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인형 대산세계문학총서 15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 지음, 안영옥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1월
평점 :
품절


 

 저자 아돌포 비오이 까사레스가 보르헤스와 55년간 절친한 문우(文友)였다는 사실만으로, 이 책을 구매하는 데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끼어들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본인 또한 그 열렬한 독자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과 같은 시리즈에 대한 어느 정도 대안적인 의미로서 발간되고 있는 대산세계문학총서 시리즈에 대한 궁금증 역시 구매욕을 부채질했다. 그래서, 망설임 없이 일단 질렀다.


 먼저 외양적인 면을 보면, 명백한 오역 혹은 주술불일치와 같은 문법적 오류가 몇 군데 발견된다. 내용 이해가 어려울 정도로 크게 문제될 것은 아니지만 신경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전반적인 번역 수준 또한 아무래도 국어답지 못한 느낌이 많지만, 그야 뭐 영어권 문학의 번역과 비교해서는 안 될 문제이니까, 넘어가기로 한다.


 보르헤스만큼의 상상력의 지평을 기대하지 않는다면, 읽는 재미와 문학적 완성도는 갖춘 작품집이라고 할 수 있다. 환상문학이라는 표제와는 달리 상당히 사실적인 성향의 단편들이지만, 환상과 현실과의 경계를 아무렇지도 않게 (때로는 유머까지 섞어가며) 드나드는 까사레스의 수사(修辭)는 분명 대가의 능력이라고밖에 부를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또한 보르헤스보다는 인간적이다. [물 아래에서]가 너무나도 가슴 절절한 러브 스토리로 읽혀지는 것은, 단지 내가 ‘마술적 사실주의’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보르헤스의 [울리카(Ulrikke)]가 비교대상으로 떠오르지만, 이 경우에는 [물 아래에서]가 한 수 위다.


 결론짓자면, 보르헤스에 국한되어 있던 중남미 환상문학계에 대한 시야를 넓혀 준다는 점에서 참으로 소중한 작품집이라 하겠다. 환상소설 내지 경계소설 애독자라면, 분명 재미있게 읽을 책이 될 것이다. 그리고 보르헤스를 기대한다면 조금 실망할 수도 있지만, 보르헤스와는 또 다른 매력을 찾는 것으로 만족했으면 한다. 끝으로, 대산문화재단도 앞으로 더욱 좋은 작품 많이 소개해주길 바란다.(05-7-22 필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