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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녀 이야기 ㅣ 환상문학전집 4
마가렛 애트우드 지음, 김선형 옮김 / 황금가지 / 2002년 7월
평점 :
품절
책의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근미래 미국 어딘가쯤에서 '길리어드'라는 군사정권이 수립되고 그곳의 주민들은 번식을 위한 섹스만을 강요당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철저한 신분질서가 지켜지는 곳인지라 '시녀' 계급의 여성에게는 임신과 출산만이 유일한 삶의 목표로 주어지는데, 이 책은 바로 그 시녀에 해당되는 한 여성이 남긴 기록이다.
이쯤에서 일단 황금가지에 박수를 쳐주고 싶다. 러브크래프트 전집 출판한다고 한 지 백만 년은 지났는데도 아직 약속 안 지키고 있는 건 화를 내고 싶기도 한데, 그래도 가끔 이렇게 다른 출판사에서 내기 힘든 책 소개하는 걸 보면 또 상당히 착하단 말이다.
SF의 관점에서 보기에는 테크놀로지에 대한 고찰 자체가 전무하므로, 황금가지 측의 말대로 경계문학 내지 환상문학 정도로 봐줄 수는 있지만, 사실 이 책의 의의는 페미니즘적인 무게에 더 실려 있다. 단적인 예를 하나 들자면, 길리어드에서는 모든 시녀들이 원래 이름을 제거당한다. 주인공은 현재 프레드(Fred)家 남성의 소유(of)에 있는 시녀이기 때문에 오브프레드(of Fred)라고 불린다. 만약 그의 아이를 낳거나 혹은 낳지 못하거나 해서 다른 남자의 소유가 되면, 그녀의 명칭은 다시 바뀐다. 이미 이 시점에서, 이 소설은 단순한 경계소설로 읽히는 것을 거부한다.
하지만 화자이자 주인공인 오브프레드에게서 뚜렷한 비판의식이 발견되지 않는 것은 주목할 부분이다. 시녀들끼리 대놓고 말 한 마디 나누다가도 교수형당하는 사회니까 이게 또 당연하다면 당연할 수도 있다. 따라서 오브프레드가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무수한 독백들이 상당수 지면을 차지하게 되는데, 이러한 독백이 공상 내지 과거 사회에 대한 향수 정도로밖에 읽히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다. 후반으로 갈수록 모종의 각성이 암시되기도 하는데, 이마저 주인공 본인의 주체적인 노력의 결과라기보다는 우연의 산물로 읽힌다. 마지막, 매우 인상적인 엔딩까지도.
한 가지 더 재미있는 사실은, 길리어드에서 의무적으로 번식을 강요당하는 것은 여성뿐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유산계급에 속하는 남성들조차도 단지 의무적이고 기계적으로 섹스에 임한다. 길리어드에서는 섹스에 쾌락이 개입될 여지가 없다. 이런 면은 현대사회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로 읽을 수도 있는데, 여러 모로 생각해볼 부분이다. '페미니즘 SF'라고 간단히 칭할 수만은 없는, 그 경계에 절묘하게 위치하는 책이다. (06-3-7, 필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