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은 여름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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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같지 않은 서늘한 바람이 분다. 여름에 나는 공선옥을 읽고 김애란을 읽고 정유정을 읽었다. 남루하고 상처투성이에 때로 영화보다 더 잔혹해서 외면하고 싶은 오늘날 우리의 현실을 포착한 문장들. 나는 오랫동안 현실에 고개를 돌리고 장르소설에만 탐닉했던 것 같다. [퍼니 게임]은 아무렇지 않게 보면서 [대학살의 신] 같은 영화는 도저히 눈뜨고 보지 못하곤 했다.

그러니까 [바깥은 여름] 역시 내게는 정말 읽는 게 고역인 책이었다. 극적인 갈등이나 파국, 자극적인 소재 따위 없이 오히려 너무나 단단히 현실과 삶에 발을 붙이고 있어 읽기 힘든 소설들이 모여 있었다. [37회 이상문학상 작품집]에서 이미 읽었던 {침묵의 미래}는 예외였다. 이 소설집에 같이 묶이기엔 다소 이질적인 알레고리인데, 나중에 알았지만 오히려 김애란의 초기작들과 비슷한 면모가 있다.

나머지 수록작들에는 뭔가 공통되는 면이 있다. 사별(이별), 좌절, 당혹 같은 것들. 어떤 작품에서는 과거사이고 어떤 작품에서는 현재진행형이다. 물론 한번 깊이 새겨진 상처는 여간해선 아물지 않고, 하나의 비극적 감정은 다른 비극적 감정을 부른다. 혹은 반복된다. 우리는 일단 마음에 깃든 어떤 어두움도 다시는 극복하지 못한다. 비애감은 시간이 흐르며 감쇠 사인곡선을 그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멀리서 바라보면 계속 랜덤하게 진동하고 있을 뿐이다. 시간이 아주 커지면 진동의 주기는 늘어날 수도 있겠지만, 진폭 자체가 규칙적으로 감쇠하는 일은 없다. 책을 여는 {입동}은 이를 잘 보여주는 단편이다. 누군가를 잃고, 잃지 않은 것처럼 살 수 있는 인간은 없다.

이 책에서 김애란의 문장은 덤덤하고 먹먹하다. {건너편}과 {풍경의 쓸모}는 흔한 헬조선의 이별과 좌절의 과정을 그린다.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도 {입동}처럼 사별을 겪은 화자가 또 한 번 모종의 좌절을 겪는 내용이다. 스마트폰이라는 현대적 소재를 잘 활용했고, 마냥 슬프다기보단 웃프면서 어딘가 실낱만큼은 희망을 제시했다고 볼 수도 있어 책을 닫는 작품으로 고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가리는 손}은 조금 중의적으로 읽힌다. 아마 작가가 의도한 바이겠지만, 작품의 태반을 이루는 독백이 긴밀하게 연결되지 않고 문단 단위로 따로 노는 듯해서 더 그런 인상을 받는다.

{노찬성과 에반}은 딱 다섯 쪽을 넘기는 순간부터 눈시울이 축축해졌다. 여기까지 읽으면 이 이야기가 행복하게 끝나지 않으리란 걸 삼척동자도 알 수 있다. 아버지를 여의고 할머니와 가난하게 살던 어린아이가 휴게소에 묶인 유기견을 발견한다... 이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될 것 같은가? 모두가 행복한 결말 따위 있을 리가. 특히 이 소설이 더 슬픈 건, 이야기를 비극(이랄까 조금은 덜 슬플 수도 있는 결말이 아닌 결말)으로 몰고 가는 주체가 타인이 아닌 화자 자신이라는 점이다.

동시대 동년배 한국 작가가 쓴 이 소설들은, 읽기 괴로웠지만 동시에 내 주의를 환기해주었다. 거지 같은 현실을 똑바로 바라볼 것. 그리고 (가능하다면) 있는 그대로 쓸 것. 갈 길이 머니 일단은 한국 소설을 읽는 양을 늘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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