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도둑
미셸 주베 지음, 이세욱 옮김 / 아침이슬 / 200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즘 읽은 책도 정리를 하지 못하는 판에 옛날에 읽은 책을 정리하고 있다. 기록에 따르면 4년 반 전에 읽었던 책이다. ‘왜’ 읽었는지가 중요하지만, 역시나 기억은 나지 않는다. 아마도 베네치아가 배경이라서가 아닐까. 스무 살에 [벨벳 골드마인]을 보고 문화적 충격을 받은 나는 이십 대의 많은 날을 탐미주의에 빠져 보냈고, [베니스에서의 죽음]이라는 영화가 있다는 걸 알고서는 어떻게든 VHS를 구하러 청계천을 헤매기도 했으니 말이다. (당시 내가 빠져 있던 또 하나의 부류인 독일 표현주의 영화는 대부분 당나귀에서 구할 수 있었지만, 유독 [베니스에서의 죽음]만은 당나귀에서 찾을 수 없었다...)

이 소설은 장르적으로는 정의하기가 좀 애매한데, 일단은 추리소설의 형태를 띤 지식소설(학자가 썼다)이라는 표현이 그나마 가까운 표현일 듯싶다. 혹은 출판사의 표현대로 과학+철학 소설(스릴러)이라고 칭할 수도 있겠다(물론 과학철학+소설은 아니다. 오해의 소지가 있는 표현이다).

물론 이러한 크로스오버가 작품의 제1 가치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 추리소설의 형태를 띠는 지식소설은 많다. 대표적으로 한국에서 그토록 인기 많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들을 떠올려보라(이 책의 역자 이세욱은 베르베르의 책을 여럿 번역하기도 했다). 한편으로 남미에는 진정한 의미로 새로운 양식을 연 보르헤스가 있고, 과학(SF) 쪽으로 가면 [정신기생체]나 [별의 계승자] 등 긴 목록이 기다리고 있다. 철학(심리학)에 방점을 둔 작품들로는 [니체가 눈물을 흘릴 때]를 비롯한 어빈 얄롬의 소설들이 있다.

또한 렘수면 중 꿈을 조작하면 인격을 바꿀 수 있다는 설정도, 뭐, 흥미롭다면 흥미로울 수도 있다(‘뭐’라고 잠깐 망설였다). 그러나 문제는 소설로서 읽는 재미가 있는가 없는가다. 설정과 플롯은 별개고 문장은 또 별개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이 책의 알라딘 세일즈 포인트는 121점이다. 출판사는 눈물을 흘렸을 거다. 읽는 재미가 없는 건, 명색이 ‘스릴러’인데도 플롯이 시시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명을 비롯해 고유명사와 수비학이나 회화, 그리고 생리학 학술 용어가 쏟아진다. 이탈리아에 관심이 없다면 고역, 과학계 이야기를 몰라도 고역이다. 위스망스의 [거꾸로] 같은 소설이 사람에 따라 왜 지극히 읽기 어려울 수 있는지 떠올려보면 된다. 노학자(1925년 출생)가 나름 위트 있어 보이려고 쓴 결과물은 그냥 지루한 글일 뿐이었다.

국내에서는 2004년 [다빈치 코드]의 성공으로 팩션 붐이 일었고 이것이 2006년 한국형 팩션 [뿌리 깊은 나무]로 이어지며 이른바 ‘중간소설’이 흐름을 탔던 적이 있었다. 프랑스에서 2004년에 출판된 작품이 국내에는 2009년에 소개된 데에는 이런 시장 상황도 작용했던 게 아닐까 싶다(물론 중간소설과 지식소설은 다르다).

이렇게나 재미없는 책이었지만 그럼에도 정리하는 글을 쓰며 깨달은 게 하나 있다. 나 역시 이 할아버지와 비슷하게 여러 작가와 작품을 거들먹거리며 글을 쓴다는 사실(이제 지명만 추가하면 완벽하다!). 그러니 언급한 작품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이 글도 얼마나 재미없게 느껴질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