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Weltschmerz
Garden Of Delights / 1994년 1월
평점 :
품절


 헤르만 헤세의 동명 소설에서 밴드명을 따온 싯다르타(Siddhartha)의 유일작 [Weltschmerz](직역 world pain)는 1975년 자주 제작으로 400장만이 만들어졌을 뿐인 희귀작이다(2001 record collector dreams에 별 4개 랭크). 이를 전에 소개한 바 있는 독일 Garden of Delights 레이블에서 97년에 세계 최초로 CD로 복각(카탈로그 번호 CD-013)한 것이 바로 본작이다. 희귀성뿐 아니라 음악적으로도 많은 호평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1971년 5명의 대학생들을 주축으로 결성된(본작에는 3명의 객원 멤버가 더 참여했다) 싯다르타는 밴드명대로 구도자적인 음악을 들려주고 있는데, 특히 초기 핑크 플로이드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실험적인 요소가 두드러지지 않고, 극적인 곡 구성이나 진행 등에서 오히려 영미권의 아트록에 가깝다고 볼 수 있는데, 따라서 엄밀한 의미로는 크라우트록이라 부르기는 어렵다. 그리고 특이하게도 바이올린의 사용이 두드러지는데 이것이 비장한 분위기의 형성에 일조하고 있다.

 

 트랙들을 살펴보면, 앨범의 문을 여는 #1 Looking in the past는 여성 보컬(객원 멤버1)의 풍부한 음색과 오르간 및 기타의 현란한 합주가 돋보이는 곡으로, 은근한 중독성을 풍기는 곡이다. 휘몰아치는 오르간과 기타, 슬픔에 잠긴 피아노 등 부분부분 매력적인 연주가 많은 트랙이기도 하다. 좀더 길게 만들어 완벽한 대곡 형식으로 갔으면 더 좋았을 것 같아 조금 아쉽다. #2 Tanz im Schnee(번역 Dance in the snow)는 푸가 형식을 띤 기타 중심의 연주곡으로, 매끄러운 연주를 들려주지만 그다지 특별한 인상을 남기지는 않는다.

 

 #3 Times of delight는 조금 자세하게 살펴보자. 먼저 오르간의 주도 하에 몽환적인 도입부를 거쳐, 애수에 찬 바이올린 연주가 등장하고, 이어서 내뱉는듯한 보컬의 주제부가 드러났다가, 다시 바이올린의 애잔한 간주가 이어지며, 여기에 광기에 찬 기타와 바이올린의 울부짖음이 곡의 절정을 알린다. 그리고는 도입부의 오르간 주제가 반복되며 여운을 남기는 마무리. 전형적이라면 전형적일 수도 있는 구성이지만, 연주는 전혀 흠잡을 데가 없고, 주제 전달에 있어 감정 표현도 훌륭한, 본작의 대표곡이라 할 수 있는 곡이다. 7' 09"라는 시간이 전혀 짧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 훌륭한 아트록 소곡이다.

 

 #4 Weit Weg(번역 Far way)는 잔잔한 기타 및 플룻(객원 멤버2) 연주가 포크적인 분위기를 내는가 싶다가, 느닷없이 튜바(객원 멤버3) 솔로가 등장하기도 하는 독특한 곡이다. 또 유일한 독일어 가사의 곡이기도 하다. 시간이 무려 12' 18"에 이르는데, 불필요하게 곡을 늘려놓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끝으로 #5 Gift of the fool은 오르간과 바이올린이 만들어내는 불길한 분위기와 몽환적인 기타 연주, 어딘가 조소적으로 느껴지는 보컬이 인상적인 곡이다.

 

 전반적으로, 이들의 진면모를 파악하기에는 러닝 타임이 너무 짧아서 아쉬운 감이 많이 남는 음반이다. 이들이 밴드를 계속 해서 음반을 더 냈다면, 그래서 이들이 음악적으로 발전 혹은 변모하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 당시에는 단 한 장의 음반을 남기고 사라지는 좋은 밴드가 너무도 많았다. 싯다르타 역시 멤버들의 대학 공부와 취업 등으로 본작 한 장만을 남기고 77년 말에 해산되었다. 이런 밴드들의 음반 중에는 후세에 이르러서야 진가를 인정받게 되는 명반이 있는가 하면, 평균 이하의 범작 혹은 그저 그런 아류작도 많았다. 본작은 전자에 속하는 명반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시대의 수많은 음반들 중에서 그리고 크라우트록이라는 장르의 시각에서 볼 때, 본작이 불세출의 걸작이라고까지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매우 뛰어난 프로그레시브록 음반인 것은 사실이다.(05-07-14 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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