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반짝 빛나는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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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냉정과 열정 사이]와 [울 준비는 되어 있다]에 이은, 세 번째로 접하는 에쿠니 가오리의 책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역시 가오리 특유(?)의 쉼표 사용법. 단순히 일본어와 한국어의 차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대화, 독백, 간접 인용 등에 분명 의도적으로 빈번히 사용되는 이 쉼표는 망설임이 담긴 묘한 여운을 남기며, 여전히 매력적인 장치로 작용하고 있었다. 미안하지만, 이 소설의 미덕은 단지 이것 하나뿐이었다.


 장(章)마다 서술자의 시점이 두 주인공의 것으로 번갈아가며 달라지는 점도 특이한데, 이상하게도 문체상에 있어서 큰 차이가 보이지 않는다(물론 [냉정과 열정 사이]와 비교하면 안 되겠지만). 또 대화 중간에 따옴표를 자주 생략하기도 하는데 이것이 인물의 심리와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는 그 의도가 명확하지 않다. 시점이 변경되어도 문체는 그대로이기에 더 그렇다.


 캐릭터의 설정이 유별나긴 하지만, 스토리와 플롯은 '심플'하다. 작가는 요시모토 바나나와 종종 비교되는 것 같은데, 실제로 이들의 일상에의 관심과 작법은 비슷한 게 사실이다. 표피적이고 단편적인 문장들의 부유. 겉으로 드러나는 감각적인 문체와 인물 내면 심리와의 연결 고리가 형성되지 않는다.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발견되던, 때때로 모순적이기까지 한 이 계층적 관계가 [반짝반짝 빛나는]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에쿠니 가오리 같은 여류 작가들은 심리 묘사에 있어 뛰어나다고? 본인에게는 그렇게 다가오지 않는다. [반짝반짝 빛나는]에서 가오리는 단지 피상적인 수준의 쿨(cool)한 외양을 표방하는 데 그치고 있다.


 게다가 작가가 말하는 심플한 사랑 이야기라는 주제는, 실제로 너무나도 심플하다. 어쩌면 너무나 심플하기에 이미 언급한 표피적인 작법과 부합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영 본인의 기호에는 맞지 않는다. 본인으로서는 이렇게 심플한 사랑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는 거다. 아니, 그런 사랑의 실제적인 존재 여부를 차치해도, 작가의 이야기는 설득력이 없다.


 기본적으로 소설 - fiction은 허구다. 그리고 작가는 그 허구를 독자로 하여금 믿게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믿게 만들어서 웃고 또 울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하루키에게는 (적어도 옛날에는) 그런 능력이 있었다. 그러나 여자 하루키로 불리는 가오리의 이 소설은, 쿨한 이야기로 아무리 받아들이려 해봐도, 독특한 캐릭터들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뿐이라고 아무리 납득하려고 해봐도, 결국은 공감하거나 믿고 따라가기가 힘들다.(05-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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