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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퀴엠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 제니퍼 코넬리 외 출연 / KD미디어(케이디미디어) / 2003년 3월
평점 :
품절
밑에 [시리즈 7] 올리다가 생각난 영화. [시리즈 7]과 비슷한 시기, 어쩌면 같은 날에 봤던 것 같다. 내가 보고 얼마 안 있어 극장에서 개봉했으니까. 아마 2001년 피판 개막작이라는 말 때문에 구해서 본 것 같다.
본 사람은 알겠지만, 상당히 충격적인 영화다. 완전 비극적인 파국을 차치하더라도, 적어도 극중인물들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다루고 있는, 그럼으로 인해 관객으로부터 부러움(?)을 이끌어내는 [트레인스포팅]과는 전혀 비교가 되지 않는 마약+청춘 영화다. [레퀴엠]을 본 관객에게 돌아오는 것은 철저한 현실감각과 경고뿐이다. 이 지긋지긋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젊은이들은, 소박하지만 비현실적인 꿈을 꾸고 있는 자신들의 자폐적인 자화상을 발견하게 되고, 곧이어 마약이라는 손쉬운 유혹에 빠지게 될 경우 자신들이 이르게 될 비극을 목격하는 순간 전율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외적으로 보면, 힙합 몽타주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낸 감각적인 편집(DJ가 영화필름을 가지고 스크래칭을 하고 우리는 그것을 본다고 상상해보라)과 현대인의 소외를 시각화한 화면분할 방법이 돋보인다. 영화의 내용만큼이나 시각적으로도 적나라한 영상을 보여준다. 하지만 심의과정에서 등급보류 판정을 받은 것은 폭력이나 성적 묘사 때문이 아니라, 마약이라는 위험한 소재를 너무나도 현실적으로 표현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충격적인 성적 묘사가 엔딩부에 잠깐 등장하긴 하지만.
당시에 영화를 보고 나서, 나는 두 번 다시 이 영화를 안 보겠다고 다짐을 했더랬다. 조금 다르지만 amon duul의 [phallus dei]를 쉽게 듣지 못하는 것과 비슷하다. 호기심을 참기 힘들 정도로 보고 싶지만 보고 나면, 아니 보고 있으면 너무나 안타깝고 고통스럽다. 내가 남자 주인공에 너무 감정이입을 해서인지도 모르겠다만, 그건 내 천성이라 어쩔 수가 없다. 3년이나 지났으니 이제 다시 봐도 될 것 같기도 한데, 잘 모르겠다, 아직도 이 영화는 내게 있어선 두려운 영화다.(2005-9-7, 필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