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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ㅣ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5
다나베 세이코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들어가기 전에
일단, 동명의 영화는 아직 보지 못했다. 딱히 그 영화 때문에 이 책을 읽게 된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이 글의 초점은 책 속의
단편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에 한정되어 있지 않다. 무엇보다, 내가 이 책에서 제일 좋아하는 작품은 [사랑의 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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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멋진 소설집이다. 더할 나위 없이 쿨(cool)한 등장인물들이 벌이는 연애 행각을 섬세한 시선으로 담고 있는 책이다.
작가 다나베 세이코는 독특한 위트와 짧고 경쾌한 필체로, 달콤쌉싸름한 사랑 이야기들을 풀어내려간다. 독자는 이렇게 섬세하게
그려진 아기자기한 연애담에 빠져들게 되고, 마치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만 같아 공감도 느낄 것이며, 무엇보다 대부분 놀라게 될
것이다.
이 책에 실린 소설들의 공간적 배경은 일본, 그리고 대부분은 대도시라고 보기 힘든 장소들이다. 게다가 처음 책이 발간된 것은
1985년, 지금으로부터 20년이나 전의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속의 등장인물들, 특히 여주인공들의 생활 및 사고방식은
어찌나 메트로폴리탄적인지. 고즈에나 조제, 리에 등 몇몇을 제외하면, 이 주인공들은 잘 나가는(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을지라도)
커리어 우먼이며, 우네의 말을 빌리면 ‘남자를 낚아 즐길’줄 아는 섹스관을 가진 인물들이다.
20년 전에 쓰인 이 책이 현재의 사회상과 모랄을 이토록 정확히 투영하고 있다는 사실은 정말 놀라울 정도다. 세상에,
‘대성공이야! 그렇지, 파트너’라니. 애정(상식적인 의미로서) 없는 결혼 생활을, 대외적으로는 금실 좋은 부부인양 연기하고서는
서로 축하의 섹스를 하는 가오리 부부의 모습에서 나는 폭소를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상식적으로는 기가 막힐 정도로 비정상적인
이런 결혼 생활이, 왠지 현실적으로 다가오고 게다가 부럽기까지 한 것은 어째서일까.
다나베 세이코가 제시하는 이 쿨한 연애관의 청사진은, 아직도 사랑을 관념이나 환상으로밖에는 알지 못하는 독자들뿐만 아니라 이미
몇 번의 연애를 경험한 독자들까지도 충분히 사로잡고 있다. 세이코는 사랑에 대한 리얼리티를 하나둘씩 깨달아가며 느꼈던 환멸감들을
구태여 상기시키지 않는다. 대신에 그 깨어진 환상 속에서 또 다른 환상을 심어주고 있다. ‘나도 이런 사랑을 해보고 싶어’라거나
‘나도 이런 사람이 되고 싶어’라고 동경, 혹은 더 나아가 다짐을 하게 만드는 놀라운 힘이 이 책에는 있는
것이다.(05-5-2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