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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미 넉장반 세계일주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
모리미 도미히코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0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일본 소설을 읽지 않은 지 오래지만, 애니메이션에 반해 사둔 모리미 도미히코의 책이 두 권 있다.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는 사서 바로 읽고 오탈자를 정리해 장문의 이메일을 출판사에 보내기도 했다(답장은 받지 못했다 슈발). 나머지 하나인 [다다미 넉장반 세계일주]를 최근에 읽었다.
거슬러 올라가면 애니메이션 [다다미 넉장반 세계일주]를 보게 된 건 [케모노즈메]를 보고 유아사 마사아키의 스타일에 매료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후 마츠모토 타이요의 [핑퐁]을 원작과 99% 싱크로율로 애니메이션화하기도 했고, 내가 사랑하는 애니메이션 감독 1순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핑퐁]이야 원작이 자타공인 천재의 작품인지라 논란의 여지가 없다만 [다다미 넉장반 세계일주]가 내게 준 기묘한 감동의 쓰나미의 본질이 감독의 힘인지 원작자의 힘인지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결론적으로 원작 소설은 다소 실망스러웠다. 먼저 애니메이션은 TVA에 맞게 오리지널 에피소드를 추가하는 등 에피소드 개수가 더 많은 반면, 원작은 네 개뿐이다. 페이지가 적은 건 아니지만, 네 개 에피소드 모두 99% 똑같은 문장이 상당 부분 반복되므로 아쉬운 면이 있다. 당연히 애니메이션은 각 에피소드마다 베리에이션을 줄 수 있는 요소가 많고, 한 에피소드가 한 분기를 다루는 만큼 횟수가 많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루프물로서의 면모가 강화되는 효과도 있다.
여기에 의고체(擬古體)를 텍스트로 직접 느낄 수 있다는 게 장점이 될 수도 있겠지만, 애니메이션 또한 독백을 속사포 랩(아웃사이더보다는 의고체를 빠르게 읽는다는 점에서 가리온의 템포를 높인 버전이 가까울 거다)으로 처리할 만큼 엄청난 양의 텍스트를 제공한다. 게다가 문체의 맛을 느끼기에는 애초에 번역이라는 한계가 존재한다. 더 나아가면 의고체로 유명한 히라노 게이치로와는 아예 용례가 다른 이 작가의 문체를 의고체라고 부를 수 있기나 한 건지도 의문이고.
결정적으로, 소설을 읽으며 내가 이 작품의 애니메이션에 왜 그토록 경도했는지 다시금 자각할 수 있었다. 과거의 선택을 돌이킬 수 있다면 현재를 더 좋게 만들 수 있는가? 루프물이나 타임리프물에서 흔히 볼 수 있듯, 그렇지 않다. 우리가 정말로 과거의 선택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해도, 우리의 현재는 그 전과 똑같이 여전히 불행할 것이다. [마법소녀 마도카☆마기카]를 떠올려보자.
결과를 떠나, 몇 번이고 몇만 번이고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도 있다. 이 작품에서는 화자와 오즈와의 관계다. [11.22.63]식의 사랑과는 달라도 한참 다른 사랑이긴 한데, 어쨌든 사랑이다. 소설은 네 에피소드 모두 아카시와 맺어지는 것으로 끝나며 ‘성취된 사랑만큼 이야기할 가치가 없는 것은 없다’라는 폭력적인 서술도 서슴치 않지만, 애니메이션에서 거의 모든 에피소드 마지막에 부각되는 것은 오즈다(아카시라는 ‘진히로인’에 이르는 과정의 걸림돌로 의도적으로 설정한 장치겠지만). 나는 여기에서, 변하지 않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강한 감정을 목격하고 그 ‘운명의 검은 실로 맺어져’ 있는 그 ‘나름의 사랑’에 전율을 느낀다. 그것이 어떤 형태든 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