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22
정유정 지음 / 비룡소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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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늘 중학생 아이들과 좌충우돌 지내다 보면 아이에서 어른이 되는 과정은 늘 고통이 따른다는 것을 몸으로 깨닫게 된다. 이 소설에 나오는 15살 준호, 정아, 승주를 보면서 새삼 우리 아이들이 겪게 될 성장의 고통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나 또한 그 당시에는 절실하게 힘들고 혼란스러웠던 중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리곤 했다. 그런데도 아이들에게는 흔들리지 말라고 너만 힘든 것이 아니라고 쉽게 말하고 있으니 삶은 이렇듯 잘 잊혀지나 보다. 절대 못 잊을 것 같은 그 기억들도 다 잊혀지는 것을 보면 말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그 동안 가정의 말 못할 사연들로 인해 학교 생활에 적응을 잘 못 하던 몇몇 안타까웠던 아이들이 떠오른 건 당연할 지도 모른다.

    아이들에게 뭔가 가르쳐주고 혼내는 입장이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아이들이 먼저 나를 이해해주기를 바라곤 했다. 그러면서 항상 나만 상처를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작년 고입 원서 마감을 하루 앞두고 여학생 한 명을 안타깝게 유예시키면서 뭔가가 잘못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아버지, 오빠와 함께 셋이서 살아가며 모든 살림을 도맡아서 하던 그 아이는 버거운 삶의 짐을 어쩌지 못하고 집을 나가고 말았다. 몇 번 다시 돌아오긴 했지만 자리를 잘 잡지 못했다. 학기 초 독서 공책에 책을 읽고 난 느낌을 빼곡히 써 놓기도 하고, 청소 시간에도 모두들 대충 하고 가려고 하는 와중에도 구석구석 쌓여있는 먼지까지 말끔하게 쓸어주어서 항상 어른스러웠던 그 아이. 아이들과의 소소한 감정 싸움으로 힘들어하는 나에게는 그 존재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던 그 아이가 어느 순간 학교에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그리고 ‘행방 불명’이 되었다고 했다. 그 아이가 그렇게 힘들어하는 순간 나는 도대체 무엇을 했던 것일까? 집에라도 한 번 찾아가 보았을 것을. 어쩌다 학교에 나왔을 때 같이 떡볶이라도 먹으며 수다라도 왕창 떨어볼 것을. 뒤늦은 후회와 안타까움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아이의 사정은 들어보지도 않고 무조건 졸업은 해야 하지 않겠냐며 적응을 잘 해 보라고 힘 빠지는 이야기만 했던 나의 모습이 초라하게만 느껴졌다. ‘행방 불명’을 듣고 나서도 출석부에 무단 결석 처리밖에 할 수 없는 내 모습이 비참하게 느껴졌고, 기어이 유예 처리를 하고 출석부 그 아이 이름에 빨간 줄을 그을 때는 비통한 느낌까지 들었다. 그 아이가 혹시 잘못 되었다면 도저히 얼굴을 들고 살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바쁜 생활 속에서도 가끔씩 그 아이 생각을 하곤 했다. 
 

  그 와중에도 한 해가 시작되고 시끄럽고 정신없는 42명의 또 다른 아이들을 만나 그 아이 생각이 거의 잊혀질 무렵 우연히 모교를 찾아온 그 아이의 오빠를 만나게 되었다. 만나자마자 그 아이의 안부를 물어보았다.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하며 잘 지내는 것 같다고 했다. 그 아이는 또 다른 공간에서 나름대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 아이 오빠의 손을 잡아주면서 꼭 안부 좀 전해달라고 했다. 내가 얼마나 걱정을 많이 했는지 아냐고 잘 지낸다니 너무 다행이라는 말을 덧붙였을 것이다. 그리고 성장의 아픔으로 인한 그 아이의 상처가 잘 아물기를 간절히 바랬다. 준호와 정아가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준 것처럼.

    친구인 규환이의 부탁으로 중요한 사명을 띠고 여행을 시작하게 된 준호. 어린 시절 아련히 떠나버린 아버지를 아직 잊지도 못했는데 엄마는 재혼을 해서 신혼여행을 떠나버렸다. 아버지를 잊을 수는 없지만 언젠가는 돌아올 거라는 믿음은 서서히 흐려지기만 한다. 1980년 광주의 어딘가에서 조용히 죽어갔을 지도 모르는 고등학교 선생님이자 시인인 준호의 아버지. 밤에 악몽에 시달려 무서워 아버지의 서재를 찾아가면 아름다운 시를 낭송해주던 따사로운 목소리. 내가 준호였어도 잊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아픔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정신질환자인 아버지로부터 매일 맞고 쫓기는 삶에 지친, 그리고 아버지의 학대를 아무런 저항없이 받아들이는 엄마로부터 버림받고 싶은 정아. 자식들을 위해서 그저 남편으로부터 맞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엄마를 이해할 수 없다. 정아는 이런 엄마를 떠나고 싶다. 이해하고도 남는다. 속옷 차림으로 미친 개 '루즈벨트'와 아버지로부터 쫓기다가 얼떨결에 여행에 동참하게 된 정아는 얼마나 그 처절한 현실로 다시 돌아가기 싫었을까? 그렇게라도 간절히 떠나고 싶었을 것이다. 

  버림 받은 준호와 버림 받고 싶은 정아는 엉뚱한 여행을 통해 서로의 아픔에 대해서 가슴 깊이 이해하게 된다. 남의 아픔이라고 해서 쉽게 말해서는 안 된다는 중요한 깨달음도 가슴에 새기면서. 준호, 정아, 승주는 그들만의 비밀을 공유하면서 세상을 견디며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게 될 것이다. 어떤 어려움이 닥친다 해도 그들의 마음 속에는 아직도 바다 속에서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유유히 헤엄치는 ‘고래’가 있기 때문이다. 
 

    작년 우리 반 그 아이는 무엇 때문에 그토록 떠나야만 했을까? 무엇이 그리도 그 아이를 참을 수 없게 했을까? 또 그 아이의 ‘고래’는 무엇이었을까? 지금쯤, 자신의 삶을 지탱해줄 무언가를 찾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렇다면 나의 삶을 지탱하게 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정신없고 시끄러워도 끝날 시간이 되면 나만 애타게 기다리는, 이제는 너무나 정이 들어버린 우리 반 42명의 아이들이 아닐까 싶다. 그 아이들이 있기에 내 삶이 빛나는 것 아닐까? 며칠 전 출장을 간 사이 청소를 엉망으로 해서 어떻게 혼낼 것인지를 고민하게 만들고, 가끔은 내 마음을 너무 몰라줄 때도 많으며, 아프다고 조퇴를 하더니 곧장 집을 나가서 40여일 동안 애를 태우다 돌아온 아이도 있었지만 그들은 성장의 고통으로 흔들리고 있는 아직은 감싸줘야 할 영혼들 아닌가? 아직은 어설프기에 더욱 순수한 영혼들. 이들이 흔들릴 때 옆에서 위로가 되어주고 즐거울 때 함께 웃어주며 살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들이 정신없고 엉뚱한 여행을 한 것처럼 천진난만하고 시끌벅적한 아이들과 유쾌한 동행을 계속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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