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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툰 - [할인행사]
올리버 스톤 감독, 찰리 쉰 외 출연 / 20세기폭스 / 2002년 3월
평점 :
절판
1. tragedy
플래툰은 무척이나 사실적인 영화였다. 올리버 스톤은 1967년에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여 2번 부상당하고 훈장까지 받았다고 한다.1) 그런 그였기에 스탠리 큐브릭이 영국 로케이션으로 만든 풀 메탈 자켓에서는 재현해내지 못했던 것들을 재창조해낼 수 있었던 것이리라. 무거운 비, 기력을 지탱하기도 힘든 철야와 매복, 밤을 환하게 빛내는 화염들, 총알들, 작열하는 폭발들... 그런 것들 속에서 베트남전에 관해 끊임없는 공포감, 불안감, 그리고 거기서 싸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가 하는 것 등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전쟁과 같은 극한 상황 하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잔인한 본성에 대한 묘사가 섬뜩하게 다가왔다. 다리가 하나밖에 없는 베트남 정박아 앞에서 주인공 크리스는 본디의 선한 기질을 잃고 분노해버리고 그의 발 앞에 총을 쏜다. 그래도 크리스는 살인을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바로 이어서 백인 버니2)는 그 정박아의 머리를 M-16의 개머리판으로 부숴버린다. 안심하고 보다가 갑자기 이어지는 이 살인 때문에 여린 관객(본인-_-)의 가슴은 무너졌다. 옆에 있던 그 아이의 어머니로 보이는 노파의 망연자실한 얼굴이 가슴을 찌른다.
이렇게 간헐적으로 휴머니즘의 부재를 상기시키는 부분은 이외에도 많은데, 특히 위에 쓴 마을 습격 부분에서 미군이 자행하는 일들이 그렇다.3) 이 습격 이후 사이가 크게 틀어진 반스와 엘리어스가 정글 속에서 조우하고, 무방비 상태의 라이어스에게 반스는 M-16을 발포한다. 그리고 영화를 안 본 사람이라도 한 번쯤 보았을 만한(나도 그랬다) 바로 그 장면에서 휴머니즘의 부재는 정절에 이르게 된다. 아군에게 버려진채 사냥감이 사냥개들에게 쫓기듯 베트공들에게 공격당해 절규하며 죽어가는 라이어스의 모습이 영화 메인테마곡과 함께 흐르며 지울 수 없는 상처 같은 것을 우리에게 남긴다.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 포스터가 태양이 맑게 비치는 대낮에 죽어가는 군인의 모습이라는 것을.
2. Oliver Stone
퇴역군인이 예술가 -작가, 조각가, 혹은 영화촬영 전문가- 라고 한다면 그가 겪은 전쟁이 거의 변함없이 그의 작품의 주제가 된다. ‘피를 흘리는 것을 목격한 군인’은 이미 오점이 박힌 사람이라고 역사학자 딕슨 웩터는 말했다고 한다. 올리버 스톤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영화 마지막에 크리스는 생각한다. “Those of us who did make it have an obligation to build again, to teach others what we know and to try with what's left of our lives to find a goodness and a meaning to this life.” 결국 이것은 올리버 스톤 자신이 말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그는 이 작품 외에도 [7월 4일생], [도어즈], [JFK]와 같은 반전의 메시지가 들어있는 영화들을 만든다. 특히 그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60~70년대의 격변하는 미국의 모습이다. 1960년대 미국 사회는 ‘격동의 60년대’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시대였다. 쿠바 침공, 케네디 암살, 흑인 폭동, 베트남 전쟁 반대 시위 등등등 수많은 사건들이 있었다. 여기에 약물(1966년 초까지 LSD는 합법적이었다.), 공동체, 평화, 프리 섹스 등을 주장하며 제도권을 거부하는 히피족이 등장하며, 이들은 싸이키델릭 록을 듣거나 직접 연주하곤 했다. 이것들은 모두 60~70년대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들이다. 그가 동명의 다큐멘터리 영화로 재현한 The Doors나 이 영화에서 크리스가 부상 후 귀환한 캠프에서 처음 접하게 되는 마약굴 안에서 흘러 나오는 Jefferson Airplane 같은 그룹이 모두 싸이키델릭 록그룹들이다. 특히 마약굴 내에서의 몽롱하고 친근한 공동체 분위기는 히피들의 공동체 생활을 흉내낸 것처럼 보인다.4)
3. growing in war
플래툰은 하나의 성장 소설식의 내용을 그리고 있다. 다시 말해, 이 영화는 크리스의 하나의 모험담에 그치는 것처럼 보여질 수 있다. 이는 크리스의 신분이 특권층 계층이고, 군에 자원해서 밑바닥 계층의 사람들로부터 무엇인가를 배우러 군에 자원했다는 사실로부터 비롯된다. 그에게 있어 전쟁이란 성인이 되는 계기 -많은 신화에서 나타나는- 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 청년이 순수한 어린아이 상태에서 자신의 내면에 선과 악을 동시에 내포하게 되는 인물로 변화해 가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다”라는 스톤의 말은 이를 뒷받침한다.
여기에 있어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은 바로 전쟁이 이데올로기가 아닌 개인의 싸움이 되어버린다는 사실이다. 이 영화의 캐릭터들 사이에는 친족의식 혹은 동료의식이 거의 없다. 그들은 함께 복무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어떤 충성심이나 단체를 위한 자기 희생정신 같은 것을 느끼지 않는다. 라이어스를 위시한 캐릭터들 사이의 친밀감 역시 단체로부터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과 개인 사이의 유대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영화 내내 미군은 전투를 하고, 살인을 한다. 위에서 지적한 친족의식의 부재로 말미암아 캐릭터들은 매우 냉혈한 살인마의 이미지로 부각되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이 전쟁이 누구를 위한 전쟁인지에 대한 아이덴티티의 확인은 없다.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아니라 오히려 아군 간의 감정 대립이 더 문제시되는 감도 없지 않다.
하지만 어쩌면 이 모두가 감독의 의도였는지도 모른다. 결국 전쟁은 궁극적으로는 개인의 문제라는, 그러한 문제 제기를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데올로기 따위는 전선의 당사자에게는 중요한게 아니다. 그들은 하루하루 생존하기를 바라거나, 혹은 반스처럼 단순히 살상을 즐기며 그곳에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영화 안에서 그려지는 수많은 비극들 역시 이데올로기와는 상관없이, 전쟁 그 존재 자체로부터 비롯될 수밖에 없는 것들이리라. 시체들의 산 속에는 적과 아군의 구분이 없었다. 전쟁의 상처만이 남아있을 뿐.
4. end
이번에도 역시 산만하다.-_-; 일관된 논지가 없는 탓인 것 같다. 암튼 잘 봤다. 내겐 아직 영화로부터 정치적인 것을 읽어내는 눈이 별로 없는가보다. 늘 개인적인 문제로 귀결되니 끙... 2002.3.31
5. appendix
전쟁의 상처를 그린 애니메이션으로 대표적으로 건담 시리즈를 들 수 있다. 이중 건담 매니아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공감할 만한 작품으로 [건담 0083 - 주머니 속의 전쟁]과 같은 작품이 있다. 이 작품 역시 어린 아이의 눈으로 바라본 전쟁과 그 상흔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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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올리버 스톤은 영화 중에서 크리스가 할머니께 쓰는 편지에 썼던 바로 그 자랑스런^^보병(grunt)이었다.
2) 버니, 반스, 오닐 등 못된 캐릭터는 백인이 맡고 있다. 반면 킹, 프란시스, 매니 등 라이어스의 동조자격인 그나마 선한 캐릭터들은 흑인이라는 사실과 관련지을 수 있을까?
3) 토니, 모어하우스, 버니 등에 의해 12살 소녀가 강간당하는 장면에 대한 영어 대본의 묘사는 영화보다 훨씬 더 적나라하게 끔찍하다.
4) 한편 마약굴 안에서 모두 노래 부르며 춤추던 곡은 Smokey Robinson의 소울 음악(정확히는 모타운 사운드)이었다. 올리버 스톤이 흑인에 대해 우호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또다른 증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