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 한양출판 / 1996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혼란스럽다. 아니, 허무하다고 해야 할까. '그래도 살아가야 하는 것'이라고 하루키는 말했다지만, 왠지 찬성하기가 싫어지는 것이다. 하루키는 역시나 긍정적인 인간인 것이다.

이 소설은 간단하게는 외도를 피우는 남자의 이야기이다. 초등학교 때 좋아했던 여자 시마모토를, 아내와 자식을 얻은 37살이 되어서 다시 만나게 된 하지메. 둘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지만, 하룻밤 사랑을 나눈 후 시마모토는 사라져버린다. 남겨진 하지메는 다시 아내와 자식에게 돌아간다.

환상 - 시마모토와 현실 - 아내와 자식. 문제는 하지메가 현실로 돌아간다고 해서 해결되는 일이 사실은 하나도 없다는 점이다. 잃어버린 20년을 되찾을 수도 없고, 두 번 다시 '흡인력'에 의한 사랑을 할 수도 없다. 하지메는 단지 안정적인 현실 속에 묻히게 되는 것이다.(그런 면에서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와는 차별된다.)

그런데 과연 안정을 취할 수 있는 그런 일상적 현실이 나쁜 것인가? 이른바 소시민적 삶이라고 하는 그러한 삶이 지탄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인간은 늙으면 모두 안정을 추구하게 되는 거라고, 그렇게 생각해버리면 그만이다.

그런저런 이유로 하지메가 20년을 되찾지 못하는 것은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 되어버린다. 완전한 사랑을 되찾는 길은 동반 자살밖에 없었을 거라고 깨닫는 하지메에게서 그 사실을 엿볼 수 있다.

씁쓸한 일이다. 20년이 상징하는 것은 간단히는 물론 젊음이다. 이 소설에서 하루키는 딱히 끓는 혈기나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 등 젊음의 스테레오타입은 언급하지 않는다.(그것은 하루키적 캐릭터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대신 흡인력이라고 하는 것이 제시된다. '자신을 위한 숙명적인 냄새'는 아무 때나 맡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런. 결론은 결국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인가. 긍정하고 살아갈 수 있다면 문제될 것은 없겠지만. 아, 젊음이여. 나의 흡인력의 대상이여, 그대는 어디 있는가. 나 늙기 전에 어서 나타나주게.

2001. 2.13 f.y.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