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비로 유튜브를 봤다. 궁금한 노래들의 뮤직비디오를 찾아봤다. 

세븐틴의 손오공,과- 마치 된 것 같아 손오공- 조용필의 feeling of you.

그러고 있으려니, 딸아이가 와서는 르세라핌의 신곡들을 찾아 보는 거다. 

우선, 언포기븐,을 보고, 연결되서 나온 노래가 '이브,프시케, 그리고 푸른 수염의 아내'(

https://www.youtube.com/watch?v=D-AlVUXUrew ) 다. 


가사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게 없어서, 아이가 묻는다. 제목의 의미가 뭐냐고. 

셋 다, 하지 말라는 일을 하는 여자들이지. 


이브는 기독교에서 최초의 여자라고 하는데, 하느님이 처음 아담을 만들고, 심심하니까 그 갈비뼈를 뽑아 이브를 만드셨대. 그리고 둘이서 에덴동산-생각이 안 나서 그냥 동산이라고-에서 무사태평하게 살았어. 그런데, 하느님이 그 둘 한테 먹지 말라고 한 열매가 있거든. 그건 먹지 말라고 그것만 먹지 말라고 했는데, 뱀이 이브를 꼬셔서 그걸 먹어. 선악과라고 하는데 그걸 먹고는 거기서 쫓겨나는 거지. 


프시케는 그리스로마신화에 나오는데, 에로스의 신부야. 에로스는 사실 아프로디테의 아들이잖아. 여기는 이유가 있는데, 프시케 아빠가 자기 딸이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보다 이쁘다고 떠벌리고 다닌 거지. 그러니까, 아프로디테가 자기 아들보고 프시케한테 화살을 쏴서 이상한 걸 사랑하게 만들라고 하거든. 그런데, 에로스가 화살을 쏘려다가 자기가 찔려서 우선 프시케한테 반하고, 엄마 몰래 결혼을 하는 거지. 그런데, 결혼을 하면서 자기 모습을 보지 말라고 해. 자기는 그래도 신이라서 그랬나, 이유는 잘 모르겠네. 그러고는 멋진 궁전에서 온갖 걸 누리게 해 주는데, 프시케가 자기 언니들한테 그걸 보여줬더니 언니들이 아마도 신랑이 괴물이라서 보지 말라고 했을 거라고 부추기는 거지. 그래 프시케가 몰래 에로스를 훔쳐보다가 들켜서는 에로스가 달아나버리는 거지. 다음에 프시케가 에로스를 찾아나서는 이야기도 있는데 그건 잘 모르겠네. 


푸른수염의 아내에서 푸른수염은 중세 성에 사는 남자인데, 결혼하면서 아내한테 성 안의 모든 문을 열어도 되지만, 절대 열면 안 되는 문에 대해 당부하는 거지. 그 아내가 그 문을 열었을 때 그 문 안에는 푸른 수염과 결혼했었으나 실종된 여자들의 시체가 있는 거야. 


둠둠둠 심장이 뛰지, 심장이 뛴다.

하지 말라고 했지만 어떻게 하지 않을 수 있지? 

이야기의 어떤 면들에도 불구하고, 이야기 속의 여자들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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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휴일 오전 농구를 하러 나갔다. 

운동장에서 농구를 할 만큼 하고, 해는 좀 더 올라가서 뜨겁다. 

아이들도 해가 뜨거웠는지, 이제 농구는 그만 하려는지 같이 운동장 가 그늘로 피했다. 

그늘로 피했는데 심심했던지 풀싸움을 시작했다. 

풀을 한 줄기씩 골라 뜯어서 어느 풀이 센 지 대결을 한다. 머리카락 싸움처럼 양 끝을 잡고 서로 가로지르게 해서 어느 게 끊어지는지 대결이다. 아이들이 풀을 고르는 게, 영 성에 안 차서, 질기고 질긴 풀들을 골라 나도 풀싸움에 들어갔다. 질기고 긴 풀 줄기를 여러개 모아서 대결에 들어갔더니, 초4 여자 아이가 둘러보고 쑥 솟은 민들레 꽃대를 여러 개 들고 왔다. 아, 아, 그건 정말 약해 빠져서 안 되는데. 속이 빨대처럼 텅 비고, 누군가 그 씨앗을 날리고 싶을 때 쉽게 꺾여서 어디든지 씨를 날릴 수 있는 약하디 약한 민들레 꽃 대 여러개를 가지고 오다니! 어쩜 이렇게 모를 수 있지!!!!


이 얘기를 엄마한테 하면서, 엄마가 나를 볼 때 그런 순간이 얼마나 많았을까, 갑자기 느껴졌다. 

그래도 엄마는 나를 놀리지 않았는데, 나는 벌써 여러 번 아이를 놀렸다. 내가 제일 한심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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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혼,을 볼 때도 남자와 여자와 아이,에 대해 생각했었다. 환혼의 도화부인은 장강의 몸에 환혼한 왕의 아이를 낳는다. 왕은 그 아이가 자신의 아이라고 주장하고, 장강은 그 아이가 왕의 아이라서 세상을 혼란에 빠뜨릴 거라고 생각한다. 애꿎은 도화부인은 아이를 낳고 죽었는데, 바람피운 적 없이도 바람피운 여자가 되어 불명예를 짊어지고, 불쌍한 장욱은 자기 자신의 운명을 제약하려는 집나간 아버지와 불명예를 짊어진 어머니의 그늘 아래서 자란다.


닥터 차정숙,에서 서인호와 최승희는 첫사랑이다. 애틋한 첫사랑이었는데, 서인호의 갑작스러운 실수? 사고로 차정숙에게 아이가 생기면서 헤어진다. 서인호는 차정숙과 아이를 책임지면서 살아가다가, 미국으로 연수를 가서 최승희를 다시 만났다. 최승희에게 아이가 생겼고, 최승희는 미국에서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서인호를 가끔 만나다가, 다시 한국으로 들어와 서인호와 같은 병원에 근무하면서 좀 더 자주 만난다. 차정숙은 이십년을 두 아이를 키우며 가정주부로 살다가 죽을 고비를 넘기고 레지던트 1년차로 다시 공부를 시작해서 그 병원에서 일하기 시작한다. 


일부일처제나 가부장제가 인간의 본성을 거스른다는 건 틀린 말은 아닌 것도 같다. 

그렇지만, 일부일처제나 가부장제가 여성에게 불리한 제도라는 건 동의하기 어렵다. 

짧은 쾌락이 전부라면, 남성이 아이에게 가지는 책임감은 추상적일 수밖에 없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길고도 험난한 과정이기 때문에 여성이 그 전부를 떠받치기는 어렵고, 할 수 있다면 그 짧은 쾌락으로 생겨난 아이에 대해 남자에게 책임을 요구해야 한다. 

혼자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도 지금 교수인 최승희는 차정숙에 비해 자신의 삶이 억울한 게 많은 삶이라고 생각한다. 젊은 날 자신의 남자친구를 빼앗은 차정숙이, 남편의 그늘 아래에서 정상가족 속에서 아이를 키운 차정숙이, 그렇게 애인을 빼앗긴 자신의 가해자라고 생각한다. 그 관계를 털어내지도 못한 채로, 그런 원망과 억울함 가운데, 다시 만난, 이미 결혼한 남자와 아이를 만들고 낳고, 기른다. '네가 너무 궁금해서, 보고 싶어서'라고 말하면서 우는, 아비없는 아이를 낳아 기른다고 가족들에게도 내쳐진 최승희는 불쌍한 마음이 든다. 그렇지만, 다 그럴 수도 있지만, 한국에 들어와 아이를 빌미로, 관계를 지속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정상가족의 환상에 사로잡혀서 이미 자라서 고등학생인 딸아이의 아비를 만들어주겠다는 말로 다시 그 남자와 여행을 하고, 만나고 사랑이라고 말하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아이가 생겼다는데 기뻐하지 않았다는 말에, 나는 언제나 그랬다는 서인호를 오히려 이해한다. 짧은 쾌락 뿐인 관계에서 길고 오래고 무거운 책임이 생겼다. 

남성이 가지는 가족 내 권위는 여성인 어머니가 아이를 독려해야만 가능하다. 부재하는 많은 시간 어머니가 지지하지 않는다면, 아버지는 가족을 겉돌다가 내쳐지는 비루한 존재가 되고 만다. 어머니는 가족 내 권위, 허명을 지워줌으로써 남성을 아버지로, 책임지는 자로 만든다. 위태로운 자신, 아이를 돌보고 살려야 하는, 아이의 위험을 스스로의 위험으로 감당해야 하는 여성인 자신의 위태로움을 남성에게 의지하면서 그렇게 아이를 키운다. 혼자서는 하기 힘든 일을 해내기 위해 짧은 쾌락 뿐이지만 남자에게 가부장이라는 거대한 문화적 최면을 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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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비를 돌리다가, '호텔 델루나' 재방을 봤다. 

장만월이 자신의 사람들의 시체를 수레에 싣고 처음 달의 객잔을 찾아 떠도는 장면 다음에, 구찬성에게 말한다. 

"나의 죄는 무겁고, 원한은 깊어"

딸래미가 

"다 죽였는데, 원한이 남아있어?"라고 물었다. 

설명하려고 애쓴다. 

"만월이가 사람들을 죽였잖아. 원수를 갚겠다고. 그런데, 그 만월이가 죽인 사람들도 가족이나 친구가 있을 거 아냐. 그러면 그 사람들은 또 만월이한테 원한을 품게 되잖아. 그러니까 깊다고 하는 거야."

원한,이라는 말은 누군가에게 속한 게 아니니까, 만월이는 자신의 사람들을 죽인 사람들에게 원한을 품고 복수하면서 수도 없이 많은 사람을 죽였다. 그 죽음들이 죄라는 걸 스스로 알고 있고, 그 죽음 다음에 또 다시 원한을 품은 사람들이 생겼다는 걸 알고 있다. 

삶에서 무언가를 깨끗하게 한다는 것 털어낸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게 상대에게도 동의가 될까, 알 수도 없다. 시간은 흐르고 있고, 상황은 변하고, 무언가 달라져 있는데, 같은 댓가를 치른다고 털어질까. 

어느 순간 끊어내야 하는 순간이 오는 건 아닐까, 라고 생각한다. 


왜 만월이의 나무에 다시 꽃이 피냐고도 물었는데 대답을 못 했다. 설명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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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100세 철학자의 행복론 100세 철학자의 행복론 1
김형석 지음 / 열림원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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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박하다,라고 쓰고 싶어서 구글에서 뜻을 찾았다. 욕심이 없고 마음이 깨끗하다, 느끼하지 않고 개운하다, 라고 나온다. 


친구랑 그저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살아있다는 것이 참 대단하다고. 산다는 것은 쉽지 않다고. 

쪽글들인데 너무 좋은 말들이라서, 옮기다가 말았는지 남겨놓은 밑줄이 너무 없다. 그래, 내 맘에 와닿은 말들로만 밑줄을 쳤다. 그런데, 그 밑줄에 대해 설명을 붙이자니, 다시 글 전체를 옮겨놓는 지경이 될 거 같다. 


남이 나를 믿어주지 않고 내가 남과 협력할 수 없다면 우리는 아무 일도 할 수가 없다. - 41%


이렇게 본다면 내 육체는 공간 중의 공간이다. 나의 공간이라기보다는 나 자체인 것이다. 그러므로 공간의 상실은 육체의 상실, 육체의 상실은 삶과 나 자신의 상실이다. 이 상실을 막아볼 양으로, 이 상실을 사실이 아닌 양 도피해볼 뜻으로 예술을, 철학을, 종교를 만들어왔다. 그러나 사실은 사실이다. 마침내 자아라는 공간을 끙그리 잃어버릴 때가 오고야 마는 것이다. 정들었던 것들, 즉 하늘, 바다, 산, 숲길, 꽃, 새, 별, 달, 이웃, 집, 가족, 친구들은 물론이요, 나 스스로의 공간, 나 자신이었던 육체마저도 작별해야 할 때가 오고야 마는 것이다. - 72%


기독교도,임에도 불구하고, 철학자셔서인지, 예술이나 철학이나 종교를 육체의 상실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만들어진 거라고 이야기하신다. 언제나 본질이 있다는 걸 상기하기 위해, 나는 이야기들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기억해두려고 밑줄을 남겼다. 만들어졌다. 인간이 만들었다. 스스로의 나약함을 볼 수 없어서. 그리고 그것이 꽤나 대단한 양 스스로를 속이고 있다. 스스로의 마음을 다스릴 수 있어야 과하지 않아야, 오래도록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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