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창비시선 161
정호승 지음 / 창비 / 199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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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로 정호승이란 이름을 알게 되었고, 이 시집까지 사게 되었다. '미안하다' 정도로 묘하게 기억에 남는 시는 없었다.(한꺼번에 읽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상당히 신선한 느낌이었다. 그는 사랑 얘기를 하면서도 아름다운 미사여구나 간절한 구애를 늘어놓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일상적이고 담담한 어투를 보이고 있었다. 형식적인 면을 봐도, 산문시가 주를 이룬다.

이렇듯 평범해보이는 그의 시가 신선하고 기억에서 떠나지 않는 이유는, 그의 시 안에서 그의 진심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사랑에 대해, 그리고 삶에 대해 그는 기교 부리지 않고 진심을 담아낸다. 처절한 진심을 아무렇지도 않게 담담하게 말하는 것이다. 처절한데, 처절하게 갈 데까지 갈 수는 없어서 담담하다. 사랑하다가 죽어버려야 하는데, 안 죽고 살아서 시를 쓰고 있는 거다. 하긴 그럴 수밖에 없기도 하다. 우리 사는 게 그런 거지 뭐.

p.s. '미안하다' 외에 기억에 남는 시가 몇 있지만 그 중 '첫키스에 대하여'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가 뛰어난 시인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드는 시다. 첫키스의 그 강렬한 느낌을 바다의 이미지를 빌어 너무나도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다. 책 사길 잘했다. ^_^

2001. 3.21 f.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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