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한 자전거 여행 창비아동문고 250
김남중 지음, 허태준 그림 / 창비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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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학을 했는데도 방황했던 꼴찌는 보란 듯이 수업 시작 전부터 책상 위에 납작 엎드려서 잠을 자고 있다. 교과서를 가져오지 않았다고 하기에 뒤로 나가라고 했더니 사물함에 엎드려 자다가 그것도 힘든지 쓰레기통 위에 기술적으로 앉아서 잠을 자고 있다. 첫날은 웃으면서 넘겼다. 하루 이틀 지나자 왠지 내 수업 시간에만 더욱 편하게 자는 것 같아 부화가 끓어서 불러다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전혀 말이 통하지 않는다. 자기는 그저 졸려서 자는 것뿐이란다. 그냥 내버려 두어야 할까? 수업 시간에 다른 아이들에게 방해는 안 하니까? 그래도 되는 걸까? 이 아이를 깨우려면 너무 많은 노력에 비해서 결과가 아무 것도 없어서 허무해진다. 정작 이 아이는 점심 시간이 되면 친구들과 생기 넘치는 모습으로 복도를 날듯이 뛰어다니며 수업 시간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하는 교사를 더욱 무력하게 만든다.

학원에서 교과서 학습 활동 답을 그대로 베껴 와서 수업 시간에 아무 생각 없이 줄줄 말하는 또 다른 아이를 보는 순간, 가슴이 얼어붙는 것만 같다. 뭔가 엄청나게 잘못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속상하다. 마음 둘 데가 없어서 헤매다가 이 상황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덜컥 해버렸다.

"아, 너무 답답하다. 이곳에서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수 있을까? 이런 상황 속에서 진정한 배움이 가능한 것인가?"

잠깐 훌쩍 어디론가 떠나 쉬고 싶다. 『불량한 자전거 여행』에서 호진이가 부모가 이혼하려는 걸 듣고는 어디론가 무작정 떠나고 싶었던 것처럼.


부모가 늘 입버릇처럼 인생을 거의 망친 것처럼 말하던 호진이 삼촌. 그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형과 차별을 받으며 사춘기를 방황하다가 고등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 호진이 엄마의 말에 의하면 실패한 인생의 전형이다. 하지만 호진이가 자전거 여행을 통해 알게 된 삼촌의 모습은 무기력하거나 어쩔 수 없이 회사에 끌려 다니는 아빠의 모습과는 너무 다르다.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이기에 자전거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자전거 여행 가이드로서 맡은 일에 책임감을 가지고 끝까지 밀고 나간다. 자전거를 타고 즐겁게 땀을 흘리다 보면 각자 안고 있던 복잡한 고민을 잊게 되고 앞으로 살아갈 수 있는 용기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가 그렇게 삶의 어려운 시기를 거쳐 왔기에 남다른 확신이 있었을 것이다.

지난 달에 직장에서 잘리고 술 없이는 하루도 못 견디던 목영우씨, 이번 자전거 여행을 마지막으로 큰 수술을 앞두고 있는 배병진씨, 아버지가 땀의 소중함을 배워 보라고 강제로 자전거 여행을 보내서 투덜거리던 대학생 박희진, 중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해 대안학교로 옮긴 배은영. 그리고 엄마가 힘들게 벌어온 돈으로 학원을 세 군데씩 다니고 있지만 성적도 오르지 않고, 서로에 대한 오해와 불신으로 인해 이혼하려는 부모에게서 몰래 도망친 신호진.

호진이는 늘 엄마가 정해진 학원과 학교를 오가며 지쳐갔다. 엄마나 학원, 자신의 의견도 물어보지도 않은 채 이혼하려는 부모를 원망하곤 했다. 하지만 삶의 잘못된 매듭을 풀 수 있는 힘도 결국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걸 호진이는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하기에 익숙한 호진이를 바꿔놓은 것은 자전거를 타며 흘리는 땀이었다. 대구를 가기 위해서는 벽처럼 우뚝 솟은 가지산을 넘어야 한다. 땀범벅으로 심장이 터지기 직전까지 달리면서 호진이는 깨닫게 된다. 호진이가 싸우는 상대는 가지산도, 엄마도, 학원도 아니라는 것을. 모든 걸 잊은 채 끊임없이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자기가 싸우고 있는 상대는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며 아이들을 가르치며 점점 지쳐가는 나 자신을 일으켜 세울 수 있는 힘도 내 안에 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수업 시간에 무력하게 있는 아이들을 보며 체념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시작은 미미하지만 그 동안 포기했던 것은 아니다. 개교기념일에는 나를 믿고 따르는 아이들을 데리고 5시간 정도 근처 천마산에 같이 올라가 정상에서 시원한 공기를 마시며 새로 시작할 용기를 얻기도 했다. 남들이 고작 아침에 10분 동안 책 읽는 것이 무슨 효과가 있겠냐면서 의심의 눈초리를 보낼 때도 아침 독서 운동을 꿋꿋이 5년째 지속하고 있다.

우리 반에는 다른 반에 없는 나의 땀과 열정이 서린 300여권의 학급 문고. 그리고 그 책을 열심히 읽는 28명의 친구들과 나. 다른 이들이 몰라주더라도 자랑스럽게 생각하기로 했다. 힘내기로 했다. 나보다는 아이들을 먼저 생각하면서 독서 활동을 해 왔기 때문이다. 적어도 아이들은 나의 진심을 알아줄 거라고 생각한다. 12일 동안 자전거 여행을 통해 호진이가 삼촌의 진면목을 알아 보았듯이 말이다. 또한 자전거 여행을 통해 땀 흘리며 아들을 만나러 부산까지 힘들게 올 호진이의 부모들도 결국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더 큰 바람이 있다면 나의 제자들과 호진이가 했던 자전거 여행을 같이 따라가고 싶다. 뙤양볕 아래에서 같이 땀 흘리고 힘들 때 투덜거리기도 하며 비도 맞으면서 살아 있음을 온몸으로 확인할 수 있다면 그 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 있겠는가? 교실 안 책상 앞에서만 공부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온 몸을 움직여 흘리는 땀으로부터 배우는 공부 또한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어른들이 먼저 깨우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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