간직된 형태를 묘사하는 실수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은데 그건 인간이라면 누구나 범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그림도 하나의 언어나 마찬가지여서 언어를 이해하기 위해 말하기. 듣기. 쓰기. 읽기를 배워야 하는 것처럼 그림도 몇 가지의 기본 요령을 익히고 반복해서 스케치 연습을 해야 한다는 거였다.
우선 ‘사람’을 그리는 방식을 배우고 난 다음에 특정한 ‘어떤 사람’을 그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전문가의 입(글)을 통해 그림을 그리기 위한 마음가짐과 자세에 대해 듣고 나니 왠지 그림이 어려운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마저 든다. 저자가 일러주는 대로 우리 얼굴엔 어떤 법칙이 있으며 얼굴의 윤곽은 어떤지를 알고 꾸준히 연습하면 나도 멋진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좋은 느낌.
사실 우리 얼굴의 법칙에 관해선 미처 몰랐던 것들이 많았다. 두개골은 둥글고 눈은 가운데 있다는 것에서부터 얼굴은 좌우대칭이 아니란 점(이건 내 얼굴만 봐도 알 수 있다), 귀는 생각보다 크며 목은 생각보다 굵다는 것. 그리고 우리는 서양인과 다르다는 것이었다.
얼굴을 스케치하는 데 있어서 가장 힘든 점은 반드시 닮게 그려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비롯되는 스트레스일 것입니다. - 14쪽.
또 그림자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게 됐다. 그림자는 단순히 그림에 명암을 넣어 입체감을 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이가 들면서 얼굴 근육에 변화가 생기고 그로 인해 얼굴의 윤곽도 달라진다는걸 이해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빛과 그림자를 그린다는 것으로 바꿔 말해도 큰 무리가 없습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보는 것은 빛과 빛에 의해 반사되는 면 그리고 빛의 반대 방향에 생기는 어두운 그림자를 통해 그 형태를 인식하는 것입니다. -39쪽.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 얼굴의 법칙이나 윤곽, 그림자가 나이와 성별에 따라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어린이의 얼굴은 성인에 비해 전체적으로 둥근 형태이며 여자에 비해 남자의 얼굴이 좀 더 강하게 표현된다는 것, 또 얼굴의 여러 각도에 따라 터치나 명암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그림을 통해 직접 보여주고 있다.
100페이지도 훨씬 못 미치는 얄팍한 책, 여기서 얼마나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까...하고 처음엔 생각했다. 그러나 책을 다 읽고 난 후의 느낌은 노력 여하에 따라 생각보다 훨씬 많은 것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인물의 전체 윤곽을 잡는 것에서부터 세부 표현, 그림자나 명암을 표현하는 과정의 그림이 좀 더 크게 그려졌다면 한 터치 한 터치 자세하게 볼 수 있을텐데...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나의 첫 인물화에 대한 얘기를 고등학교때 미대 다니는 언니에게 털어놓았다. 그때 언니는 “어머, 그 선생 너무했다야. 어린 애가 그런 것까지 그렸으면 자세히 관찰했다고 칭찬해줘야지, 그렇게 면박을 주냐?”고 했다. 왠지 면죄부를 받은 기분이었다.
어린 시절의 나와 같은 8살인 큰아들은 요즘 유캔도에 미쳐있다. 아들은 생일선물로 유캔도 장남감을 사달라는 쪽지를 온 집에 도배를 하고 틈만 나면 유캔도 캐릭터를 그린다. 엄마 얼굴도 좀 그려달라고 사정하다시피 부탁을 하면 어쩌다 한번 선심 쓰듯 내 얼굴을 그려준다. 내 얼굴의 점이나 잔뜩 독이 오른 뾰루지도 그리는 게 탈이지만...하지만 그 엄마에 그 아들이니 어쩌겠는가. “어머, 엄마 얼굴 자세하게도 봤네, 고마워.” 할 수 밖에...그림은 무언가를 그리는 것 자체만으로도 즐거운 일이니까.
그림을 그리는 즐거움은 재능과는 상관없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행복입니다. - 책 속표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