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나오자마자 무성한 입소문을 타고 날개 돋친 듯 팔린 바로 그 화제의 책. ...이라는 건 거짓말이고. 정작 출판사에서 "선생님 번역 좀 해주세요"라고 부탁하는 대학 교수들은 절대 이런 책 따위 보지도 않으리라. 아마 이런 책이 존재하는지도 모르겠지. 당연하다면 당연한 얘기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해당 분야의 지식과 어느 정도의 영어 실력을 갖춘 대학교수들이 번역한 원고와 해당 분야의 지식은 부족하나 좋은 영어 실력과 훌륭한 우리말 실력을 갖춘 전문번역가가 번역한 원고. 어느 쪽이 나을까? 모르겠다. 일단 나는 후자의 원고를 본 적이 없고 그래서 미치도록 탐날 뿐이다. 원칙을 따지자면 번역은 번역자가 해야 옳지 않을까. '감수'는 괜히 있나? 대학교수의 후광이 필요하면 잘 꼬셔서 감수나 시키면 되지. 물론 비용이 이중으로 든다는 문제가 남는다. 덕분에 편집자가 미치도록 원고를 뜯어고쳐야 하는 상황이 된다. 교수마다 다르겠지만, 전문번역가보다야 교수는 자신의 원고에 대한 애착이 적은 것도 사실이고. 이런 (개인적인) 이유로, [번역의 탄생]은 번역가 못지않게 편집자에게도 필요한 책이다. 스무 장도 못 넘겼는데 벌써 부끄럽다. 그간 내가 간과해온 '잘못된 번역 습관들'이 너무나 많이 지적된다. 편집자라는 입장에서 남의 원고를 뜯어고치며 나는 또 얼마나 바람직하지 못한 문장으로 글을 더럽혔는가. ...그러니까 애초에 번역을 제대로 해오란 말입니다, 교수님들하. 제대 직후 붙들고 살다시피 한 안정효 씨의 책에 비하면, 이 책은 참 친절하다. 안정효 씨가 군인 같다면 이희재 씨는 참말 신사 같달까. 부드러움 속에 숨어 있는 글쓴이의 번역에 대한 애정과 열정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내 돈 주고 사는 책 중에 비문학 쪽 도서는 1년에 한 권 될까 말까 하지만, 그런 나에게도 이 책은 참 값지다. 앞으로 틈나는 대로 읽고 또 읽어야겠다. (09-6-1에 썼던 글)
얼마 전 일다 뉴스레터를 통해 루네(Lune)와, [압생트(Absinthe)](2009)라는 데뷔 앨범을 알게 됐다. 일다 원문은 병적 슬픔을 환상적으로 노래하다. 일단 유투브에서 찾은 음원을 하나 올린다. #4 유리날개. 가사는 네이버 아이템 팩토리 참고. 미안하지만, 가사만 놓고 보면 크게 와닿는 게 없었다. 앨범의 다른 곡들도 마찬가지. 하지만 앨범을 통으로 걸고 듣다 보면 돌연 마음을 파고드는 순간이 있는데, 다소 사로잡는 맛은 부족하나마 보석 같은 순간이다. 아직, 뭐랄까, 다듬어지지 않은 듯한 느낌도 마음에 들고. 유투브 외에도 찾아보면 음원과 공연 영상이 몇 있긴 한데 죄다 음질이 조악했다. 사실 앨범 자체의 믹싱도 보컬의 음색을 살리지 못하는 느낌이다. 뭐 그걸 의도했다면 할 말은 없지만. 앞으로 자신의 음색에 보다 어울리는 곡을 쓸 수 있게 된다면 참 좋겠다. 보컬을 한영애와 비교하는 평도 있던데, 아직 그건 좀 아닌 듯싶다. 앨범의 정서는 Azure Ray에 가깝다는 느낌이 들기는 한다. 대놓고 "사라, 당장 사!"라고 하기는 약간 어려운 음반이다. 완성도의 문제는 제쳐두더라도, 침잠하는 음률 속에 반짝이는 순간마저 가식으로 느껴질 여지가 있으니까. 압생트는 기쁨을 주기도 하지만 해가 되기도 하는 독주다. 이 앨범은 압생트가 되기에는 어느 쪽으로든 약하다. (09-6-24에 썼던 글)
근사한 소설이다. 조용한 목소리로 긴 울림을 남긴다. 빛과 어둠 사이에 뚜렷한 경계는 있는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다. 자주 잊어버려서 문제지. 본격 장르문학다운 SF는 아니었지만, 오히려 바로 그 점에서, SF가 내포할 수 있는 이야기의 폭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던져준 소설이었다. 번역과 편집도 좋은 편.
소설과 시집 외에는 책을 사지 않겠노라 마음먹은 지 5년 정도 된 것 같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서 보지 않겠다'라고 해야 맞겠다. 또 '한국+신간+베스트셀러'라든가 '외국+유명+시집'은 무조건 피해왔다. 그런데 요즘 들어 비문학 도서를 사거나 혹은 사려고 보관함에 넣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소신이 약해지는 건지, 철이 드는 건지... ↑이것들은 회사에 들어가고 얼마 후에 샀다. 모두 유용한(?) 책이고, [번역의 탄생]은 리뷰랍시고 뭔가 글을 쓰기도 했다. 아마 출판사에 들어가지 않았더라도 [번역의 탄생]은 소신을 어겨가면서 샀을 책이다(일단은 아마추어 번역가니까). ↑나온 지 한참 된 책들로, 전부 중고로 구했다. [감염된 언어]는 다른 출판사에 있는 선배가 우리말 순화에 반대하는 근거로 든 책이라 사긴 했는데, 왠지 읽기 좀 겁나는 책이다. 나머지 책들은 어딘가에서 검색하다 어찌어찌하다 보니 장바구니에 들어가 있었다. 셋 다 아직 안 읽었다-_- ↑최근 나온 책들로, 문학이 아님에도 왠지 사서 읽어야 하지 않나 싶은 책들이다. 앞의 두 권은 구독하던 블로거가 낸 책이기에 그러하고, 마지막 책은 예의상 무조건 사야 하지 않나 싶다...라고 하면서도 통장 잔액을 확인하고는 한숨만 쉴 뿐. ↑위 책들은 관심은 가지만 잠정적으로 사지 않기로 한 책들이다. [대한민국 IT사]는 출판사 사장님이 한 권 주신다고 해서 사지 않을 뿐, 실제로는 많이 기대되는 책이다. [한국 웹의 불편한 진실]은 나 역시 전부터 오픈웹 진영을 응원했으므로 한 권 살까 고민도 했지만, 김기창 씨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 지금으로서는 그의 책까지 사서 보지는 않기로 했다. 그리고... 마지막 책은... 사실은... 월급 타면 바로 지를 거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