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face Tension
M2U Records / 1977년 7월
평점 :
품절


 

 히브리어의 첫 번째 글자인 Aleph. 이 단어를 들으면 보르헤스가 떠오르는 게 당연한 일이고, 그런 호기심에 오스트레일리아 출신 동명 밴드의 [Surface Tension]을 입수해 들어봤다. M2U답지 않은, 상당히 평범한(!) 커버를 자랑하고 있는 음반이었다. 역시나 밴드의 히스토리에 대해선 알려진 바가 그리 많지 않다. 1977년에 발표한 이 음반이 유일작이라는 정도.


 첫 곡은 제목부터 Banshee(스코틀랜드 및 아일랜드의 민담에서, 가족의 불행을 예견하는 목소리만 있는 유령. 물론 보르헤스의 [상상동물 이야기]에도 등장한다). 제목 때문에 신비스럽거나 기괴한 분위기를 예상했지만, 인트로만 제외하면 의외로 경쾌한 곡이었다. 하이톤의 호쾌한 보컬 덕분에 공격적인 하드록 삘이 살짝 묻어나기도 한다. 시원시원한 연주에서 일단 실력은 있는 밴드구나,하고 자연히 수긍하게 되는 곡이다(뭐 Yardbirds의 커버 밴드였다고도 하니까 말이다). #2와 #3은 키보드와 기타의 합연이 돋보이는 곡들인데, #2는 록큰롤 분위기가 강하며 #3은 비장한 연주가 인상적이다. 특히 #3의 기타 솔로는 당대 슈퍼밴드들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만큼 멋지다. 하지만 여기에 보컬의 감정이 제대로 살리지 않은 것 같아 조금 아쉽다. #4는 다소 차분한, 그리고 다소 평범한 발라드.


 #5는 앨범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15분의 대곡으로, 앞의 곡들에 비하면 심포닉록적인 느낌이 짙은 곡이다. 더블 키보드가 빛을 발하는 초반의 간주가 매력적이고, 9분이 조금 안 될 무렵 (아마도) 멜로트론의 향연 속에서 기타와 키보드가 이끌어내는 극적인 카타르시스도 인상적이다. 하지만 엔딩부가 허전한 것은 또다시 아쉬운 부분. 마지막 곡은 Heaven's Archipelago(천국의 다도해)라는 상당히 로맨틱한 제목의 발라드곡이다. 조용한 선율의 피아노 위에 실리는 절제된 연주가 오묘한 정서를 상기시키는데, 최근 북구 쪽 재즈(nu-jazz) 피아노의 질감에 익숙한 청자라면 피아노 사운드를 조금 더 차갑게 깎는 게 나았을텐데,하며 아쉬워할 곡이다.


 분명 주류 프로그레시브록 씬이 아닌, 호주라는 변두리의 밴드 치고는 연주력이 상당히 뛰어난 음악을 들려주는 음반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Yes의 Jon Anderson을 닮은 듯한 보컬의 낭랑하면서도 거친 하이톤 음색은 음반의 완성도를 떠나 상당히 인상적이다. 하지만 곡의 구성은 #5를 제외하면 대단한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컨셉트 앨범이 아닌 것은 그렇다 쳐도 메시지가 뚜렷이 전달되지도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밴드만의 독창성이라고 할 만한 게 발견되지 않는다. 고수들이 우글거리던 70년대에, 자신들만의 개성을 가지지 못한 밴드가 살아남기 힘들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아니, 이것은 어쩌면 어느 시대에서나 통용될 법칙일런지도 모르겠다. 오랜 세월 잊혀졌던 음반을 재발굴해낸 M2U 김기태 씨의 노고에는 백번 감사하는 바이지만, 확실히 이 음반은 범작 내지 수작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명작은 아니다.(05-8-30, 필유)

 

 

포노에게: Alepth가 아니라 Aleph입니다. 수정해주세요. 한참 찾았네-_-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