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눈은 신을 보고 있었다 대산세계문학총서 7
조라 닐 허스턴 지음, 이시영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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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인 그리고 여성. 이 이중적인 억압의 굴레에 놓여있던 조라 닐 허스턴의 [그들의 눈은 신을 보고 있었다]는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최초의 흑인 여성소설로 꼽힌다. 주인공 재니의 일대기에 외적으로 급격한 사회 변동이 추가된다면 [접골사의 딸]이나 [영혼의 집]과 비교할 법도 한데, 반대로 두 작품에서는 다루어질 수 없었던 소수인종인 흑인에 대한 시선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그러나 흑인 여성 재니가 세 명의 남성을 만나며 겪는 파란만장한 삶의 여정 속에서,  백인 혹은 남성으로 대표되는 기득권 체제에 대한 비판이 강도 높게 제시되지는 않는다. 작가는 흑인 민속의 가치를 인류학적으로 연구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하는데, 이 관점이 소설 속에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단적인 예로, 역자의 표현을 빌리면, 흑인들의 ‘말(言)잔치’에 많은 지면이 할애되어 있다. 과장법과 언어유희 때로는 촌극적인 요소까지 가미된 이 말잔치들을 작가는 구어체와 대화체를 사용해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어쩌면 이 사람냄새 나는 ‘구수함’의 정서야말로 위선적인 엄숙함과 권위적인 허위 속에 군림하고 있는 백인 남성 (그리고 그것을 모방하려 애쓰는 흑인 남성들, 대표적인 예로 재니의 첫 두 남자 로건 킬릭스와 조디 스탁스) 기득권 세력에 대해 작가가 내세우는 비판적 대안(재니의 마지막 남자 티 케이크로 대유되는)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한편 뛰어난 묘사가 돋보이는 소설의 위기부 18장에서, 이 책의 제목이 된 바로 그 의미심장한 문장이 등장한다.


 바람이 세 배나 무서운 기세로 덮쳐왔다. 그리고 마지막엔 불마저 꺼뜨렸다. 그들은, 이웃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헐벗은 벽을 뚫어져라 응시하며 마음으로는 신께 묻고 있었다. 신은 지금 신 앞에서의 인간의 미약함을 증명하고자 하는 것인지. 그들은 어둠을 응시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들의 눈은 신을 향해 있었다.(pp.203~4)


 여기서 작가는 흑인 대 백인을 넘어 인간 대 신의 구도를 설정하고 있다. 재니와 티 케이크뿐만 아니라 모두가 신의 의도인 허리케인이라는 자연 재해 그리고 ‘사각 발가락의 죽음’을 온몸으로 절감한다. 그리고 티 케이크의 죽음으로 재니는 결국 그 앞에 굴복하고 만다. 그러나 ‘그 싸움의 대상은 죽음이 아니었다. 그보다 더한 것, 거짓 생각이었다.’(p.239)에서 드러나듯 재니가 싸워야 하는 대상은 신이 아닌 인간, 더 정확히는 백인 혹은 남성 중심주의가 지배하는 매몰찬 현실이었다. 결국, ‘그들의 눈은 신을 보고 있었다’라는 문장에 함축된 메시지는 사실 아주 간단한 것이었다: 모든 인간은 신 앞에 평등하다.


 요컨대 흑인 여성의 정체성을 최초로 다루었다는 의의 외에도, 인간미 넘치는 문체와 문학적 형상화 역시 뛰어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끝으로, 재니가 티 케이크에게 다분히 ‘의존적인’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허스턴의 이런 온건적 작품 성향이 당시 급진적 흑인 문학계 내부에서조차도 환영받지 못했다는 사실은 빤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이것을 현대적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비판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지의 여부는, 숙제로 남는다.



덧1. 인용문: 마치 테드 창의 [Story of your life]를 제목으로는 ‘당신 인생의 이야기’로, 책 중에서는 ‘네 인생의 이야기’로 번역한 것과 같이, 번역의 일관성이 떨어지는 부분이다. 인용문의 마지막 문장은 ‘They seemed to be staring at the dark, but their eyes were watching God’이며, 개인적으로 ‘향해 있었다’가 더 자연스러워 보인다.


덧2. 말잔치: 속어로 유명한 흑인 영어를 한국어로 제맛을 살려 번역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지만, 역자는 나름대로 풍부한 어휘력을 발휘해 번역하려 애쓴 흔적이 보인다.


덧3: 올해 3월 TV 영화화되었다고 한다.

     http://www.oprah.com/presents/2005/movie/movie_main.j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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