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hysics of Consciousness: The Quantum Mind and the Meaning of Life (Paperback, Revised) - Quantum Minds and the Meaning of Life
Evan Harris Walker, Ph.D. / Basic Books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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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5년 1개월 전 업무상 읽었던 책이다. 당시 살폈던 많은 책이 그냥 잊혔지만 이 책은 이상하게 이따금씩 기억 위로 떠오르곤 했다. 나는 SF는 좋아해도 물리학에는 관심이 없다. 게다가 이 책은 '정통' 양자역학 책도 아니다. 그럼에도 쉽게 잊기 어려운 특별한 점이 있었던 거다.


양자역학과 수학 공식 사이사이에, 죽은 지 50년이 다 된 첫사랑에 대한 연가가 교차편집되어 있다.


책의 (과학적) 내용은 '실재란 무엇인가'라는 고전적 질문에서 시작한다. 고전물리학과 양자역학의 해석을 살펴보고 관찰자, 즉 의식의 중요성이 제기된다. 그러더니 선 불교, 인식론, 신경과학의 근거까지 가지고 와 '양자 의식'을 주창하고, 의식이 인간, 정신, 신을 하나로 묶어준다(내 방식대로의 표현이므로 문자 그대로의 해석은 곤란하다)는 결론으로 끝맺는다. 그런데 이 모든 곳 중간중간에 첫사랑과 관련된 일기나 회상이 삽입되어 있는 거다! 시시콜콜하고 구구절절할 정도로. 정말 이상한 책이다.


주요 독자가 과학자다 보니 이런 형식적인 면에 주목하는 리뷰는 별로 없었다. 내용 역시, 양자역학을 근거로 의식의 존재를 규명하는 '신과학'에 속하므로 학계에서 인정받지 못했다. 반면 나는 공식이고 증명 따위는 뒷전인 독자로서, 이런 과학책으로서 비상식적인 구성을 상당히 인상적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에세이 부분이 명문이었다면 문학적 가치라도 인정받았을 텐데 아쉽다.


수학 공식을 옮기는 건 무의미한 일일 테고, 책의 마지막 부분, 저자가 마지막으로 인용한 일기를 번역해 옮긴다.


1988년 10월 17일 월요일


가끔 클레몬트 1414번지 집을 지나 걷곤 했다. 잔디가 깔린 가파른 인도 옆에는 갈색 소나무 잎에 섞여 아이비 잎이 담을 넘어 늘어져 있다. 가끔 그곳을 걷는다, 그녀의 존재를 느낄 수 있을까, 우리 기억의 조각을 찾을 수 있을까, 그녀가 살던 집 앞 보도 어딘가에 그녀의 존재가 혼령처럼 여전히 남아 있어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고. 하지만 늘 그렇듯 옛날 기억, 모두 똑같이 생긴 집들에서 옛날 기억만 느껴질 뿐이다. 똑같은 마당들의 기억. 마당마다 그때처럼 초목이 무성하다. 단지 그때 어린아이들이 이제는 노인이 되어 문가에 기대 내가 지나는 것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

갑자기, 마치 여러 개의 영혼이 나를 꿰뚫고 지나가는 듯했고, 나는 텔레비전의 노이즈 화상에 불과한 것처럼 시간 자체가 떨렸다. 나는 물리적으로 흔들렸다. 그녀의 영혼이 나를 뚫고 지나갔다. 나는 몸을 떨며 똑같은 공원, 똑같은 울타리, 똑같은 벽을 따라 걸으며, 그녀의 존재를 느꼈다. 우리 둘이 여전히 이곳에서 테니스를 치고 있는 듯했다… 그녀는 내가 죽기를 기다리고 있다… 내 영혼이 자유로워질 미래를 기다리고 있다… 날 기다리고 있다…. (킨들판 5271-5284)


이 책이 나온 건 2000년이다. 저자 에번 해리스 워커는 1935년, 저자의 첫사랑 메릴린 앤 젠더는 1936년에 태어났다. 둘은 유년 시절을 함께 보내며 사랑했고 고교 졸업 후 결혼을 약속하지만, 1952년 12월 19일 메릴린은 백혈병 합병증으로 사망한다. 저자는 2006년에 사망했다. 그의 주장이 맞는다면, 둘의 영혼은 양자 의식의 한 가능태로서 공간 없는 곳에서 함께 실재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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