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 혜원 월드베스트 4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 혜원출판사 / 199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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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그냥 한 번을 읽었다. 작품이 끝날 때쯤 어째서 '위대한 개츠비'일 수밖에 없는지 조금 공감이 가긴 하지만, 완전히 수긍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나서 그의 다른 단편들을 읽으며 다시 개츠비를 읽게 되었을 때, 자연스럽게 '위대한 개츠비'라고 감탄하게 되었다.

사회적 계급이 다른 여자를 사랑하게 되고, 그녀를 얻기 위해서 청춘을 자수성가에 바쳐 부를 움켜쥐게 된 개츠비. 그가 자기 자신을 향상시키기 위해 쏟는 노력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작품에 직접 언급되지 않고 개츠비가 죽은 뒤에서야 간접적으로 제시되는 그러한 노력들이 개츠비를 성공하게 만든 것이었다. 1차 대전 후의 시대 상황은 개츠비에게 기회 아닌 기회였다. 그가 그것을 붙잡을 수 있었던 것은 어디까지나 노력의 대가였던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개츠비의 그러한 지위 상승의 최종 목표가 단지 한 여자에 대한 사랑을 되찾기 위한 것이었다는 점이다. 그것도 이미 결혼해버린 여자에 대한. 성공한 후의 그라면 다른 젊고 아름다운 여자도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성공은 목표가 아니라 수단이었던 것이다. 한 여자에 대한 사랑, 그것을 되찾기 위한 노력, 그것이 개츠비를 위대하게 만드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개츠비는 물론 데이지를 되찾을 수 없었다. 그것은 5년이라는 세월 동안 데이지나 개츠비의 마음이 변해버렸기 때문이 결코 아니라, 데이지를 감싸려고 했던 개츠비에게 닥친 불운 때문이었다.(이쯤 되면 피츠제럴드의 스토리 꼬아놓기에도 감탄을 하게 되게 마련이다.) 아마 후반부에서 개츠비가 데이지를 감싸주지 않고 자수를 설득한다든지 했다면, 그것은 이미 위대한 개츠비가 아닐 것이다. 개츠비의 사랑은 어떠한 고난 앞에서도 변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데이지가 과연 그만큼 가치가 있는 훌륭한 여자였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만약 데이지의 개츠비에 대한 사랑이 개츠비의 그녀의 대한 사랑의 반만큼만 됐었다면, 데이지는 주저없이 개츠비를 선택했어야 옳을 것이다. 애정을 차치하더라도 작품 내에서 묘사되고 있는 데이지는 그다지 교양있는 여성상은 아니다. 물론 당시 미국의 전형적인 사교계 여성상에는 부합될지 모르겠다. 거기에다가 실수라고는 해도 나중에는 뺑소니까지 치고 달아나지 않는가. 그러한 모든 결점을 단지 외적 매력으로 커버할 수는 없을 듯하기도 하다. 어쨌든 개츠비는 그런 데이지를 진정으로 사랑했고, 그 사랑은 변하지 않았다.

나쁘게 말한다면 개츠비는 미련하고 고집불통의 사나이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화자(닉)와 조던의 사랑도 이루어지는 듯하다가 개츠비의 죽음으로 인해 깨지는데, 이는 여기에 대한 작가의 간접적인 경고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무모할지라도 도전하는 것이 젊음이고 개척이다. 20세기 미국문학의 걸작으로 꼽히는 것과 무관하지 않게 참으로 미국적인 모토를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단지 미국적이기만 한 얘기는 아니다. '용감한 자만이 미인을 얻는다.' 개츠비는 위대했다. 그리고 용감했다.

2001. 3. 3 f.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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