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이머즈 하이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박정임 옮김 / 북폴리오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클라이머즈 하이>-우리는 어떤 줄을 당기게 될까

 

한여름의 작열하는 태양이 매미의 몸에 내리꽂히고, 그 뜨거운 열기에 감전이라도 된 양, 깜짝 놀란 매미는 온몸을 쥐어짜며 울어젖힌다.

“맴...찌짓, 맴...찌짓”

애벌레 상태로 5년을 땅 속에 묻혀 있다가 드디어 허물을 벗은 매미는 길어야 3주간, 짝을 짓고 알을 낳기 위해 감전되는 듯한 뜨거운 열기를 이겨내고 뱃속 깊이 몸통을 노래를 부르고 찰나의 생을 마감한다.

강렬한 여름 태양만큼 찬란하고 순수한 삶을 살다가는 매미.

 

이 책에 나오는 주인공 유키 가즈시마는 매미를 닮았다.

한낮의 추욱축 늘어진 뇌를 깨우는 강렬한 사건과 읽는 이를 휘몰아치는 빠른 전개에 매미의 한 살이가 농축되어 있는 듯.

몰입해서 책을 읽고 난 뒤에야, 내 귀를 파고드는 저 따가운 매미 소리.

아파트 베란다 방충망에 붙어 생을 다해 노래를 부르는 매미의 소리가 귓가를 맴돈다.

“왱~찌짓, 왱~찌짓.”

 

유키 가즈마사는 군마 현 지방 신문 킨타칸토의 기자다. 경력은 오래 되었으나, 데스크로의 승진을 거부하고 사내 최고참 기자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중이다. 자신의 어린 시절 응어리진 기억 때문에 사람과의 관계에 서툴렀던 유키는 신입 모치즈키 료타를 죽음의 길로 내몰았다는 죄책감에 사표를 쓰려고도 했으나, 징계 없음으로 그 사건은 일단락되었었다. 그럼에도 그는 현역 기자를 자처하며 승진을 마다하고 있는 중이다. 무거운 마음을 안고 일을 하는 그에게 최근의 활력소는 털북숭이 안자이와의 산행뿐. 안자이와는 몇 번의 산행 연습 후 ‘악마의 산’으로 알려진 쓰이타테이와 암벽에 오르기로 약속을 했다. 하지만 쓰이타테이와로 출발하려는 날 밤, 지역에 있는 산인 오스타카에 524명의 사상자를 낳은 최악의 항공기 추락 사고인 여객기 JAL 123편의 추락 사고가 발생한다. 유키는 이 사건 보도의 총괄데스크로 지명되고 안자이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채 끓는 가슴을 안고 보도 전쟁을 지휘하게 된다. 한편, 산으로 출발한 줄 알았던 안자이는 산에 올라보지도 못하고 엉뚱한 장소에서 사고를 당해 식물인간이 되어 버렸다.

 

무엇보다 현장이다. 아무리 명령이나 지시를 내린다고 해도 사건을 담당한 것은 되지 않는다. 기자직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은 자신이 현장에서 눈으로 본 것 외에는 자랑할 수 없다.-49

 

여객기 사고의 데스크로서, 지방신문의 기자로서 사명감을 가지고 일에 임한 유키는 생각이막힐 때마다 안자이를 떠올리고, 오르지 못했던 산을 생각하며 현실의 일을 하나하나 해결해 나간다.

유키 앞을 가로막은 두 개의 산. 그 때마다 안자이의 말, “내려가기 위해 오르는 거지.”를 떠올리며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유키.

 

클라이머즈 하이-흥분으로 인해 공포감이 마비되어 버리는 것.

뜻밖의 장소에서, 그 클라이머즈 하이가 풀리는 것이 무서운 것입니다. 마음속에 모여 있던 공포심이 한꺼번에 분출하기 때문이죠. 암벽을 오르고 있는 중간에 풀려버리면 더 이상 한 발자국도 오를 수 없게 됩니다.

 

여객기 사고를 담당하며 이렇다 할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던 유키에게 여객기 추락 사고의 원인을 밝혀낸 특종이 도달했다. 시각을 다투는 일이었으나-

 

후회하고 있었다. 나름대로 수긍한 채 사고의 원인인 ‘격벽’을 묻었다.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특종의 유혹을 억눌렀다. 그런데 후회하고 있다. -302

 

이 순간이 바로 유키가 클라이머즈 하이에서 풀려버린 순간이리라.

그 이후의 순간을 유키는 어떻게 극복할까.

 

이것이 중요한 것이라고 본다.

특종에 대한 통제할 수 없는 욕망과 프로 저널리스트로서의 치열한 고뇌, 신문사라는 조직 내에서 벌어지는 비열한 암투.

점점 클라이맥스를 향해 전개되던 이야기가 탁 풀려버렸을 때, 그 긴장감이 사라진 상태의 “무”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17년 후, 식물인간이었던 안자이의 장례식을 마치고, 안자이의 아들과 함께 쓰이타테이와에 오르는 유키.

산을 오르며 유키는 진정한 과거와의 삶에 화해를 청한다.

훌륭한 아들을 남기고 간 안자이에 대한 감사도 함께...

 

매미처럼 짧고 강렬한 일생을 살다가는 경우가 있는가하면, 아무 일도 없이 미미한 존재로 숨만 쉬며 살다가 생을 마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어떠한 삶을 살건, 각자가 골라가며 살아갈 수는 없다.

우리는 우리 앞의 생을 마주대하는 자세를 평소에 갈고닦아야 한다.

불이 뜨겁다는 것을 꼭 만져봐야만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듯, 우리는 소설 속의 여러 삶을 통해서 간접경험을 할 수 있다.

클라이머즈 하이에서 안전하게 풀려나는 법

유키의 경우가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나는 이 책에서 이런 방법도 있다 하는 것을 배우고 간다.

내려가기 위해 오르는 인생. 내려가지 않고 보내는 인생.

어떤 줄을 당기게 될지는 모르는 일.

클라이머즈 하이를 읽는 동안은 그 두 가지 경우를 머릿속에 그려보는 것도 의미 있지 않을까 한다.

 

 

12년 기자 경력이 이 한 권의 책에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다. 무엇이 기자 정신인지, 기자의 자세란 어떠해야 하는지. 이 책에서는 유키와 (책의 서두에 언급되었던 사고사 당한 후배 기자의 친척인) 아야코를 통해서 진정한 기자에 대한 인물상이 정립되는 듯하다.

‘인간의 생명에는 커다란 생명과 작은 생명이 있는 것이지요.’

 

치밀한 구성력과 긴장감 있는 서술은 단 몇 시간만에 책을 독파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10년간의 공백을 깨고 발표한 소설 <64>도 훌륭했지만, 그 이전에 이 작품 <클라이머즈 하이>도 당당히 요코야마 히데오의 출세작이라 해도 손색이 없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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