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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언
산도르 마라이 지음, 김인순 옮김 / 솔출판사 / 2001년 12월
평점 :
절판
솔출판사와 산도르 마라이를 알게 된 지 6년이 지났다. [결혼의 변화]와 [열정], [성깔 있는 개]까지 읽고 또 어쩌다 중고로 구하게 된 게 이 책이다. 마침 동네에 있는 모 헌책방에 있더라고(여담이지만, 사장님과 술도 마시고 담배도 같이 피울 정도로 친한 사이임에도, 몇 걸음이 귀찮아 회사에서 인터넷으로 주문했는데, 삐뚤빼뚤한 볼펜으로 밑줄 치지 않은 쪽이 거의 한 장도 없는 책이 도착해서, 조금은 놀랐다. 물론 사장님께서는 미안하다며 천 원짜리 지폐를 동봉해주셨지만).
어쨌든 이 책은 [열정](1942)보다 초기작(1939)임에도, [열정]의 성공 덕분인지 [열정]과 유사한 소설로 홍보되는 책이다. 산도르 마라이의 작품 중 영어로 번역된 몇 안 되는 작품 중 하나이기도 하고. 실제로 '주인공이 인고하며 기다리던 인물이 마침내 먼 곳에서 돌아온, 하루 동안의 이야기'라는 설정이 똑같다. 플롯이랄 건 없고, 기다림 속의 긴 독백과 사색 그리고 재회 뒤의 짧은 대화가 전부다.
이 책에서 돋보이는 건 주인공 에스터가 기다리는 라요스라는 인물이다. 두말할 필요 없이 라요스는 구제불능 인간말종이다. 그런데 작가는 이런 인물을 그럴듯한 인물로 형상화해서 '사랑'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부상시키는 데 성공한다. 분명히 이것은 작가의 능력이다.
하지만, 동시에, 주제뿐 아니라 두 인물의 멘탈리티까지도, 오늘날 독자(랄까, 아니면 그냥 '나'랄까)가 읽기엔 진부하다. 진부한 정도가 아니라 나쁘게 말하면 사회적 성의 답습, 그리고 공고화에 일조한다고도 볼 수 있다. "남자들이 사랑에서 보이는 용기는 하잘것없기 때문이오. 사랑, 그것은 당신네 여자들의 작품이오. 사랑할 때 당신들은 위대하오."(167쪽) 따위의 대사라니.
라요스는(그리고 어쩌면 마라이는) 성 역할의 이데올로기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미화한다. 나아가 이를 에스터로부터 마지막 물질적 기반마저 앗아가버리는 근거로 삼는다. 거기 넘어가는 에스터도 대책 없기는 마찬가지지만, 라요스가 쓰레기인 것만은 분명하다. 라요스는 에스터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착취할 뿐이다. 오백 보 물러나서, 라요스의 감정이 사랑의 한 형태라 해도, 그것은 여전히 착취다.
(내가 아는) 마라이 특유의 이분법 구도(예술가 대 시민)도 이 작품에서는 모호하다. 라요스는 예술가 기질의 인간이라기보다, 그냥 한심한 사기꾼이다. 에스터는 일견 이성적인 시민이지만, 작품 말미에서 라요스의 말에 넘어가 '용기'를 내야 한다고 결심하기에 이른다. 결국, 이 작품에서의 이분법 구도는, 거듭 말하지만, 남성 대 여성의 구도에 그치고 만다.
끝으로, 전에 읽었던 마라이 책들과 마찬가지로,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맞춤법, 띄어쓰기 틀린 부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인제 그만 솔출판사와 산도르 마라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도 될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