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수, 화가에게 말 걸다
최병수.김진송 지음 / 현실문화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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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6월.

대입재수생이었던 난 짜증스런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친구와 대학도서관에 애써서 자리잡이 공부하려고 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내 눈과 코를 괴롭히는 것이 있었다. 최루탄... 첨엔 좀 참아보려고 애써보지만 난 매번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그것이 미치지 않는 먼 곳으로 짐싸들고 도망가는 것이다. '누군 대학가려고 이 고생인데 정작 대학생들은 맨날 데모만 하다니...'이해할 수가 없었고 그때의 경험은 나로 하여금 민주운동이 꽃을 피웠던 80년대에 대학시절을 보내면서도 운동권과는 결코 가까워질 수 없는 튼튼한 벽을 쌓게 만들었다.

최 병 수. 난 그를 몰랐다.

<한열이를 살려내라> <노동해방도> <장산곶매>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작품의 작가가 최병수란 사실은 역시 몰랐다.

이 책으로 인해 나는 그 세가지의 공통분모, 세 개의 꼭지점 가운데 최병수가 존재한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된 셈이다.

<목수, 화가에게 말 걸다> 이 책은 표지가 주는 느낌이 실로 크다. 드넓게 펼쳐진 갯벌에 솟대가 세워져있고 그 곁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사람....황량한 듯 보이지만 수많은 생명을 품고 있는 갯벌이기에 푸근함과 굳센 의지가 물씬 풍겨나온다.

거기에 제목은 또 무슨 의미인지...누가 목수고 누가 화가야?...하는 의문이 생겼다.

1. 목수:최병수, 화가:김진송   2. 목수:김진송, 화가:최병수   3. 목수:최병수, 화가:최병수

이 세가지 경우를 머리에 새기고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는 이야기꾼이다. 걸걸하고 카랑하게 쏟아내는 그의 목소리는 늘 힘이 있고 거침이 없다>고 표현한 최병수가 마치 내게 얘기하는 것 같았다. 그는 때로 흥에 겨워서, 때론 단호하고 결의에 찬 음성으로 자기가 살아온 나날들을 내 앞에 폴어놓았다. 그리고 그 곁에는 최병수가 하는 얘길 들으며 같이 웃고, 울고, 울분을 참지 못하고 화내는 내가 있었다.

<어쩌다 민중벽화를 그리는 팀에 섞여서...80년대 미술운동의 한복판으로 휘말려 들었다>는 최병수는 어린 시절부터 손재주가 많았던 모양이다. 분필로 장승을 깎는가하면 버드나무 가지를 구부려 즉석에서 빨래집게를 만드는 등 주변 사물을 이용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면서 자신감을 키워나갔다고 한다. 초등학교 입학땐 같이 간 누나에게 "누나, 선생님이 맘에 안드는데 담임을 바꿔주던가, 내가 줄을 바꾸던가 하면 안될까"...이런 말을 하는 맹랑한 구석까지...

또 학교에 가는 날보다 빼먹는 날이 많았고 교실에서 수업 받는 것보다 학교 뒷산에 드러누워 구름이 흘러가는 모양을 지켜보는 날이 더 많았다고 하는데 이 모든 것이 그가 작품을 펼쳐나가는 밑바탕이 되었던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얼음덩어리로 펭귄을 깎아 지구온난화의 위험을 알리고 새만금 해창갯벌에 수많은 솟대와 장승을 어떻게 세울 수 있었을 것인가. 바로 그가 누구보다 이 땅을 사랑하고 생명들을 사랑하고 더불어 이 지구를 사랑한다는 증거가 아닐까.

이 책을 다 읽은 지금 나는 아직 알고 싶은 게 많다. 정규교육을 받지 않았음에도 당당하고 주민등록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으면서 수십차례 외국을 들랄거릴 수 있었을만큼 자유롭고 거침없고 순수한 그 영혼이 앞으로 어떤 빛을 자아낼 것인지...계속 그와 얘기를 나누고 싶어진다. 지금이라면 예전처럼 민중의 함성을 외면하기보다  힘내라고 손을 잡아줄 수 있으리라...

사족 : 내가 제목에 품었던 의문에 대한 답은 우습게도 책 뒷표지에 버젓이 나와있었다         

<나무 깎던 목수 최병수가, 그의 펄펄 살아있는 생명의 힘으로 화가 최병수한테, 그리고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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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oove4312 2007-02-28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술쪽에서 일하던 김진송은 목수가 되었고, 목수이던 최병수는 화가가 되었죠^^
누가 누구에게 말걸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