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Rat Roads
Garden Of Delights / 2002년 1월
평점 :
품절


 

 독일 뮌헨(Munich) 출신의 밴드들은 Amon Düül 정도를 제외하고는 그 음악성과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다른 지방 ― 대표적으로 뒤셀도르프(Düsseldorf) ― 밴드들만큼의 국제적인 인지도를 얻지 못했다. 그러나 Guru Guru, Embryo, Gila 등 수많은 뮌헨 밴드들은 당대 및 후대 크라우트록신에 지대한 영향을 남겼을 뿐 아니라, 현재에 이르기까지 골수 매니아들로부터 컬트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지금 소개하고자 하는 Out of Focus 역시 그 음악성에 합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던 뮌헨 출신의 밴드이다.


 69년 말에 결성된 Out of Focus는 Ihre Kinder의 매니저에게 발탁되어 Kuckuck 레이블에서 70년 첫 앨범 [Wake Up](3001 RCD 별1개)을 발매한다. 이후 71년에 동명 앨범(2001 RCD 별1개)과 72년 더블 LP의 대작 3집 [Four Letter Monday Afternoon]을 발표하고는, 상업적인 이유로 결국 Kuckuck 레이블에서 쫓겨나고 새 레이블을 찾지 못한 채 75년경 해체되고 만다. 그러나 뒤늦게 음악성을 인정받은 이들의 앨범은 90년대 들어 활발하게 재발매된다. 레이블을 찾지 못해 발매되지 못했던 72년에 녹음된 [Not Too Late]와 LP의 시간적 한계로 인해 3집에 실리지 못했던 곡들로 이루어진 본작 [Rat Roads]를 포함해서 말이다.


 [Rat Roads]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먼저 3집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3집 [Four Letter Monday Afternoon]은 러닝 타임이 90' 36"(보너스 트랙 제외)에 이르는 잼 형식의 음반인데, 놀랍게도 무려 11명의 연주자들 ― 기본적인 구성 외에 색소폰, 플룻, 트럼펫, 트롬본 등 관악기 주자들을 포함한 ― 이 참여하고 있다. 특히 3개의 트랙으로 나누어진 Huchen 55라는 48분짜리 대곡은, 이 11명의 연주자들이 동시에 여기저기서 즉흥 연주를 하는, 거의 황당하기까지 한 음악으로 유명하다. 그렇다고 캔터베리 신이나 프리 재즈를 떠올려서는 안 된다. 악기 구성상 빅밴드 재즈의 냄새가 짙게 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은 (때때로 놀라울 정도로) 치밀한 곡구성과 수준급의 연주를 진지한 자세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더블 LP를 채우고도 모자랐던 Out of Focus의 창조력이 본작 [Rat Roads]에서 고스란히 재현된다. 본작은 이들의 3집 레코딩 당시 남았던(!) 음원들을 Garden of Delights 레이블에서 2002년에 세계 최초로 CD화한 음반이다(카탈로그 번호 CD-064. LP는 다른 레이블에서 발매되었다). 3집에서 보여주었던 실험성은 다소 줄어들었지만 ― 정확히 말하자면, 고르고 골라서 좀더 좋은 곡들로 3집을 발표했던 거겠지만 ― 여전히 열정과 창의력으로 가득 찬 연주를 들을 수 있는 음반이다. 재즈와 싸이키델릭의 혼합물에 약간의 블루스와 캔터베리가 가미된 정도랄까.


 보컬곡이 두 곡(#1, #6) 수록되어 있는데, 블루지한 보컬을 즐길 수 있는 기분 좋은 곡들이다. 프로그레시브 리스너가 아니더라도 흥겹게 감상할 만한 수준이다. 나머지 트랙들은 약간 난해하면서도 흥미진진한 연주를 들려주는데, 특히 #7 Climax는 그 제목대로 정말 본작의 절정이라 할 수 있다. 예측불허의 실험적인 구성이 돋보이며, 재즈적인 요소를 차용한 크라우트록의 모습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곡이다. 이것은 비슷한 시기에 Annexus Quam이나 Missus Beastly가 시도했던 크라우트록과 같은 노선이기도 하다. 그러나 전자는 아방가르드 재즈, 후자는 스페이스록에 치우친 음악을 보여주는 반면, Out of Focus는 이 둘 사이의 균형을 절묘하게 잡아내고 있다.


 전반적으로, 3집 [Four Letter Monday Afternoon]의 그림자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지만, 미공개 음원이라는 점에서 콜렉터 및 매니아들의 관심을 충분히 받을 만한 음반이다. 물론 재즈록이나 브라스록에 관심이 많은 프로그레시브 리스너로부터도 환영받을 만한 음반이다. 크라우트록 입문자들에게 제일 먼저 추천할 만한 음반까지는 아니지만, 크라우트록을 계속 듣다 보면 언젠가는, 비록 반드시 이 음반은 아니더라도, 이들의 음악을 들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좋은 음악을 먼지 가득한 세월의 잠으로부터 해방시켜 햇빛을 볼 수 있게 해준 Garden of Delights에 다시 한 번 감사를.(2005년 7월, 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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