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Death, and Meaning: Key Philosophical Readings on the Big Questions (Hardcover, 3)
David Benatar / Rowman & Littlefield Pub Inc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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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2016년에 이런 책의 3판이 나온 게 신기해서, 옛날에 정리한 글을 찾아봤다. 5년 전, 나는 이 책의 2판(2010)을 (다는 아니지만) 읽었다. 당시 나는 나름 열심히 인생의 의미를 다루는 온갖 영미권 책들을 조사하고 있었다. 구체적으로는 대륙철학이 아니라 분석철학의 스펙트럼 아래에서.

이 책은 정가에서 볼 수 있듯 일반인 대상의 책도 아니고, 그렇다고 철저하게 아카데믹한 논문집도 아니다. 물론 편저로서 후자에 가깝긴 한데 그나마 인생의 의미를 다루는 논문이나 책 중 약간은 접근성이 있는, 즉 흥미로운 글들을 화두별로 발췌해서 엮은 학술서다. 화두는 책의 부(part)를 이루며 인생의 의미, 출생, 죽음, 자살, 불멸, 낙관주의와 비관주의 이렇게 총 여섯 개다. ‘인생의 의미’라는 뜬구름 잡는 듯한 말을 머릿속으로 떠올려본 적이 없다 해도, 어디선가 들어보거나 조금이라도 생각해본 적은 있는 이야기들일 것이다. 각 부마다 3~7개의 글이 실려 있다.

3판에서 달라진 점은 1부에 수전 울프의 글이 추가된 것밖에 없다. 수전 울프의 [Meaning in Life and Why It Matters](2010)는 분명히 학계에서 관심을 끌 만한 책이었는데 이 책 2판보다 나중에 나와서 편자가 놓친 게 아닌가 싶다. 수전 울프의 책은 (놀랍게도) [삶이란 무엇인가](2014)라는 제목으로 엘도라도가 시리즈화해서 국내에 냈다(해당 시리즈에 대해서는 로쟈가 잘 정리한 글이 있다. http://blog.aladin.co.kr/mramor/7396991 참고).

수전 울프 외에도 1부는 리처드 테일러, 토머스 네이글, 로버트 노직 등 국내에서도 나름 유명한 (그러나 주저가 ‘제대로’ 번역 출간된 적은 없는) 철학자들의 글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테일러의 글은 ‘뉴질랜드 동굴에 사는 반딧불이’ 비유로 유명(?)하고, 나름 그나마 가장 읽어볼 만한 글이다. 노직의 글은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지적인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11년째 OECD 자살률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는 헬조선에 살고 있으니 자살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헬조선 이전 세대라면 [시지프 신화]의 첫 (세) 문장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테고.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철학의 근본문제에 답하는 것이다.” 이외에도 [자유죽음]이나 뒤르켐의 [자살론] 같은 책이 인기를 끌 만큼 한국에서는 자살이 큰 관심사지만 안타깝게도 이 책의 4부에는 흄, 칸트, 베나타(이 책의 편자)의 글 세 개밖에 실려 있지 않다.

1부, 4부, 그리고 6부의 쇼펜하우어를 제외하면 나머지 저자들은 국내에 번역된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나마 국내에서 인지도가 있는 건 데릭 파핏(2부)이나 오페라로 유명한 {마크로풀로스 사건}(5부) 정도일 것이다.

3판이건 4판이건 몇 판이 나오건 내가 이 책을 다시 읽을 일은 없겠지만, 한때 내 인생에서 이런 책을 읽고 이런 주제를 공부하는 시늉이라도 했다는 사실 정도는 기록할 만하지 않나 싶었다. 당시 이런 책을 읽으며 나만의 ‘언젠가 한 번은 정독하고 싶은 철학책’ 목록이 생겨났는데, 이 역시 소득이라면 소득이다. 이 목록의 1번은 이 책에도 발췌된 노직의 주저 [Philosophical Explanations]다. 내가 죽기 전에 번역되어 나온다면 꼭 한 번 정독에 도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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