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0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할레드 호세이니의 첫번째 소설 '연을 쫓는 아이'가 아프가니스탄 남자들 위주로 이야기가 흘러갔다면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은 전쟁의 포화 속에서 무자비한 폭력에 노출된 채 자신의 삶을 인내하면서 살아간 아름다운 두 여성 마리암과 라일라에 관한 이야기이다.   

열다섯살 어린 나이에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45살 먹은 아버지뻘 되는 라시드와 강제 결혼을 하고, 일곱번 가까이 유산을 하면서 무참하게 남편의 폭력을 감내하며 살아낸 마리암의 인생은 그저 애처롭다고 하기엔 부족하게만 느껴졌다. 그 당시 그런 질곡의 인생을 살아온 여인이 마리암 혼자였겠는가? 

신식 교육을 받고 사랑하는 사람 타리크와의 사랑에서 자신의 감정에 솔직했던 라일라. 그녀에게 전쟁은 모든 것을 앗아가버렸다. 어머니의 사랑은 지하드에 참전했다가 죽어버린 두 오빠에게 늘 머물러있었고, 그녀가 사랑했던 타리크도 파키스탄으로 떠나버린다. 그녀의 부모도 카불을 떠나기 위해 이삿짐을 옮기던 중 무차별로 떨어진 폭탄에 목숨을 잃고 만다. 라시드의 계략에 빠져 60살도 넘은 그와 결혼을 하게 되는 과정을 읽으며 인간의 끝없는 탐욕 앞에 순수했던 라일라의 사랑과 미래가 무참히 깨지는 것이 안타깝기만 했다. 아무도 라일라를 지켜줄 수 없는 그 상황을 만든 건 누구란 말인가? 

마리암이 끝까지 인내하며 살아왔다면 라일라는 달랐다. 처음부터 폭력적이고 탐욕적인 라시드에게서 돈을 조금씩 훔쳐서 도망갈 궁리를 하고(다시 끌려와 너무나도 처참한 죄값을 치르지만) 그에게 논리적으로 반박을 하기도 한다.(전쟁의 상황에서 아무 의미 없어졌을지라도) 타리크의 딸인 아지자를 사랑했던 것처럼 그녀의 삶을 망가뜨려버린 라시드의 아들인 잘마이도 받아들여야 한다.   

마리암과 라일라가 처음 한 남자의 아내로 만나게 되었을 때는 약간의 다툼이 있었지만, 라시드의 무자비한 폭력으로부터 라일라가 마리암을 구해주는 것을 계기로 이 두 여인은 서로를 의지하게 된다. 처음으로 마리암은 자신의 질곡 많은 인생 중에서 진정한 '사랑'을 찾게 된다. 같은 상황 속에서 무한한 신뢰를 보내준 라일라, 아무 조건 없이 그녀에게 웃음을 던지고 인간에 대한 사랑을 되찾게 해준 어린 아지자.  

그녀가 진심으로 사랑했던 라일라, 아지자를 위해서 결국 자신을 희생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라일라를 목졸려 죽이려는 라시드를 삽으로 내리쳐 죽이고는 라일라를 위해서 도망가지 않는다. 탈레반에게 잡혀서 법정에 서서도 차분하다. 처형장인 가지경기장으로 가는 도중에도 인간으로서 품위를 잃지 않는다. 어린 탈레반은 죽음 앞에서 떨고 있는 마리암에게 '죽음 앞에서 두려운 것은 전혀 창피할 것이 없다'는 위로의 말을 듣기도 한다. '라일라의 웃음 소리, 그녀와 하늘에 떠 있는 별을 바라보며 차를 마셨던 풍경, 아지자가 아름다운 처녀로 성장한 모습'을 보고 싶었던 마리암의 소박하면서도 아름다운 소망은 이루어질 수 없다. 하지만 마리암이 사랑했던 그들을 위해서 마지막으로 가장 소중한 것을 해줄 수 있다는 충만한 만족을 느끼며 평화롭게 죽음을 받아들인다.  

 마리암의 숭고한 희생으로 얻은 가족과 소박하면서도 평화로운 삶을 꾸려나가던 라일라가 갑자기 카불로 돌아가겠다고 타리크에게 말하는 장면은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자신의 삶을 그리도 모질게 끌고 갔던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겠다니!!! 그녀의 부모가 살아서 꿈꾸던 그토록 보고 싶어했던 평화로운 카불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었고, 마리암이 목숨까지 버리면서까지 지켜주려고 했던 것은 고작 한 가족의 평화로움은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그녀는 다시 카불로 돌아가야만 했다. 

라일라는 풀들이 나풀거리고  버드나무 가지가 소리를 내는 굴 다만 오두막에서 소녀 마리암의 꿈과 안타까움을 만나고 온다. 어린 마리암이 너무나도 보고 싶어했던 월트 디즈니의 '피노키오'를 남겨서라도 마리암의 아버지 잘릴이 딸에게 용서를 빌고자 했던 마음. 자신의 체면을 지키기 위해 어린 마리암을 들이지 못했던 과거를 죽음 앞에서 진심으로 용서를 빌고 있다. 마리암은 이런 아버지의 따뜻한 사랑을 느껴보지도 못하고 죽음의 길로 갔으니 라일라는 눈물을 흘리며 슬퍼한다. 마리암은 그녀를 위해 이 모든 것을 포기했으므로.

라일라와 타리크는 카불로 돌아가 모든 것이 무너지고 황폐해진 나라를 되살리기 위해 노력한다. 그들은 한때 아지자를 눈물을 흘리며 맡길 수밖에 없던 고아원에 가서 그들의 나라를 살리기 위해 아이들을 가르치고, 무너진 건물을 다시 보수한다. 고아원 원장이었던 자만은 아프가니스탄에 대해서 부정적인 이들에게 하페즈의 가잘을 통해 이야기한다. 

   요셉은 가나안으로 돌아갈 것이니 슬퍼하지 마라. 

   헛간은 장미꽃밭으로 바뀔 것이니 슬퍼하지 마라. 

   살아 있는 모든 걸 집어삼키려고 홍수가 닥치면 

   노아가 태풍의 눈 속에서 너희들을 안내할 것이니 슬퍼하지 마라. 

 

라일라는 새로 태어날 아기의 태동(하나의 물결)을 느끼고, 새 생명의 이름을 지으면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간다. 자신을 위해서 죽음 앞에서도 인간의 품위를 잃지 않았던 마리암이 바랐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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