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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 추콥스키 동화집 1
코르네이 추콥스키 지음, 바스녜초프·카녭스키·코나셰비치·스테예프 그림, 이항재 옮김 / 양철북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러시아 동화는 처음 접하는 것이어서 이 책을 읽으며 낯선 느낌이 강했다. 처음부터 ‘해충’ 이미지가 너무나 강한 바퀴벌레가 나와서 더욱 특이했을 것이다. 며칠 전에 인간들이 이유 없이 갖고 있는 ‘바퀴벌레’에 대한 혐오와 편견은 해충약을 팔고자 하는 회사의 ‘계략’일 수 있다는 글을 읽었는데도 불구하고 바퀴벌레는 전혀 친근하지 않았다.

  물론 이 책에서도 바퀴벌레는 모든 동물들이 두려워하는 ‘해충’으로 나온다. 바퀴벌레보다 몇 십배는 더 큰 동물들이 처음 보는 바퀴 벌레의 심상치 않은 외모만 보고 두려워 벌벌 떤다. 마치 처음 보는 것들에 대해서 다가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아이들처럼. 사자, 코뿔소, 곰 , 코끼리 같은 동물들이 자신들의 새끼를 바퀴벌레에게 바쳐야 한다는 현실 앞에서 꺼이꺼이 우는 것이다! 이런 우스꽝스러운 현실을 보고 캥거루는 ‘바퀴벌레란 고작 다리도 가늘고 보잘 것 없는 작은 벌레일 뿐’이라고 말하지만 어느 동물도 믿지 않는다. 이 때, 용감한 참새가 나타나 폴짝폴짝 뛰며 다가와 바퀴벌레를 먹어 치운다. 동물의 왕이라고 일컬어지는 덩치 큰 모든 동물들도 무서워 다가가지도 못하던 바퀴벌레를 단숨에 먹어 치운 참새의 참된 용기가 돋보인다. 어려서부터 이 동화를 읽으면서 자란다는 러시아 어린이들은 덩치가 크지 않아도, 힘이 세지 않아도 자신의 생각대로 행동한 참새의 용기를 자연스럽게 본받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에 나오는 ‘악어’에 나오는 바냐도 ‘참새’처럼 용기있는 인물이지만 더욱 구체적으로 나올 뿐만 아니라 동물들과 공존하는 평화로운 세계를 꿈꾼다. 악어를 필두로 한 아프리카 동물들은 인간 세계에서 동물원과 수족관에서 학대받고 있는 동물들을 구하기 위해 도시로 몰려간다. 귀여운 소녀 랄랴가 아프리카 고릴라에게 잡혀 가자 모든 사람들은 도망을 가 버리고 오직 용감한 바냐만이 남아 랄랴를 구한다. 그리고 동물원 우리에 갇혀 있는 동물들의 ‘우리를 깨부수고, 쇠사슬을 끊어 버리고, 철창을 영원히 부수고’ 자유롭게 해 준다. 단, 동물들에게 우리 밖으로 나와 ‘아무도 잡아먹으면 안 된다’는 약속을 하고서.

  ‘우리는 총을 부수고, 총알을 파묻을 거야. 너희들은 발톱과 뿔을 잘라내!’

  얼마나 멋진 말인가? 이보다 더 진실에 가까운 말은 없을 것이다. 어른들은 어린 바냐가 알고 있는 이렇게 쉬운 일을 아직도 실천하지 못해 서로 총부림을 하고 적대시하며 서로를 비난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바냐가 표범의 등에 올라타서 거리를 다니고, 독수리 위에 걸터앉아서 푸른 하늘을 날아다니는 장면. 자신의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했는데도 전혀 거리낌이 없는 상태. 그 누구에게도 해가 가지 않는 이 모습을 추콥스키가 원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바냐와 랄랴는 늑대가 만들어준 만두를 먹고, 산양이 읽어주는 질 베른의 동화책을 듣고, 하마가 들려주는 자장가를 들으며 소파에 앉아 평화롭게 잠에 빠져든다. 잠에 빠진 바냐의 표정에서 좀전까지 동물들을 향해 권총을 겨누던 살벌한 모습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다.

마지막 쪽에서 악어에게 달려가는 바냐를 흐뭇하게 쳐다보고 있는 백발의 인자한 할아버지가 아마도 ‘추콥스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악어와 함께 달콤한 차를 마시며 모든 동물들과 아이들이 평화롭게 지내는 그런 곳을 꿈꾸었을 것이다. 그리고 평화를 얻기 위해서는 아이 같은 순수한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 씻기 싫어하는 아이를 겁주기 위해 뛰쳐나온 ‘위대한 세면기 모이도디르’의 그림은 너무나도 재미있었다. 어린 아이들이 이 그림을 본다면 씻지 않으면 엄청난 일이 일어날 거라는 무서운 상상(!)으로 인해 도저히 안 씻고는 배길 수 없을 것이다. 씻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거대한 세면기가 벽에서 떨어져 나와 나만 쫓아다닌다는 상상을 하는 이 순간 왜 이리 유쾌한지 모르겠다. 아마도 씻기 싫어하는 아이들을 ‘구워 삶다시피 해서’ 씻겨야 하는 엄마의 심정을 한 번이라도 느껴 본 사람이라면 이 그림을 본 순간, 웃음이 터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

 

  이색적이고 낯설었지만 우리와는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추콥스키의 동화가 재미있었고 다음 이야기가 기대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어린 아이들에게 어느 누구와도 평화롭게 ‘공존’하는 방식에 대해 어렵지 않게 부담감 없이 쉽게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다르다고 함께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 우리가 너무나 잘 못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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