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립자 열린책들 세계문학 34
미셸 우엘벡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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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도 왜 샀는지는 애저녁에 까먹은 책이다. 어느 봄밤, 무슨 변덕에서인지 방에 굴러다니던 책 무더기 속에서 집힌 책이었다. 첫인상은 '엄청나게 빽빽하다!'였으나 그것은 직업적 관점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야기는 술술 읽혀 내려갔다.

잃어버린 기억으로 추측해보건대 제목도 '소립자'이고, 프롤로그도 심상치 않은 것이 'SF로구나' 생각이 들었다. 아니었다. 그럼에도 읽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마사루가 [으흥보고서]를 읽으며 느꼈던 게 이런 기분이었겠지. 책은 어딘가에서 들은 표현마따나 서구의 성 풍속사를 두 형제의 삶의 궤적으로 풀어낸, '서구의 자멸'을 다룬 소설이다. 어떤 의미에서 '지식소설'이라 볼 수도 있겠다.

중론인바 우엘벡은 성에 관한 것은 무엇이든 간에 표현에 거리낌이 없고 개중에는 받아들이는 태도에 따라 위험하다고 볼 수 있는 부분도 있다. 그럼에도 거부감보다는 경외심이 앞서는 것은, 결론적으로 작가의 관점이 거개 사실에 가까운 탓이다. 말하자면 작가는 우리가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 보편적 현상을 한없이 적확하게 묘사할 뿐이다.

우엘벡의 글쓰기는, 가령 심금을 울리는 장면을 굵고 짧게가 아니라 가늘고 길게 각인시키는 효과가 있다. 여기에 잡학다식과 블랙유머가 가세한다. 특이한 스타일이자 가히 독보적이지 않을까 싶다. 마침 이 책을 읽은 직후 손에 잡힌 게 [오래된 일기]였는데, 미안한 얘기지만 우엘벡의 문장과 비교되는 걸 어쩔 수 없었다. 피하고 싶은 표현이긴 하나 필력이 좋다는 건 우엘벡 같은 작가에게 어울리는 말이 맞다.

부차적으로, 화자 미셸의 자신에 대한 인식 속에서 소름 끼칠 정도로 현대인의 특성과 들어맞는 면을 엿볼 수 있었다. 성 모럴과는 무관하게, 미셸은 현대 소비주의에 순응한 우리의 일면을 철저하게 대변한다(이는 [지도와 영토]에서 더 두드러지며, 돈 드릴로의 [화이트 노이즈] 또한 좋은 비교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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