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싱싱 사계절 1318 문고 59
차오원쉬엔 지음, 전수정 옮김 / 사계절 / 2010년 1월
평점 :
절판




“안녕, 싱싱”을 다 읽고 났을 때의 첫 느낌은 차가운 얼음물을 마시고 난 뒤의 시리도록 차가운 청량감이었다. 아, 이토록 맑고 순수한 아이들의 감성을 이렇게 감동적으로 나타낼 수 있다니! 몇년만에 차오원쉬엔 작품을 다시 만난 감동은 처음부터 강렬하지는 않았지만 잔잔히 퍼져나가는 여운이 오래 남는 작품이었다. 예전에 “빨간 기와”를 다 읽은 다음, 서점에서 “까만 기와”를 보자마자 망설이지 않고 구입했을 때의 설렘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야풍차’에서 얼바옌즈는 가난으로 지쳐 살아가지만, 영혼만은 살아 꿈틀대는 씩씩한 소년이다. 얼바옌즈는 어른들도 올라가기 힘든 태풍 속에서 흔들리는 풍차 꼭대기까지 기어 올라가 풍차의 남은 돛을 내리려고 하다가 바람에 먼 곳으로 떨어지고 만다. 말라 죽어가는 새싹을 살리기 위해 물을 대주던 풍차를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려는 얼바옌즈의 순수한 의지. 소년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사정없이 땅에 내동댕이쳐질 때도 있겠지만 어려운 일을 피하지 않고 용기와 패기를 갖고 정면으로 부딪치며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삶이 아니겠는가! 거칠지만 삶의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 삶. 소년은 그렇게 크는 것이다.



‘열한 번째 붉은 천’에도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기 위해 외뿔 소를 몰며 죽을 힘을 다해 달렸던 곰보 할아버지의 간절한 소망이 나타나 있다. 외뿔 소를 사오던 날 길들여지지 않은 소가 날뛰는 바람에 시간을 허비하게 되고 그로 인해 물에 빠진 한 아이의 목숨을 잃고 만다. 바로 그날 곰보 할아버지는 소의 한쪽 뿔을 잘라 버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고 다짐을 했을 것이다. 사람들이 자신의 진심도 알아주지 않은 채 세상과 점점 고립되어 살아갈 지라도, 죽어가는 아이를 반드시 살려놓고야 말겠다는 곰보 할아버지의 집념. 그로 인해 결국 자신은 죽게 되었지만 자신이 살려놓아야 할 어린 생명을 외면하지 않았던 그의 곧은 마음. 세상은 이로 인해 더욱 아름다워진다는 것을 그는 알았을까?



‘안녕, 싱싱’에서의 싱싱도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야성 그대로의 순수함이 가득한 어린 아이이다. 여지청으로 싱싱의 집에 머물게 된 야 누나는 싱싱의 예술적 재능을 알아보고, 이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도록 도와준다. 겁이 많고 나약하기만 한 야 누나가 날이 갈수록 야위어가자 싱싱은 달빛 호수에 가서 황금 잉어를 잡기 위해 온 힘을 다한다. 오직 자신을 인정해주었던 야 누나를 위해서 얼어 죽는 한이 있어도 꼭 황금 잉어를 잡겠다는 일념 하나로 끝까지 버텨낸다. 새파랗게 얼어붙은 입술을 깨물며 꽁꽁 얼어서 곱은 손으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었지만 싱싱은 황금 잉어를 결국 잡고야 만다. 야 누나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고 싱싱은 슬픈 이별을 맞이하게 된다. 하지만 야 누나와 함께한 아름답고 순수한 시절이 그의 가슴에 평생 남아 그의 삶을 빛나게 해줄 것이다. 하늘에서 항상 반짝이는 별을 뜻하는 ‘싱싱’ 처럼.



마지막 작품 ‘흰 사슴을 찾아서’에는 죽음의 문턱에서 추위와 배고픔, 무서움에 떨면서도 끝내 이겨낸 아이들의 처절한 사투가 그려져 있다. 새하얀 사슴을 찾아 나섰던 다예, 쉐야, 린와, 션션은 무너져 내린 눈 더미 때문에 오두막에 갇히고 만다. 네 아이들은 깜깜한 암흑 세계에 갇혀 다시는 살아 나갈 수 없을 거라는 절망에 쌓여 죽음을 직면하게 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네 아이들은 가장 삶과 동떨어진 이 암흑의 세계에서 자신들의 솔직한 마음을 마주하게 된다.

린와는 말린 고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참혹한 배고픔 속에서 혼자 몰래 먹어 버리고, 추위를 피하기 위해 담요를 혼자 덮고 있으며, 바닥으로 굴러 떨어진 페인트 통을 과일 통조림으로 알고 혼자 몰래 먹으려다 페인트인 것을 알고 뱉어내며 괴로워한다. 이런 린와의 이기적인 마음도 어쩌면 가장 솔직한 아이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진짜 배 통조림을 발견한 다예도 혼자 먹고 싶은 마음에 잠시 망설인다. 하지만 언젠가 마주쳤던 ‘맑고 순수하고 선량함이 가득 담긴 위의 눈동자’를 떠올리고는 지독한 부끄러움을 느낀다. 결국 모두 다 죽을 수 있는 최악의 순간, 다예는 인간다움을 잃지 않고 배 통조림을 다 같이 나눠먹으며 함께 하는 소중함에 대해 깨닫게 된다. 이런 다예를 보며 린와는 죄책감에 사로잡힌다. ‘만약 이 통조림이 자신에게 왔다면 혼자 먹으려고 했을 것이 아닌가?’ 린와는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진심으로 깨닫게 된 것이다. 온 몸이 차갑게 얼어가던 션션이 자신의 아버지가 일부러 린와의 아버지를 죽인 것은 아니었다고 린와에게 사과를 청하고, 린와는 이를 받아들이게 된다. 린와는 절대 용서할 수 없었던 션션의 아버지를 용서하게 된다.

죽음과 암흑을 상징하던 눈 속에 파묻힌 오두막이라는 폐쇄적인 공간이 오해했던 이들의 마음을 풀어주는 용서와 화해의 공간이 되고, 이기적인 마음을 버리고 공동체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희망과 밝음의 공간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삶의 희망을 끝까지 놓치지 않고 결국 자신들의 힘만으로 찬란한 태양이 비치는 눈더미 밖으로 빠져 나온다.



매번 아이들을 혼내고 가르치는 입장에서 아이들을 불완전한 존재라고만 생각했는데, 이 소설에서처럼 아이들에게서 더 많은 것을 배울 때가 있고 아이들이 선생인 나보다 훨씬 낫다고 느낄 때가 많다. 시험 성적이 올랐는데도 집에 가서 말할 사람이 없다는 아이의 글을 읽으며, 어떤 행동을 해도 무조건 혼나는 학생과가 싫다며 며칠째 학교에 나오지 않는 우리 반 꼴찌를 생각하니 코끝이 찡해지기도 했다. ‘너희들도 성장의 고통을 겪으며 치열하게 살고 있거늘, 어른인 우리들은 힘들고 외로웠던 그 시절을 어느새 잊고서 너희들을 더욱 힘들게만 했구나.’

힘겨운 삶을 살고 있지만 결코 쉽게 포기하지도 않고, 삶을 힘차게 헤쳐나가는 이 소설 속의 소년들의 모습이 꽤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너무 오래 잊고 지냈던 그 시절, 잘 다듬어지지 않아 거칠고 어설프지만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그 순간을 잊지 않아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