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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
마르그리트 뒤라스 / 백만출판사 / 1992년 6월
평점 :
절판
올 여름은 유난히 덥고 지치는 계절이었다. [연인]을 읽는 것은 이번 여름만큼이나 지치는 경험이었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문장들은 몇 페이지를 넘기기가 힘들 정도로 부유하고 있었다. 뒤라스가 태어난 곳이자 그녀의 문학적 원천의 하나인 '다다를 수 없는 나라' 안남의 이미지가 순간 겹쳐진다.
타나토스적인 절대적 사랑에 대해서는 [모데라토 칸타빌레]에서, 어머니와 불모지에 관한 굴곡진 유년기에 대해서는 [태평양을 막는 방파제]에서 이미 다루어진 바 있다. 이 두 작품에 이어, 뒤라스는 스스로 고백하기 주저해왔던 자전적 테마들을 마침내 한 권의 책으로 완성하는 데 성공한다.
이 테마는 뒤라스 본인에게는 문학 인생 전체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것들이겠지만, 모든 독자에게도 같은 무게로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 뒤라스의 팬이 아닌 독자들이 [연인]에 주목하는 이유는, 대개는 15세 백인 소녀와 30대(32세?) 중국인 남자와의 관계(이것을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에 대한 호기심 때문일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그리고 내가 그들의 관계 속에서 본 것은 철저한 자기기만, 단지 그것뿐이었다.
소설을 100% 이해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뒤라스 스스로 흘러가는 '에쿠리츄르'라고 일컫는 이 소설은, 명확히 붙잡기가 힘든 작품이다. 여기에 번역마저 나쁘다. 편집도 마찬가지고.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1992년에 여러 출판사가 이 책을 번역해 내놓은 걸 보면, 소설을 기반으로
그해
나온 동명 영화의 성공 탓에 잠시 뒤라스 붐이 일었던 게 아닐까 싶다. 그중 읽어본 건 백만출판사에서 나온 이 책뿐이지만, 다른 곳에서 나온 책들 역시 과히 번역 수준이 좋지는 않으리라 짐작된다. 십 년이 넘게 흘렀으니, 새 번역이 나올 법한 시점이다(김화영은 너무 딱딱하다. 황현산이라면 어떨까). (05-9-8, 필유)
덧: 이 책에는 뒤라스의 다른 작품인 [고통]과 [에밀리 L]이 같이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